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비중이 아니라 크기가 문제다안성기의 배우 반세기


안성기는 올해 배우 데뷔 50년을 맞았다. '배우계의 임권택'이라고 해도 좋을 구력이다. 아역에서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독보적 인물 창조자로, 존재감 있는 연기 장인으로 옮아온 자취는 그 자체로 한국영화의 역사다.

장병원 기자 매니저 없이 일하는 배우였는데, 언제부터 일 봐주는 분이 생겼나?

안성기 손수 운전해서 차를 몰고 촬영다닐 때,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좋아 혼자 다녔다. 그런데 지난해 용인민속촌에서 <형사> 밤샘 촬영하고 집에 오는데 네 번 졸았다. 이러다 촬영이고 뭐고 큰일 나겠다 싶어서, (박)중훈이 소개로 매니저를 만났다. 혼자 다닐 땐 난 괜찮은데 후배들이 불편해 했다. 무슨 행사가 있어서 오면 자기들은 매니저가 차 대고 떡 내려서 행사장으로 직행하는데, 난 차도 직접 대고 하니까 그게 민망했나 보다. 그런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같이 다닌 지 1년쯤 됐다.



장병원 기자 일 봐주는 사람 있어야 할 만큼 하는 일이 많아진 탓도 있지 않나?
안성기 내가 생각해도 많기는 많다. 지난해 9월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협회 이사장 대행,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 공동위원장이고. 영화 외적인 일도 많이 생겨서 이게 모두 내 몫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기질상 잠수 타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잘게 쪼개 써야 한다. 늘 '배우는 바쁘면 독약'이라고 떠들어 놓고 이렇게 바빠져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전보다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다. 행사에 가면 인사말이나 건배 제의를 하라고 꼭 시켜서. 사실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거거든. 예전에는 그럴 군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렇게 됐다. 싫어하는 일들을 안 하려면 등지고 살아야 되는데 성격이 그렇지 못하니까 더 부지런히 사는 수밖에 없다.


 
장병원 기자 영화계를 보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거 같다. 안 하는 사람은 안 하고. 하고 있는 일들을 좀 나눠서 할 후배들이 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은 안 하나?
안성기 내가 안 한다고 하고 발을 빼면 후배들 중 누군가 나설 것이다. 내가 '힘닿는 데까지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방관자가 되면 그걸 메꿀 후배들은 있을 거 같다. 현재 내 위치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다. 그러니까 늘 발목을 잡힌다. 잘 안하고 농땡이 치면 짤리잖아.(웃음) 그럼 편해지는 건데, 그게 안 되는 거지.

 
장병원 기자 워낙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잖나?
안성기 영화와 관계된 것은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영화 외적인 일로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은 거절한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는 영화와 무관하지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다.


 
장병원 기자 최근 이병헌, 이영애 등의 배우와 홍콩에서 WTO 반대 시위하다 잡혀간 농민들 석방을 위한 탄원서도 냈던데.
안성기 쌀 개방 문제 때문에 농민들은 어려움이 많다. 크게 보면 쌀 개방이나 영화 개방이나 연관된 문제인데 그런 모습을 보면 송구스럽고 미안하다. 그분들이 NGO적인 입장에서 영화인들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많이 해줬는데 영화인들이 한 건 많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농민 시위에 참석하는 건 좀 이상하고. 이번 건은 동참해서 마음을 나누는 게 괜찮겠다 싶어서 참여했다. 지금 홍콩에서 이영애 씨 힘은 대단하잖아.(웃음)


