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독,
지독하게 찍었더라
<형사 Duelist>가 전국 120만 관객을
동원하고 막을 내렸다. 이명세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었을까?
대중의 냉담한 반응에 대해선?
<형사 Duelist> 제작 과정을 좇아간 메이킹
다큐멘터리 <조선 느와르 : 이명세 <형사>
만들기>가 레스페스트 2005에서 공개된다.
다큐멘터리 속 징글징글한 <형사 Duelist>
현장과 이명세를 만난다.
이명세 감독 vs. 안 포교 역 안성기
이명세 | 형이 카메라를 봐. 카메라가 병판이야.
안성기 | 그럼 이상하지. 조금 밑을 봐야 하는 거야.
이명세 | 아니. 카메라를 봐.
안성기 | 그럼 관객이 병판이 아니라 관객 보는 걸로 알지.
이명세 | 관객을 보자고. 관객이 병판이야. 대결할 때 관객과 대결하는 거야.
안성기 | 아휴, 철학적으로 하지 말고...
1996년 7월 28일, 왕가위는 신작 <해피 투게더> 스탭과 배우들을 이끌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다. 1996년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1년 전이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홍콩과 정반대편에 위치한 도시였다. 의미심장한 시점, 의미심장한 공간으로 찾아간 왕가위는 영화를 잘 찍지 않았다. 시나리오는 계속 바뀌었고, 촬영은 시작과 중단을 거듭했다. 왕가위의 변덕에 스탭과 배우들은 거의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들 향수병에 시달렸고, 낯선 땅에서 만 40세 생일을 맞은 장국영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나마 수더분한 양조위만이 왕가위식 영화 찍기에 간신히 적응했다. 촬영 진도가 느리자 홍콩에 있던 제작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남겨두고 홍콩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는 떠나온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그리워했다.
관금붕의 <쾌락과 타락>(1997)을 촬영했으며 훗날 왕가위의 <2046>(2004)의 촬영감독이 된 관풍령과 뮤직 비디오 등을 만들던 아모스 리는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가 <해피 투게더>를 촬영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다. 그들은 본편에서 완전히 도려낸 배우 관숙의의 촬영분을 비롯해 <해피 투게더>의 미편집본과 메이킹 필름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1999)를 만들었다. 메이킹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해피 투게더>의 또다른 판본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2000년 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사무치는 영화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찬 공기가 사무쳤고, 애절한 탱고 리듬이 사무쳤고, 엔진 오일처럼 걸쭉한 아르헨티나 산 커피가 사무쳤다. 그리고 '세상 끝의 사랑'을 담아내기 위해 그토록 고집을 피우던 왕가위라는 시네아스트가 사무쳤다. <해피 투게더>에 기록되지 못한 기억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명세 감독 vs. 병판 역 송영창
이명세 | 실제로 해야 돼. 이렇게 모자를 쳐. 여기를 딱 맞추면 돼. 요기 안 아프지?
송영창 | ...
감독님, 너무하세요
<형사 Duelist>(이하 <형사>)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조선 느와르 : 이명세 <형사> 만들기>(이하 <조선 느와르>, 제작 티스펜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M, 소재영, 김인수, 안상은)가 11월 15일과 19일 레스페스트 2005에서 공개된다. 왕가위 팬들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가 뜻밖의 선물이었던 것처럼 <조선 느와르> 또한 그럴 것이다. 여기에는 '지랄 같은' 왕가위식 영화 찍기 못지않은 '지랄 같은' 이명세식 영화 찍기가 담겨 있으며 '영화를 만든다는 게 무엇인가?' 같은 근원적인 물음을 향해가는 이명세와 그런 이명세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진지한 시선이 담겨 있다. 레스페스트 페스티벌 디렉터이자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교수인 소재영 감독이 연출한 <조선 느와르>는 <형사>의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자 이명세라는 시네아스트의 현재를 포착한 포트레이트 다큐멘터리다. 여기에는 편집에서 잘려나간 삭제장면도 없고, 주연배우 하지원과 강동원의 일상적인 모습도 지극히 드물게 담겨 있지만 '돌아온 이명세'가 자신의 일곱 번째 영화 <형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명세의 전심전력과 더불어 제작진 사이에 벌어진 숱한 불화의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 대중과 화해하지 못한 <형사>의 흥행 실패에 대한 이명세의 심정 또한 고스란히 담았다.
