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3 사마이파타의 마지막 날-사람들

숙소에서 첫날부터 
마음을 바꿨냐, 생각을 바꿨냐 는 둥 
내가 그렇게 어리숙해보이는지 
계속 스피리추얼 공세를 펼치던 벨기에 청년은 
마주칠 때마다 기의 흐름과 정신세계에 대한 정보를 던지는데 
덕분에 그리이엄 행콕과 엘 푸에르테 다큐멘터리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남미 원주민들이 추락한 미국비행기를 보고 모형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것처럼 엘 푸에르테에 새겨진 특이한 무늬들도 그들이 본 적있는 신비한 무언가를 본땄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게 에일리언일 수도 있다는 게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라는데 
야무진 양과 나 역시 에일리언의 존재를 믿는 편이어서 더 솔깃했는지도. 
아무튼 유적지에서 다시 마주친다면 또 즐겁게 얘기할 수 있을 친구다,
이번엔 아쉽게도 작별인사를 못하고 헤어졌지만.

어제 볼리비아 투표는 No로 끝나서 대통령의 연임은 불가능하게 됐고 
많은 여행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버스는 정상 운행이다. 
특이했던 건 맨정신으로 투표하라고 투표 전 이틀간 알콜금지라는 것과 
투표일에 장거리 버스운행이 금지라는 것-어디 가지 말고 투표하라는 뜻인지. 
아무튼 어젯밤은 다들 이틀 간 굶었던 술을 마시느라 그랬는지 늦게까지 파티더니만 
오늘은 시내가 엄청 조용하다. 시장도 반은 문을 닫았고. 

엘 푸에르테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갔다가 
미라도르나 가려고 했는데 
미라도르는 가는 길에 개들이 사납게 짖어서 그냥 돌아왔다.
그와중에 개가 짖으니까 똑같이 짖어주던 
귀여운 애기도 보고 ^^ 

본격적인 작은 마을 재미는 이럴 때 시작됐다. 
문닫은 여행안내소를 지나 박물관을 다녀오는 길에 
국경에서 헤어졌던 E처자를 읍내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너무 우연이고 뜻밖이라 길거리에서 소리지르고 껴안고 ㅋㅋ-무슨 이산가족이라고. 
게다가 내내 골치였던 버스도 그녀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티켓구입.
그 다음엔  
떠나기 전 어제 같이 투어를 했던 칠레 커플과 아르헨티나 청년을 만났다. 
너무 피곤하게 도착해서 바로 뿔뿔이 헤어진 게 아쉬웠는데 
잠깐 얘기도 하고 제대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어제 머리 다친 친구도 다행이 괜찮다고 하고. 
그리고는 사랑스런 나의 룸메이트가 너무 먹고 싶어하던 초콜릿 디저트를 선물하려고 사러 갔던 식당에서 
어제 나를 코리언이라고 불렀다가 나의 짜증^^을 받았던 성격좋은 브라질 청년도 다시 만나서
예상외로 30분 넘게 걸리던 초콜릿 디저트를 기다리는 동안 맥주 한 잔 했다. 
마지막은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던 에이전시 앞에서 
국경을 30분 만에 통과하던 프랑스커플을 다시 만난 것^^
진짜 이래서 작은 동네 재미는 끊을 수가 없다.
이쁜 마을 사마이파타 안녕~

.....하고 평화롭게 끝날 뻔했던 하루가 갑자기 드라마틱해진 건 
수크레 행 버스정류장인 누에보 투어리스타 식당에 도착해서이다.
갑자기 앉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동시에 쳐다보기 시작했고
내 사랑스런 룸메이트 야무진양의 이름을 대며 아냐고 물어본다. 
내가 숙소에 카메라를 두고 왔고 
야무진양이 카메라를 들고 여기까지 찾아와 한 참을 기다리다가 
혹시 다른 정류장인가 싶어 방금 전에 돌아갔다는 것!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카메라를 두고 온 것도 몰랐었다...
문제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방향치인 내가 버스가 떠나기 전 혼자 다녀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고
모토택시도 택시도 없는 상황.
그런데 놀랍게도 국경에서 잠깐 스쳤을 뿐인 프랑스 청년이 선뜻 동행에 나서줬다.
에이전시 할머니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버스를 잡아주시겠다고 하고.
진짜 황당한 순간마다 나타나주는 어벤저스들, 너무 고맙다. 

카메라를 찾으러 숙소를 다녀오는 길에 
이 프랑스 청년도 카르마를 얘기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얘기는 
여덟 번이나 강도를 맞고도 계속 히치하이커들을 태워주는 어떤 분의 얘기였는데
왜 계속 하냐고 물었더니
여덟 번의 강도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도 대답하셨다고 한다. 
정말 그렇기는 하다. 
좋은 일은 정말 나쁜 일과 비교할 수도 없게 많았으니까.
이 청년 역시 예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도착한지 이틀만에 다 털려 바로 돌아간 적이 있음에도 
계속 여행을 좋아하면서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콩천지인 남미를 콩알러지가 있는 여자친구와 여행하면서 
오가다 만난 사이의 방향치에게 까지 친절을 베푸는 것도 감동인데
여자친구가 제일 중요하니까 나머지를 잃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로맨틱함까지 겸비한 그에게 
내내 행운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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