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받은 숙소는 12시에 체크인을 한다고 하고
이 피곤을 지고 소파에서 네 다섯 시간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버스에서 자려고 바예그란데 행을 선택했다.
시간도 남아돌아서 저렴한 시내버스를 선택했는데
무려 두 시간을 뱅뱅도는 코스였다.
10시에 떠난다는 버스는 9시 반에 출발했고
바예그란데에는 3시 넘어 도착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구비구비 산길을 돌아오는 코스다.
조용한 마을.
쿠바에서 체 게바라를 알게 되어 이곳을 찾았다는 영국 처자와 오늘 내일 루타 델 체를 같이 하게 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정말 필요에 의해 같이 다닐 뿐. 약간은 외진 이곳에 서로가 있어 좀 든든했달까...
누구의 생가, 집, 기념관...여행하다보면 많이 다니는 관광지들이지만
이렇게 정말 와보고 싶어서 찾아오기는 처음인 것 같다.
볼리비아에 있는 체 게바라의 장소들은 모두 그의 죽음과 관련된 곳이다.
그가 죽은 곳,
그의 시신이 전시되어 있던 곳,
그가 묻혀있던 곳.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던 바예그란데 초입에서
그 생각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기분이 묘했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사람이고
그의 이름은 참 넓고도 오래 기억되는 것 같지만
그 역시 잊혀지고 있으며
그건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닌데......
내게 체 게바라는
한 번 이루었지만
신념의 완성을 위해 다시 목숨을 걸고 몸으로 싸운
인류의 마지막 고전적 영웅이다.
그의 마지막 장소들을 보는 것은
한번쯤 그의 자리에 가까이 가보는 것 뿐이었고
그의 뜨거운 피가 느껴질리는 없었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 잠깐씩 서서
그를 떠올리고 갔을 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그 을씨년스러운 곳들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를 느꼈다기보다는 우리속의 그를 느꼈다고 할까...
남미여행을 하면서
체 게바라를 모른다는 사람을 만났을 땐 좀 섭섭하지만
아직은 기억속의 사람인 동안
이곳을 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잊혀진 다음엔 많이 쓸쓸해보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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