<조선 느와르>는 이명세의 바람으로 시작됐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가 거둔 국제적인 성공 이후 뉴욕에 머무르던 이명세는 순제작비만 78억 원을 쏟아부은 <형사>로 6년만에 돌아왔다. 화려한 컴백이었다. 그는 화려한 컴백을 특별한 방법으로 남기고 싶었다. 보통 홍보용으로 제작되는 메이킹 필름과는 다른, 그 자체로 영화라 부를 수 있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원했고, 투자사를 설득해 배 이상의 예산을 들였다. 연출을 의로한 사람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후배 소재영 감독이었다. 이명세의 마음 속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1979)과 코폴라의 아내 엘리노어 코폴라가 연출한 메이킹 다큐멘터리의 걸작 <어둠의 핵심>(1991)이 자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재영 감독은 <어둠의 핵심>을 염두에 두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감독 크리스 마르케가 연출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1985)과 테리 길리엄의 '엎어진 영화' <라 만차>의 제작 과정을 담아 화제가 됐던 <로스트 인 라만차>(2002)를 참고했다. 결과적으로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됐지만, 적어도 <조선 느와르>는 DVD 서플먼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많은 스탭과 배우들이 열심히, 고생해서, 훌륭하게 만든 영화입니다' 투의 화법은 구사하지 않았다. 아니다. <조선 느와르>는 더욱 과격하게 나간다. 이명세와 함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를 이과수 폭포처럼 쏟아낸다.
이명세 감독 vs. 이상욱 동시녹음 기사
이명세 | 난 21세기 신인감독이야.
이상욱 | 감독님, 그거는 월권이예요. 감독님은 21세기 신인감독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결국은 20세기 마지막 감독임을 주장하고 계신 거예요.
이명세 | 나보고 20세기 마지막 감독으로 뒈지라는 얘기야???
충격적인 수위, 터지는 폭소
"제가 먼저 얘기를 하면 그때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가 시간이 지나서 감독님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거는 맞는 거예요. 일하다 보면 억울할 때가 있어요. 이명세 감독님은 혼자서 하시는 스타일이예요. 자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같이 일하기 힘들어요."(음악감독 조성우) "감독님이 해야 된다고 하면 무조건 해야죠. 굉장히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갑자기 바뀔 땐 마음 속으로 눈물 날 때도 굉장히 많았고."(배우 하지원) "제가 천사 부대에서 팀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일을 하면서 저희가 정체성을 많이 잃었어요. 콘티도 모르고 대본을 받아본 적이 없고. 저희는 분명히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엑스트라와 별로 다를게 없다는 인상을 받았어요."(한 단역배우) 불만과 원성은 <형사> 제작진을 넘어선다. 과거 그와 함께 작업했던 영화인들까지 출연해 '지독한 감독' 이명세를 증언한다. 이렇게 막 가도 되나싶다.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진짜 때리래요. 근데 내가 이 영화만 하고 영화 안 할 거는 아니잖아요. 웃을 때 이빨을 두 개 반즘 보여 달라. 내가 무슨 이 사람의 기곈가? 독특하다 못해 불쾌했던 기억이 나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해야 하나? 숨소리까지도? 괴롭혀요, 사람을."(배우 박중훈) "뭐든지 만능이야. 이것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저것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뭐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다른 사람을) 전문인, 예술인 취급을 하지 않는구나. 아이 그래서 내가 징글징글했다고."(<지독한 사랑> 제작사 씨네 2000 대표 이춘연)
지난해 11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조선 느와르>는 꼬박 1년 동안 160개 테이프에 140시간 분량의 실제 상황을 담았다. 보통 메이킹 필름에 들어가는 촬영이나 후반 작업뿐 아니라 <형사>가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30회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돼 처음 해외에서 공개되는 과정까지 줄기차게 좇아갔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인터뷰도 촬영장에서 만난 스탭과 배우뿐 아니라 과거 스탭과 배우, 영화평론가 강한섭과 김영진 등 '감독 이명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모두에게 허락했다. 영화는 혹한의 추위, 고난도의 액션 신과 대결을 벌이는 <형사> 촬영장에 시선을 놓지않고 이명세가 이 혼란의 와중에서 어떻게 몸부림치며 일곱 번째 영화를 만들었는가까지 멀리 내다본다. <조선 느와르>의 관심은 <형사>라기보다는 <형사>를 만들어가는 이명세다. 영화는 이명세라는 캐릭터가 일으키는 온갖 트러블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이명세는 아닐지언정 관찰한 그대로의 이명세에 농실하려 한다. 문제적 장면과 발언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어쩔 수 없이 웃음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140시간의 촬영 분량 중에서 72분으로 추려낸 '지극히 주관적인' 편집이었다손 치더라도, 이명세의 연출 스타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겨웠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 힘겨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이명세'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명세가 아니었으면 탈영병이 여럿은 됐을 것이다.
