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알랭 로브그리예

가끔 그 울음소리는 음정이 약간 낮아지거나 혹은 길이가 좀 더 길어지기도 한다. 아마도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울음소리가 서로 닮아 있다. 쉽게 구별되는 어떤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공통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소리는 겁에 질린 소리도,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소리도, 사랑을 호소하는 외침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기계적으로 비어져 나오는 소리,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소리다.
 
"우리 중 누군가 가는 것이 낫겠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러나 그녀도 프랑크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따라 머리빗이 바람 소리와 함게 탁탁 튀는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밑으로 내려온다. 아래까지 내려오자 머리빗은 곧바로 머리 위로 돌아가 두피를 다 훑고 이어서 검은 머리 타래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뼈 빛깔의 타원형 빗은 손잡이가 무척 짧아서 빗을 거머쥔 손아귀 사이로 손잡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의 반은 등 뒤에 늘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반대편 손으로 앞쪽에 쥐어져 있다. 빗질하기 편하도록 머리는 이쪽(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빗이 목덜미 뒤쪽 머리카락에 닿을 때마다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는 동안 빗을 쥐고 있는 오른손은 반대편으로 멀어진다. 왼손은 손목과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모아쥐고 있는데, 빗이 자유롭게 지나도록 비켜준 뒤 다시 한번 잔 머리를 모아 단단히 쥔다. 그 동작은 분명하고 유연하고 기계적이다. 그동안 빗은 머리칼 끝까지 계속해서 내려온다. 빗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나던 다양한 소리는 이제는 건조하고 빈약하게 튀는 듯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파열음은 제일 긴 머리카락을 빗고 난 빗이 허공에서 재빠른 곡선을 그려가며 다시 위로 올라갈 때 생긴다. 그 곡선을 따라 빗은 뒷머리를 중앙에서 반으로 가른 흰 가르마 부분까지 다시 올라간다.
:이쯤 되면 징하다...할 밖에^^

"그 댁 마님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보이가 말한다.
그는 이 '걱정하다'라는 단어를 모든 종류의 불확실성, 슬픔, 혹은 불안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틀림 없이 오늘은 '불안해한다'는 뜻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화가 나 있다', '질투하고 있다' 또는 '절망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가 막 물러나려고 한다. 그때, 딱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와 물결처럼 이어진다.

운동선수들이 은근해 보이는 유산소운동으로
실은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단련하고, 온 몸의 단백질을 섬세한 근육으로 발달시키듯이
소설가는 이렇게 필력을 단련할 수도 있겠다.
읽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가검열을 작동시키지 않는 이런 글쓰기야 말로
작가 자신을 위해서는 필요한 게 아닐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자기도 궁금할 거 아냐.

극한에 가까운 관찰의 기록.
말하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이끌지만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묘사대로 라면 분명 그의 자리가 있었던 식사시간에도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아내를 둘러싼 밀착각도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도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 까지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며
그의 존재자체는 기척도 없다.
책 뒤의 붙임글에는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씌여있기는 했다.

이 책은 좀 지루했다.
아내와 이웃집 남자를 바라보는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의 참빗같은 관찰이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대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몇 개 안되는 사건을 전후로 보고하며,
가끔 현장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상상처럼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집이니 익숙할 법한 집안을
난간의 간격이라든가 페인트가 벗겨진 정도,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그림자의 형태까지 눈여겨보며
창가 앉았을 때와 침대에 뻗어있는 아내의 자세를 읊어줄 때면
그 어마어마한 집착과 이 사람이 사로잡혀 있는 감정상태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쉽게도 방향치인 관계로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한 구조적인 묘사와 태양의 위치에 따른 조명상태는 이해 불가--;;)
그러나.
아무리 극한의 상태라 하더라도
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A의 결혼에 애도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남편의 시선이기에
뭐 거의 불륜을 확신하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물의 가족'도 잠깐 생각났다.
참 불편한 이야기였지만
독특한 문체로 파격적인 소재가 전혀 방해되지 않던.
지루했으나 이 책이 아니라면 겪을 수 없는 독서 체험.
이에 비하자면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즐거운 작가캠프로 느껴질 만큼.
이야기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것 같은 독특한 극한의 글쓰기단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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