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은 지고 마는 게임의 법칙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 영화는 누구를 비난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자막이 떡 하니 뜨지만
겹겹히 쌓인 삼각관계에서
오직 순정이면서 쿨하지 못했던 두 사람만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며 끝나는 관계로
감독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영화속 부르주아들은 욕을 좀 먹게 되어 있다.
굉장히 솔직한 등장인물들은 꽤 쿨하다.
열렬히 구애를 하다가도
적당히 설득되기도 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열정적이 되기도 한다.
가식적인 상류사회라기보다는
순간의 욕망에 충실해도 되는 자유가 뿜어져 나온달까.
전반적인 화면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피사체를 담고 있어서
어떤 장면은 그 시절의 기록영화 같기도 하다.
앵글도 최대한 눈높이에 맞춰진 편안한 구성.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화가의 아들인 르누아르 감독이란 걸 알아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아버지 그림을 팔아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설 주인공 같은 감독^^
좀 신기했던 건 굉장히 진짜같이 죽던 사냥감 동물들.
진짜 죽인 건...설마 아니겠지.
나는 알 수 없었던, 명성이 자자한 이 영화의 미덕은
오손웰즈의 시민케인에 앞서
딥포커스-화면의 모든 인물들에게 촛점을 두는 기술-를 시도해서
보는 사람에게 주도권을 주었다는 점,
스태디캠이라는 휴대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었다는 점,
배경에 있는 인물들도 항상 연기와 동작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서브플롯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
전쟁을 앞 둔 유럽사회의 지배층의 날모습을 우스꽝스러운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
등 이라고 한다.
지금보면 놀라움이라기보단 저 시절에도? 정도의 감탄이 나올 뿐이고
그 시절의 정서를 공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데
어째서 위대한 영화의 목록에는 이 오래된 영화들이 상위를 차지하는 걸까.
평론가에게 위대한 영화란 더 오랜 세월을 살아 견뎌내는 생존력순인 걸까.
[르누와르의 소개]
6분 정도 되는 짧막한 감독의 직접 영화소개 서플이 있다.
처음 개봉했을 때 얼마나 처참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는지,
-한 남자관객은 들고 있던 신문에 불을 붙여서 극장에 불을 지르려 했고,
관객들은 의자를 짓밟으며 난리를 쳤다는데,
(감독이 한 얘기는 아니지만)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은 조롱하는 것만 좋아하지
조롱받는 건 아주 싫어하기 때문'일거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가 제대 보존도 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나중에 다시 재건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한 장면이 빠져서 완전한 복원은 실패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장면은 아니라 감독도 오케이.
자신은 누구를 비난할 의도가 아니었음을 계속 강조하면서
오히려 내숭떨지 않는 인물들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나중에 평가를 다시 받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사 놓은지는 꽤 된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숙제한 기분이다,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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