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2 정글하이킹 Amboro National Park

운명의 투표일.
시내 학교에는 투표인파가 바글하고 인근 마을에서 찾아든 방문객들 덕에 
무슨 장날처럼 떠들썩 했다. 
내가 국립공원에 다녀올 즈음이면 결과가 나와있겠지.  



언제나 자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초긍정씨의 정글하이킹
산으로 둘러싸인 사마이파타에서
드디어 하이킹~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호수가 딱!
가이드를 따라서 올라가는 길-파타고니아 이후로 처음이다. 


그래, 그동안 관절휴식이 너무 길었지. 
오르면 오를수록 첩첩 산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지층이 보이는 것 같은 화산이 제일 뒤에 병풍처럼 서 있고 끝에 걸린 구름은 백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기 전인 이 산길에 길이 만들어지는데 
나도 한 발 보태고 있다. 
나중에 뻔한 인기관광지가 되기 전에 와보는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강을 건너느라 중간에 신발을 벗었다. 
맨발로 느껴지는 강바닥의 진흙이 부드럽다. 흙을 맨발로 밟아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가 좋아하던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놀이 ^^ 
깊은 물에서 점프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하루를 온전히 정글에 바쳤으며 
어두워진 산에서는 
보름달과 반딧불이가 환상적인 하이킹을 마무리지어 주었다. 
게다가 열 명이나 같이 가는 바람에 
여행사의 절반도 안되는 투어비로!
내 생애 최초의 정글 하이킹. 
오늘 모두가 그렇듯
쉽지 않아서 더 뿌듯하다.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초냉철씨의 개고생
어제 저녁에 여덟시 반까지 자기네 캠프장으로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처자들은 
자는 지 코빼기도 안뵈고 
같이 가기로 한 청년들은 열시가 다 되도록 밥 먹고 노래부르며 
아홉시 였다가 열시 였다가 열한시에 온다던가이드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열한시 반에 출발. 

근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본 사진은 호숫가의 공원이었는데 산행을 한다고?
그나마 순조로울 것 같던 산행에 먹구름이 낀 것은 
무릎을 걷는 수준으로는 건너 수 없는 강을 만나면서부터. 
몇 번 건넌다고 했지 허리까지 젖도록 강을 헤친다고는 안했잖아...

그나마 이건 좀 나은 상황. 하지만 이 강도 깊어졌고 내가 미끄러져서 신발이 결국 다 젖었지, 아마...?

게다가 강이건 바위건 만만치 않은 길이 나오면 
투어일행인 야생청년 하나가 앞장섰으며 
얼마남았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가늠못하니 나중엔 '15분 남았다'는 대답같은 건 모두가 코웃음을 칠 밖에. 
나름 시간 확인해가며 퍼지길래 뭔가 계산을 하는 줄 알았더니 
해가 지도록 산을 헤매던 순간엔 
정말 거기서 쫄딱 젖은 채 밤새는 줄 알았잖아....

한 처자가 강물에서 미끄러져 빠질때도,
한 청년이 미끄러져 바위에 쿵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부딪혔을 때도 
가이드는 멀찌기서 괜찮냐 묻기만 했지. 
근데 그 말은 우리가 더 많이 해준 같아, 
게다가 돌아가서 챙겨준 것도 야생청년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분은 방향만 알지 길은 몰랐던 것 같애. 

나중에 지친 우리는 
강으로 끌려가면 젖으면서 강을 건너고 
진흙바닥으로 끌고가면 발 빠지며 걷고
바위로 끌고가면 바위를 기고
-이건 나침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한다더니 
무릎이 까진 나에게 와서 
어드벤처 어쩌고 할 때는 
흙묻은 내 양말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싶더구만. 
빤히 눈치를 챘을텐데 좋냐고 자꾸 물어보는  건 웬 배짱?

매우 싸다는 걸 알았음에도,
그냥 겉치레라도,
너무 좋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이 차마 안나왔다고. 
아무도 안 죽고 실려가지 않은 채 끝나길 다행이랄 밖에. 
아마 다른 사람들의 고맙다는 인사도 다시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뜻이었을 거야. 
그 말을 한 사람도 한 두명 남짓이었지만. 
그의 이름은...젠장. 
물어봤는데 까먹었다. 
아무튼 캠프 아줄을 통해 가는 이 볼칸 투어는 반드시 가이드의 평판을 확인했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맥주사러 호스텔에 갔다가 고마운 그녀에게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혼자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개를 만나서 진짜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니...더 고맙다. 
하루 같이 얘기했을 뿐인데 맥주병을 들고 길을 나선 내게 
있다가 가라고 다들 붙잡아주다니  갑자기 너무 반가와졌지 뭐야. 
하지만 남은 맥주도 별로 없었고 너무 피곤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 
돌아와 보니 인적이 별로 없는 나의 호스텔에 
오늘만 오가다 세번이나 만났던 영국 자매가 찾아들어 있었다. 
근처 산에 있는 에코하우스에서 일하는 막내동생을 만나러왔다가 잠시 마을로 내려왔다는데 
다들 어찌나 성격 좋아보이던지. 
역시 영국애들은 깍쟁이야-라는 편견이 생길 무렵 이렇게 갑자기 안 깍쟁이들이 왕창 나타나줘서 고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