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부르의 실패를 딛고 씨네마천국을 따라서~
사실 영화촬영지라는 것보다 옛 거리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해서, 그리고 더 진짜 이유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튀니지행 배를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생겨서 찾아갔다.
본토 쪽에서 기차를 타고 시칠리아로 올 때 지나쳐오게 되는데 기차에서 잠깐 깼을 때 역 이름을 본 기억이 난다.
나의 주문을 따라 체팔루도 비가 왔다--;; 딱 이틀짜리 축제가 있는 날이었지만 비 때문에 낮 분위기는 영 아니었다. 모 가이드북에서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을 본 것 같은데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덕배기에 있는 거대한 체팔루의 유적지를 즐기면서 팔레르모보다 훨씬 한적한 이 동네에서 묵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목들 역시 예쁘지만 이탈리아의 골목은 여기저기 다 이뻤으니까.
잠깐 비 개인 동안 언덕을 올라 문 닫힌 어느 신전 앞까지 갔다 왔다. 좋은 전망은 볼만큼 본 것 같은데도 길이 보이면 또 기어 올라가고 있는 나. 사실 뭐 딱히 할일도 없으니까^^
팔레르모로 돌아오는 길. 기차표 자동판매기가 고장이어서 옆에 있는 담배가게에서 표를 샀다. 카푸치노도 맛있었다. 자동판매기하고는 생김이 다른 표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냥 타려고 했더니 기차 안에서 역무원 아저씨가 길 건너가서 찍어오란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안 찍은 표 두장까지 심부름을 시켰다. 후다닥 철로를 건너 표를 찍으러 갔더니 좀 전에 기차행선지 알려준 다른 역무원아저씨가 얼른 내 표를 받아 찍어줬는데 내가 다른 두장의 표를 더 찍으려고 하니까 나에게 심부름 시킨 아저씨에게 큰 소리로 대신 항의해 주었다.
아마도 그 내용인즉슨 ‘말도 못 알아듣는 애한테 뭔 짓이야’정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심부름까지 완수했다.
떠나기 전 팔레르모 기차역의 맥도날드.
한 애기엄마가 잔에 나온 커피 두 잔을 종이컵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커피아저씨는 콜라컵을 들어서 괜찮냐고 묻고 나서, 커피를 옮겨 담고, 옮겨 담느라 줄어든 우유크림까지 다시 채워서 애기엄마에게 건넸다.
여기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의 근사한 바였다면, 또는 커피아저씨가 굉장히 대단한 서비스인 것처럼 스스로 설레발을 쳤더라면 달랐을 텐데, 늘 붐비고, 바빠서 일하는 사람이 짜증을 내도 그러려니 익숙할만한 뜨내기 장소였기에, 그리고 커피아저씨가 일상처럼 익숙하게 응했기에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다.
여전히 설레게 예쁜 바다. 큰 맘 먹고 나와 준 햇빛아래 물색도 한결 가벼워져있다.
내내 비가 왔던 이탈리아였는데 그 동안의 비는 태양에 감사할 준비를 하라는 신의 계시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 득도를 강요당한 순례자 같이 느껴진다.
좀 불쌍한 긍정적인 마인드^^
팔레르모 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부두 근처까지 가서 10분 정도를 걷는 코스를 따라 튀니지행 배를 타러 갔다. 가는 길에 냄새가 엄청 좋은 피자집에서 피자를 하나 샀다(이건 맛있는 '피자'였다).
내가 워낙 늦게 가서 많이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앞서 기다리던 다른-아마도 튀니지-사람들 사이로 경찰이 고개를 쑥 내밀더니 내게 차를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다. 없다니까 먼저 오라고 한다. 사실 내 앞에 서있던 사람들도 차 없었는데.
20분도 안돼서 절차는 다 끝나고 드디어 배를 탔다.
타이타닉 한번 따라해볼까나 했지만 2층 이후의 갑판은 잠겨있어서 올라가지 못한다.
바람때문에 추워서 많이 나가 있진 못했지만 열심히 배를 따라오던 갈매기들 구경은 좀 했다.
바다 한복판에서 쉴데가 어디 있다고 떼지어 배옆을 날던 겁없는 것들.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지 출신의 사람을 만났다.
티볼리에서 만났던 러시아 처자에 이어 배위에서 만난 알제리 아저씨. 이탈리아 볼로냐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피자를 만든다고 했다. 담배 피우러 나갈 때마다 마주쳤던 페리 이웃.
가고 싶은 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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