Day 22-23 토레스 델 파이네



텐트를 빌리기 전에 미리 가게에서 펴보고 뚝딱 쳐지길래 간편하다고 좋아했지만, 
간편한 만큼 유난히 바람이 독하다는 파이네 그란데 캠프장에서 제일 시끄럽게 펄럭이는 텐트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뼈다귀가 하나라서 간편하니 당연히 안정성이 떨어질 거고 
나 같은 개발이 친 텐트니 더 헐렁하게 쳐졌을 테고. 
간편하고도 견고하고 초보의 손길에도 품질을 보장하는 게 있겠지만 
비싸거나 지금 구할 수 없거나. 
저렴과 간편만 생각한 결과 민폐텐트 탄생
-다행이 남들도 펄럭이느라 내 텐트소리는 내게 젤 시끄러움^^
가방도 있고 나도 있어서 날아가지야 않겠는데 
찢어질까 봐 걱정이다.

훤칠한 처자들이 짐을 다 짊어지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멋있다. 
처음엔 미친듯이 달려가는 와중에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올라-인사를 챙기는 사람들을 볼 때면, 
진즉 몸이 허락해주시는 것들이나 잘 보자고 맘 먹길 잘했다고 내 결정에 만족했을 뿐. 
하지만 하루에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그들은 어딘가 멋있었다. 
한계의 도전하려고, 
아니면 이 거대한 국립공원을 완주해내려고, 
여기까지 와서 놓칠 수 없어서, 
혹은 저렴한 캠핑장을 찾아서 등 각각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자기 몫의 짐을 온전히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다.
쉽게 내려놓고 되찾기를 반복하는 나를 좀 반성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거대한 자연 만큼이나 그 속을 걸어가던 많은 사람들도 무모한 이번 캠핑의 즐거움.

사람의 몸이 참 이상해서 들어올릴 때도 죽을 것 같이 무거운 배낭 이지만 
일단 짊어지고 나면 걸을만하다. 
하지만 내려놓는 순간 
삭신이 쑤시고 그 다음은 뭐...그래서 그들이 더 멋있어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Tierra del Fuego 의 캠핑이 아쉬워서 찾아온 여기는 정말 격렬한 바람이 웬수. 
그래도 오늘은 무척 맑은 날씨였다. 열심히 움직이면 여름옷을 입을 수 있는. 
지나는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에 맞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도 민소매와 바람막이 자켓 차림이 같이 있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는 파타고니아. 게다가 센 바람은 덤.
지금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들의 칭송과 발길이 잦은 곳이지만
이곳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사람들에겐 얼마나 길들이기 어려운 곳이었을 지 상상도 안된다.
어쩌면 그렇게나 만만치 않은 곳이었기에 아직 아름답게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젯밤에 자기가 운전해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던 페르난다가 못일어나는 바람에 
마리아 혼자 아침 차리고 열심히 달려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셨다. 
부스-라며 견과류를 건네주고 그 바쁜 와중에 화장지까지 챙겨주실땐 
진짜 엄마보다 더 아기자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금요일에 다시 가는 일정이 아니었다면 엄청 섭섭할 뻔 했다. 
지금쯤은 내가 냉장고에 남겨두고 온 소시지 세 봉지를 보며 걱정하는 마리아와 
괜찮을 거라고 얘기하는 페르난다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단순히 사업이라고 생각해서는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것들까지 신경쓰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 
숙소에 비하면 오히려 저렴한 거라도 배낭족에게는 좀 부담스러운데 
가격문제가 아니라면 정말 한참을 있고 싶은 숙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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