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휴양지가 필요하냐? 아니다.
하지만 그랑부르의 이름이 한번 나온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찾아갔던 곳인데 결국 영화를 찍었다는 수도원 출신의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찾아볼 생각은 않고-영화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또 노닥노닥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서 전화할 땐 0을 두 번 눌러야 한다는 걸 몰라서 민가촌에 틀어박힌 숙소부터 공중전화까지 빗속에 몇 번을 오갔는지. 덕분에 몇 안 되는 숙소 이웃들에게 폭탄 같은 즐거움을 선사.
언젠가는 엔조와 자크가 뛰어놀았을지 모를 이 동네의 골목골목은 지금 너무나 말끔하고 잘사는 마을이 되어 있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 호텔에서만 찍었다는 건지. 그리스의 아모르고스 생각이 났다. 요즘도 매일 밤 영화를 보여주겠지. 상술도 역사가 생기면 아트의 경지지.
지나는 길에 피아노 바가 보여서 찾아갔는데 토요일만 공연이 있다고 해서 관광지마다 인기 폭발인 아이리쉬펍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가 바로 그 뒤에 생음악 공연이 한창 중인 술집이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기타, 만돌린, 콘트라바스의 조합. 흥이 많아 보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인데 악기들의 소리는 어딘가 좀 구슬프다. 나중에는 적당히 취한 일본처자들, 오늘의 뮤지션들, 호스텔 이웃 벨기에 처자와 다 한자리에 앉아서 시끄럽다고 경찰차가 올 때까지 놀았다.
나폴리 위로는 이탈리아도 아니라는 시칠리아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니 이탈리아는 지역감정을 넘어 연합국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폴리를 건너뛴 것이 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핏자도 파스타도 최고라는데 진짜 이탈리아의 반쪽을 돌아가는 길에 함 들러 봐? 하긴 북쪽 사람들은 또 반대로 얘기하기도 하겠지만.
황미나의 ‘이오니아의 푸른 별’ 때문에 낭만적인 이름으로 느껴지던 이오니아의 바다구경만 열심히 하다. 흐린 날이 이어져서 하늘은 거의 구름색인데도 원래 물감을 타 놓은 것처럼 푸른빛이 돌던 예쁜 바다색도 멋있었지만 떠나던 날 해가 나서 더 파랗게 멋있어진 색을 볼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음악을 듣고, 이런 자리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굉장한 호사가 새삼 즐겁다.
이렇게 이오니아해를 가까이서 보다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북해와 북해보다 더 가보고 싶은 보드니아해 생각도 났다. 에게해도 멋있었는데. 이름으로는 결코 그 멋이 덜하지 않은 아드리아해에는 별로 집착하지 않는 걸 보면 나의 바다 취향은 만화가 절대적인가 봐. 참, 잭 스패로우 덕분에 캐러비안도 추가^^
이런 곳에서 축구도 하는 타오르미나 주민들
영화 대부의 관광유산
맘에 드는 차가 맘에 드는 골목에 주차하고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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