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폭력이다|레프 톨스토이|조윤정|달팽이|2008

도스토예프스키와 비슷한 명성이 이해가 안가도록 
바보 이반 같은 우화로만 기억되던 톨스토이였는데, 
문득 관심이 간 건 
권희철이 문학이야기에서 읽어준 '부활'과 권여선의 '봄밤'에 인용된 구절 때문이었다. 
획기적인 제목이 호기심을 끌었던 이 책.
다 읽고 난 지금은, 문학가로서의 톨스토이를 더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사상가 톨스토이는 대단하다. 
섣불리 '몽상' 혹은 '이상'이라고 외면하기에 그는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이 주된 내용은 
대한민국의 헌법도 따르고 있다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야 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몽상임을 거듭 강조하며, 
사실은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을 지켜주기보다는 '삥을 뜯'으며 충성까지 받아 챙기는 국가에
주인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가를 얘기해주고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현대의 노예제도라는 글에서는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 중 하나
앙상한 다리로 땅위에 앉아있던 노인을 강 건너주려 무등을 태웠다가 
노인에게 억세게 목을 감겨 노인 입에만 닿는 과일나무로, 원하는 곳으로 끌려 다니는
불운의 여행자가 나오는데, 
톨스토이는 그 노인을 국가-정부로, 여행자를 국민이라고 설명한다.
톨스토이는 또, 독일 작가 에우겐 슈미트가 [무정부]라는 책(무슨 책인지는 알 수 없음)에서
국민에게 어떤 종류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존재의 정당성을 찾는 정부가 
칼라브리아의 비적 같은 존재라고 썼다는 내용을 인용한다. 
칼라브리아의 비적은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금을 받았다는데, 
부자를 약탈하고, 목숨 걸고 직접 일하며, 
비적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세금을 낸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비적이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고, 위험부담 없이 속임수를 일삼으며, 
강제로 병사가 되기를 강요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자에게 더 특권을 주는 정부가 
더 유해하다고 톨스토이는 썼다. 
가장 악랄한 범죄자들의 살상의 합도 
전제군주나 독재자들의 학살과 비교 불가능하다는 그의 설득에 솔깃해진다.
이렇게 비교하면 적극적으로 정부를 없애려는 아나키스트들은 
폭력을 써서 라기 보다는, 
인류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국가가 대체할 인력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한 그런 폭력은 실효성이 없으며, 
모든 폭력이 별로 믿음직한 수단이 아닌 데다가, 
이처럼 유해한 정부를 없애는 방법은 각자의 결기로 모든 정부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 
방법이 이 하나 뿐이므로 그것이 가능한 지를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불복종에 따르는 단점이 재판에 이은 최대한 사형의 형벌인데, 
복종의 나쁜점은 최악의 경우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스스로도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정리하며
어느 것이 더 피하고 싶은 일인 지를 묻는다.
 
권력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바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국가 권력기관의 폭력은 
서로에 대한 개인의 폭력보다 다소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이 투쟁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민족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 때문에 군대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노예화되고 억압받는 국민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없으면, 이웃국가에 의해 정복당할 것이다." 
이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거의 논박할 필요조차 없다. 
이 주장 자체에 반론이 내재해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의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얘기하는 대신, 
애국심에 물든 사람은 자신을 조국의 아들로, 정부의 노예로 여기고, 
이성과 양심에 어긋난 일들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영구적인 혁명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도덕적인 혁명, "영혼"의 갱생이다. 

살인행위가 끔찍한 것은 그것이 잔인하거나 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의 비이성과 무분별함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버팀목은 
사소한 물질적 만족 때문에 자유와 명예를 파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정신적 마비다. 

사회 구조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얻을 게 없다. 
그들에게 행위의 유일한 동기는 권력에 대한 사랑과 허영이다...
권력과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끊임없는 굴종과 아첨 때문에 삐뚤어진 성격이 되고 
악행을 되풀이하면서 자신들이 인류 번영의 공헌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식으로 처신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물질적 이득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정치경제학이 다루는)이 유사 과학적 탐구에서 
일반적인 사물의 질서를 보여주기 위해 고려된 것은 
역사를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온 조건이 아니라 
어떤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조건, 즉 지극히 예외적인 경유로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영국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한 사회에 도둑과 강도가 나타나 노동자들한테 노동의 열매를 빼앗아간다면, 
이런 일은 경제법칙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이 틀림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경제 법칙은 과학이 지시하는 진화적 과정에 의해서만 천천히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인도에 따라 강도, 도둑, 장물애비는 도둑질이나 강도질로 얻은 물건으로 계속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계의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의 신학적 설명만큼이나 
이런 과학적 설명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는 어떤 설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학자들, 
현명한 사람들이 기존하는 사물의 질서야말로 당연한 것임을 증명했으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질서 안에서 
어떤 변화의 노력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이 우리 사회의 선량한 사람들이 동물의 생활 조건은 그토록 신경쓰면서 
동료와 형제의 비참한 삶은 두 눈을 감고 
어떻게 그토록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날의 노예 주인에게 오물을 치우게 할 존이라는 노예가 없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수백 명의 존이 필요로 하는 5실링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노예주인은 수백 명의 존 가운데 누구든 한 명을 선택하여 
그에게 특별히 오물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는 은전을 베풀수 있는 것이다. 