 
장병원 기자 데뷔가 1957년 <황혼열차>니까 배우 경력이 얼추 50년이다. 한국영화 역사의 절반을 함께해온 셈이다. 현역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한국영화의 자취를 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안성기 스스로는 50년이라고 특별하게 생각한 건 없다. 여느 때와 같은 한 해지,뭐. 영화인은 올해는 어떤 영화했네라는 것으로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다만 배우가 나이가 들어서도 중심에서 할 수 역할이 있다는 건 의미 있다고 본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모르지만 배우로서의 매력을 잃지 않고 오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장병원 기자 필모그래피를 보니 70여 편 정도 되더라.
안성기 성인으로 나온 영화만 그렇고 그 전에 아역만 70편 했다. 60~70년대 신성일 선배님 같은 경우는 1년에 20편도 찍었다. 1980년에 새로 영화하기 시작하면서 1년에 한편만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실제론 1년에 2편 정도 했지만. 당시로선 하기 힘든 생각이었다. 지난해에도 1년 반 동안 <형사> 하나 했다. <형사> 촬영하면서도 더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없었다. 흥행은 잘 안 됐지만 즐거웠고 의미도 있었고 봉 돌리면서 운동도 많이 했다. 2~3년에 한 작품 하면서도 참을 수 있겠다 싶더라. 문제는 할 수 있는 건강과 체력, 배우로서 매력을 잃지 않는것이다. 영화가 분장으로 노인 역할하는 건 안 어울린다. 더 나이가 들어서 노인 역도 1~2년에 하나는 괜찮은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장병원 기자 영화배우계의 임권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배우의 모습을 역사에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안성기 배우가 좋은 직업인 것이, 가수는 젊은 시절 히트곡을 늙어서까지 불러야 한다. 변화를 하려 해도 다른 모습은 다른 가수에게서 찾으려 하지, 그 가수의 변화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 배우는 그게 가능하다. 가수처럼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에게, 상대 배우에게, 스탭에게, 음악에, 의지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세월만큼 생경하고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다. 40대엔 50대를 잘 몰랐을 거 아냐? 40대에 맞는 연기를 하다가 50대가 돼 보니 세상을 보는 안목이 틀려지고 눈빛도 틀려진다는 거지. 세월과 나이를 잘 받아들여 작품에 녹아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배우의 생명력을 길게 만든다. 젊음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해가 되면 죽을 날이 일년 더 당겨졌다는 두려움은 있지만 한 해 한 해 색다른 걸 보게 되니 나이듦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장병원 기자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 이명세 등 현대 한국영화의 중요한 감독들을 다 꿰면서 여기까지 왔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데뷔작을 같이 했다.
안성기 그게 가능했던 것이 당시는 배우의 절대 수가 적었다. 예컨대 최민식, 송강호, 한석규, 설경구, 박중훈이 할 캐릭터를 나 혼자 다 연기할 수 있었다. 그 때 이런 배우들이 있었으면 나눠서 할 걸 나 혼자 다 한 거다. 많은 훌륭한 감독들과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거지. 이후에 나올 어떤 배우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장병원 기자 7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한국영화가 보여 주고자 했던 대표적 인간형들이 안성기의 필모그래피에 녹아 있다.
안성기 <바람불어 좋은 날>이 배우로서 인정받는 첫 계기였다. 그 시대와 내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70년대와 나는 안 어울렸을거다. 70년대 배우 생활을 하신 선배들은 좀 비극적이다. 시대 자체가 암울했고 배우로서 매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내가 가진 캐릭터, 본성이 80년대와 잘 맞았다. 말이 좀 굼뜨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이 80년대 서슬 퍼런 검열을 빗겨나갈 수 있는 인물을 보여 주기에 좋았다. 더듬거리면서 얘기하는 인물을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시대의 한계를 통과할 수 있었다. 90년대 말부터 비중이 작은 조연이 왔을 때 실망해서 '사업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을 했으면 그 쪽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조차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더라.


 
장병원 기자 90년대 후반, 조연 섭외가 계속 왔을때는 상처를 좀 받았을 거 같다.
안성기 성인 배우로 시작이 서른 정도였으니까 다른 배우들처럼 오빠에서 아저씨로 넘어가는 고통은 없었다. 40대 중반에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극복도 쉬웠다. 젊은 나이에 당했다면 한동안 술독에 빠져 지냈을 수도 있겠지. 조금 아팠지만 잘 받아들인 것 같다. 욕심을 내거나 억지를 부리면 50대에 30대를 추구하는 건 흉하거든. 다가오는 미래에 적응하고 사는 게 보기도 좋고 잘 늙어가는 길이다.