<조선 느와르>는 때로는 고생스럽지만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 현장'이라는 미화된 통념을 벗고 전쟁터에서 만난 이명세를 맨눈으로 바라본다. 이명세는 소리를 질렀다. 이명세는 욕도 했다. 이명세는 활달했고, 이명세는 다정했다. 열정적으로 현장을 진두 지휘하던 이명세는 결국 노란색 링거 주사를 대동하고 현장에 나왔다.
이명세 감독 vs. 황기석 촬영감독
이명세 | 이게 컷이 나눠지는 게 아니라...
황기석 | 나한테는 나눠진다고 설명을 했다고.
이명세 | 무슨 소리야? 사람이 넘어진 걸 따고 이렇게 돌아본단 말이야.
황기석 | 그럼 사이즈가 틀린데? 클로즈업에서 나간다며.
이명세 | 아니, 나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뒤로 돌린다고.
황기석 | 콘티 다 태워버려!!!
오로지 영화 사랑
<조선 느와르>를 본 이명세는 껄껄 웃었다고 한다. 큰 사람의 여유일까. 이명세는 자신을 둘러싼 악담 아닌 악담, 불만 아닌 불만에 대해 관대했다. 사실 그의 고민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사람들과의 트러블이 아니라, 얼굴을 맞댈 수 없는 관객과의 트러블이다. 토론토의 한 공원에 앉은 이명세가 담배를 깊게 들이 마신다. "대중의 심술궂음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대중은 뭔가 빨리 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사람들은 대중과 만나야 하는 지점을 얘기하지만 그걸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이 영화를 조금 더 친절하게 갔다고 쳐도 그것이 과연 대중과 친절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냐? 그것 또한 모르는 거야. 과연 어떤 것이 대중과 만나는 지점인가? 그런 게 힘든 거야. 괴롭다기보다는 힘든 거야."
영화를 만든다는 건 괴로운 게 아니다. 다만 힘들 뿐이다. "내가 영화란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 사랑이 무엇인가도 깨달았지"라고 말하는 이명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사랑은 힘들 뿐이다. 만나기까지가 너무 힘들고, 외면받으면 더욱 힘들고. 관객과의 일곱 뻔째 사랑에서 상처도 받고 행복도 느꼈던 이명세는 이제 여덟 번째 사랑을 준비 중이다. <조선 느와르>는 영화주의자 이명세의 지독한 사랑을 담은, 지독한 감독 이명세에 대한 미워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또 하나의 사랑 영화다.
<조선 느와르 : 이명세 <형사> 만들기> 소재영 감독
"감독 이명세의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 했다"
영화가 세다. 이명세 감독이 보고 기분 나빠하지 않던가?
박중훈, 조성우, 강한섭 등 소위 '이명세 패밀리'라는 사람들이 나와 부정적인 얘기를 하니까 더욱 충격적이다. 어떤 술수를 썼길래 그런 답변을 얻었나?
방송용 멘트가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그냥 한 마디 던지니까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는데 오히려 굉장히 얘기하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친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도 섭외를 했는데 거절을 하더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영화적으로 싫어하는 건데 글도 아니고 영상으로 비판하면 기분 상할 수 있다며 고사했다.
영화 속에서 이명세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재미있다.
감독님에겐 약간의 쇼맨십이 있다. 카리스마도 굉장하고. 처음엔 카메라를 들이대면 꺼려했는데 일단 찍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웃으면서 행동하는 게 배우 같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동안 내가 감독님을 알던 모습은 존경하는 감독, 친한 형 같은 사람이었는데 실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고집스럽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예술가로서 눈높이가 굉장히 높고, 그걸 이루기 위해선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수 있느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형사>가 흥행에 실패했고, 작품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조선 느와르>를 공개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그렇게 고생해 만든 영화가 무섭게 사라지는 걸 지켜보면서 나 역시 우울했다.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영화가 떠야 다큐멘터리가 뜨는 거지만 어떻게 보면 조용해진 상황이 좋을 수도 있다. 영화가 잘됐으면 이 영화와 안 맞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형사>나 이명세의 좋은 모습만 보고싶어 할 테니까.
<조선 느와르>라는 제목은 어떻게 붙였나? 이 영화의 운명은?
'느와르'라는 게 예쁜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파고 들어가니까 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레스페스트에서 공개하고 DVD 서플먼트에 들어가겠지. 감독님은 <형사>와 함께 해외영화제에 나가는 걸 원하는데 내년 선댄스영화제에 출품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글. 한승희 기자
::조선 느와르 : 이명세 <형사> 만들기
서플로만 보기에는 아깝다했는데 선댄스라니 정말 잘 어울리지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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