커져버린 욕구와 충동에 사람들이 이끌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결국 그들은 자유를 팔아서라도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전에는 이렇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한다는 게 옳은 일인가?
어떤 사람이 자신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자신의 모든 노동 생산물을 주인에게 갖다바치는 게 옳은 일인가?
...어떤 땅이 그 땅을 경작하지도 않는 어떤 사람의 소유라고 할 때 
그 땅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무리 타락한 자라 할지라도 
부자나 정부 관리를 제외하면 
어떤 사람도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시골 사람들한테서 추수한 곡식이나 
아이들에게 줄 우유를 짜기 위해 기르는 암소, 
아니면 그가 만들어 사용하는 쟁기, 낫, 가래를 빼앗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복자들과 정부의 차이는 
정복자들이 병사들과 함께 직접 주민들을 공격하고 반항할 경우 
몸소 고문과 살해위협을 실행에 옮기는 반면, 
정부는 반항에 직면할 경우...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폭력은 이전에는 정복자들의 용기와 잔인성, 기민함에 따른 개인적 행위였지만, 
이제 폭력은 기만 행위가 되었다. 

"자본은 소수의 손 안에 축적된다. 
이 과정은 자본이 한 사람에게 집중됨으로써 끝이 난다..."

권력을 무너뜨린 권력은 권력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이 이룬 것들이 참으로 인간의 안녕에 기여하는지 아닌지 알기 전에 소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조건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문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실수는 
수단에 불과한 문명을 목적이나 결과로 여기고 
문명이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명은 사회의 통치자가 좋은 사람일 경우에만 이로울 수 잇다. 
폭발성 가스는 암석을 날려버려 도로를 건설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폭탄으로 사용하면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가 된다....
우리의 구원은 
지금까지 우리가 따라온 길이나 우리가 공들여 이루어놓은 문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으며 
우리가 지금 빠져나와야 할 늪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끌어모은 쓸모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내버릴 줄 알아야 
어떤 식으로든(네 발로라도) 토대가 굳은 제방 위로 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국민 개병제야말로 전시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병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독일은 이런 계획을 고안한 최초의 국가다...

국민개병제국가에서 사람들은 희생하고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하지만, 
희생과 자유가 없는 삶이란 
이미 피하고 싶던 위험에 노출되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이 파격적인 언사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대목이다.

화물역의 짐꾼들 처럼 
그들도 생명의 이자가 아니라 원금을 빼쓰고 있는 것이 분명한 실정이다...
영국의 통계자료를 보면, 
상류층의 평균 수명은 55년이고, 
해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 계급의 평균수명은 29년이다. 

꽤 긴 내용의 우리 시대 노예제라는 글은 
37시간 일하며 하루에 1루블 이하를 벌면서 
교대근무는 생각도 못한 채 
짬짬히 쉴 공간이 비좁다는 것에 분노하는 철도화물노동자들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믿으며 고향을 떠나고 농사를 떠난 사람들이 
노예보다 더한 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은 
산업사회의 인간이 제도의 노예임과 동시에 욕망의 노예라는 점도 지나치지 않고 짚어준다.
생명의 원금을 빼쓰고 있다는 저 대목은 
권여선의 '봄밤'의 주인공 영경이 감탄한 인격에 대한 덧셈 뺄셈의 명확한 비유를 넘어서는, 
정말 읽는 순간 한 번에 와닿는 대단한 비유.
  
투표란 
자신이 국가가 아니라 자신의 뜻에 복종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제도일 뿐이고 
국가에 복종하는 사람은 
개인이 누리는 자유란 감옥에서 간수를 투표로 뽑는 정도의 자유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톨스토이의 시대가 이미 100년도 더 전인데 
그의 주장 속에서 보는 세상은 지금으로 봐도 그대로 이해가 된다.
방법이 단 하나라 어려워도 그 뿐이라는 그의 해결책은 
여전히 멀고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여러가지 고민 거리를 던져준다.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 
돈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사람-무엇이 더 천박한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느끼는 보람을 
가치 있게 평가해줘야 하나?

폐해가 많은 애국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한국'이라는 이름을 '네덜란드'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게 과연 주입식 세뇌의 깊은 뿌리일 뿐인지, 
생존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에는 
계속 반대해보자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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