 
장병원 기자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나이듦과 연륜을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무사> 같은 영화가 기점이 된 듯 하고.
안성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인데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몇 장면 안 나오는데 느낌은 굉장히 크거든. 아, 이런 거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비중은 작아져도 크기가 작아지면 안 된다, 존재감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장병원 기자 한중 합작 영화인 <묵공> 도 그런 영화인가?
안성기 그 영화에서도 비중은 작지만 존재감은 크다. 제작사 쪽에서 캐스팅 제안을 하고 나서 십중팔구 퇴짜를 맞을 거라고 생각을 했나봐. 선뜻 수락하니까 굉장히 좋아하더라. 역할에 매력이 없으면 안 했겠지.

 
장병원 기자 배우의 존재감이 어떻게 표현될 지 무엇으로 아는가?
안성기 좋은 영화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다.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는 것이 연기 잘하는 것 만큼 중요하다.

장병원 기자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거절하는 경우에도 직접 감독을 만나서 못하겠다고 한다고.
안성기 중간에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까 만나는 거지. 중간에 누가 있으면 나도 안 만나겠지.(웃음)


 
장병원 기자 그럼 지금은 매니저가 있으니까 안 만나나?(웃음)
안성기 농담이고. 거절이라는 게 참 힘들다. 감독으로서는 많은 시간과 생각을 할애했을 게 뻔한데, 만나지도 못하고 딱지를 맞는다는 건 마음을 상처를 크게 주는 일인 거 같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만나서 고사를 한다. 내가 설득을 잘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도 충격이 완화될 것 같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장병원 기자 그렇게 설득하려고 했다가 설득당해서 출연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안성기 많지는 않지만 간혹 있다. 그런 경우는 하면서도 즐겁지 않다. 즐거움이 없으면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다. 반대로 너무 즐거울 것 같아서 기꺼이 출연하기로 했는데 아닌 영화도 있고.


 
장병원 기자 아역 시절 출연작 중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안성기 아역으로 제일 영화를 많이 할 때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 기억은 아주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다. 몸은 아이지만 어른 생활을 했다. 다니는 곳도 많고 만나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기억하기를 포기하다 보니 지금도 기억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사람 얼굴 기억하는 걸 너무 못한다. 임권택 감독님도 그러시지.


 
장병원 기자 지난 한 해는 <형사>로 보냈는데, 이명세 감독과는 인연이 각별하다.
안성기 이명세 감독은 요즘 늙수그레해져서 촬영할 때 내가 반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웃음) 아니, 반말해도 되는 감독인가 의아해하면서. 이명세는 연출부 시절부터 봤던 친구라 늘 동생 같다. 나이 칠십 먹은 사람도 동생 만나면 임마, 점마 하잖아. 이명세가 그렇다. 같이 작품 하면 편안하고 즐겁고 위로가 된다. 나야 현장에서 최고참이 된 게 오래전이지만, 이명세는 오랜만에 와서 영화 찍으려는데 현장은 싹 바뀌어서 완전 꼰대된 듯하니까 착찹하지. 그러니 나 같은 형이 옆에 있어주면 또 얼마나 위로가 돼.(웃음)

 
장병원 기자 이명세 감독은 형이라고 절대 안 봐줄 텐데.
안성기 스트레스 상당히 준다. 옆에서 좀 더, 좀 더 계속 하라고 그런다. 이명세는 배우들로서 배울 게 많은 감독이다. 상식적으로 하는 걸 용납을 안 하고 계속 더 깊이 더 깊이 파고들도록 종용을 한다. 배우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끌어내려고 하니까.
장병원 기자 어떤 영화를 하건 이제 감독보다 나이 많은 선배 아닌가?
안성기 임권택 감독님 빼면 거의 그렇다.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왕따 안 당하고 잘 섞일 수 있을까가 늘 고민스럽다.(웃음)


