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푼타 아레나스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 안내 방송에 보면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등장하고 여성 파일럿이 마무리 인사를 한다. 
승무원들은 동네 식당같이 편안한 분위기로 남편 흉도 보면서 격의 없이 대하는데 말이 짧아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또 다른 신대륙.
5시간이나 보내야 하는 공항이 좀 크면 좋겠는데 말이지.
무슨 일은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비행기 엄청 자주탄다는, 그래서 비행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전문 승객 레아는 남의 짐까지 선반에 올려주고 뭔가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거침 없이 도움을 준다. 이쯤되면 거의 보조 승무원 수준. 잘 정돈된 물건주머니들을 보니 다음엔 나도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물통-좋은 생각이다. 항상 보안검사때문에 멀쩡한 물을 버리게 됐었는데 물통에 먹을 만큼 담아와서 비워버리면 되니까. 
그러고보니 달라스 행 비행기에서도 옆자리 아저씨가 짐을 올려줬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한 마디도, 인사도 하지 않았던 때를 생각하니 이 동네는 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좀 헷갈렸던 게 짐을 분명 푼타 아레나스에서 찾는 걸로 두번이나 확인했었는데 산티아고에서 찾아서 다시 수속을 해야하는 거였다. 내가 몇 번이나 아는 대로 우겨도 짐을 찾아와야 한다고-말 귀도 못알아듣는 내게 우겨준 검사장 아저씨께 감사~ 

짐을 참 띨띨하게 싼 게 펜 하나를 안 가져왔다. 하나 사면되는데 살 수 있을때는 까먹어서 매번 뭔가를 써야하는 입출국장에서 두리번 거리게 된다. 다들 바쁘게 쓰고 있어서 차마 빌려달라는 말을 못하고 머뭇머뭇 서있었는데 먼저 선뜻 펜을 빌려준 청년 덕분에 칠레가 기분 좋아졌다.

재미있었던 장면은 푼타 아레나스 행 비행기 좌석이 더블부킹됐는지 좌석이 이상했는데 뭐 다들 별 일 아니라는 듯 기분 좋게 금방 자리를 잡는다. 
푼타 아레나스 행 비행기 옆자리는 미국에서 일한다는 캐나다 출신의 사회초년생 루치아나. 일주일 동안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랙을 끝내려고 공항에서 바로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를 탄 예정이었는데 비행기 연착 때문에 버스를 놓치고 마지막 버스까지 놓칠까 봐 노심초사-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그 만만치 않은 트레킹을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날 시작했으니 좀 많이 힘들었겠다...

-칠레 현금지급기는 일단 카드를 넣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한참 삽질.
여행 전 뱅코 에스타도가 수수료 없다는 정보를 얻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한 네덜란드 친구는 수수료를 전혀 안냈다고 하니까 어쩌면 내 카드만 쪼다인지도--;; 

일요일에 도착하고 보니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9시가 넘었어서 '그냥 자자'와 '나중에 배고프면 슬프다'가 갈등하던 중 사람들이 늦은 시간에도 동네 사람들이 꽤 많던, 가벼운 핫도그도 파는 햄버거 가게를 발견했다.
굉장히 작고 소박한데도 손소독제까지 챙겨주는 기본기 있는 식당이었다. 
정작 핫도그는 안 판다고 하는 바람에 보기에도 엄청 큰 햄버거를 시켰는데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고기를 굽는 지글지글 소리가 요란하다. 동네 한가한 오빠들이 그냥 노닥거리는 줄 알았는데 그 햄버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커피는 인스턴트, 원하는 만큼 퍼 넣을 수 있다. 
드디어 햄버거 도착. 역시나 사진속의 두툼한 쇠고기는 납작 불고기의 실물로 나타났는데 다시 보니 사진 속 햄버거를 가로로 늘리면 실물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신선한 양배추와 금방 구운 쇠고기가 들어있는 괜찮은 한 끼. 
아저씨는 내가 스페인어 바보라는 걸 아시면서도 신기하게 내게 말을 걸었고, 더 신기하게 나도 리오그란데와 우수아이아가 아름답다는 아저씨의 강력한 추천을 알아들었다. 아저씨는 아마도 이걸 아시고 말을 걸어주셨나보다. 

햄버거 3000페소/커피 900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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