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청연|2005



[이 사진만 조선일보에서 훔침]

 

 

영웅의 인간승리도 아닌, 비운의 `여류비행사`를 신비스럽게 포장하지도 않은,

한 사람을 사로잡았던 하늘의 벅찬 느낌을 슬프게 전해주는 영화-청연.

그 여자는 대체 뭘 믿고 그런 꿈을 감히 품었으며 어쩌자고 그 꿈을 이루겠다고 작정하고 덤볐을까.

대충 가능성 있는 걸로, 먹고 살 만한 걸로,

어느새 꿈도 스스로 검열하는 평화(를 가장한)의 시절을 살면서

박경원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윤종찬과 장진영을 믿고 찾아갔다.   

밑천 없는 집 딸이 성공하기가 밑천 없는 집 아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여전히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기에, 나는 영화의 시작부터 마음이 좀 아팠다.

 

늘 죽음 가까이에 있던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가진 꿈은 그냥 내쳐 노력만 하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란 걸 상기시켜준다. 그래, 박경원의 꿈은 참 위험한 것이었지, 여러모로.

꿈은 행복하려고 혹은 행복할 것을 믿으며 꾸는 것인데,

박경원은 꿈을 포기하지 못할수록 점점 불행해지는 운 나쁜 인간이었다.

뭘까, 그렇게 강렬하게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반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살기 힘들었을 여자 박경원,

콘택트에 나왔던 브라더 제스의 뒤를 이을 법한 러브로망의 혁신적인 캐릭터이자 환타지 한지혁,

비행동료들-꿈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유대감 같은 거-좋았다.

박경원이 먹었을 욕은 미쉘위가 먹는 욕과 같은 방향이다.

그래서 지혁의 그 대사가 아주 시원했다-조선이 너한테 해준 게 뭔데?

 

찢겨진 불행한 시절에 살아야만 했던 한 사람의 남루하지 않을 뿐인 꿈에 순결을 강요하는 것이 공정한 지도 모르겠고 내 스스로의 애국행각(킹콩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돈으로 이런 영화를 보여준 윤종찬이 피터 잭슨보다 더 멋있다는..)을 돌이켜 볼 때 난 당당하게 돌을 던지지는 못하겠다.

나야 그냥 늦게 태어난 것 뿐이잖아.

개인적으로 고문장면 좀 지루하고, 이정희의 이상한 역할-한지민 연기는 참 잘했는데 비중에 비해 극 기여도는 낮다. 그리고 네이버영화 사진갤러리 뒷부분은 왜 전부 한지민 프로필 사진인거지?-이 개인적인 불만족의 전부다.  

영화에 대한 논란이 더 많은 정보를 준 건 오히려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한 대로 

난 이제 박경원이 `한 일`도, `한 짓`도 알게 되었는데,

그렇기에 얘기할 가치도 없다는 이상한 논리에는 적응 못한다.

한 말을 가지고야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 말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게 뭐야.

똑같은 짓을 전두환이 하면 독재고 네티즌이 하면 민주주의인가. 

 

내 평생을 두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고민한 시간을 생각해봤을 때 요즘처럼 분기탱천한 애국자 많은 대한민국에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산다는 게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끓는 피를 키보드 두드리는 것 말고 다른데도 좀 써서 진정한 애국자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란다, 나 같은 사람 좀 묻어가게.

진정한 최초여자비행사 권기옥씨의 영화를 만들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영화 만들어지기 전까지 도마 안중근부터 섭렵하시도록. 진작 그런 영화 단체관람들 좀 했으면 애국영화의 신유행을 창조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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