 
장병원 기자 대한민국영화대상 MC를 3년 연속 본 것이 의외였다.
안성기 한 번 했더니 또 하자고 해서 한 해만 더하기로 했다. 다음 해 되니까 반응 좋다고 한 번 더 하재. 또 만나자는 거 보니까 올해도 하자고 할 거 같다. 못한다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1~2월에 사회자가 결정되는데 그걸 한다고 하면 12월에 MC 본다는 생각이 일년 동안 뒤통수를 당긴다.(웃음) 시상식이 쇼적인 측면도 있으니까 엔터테이너 역할도 해야 한다. 안 하면 모를까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망가지더라도 잘하려고 노력해야지. 영화평론가협회상도 10년 연속 사회를 봤고 부산국제영화제도 몇 번 사회를 봤는데, 그런 영화제나 시상식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TV 중계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장병원 기자 바르고 올곧은 이미지가 이미지가 영화 속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저해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가?
안성기 예전에는 악당도 하고 센 역할도 많이 했는데, 지금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순수하고 부드럽고 인간적인 모습이 안성기였다. 신기나 광기가 있는 인물도 연기했지만 나의 이미지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도 한다. 로버트 드 니로를 좋아해서 그런 유의 배우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날 그 쪽보다 해리슨 포드에 가깝게 봐 주는 거다.


 
장병원 기자 최근 충무로엔 배우를 평가하는 기준이 생긴 거 같다. 센 영화, 외적으로 드러나고 강렬한 캐릭터를 쳐주고 배우들도 선호하는 거 같다.
안성기 맞다. <바람불어 좋은 날>의 덕배, <고래사냥>의 왕초, <만다라>의 법운 등 80년대엔 그런 광기나 강렬함을 지닌 인물이 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인물 유형도 달라졌다. 여기에도 주기가 있다. 선이 굵고 임팩트가 강한 인물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있고 현실적인 인물 유형이 선호되기도 하고 둘이 섞이기도 한다.


 
장병원 기자 다음 영화가 박중훈 씨와 함께 출연하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라고 들었다. 박중훈 씨와 사적으로 친하지만 영화로는 오랜만이다.
안성기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훈이와는 5년만에 한 편씩 같이 하게 된다.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까지. <인정사정> 이후로 <라디오 스타>에서 오랜만이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워낙 잘돼 걱정이 좀 된다. 좋은 작품 다음에 연이어 좋은 작품이 안 나온다는데, 야단 났다.(웃음) <라디오스타>로 나도 돈 좀 벌겠다 싶었는데 <왕의 남자>가 너무 벌어서.(웃음)
장병원 기자 <왕의 남자> 극장 상영도 안 끝났는데 바로 다음 영화 들어간다는 거 보니 이준익 감독 필 받았나 보다.
안성기 그 분이 오셨나 보지, 뭐.(웃음)


 
장병원 기자 일설로는 김동호 위원장에 이어서 차기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후보라는 소문도 있다.
안성기 김동호 위원장님이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신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갖는 의미는 한국영화사에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함께 참여하는 건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집행위원장은 김동호 위원장님처럼 모든 걸 올인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올인한다면 영화배우 일이지. 배우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일 하기 힘들다. "옆에서 서포트는 하겠다 집행위원장 얘기는 말아달라"고 했다. 김동호 위원장님이 얼마나 어렵게 하셨는지 알기 때문에 솔직히 두렵다. 10년 동안 쌓아놓은 공에 누가 되면 안 되지 않나? 위원장님은 내가 영어도 잘한다고 하시는데 나 영어 잘 못해.(웃음)
장병원 기자 베트남어는 좀 되지 않나?(웃음)
안성기 졸업한 다음 해에 베트남이 패망했고 바로 공산화됐다. 그 후로 난 배우하기로 맘먹었고 베트남어 전공은 금방 털어버렸다.


 
장병원 기자 반세기 배우 경력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설계가 있는가?
안성기 내가 배우로서 거의 최고뻘 선배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신인들과 허리, 중견배우들이 연결이 잘되고 같이 가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젊은 나이부터 나이 든 배우까지 공존한다면 한국영화 색깔이 다양해지고 깊이도 생긴다. 지금은 좀 얕은 편이다. 40~50대 배우, 감독은 60대까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 나이 때 보는 세상이 얼마나 더 오묘한가? 그런 감독이 표현하는 세계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오래 살아 남아야 한다.(웃음)


 
프로필 1952년 생 |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비상대책위 공동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개그맨> <성공시대> <그 섬에 가고싶다> <아름다운 시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취화선> <실미도> <한반도> <묵공>
사진 김태일 기자
장병원 기자

뉴스 : 비중이 아니라 크기가 문제다 안성기의 배우 반세기

 
때가 때이니 만큼 표정은 밝지 않지만 참 멋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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