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2014

영화속엔 없는 장면: 다시 만난 그들의 표정들이 이럴것 같은...


목숨값의 돈봉투들이 돌아다니는 사이,
정작 그 목숨이 얼마나 연약하기도 하고 질기기도 한지를 한꺼번에 보여주면서
목숨과 '값'을 이어서 생각하고,
그 '값'을 매기는 행위 자체,
그 '값'의 합당함을 생각하게 만들던 드라마, 해무.

다 죽이고 다 조각내 내려놓더라도 배는 지키겠다는 선장,
한 배를 탔으니 무조건 충성하겠다는 갑판장,
챙길 것 챙기면서 할 욕은 다하는 경구,
피는 묻혔어도 지킬 건 지키겠다더니 정말 살인도 해버린 동식,
앞일이 어찌됐던 굴러들어온 가이내와 꼭 한 번 해보고 말겠다는  창욱.
이 광기들이 바다안개에 취하면서 
전장이라기보다는 도살장에 가까운 무대가 된다.
생각보다 일찍이라 허망하고 깜짝스럽게 밀항자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리면서부터
대체 마지막 장면은 무엇이 될까 궁금했는데
헐...광기의 끝이라 하기에는 옛날 베스트극장 같은 엔딩.
게다가 저런 인간의 끝을 보인 강선장에게
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 같은 마지막이라니
너무도 안 특별하지 않소....!
기관실은 공간이 특별해서 인지 오히려 괜찮았지만
다른 동식-홍매씬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웃기라고 넣었나보다 싶은 대사가 안 웃길 때마다
여기서 웃게 해줄 수 있는 감독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

강선장 김윤석.
이런 역할 이젠 징글징글할 법도하고 보는 사람도 지겨울 법한데 매번 좀 다르다. 
머리숙이지 않는 척 현실과 타협하다 스스로의 맹목에는 맹렬하게 달려나가는.
배가 왜 있는 지 생각 안하고
다 죽여서라도 선장노릇할 배를 지키겠다는 폭주하는 독재자의 말로.
근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모습은 돋보기 였음^^
 
창욱 이희준
이쯤되면 이 사람은 변태인지 저능인지 구분이 안간다.
다들 그렇긴 했지만 진짜로 진짜 선원같던 이희준.
근데 정말 이해안가는 비호감 인물이라 당분간 이희준에 적응이 안될듯^^
감독이 여러 번 자신의 변태기질을 자랑할 때 그게 변태식 아트일 줄 알았는데
설마 곧이곧대로의 변태 농축액을 창욱에게만 다 써버린 거?

홍매 한예리
뉴스룸 시즌1에서 매기가 불법이민자들에 대해 '목숨걸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더 나은 대접을 해야한다'고 웅변하고, 그걸 또 짐이 듣고 넘어갈 때, 참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구로3동을 목적지 삼아 여러 번 목숨 걸고 별 걸 다 살아남는 이 처자를 보면 이 이상 여기에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게다가 한예리 참 이쁘다.
+ 짧았지만 강렬했던 율녀 조경숙: 언니, 멋져요~

기관장 문성근
가장 약해서 인간적이었던 까닭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어찌보면 가장 슬픈 최후를 맞이한 인물,
최근 들어 짧은 악역 전문이었던 때문일까.
여기서 봤던 문성근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진다.
이런 얼굴도 있는 배우인데.

갑판장 김상호
위기상황에서 누구나 바라는 믿음직한 동료일지 모르지만, 자기 생각이라는 게 없는 듯한 그의 맹목적인 동조야말로 가장 섬뜩한 것일지 모른다. 데카르트식으로 치면 이 인물이야 말로 가장 비인간적. 그래서 마지막이 그렇게 허망한가.....

경구 유승목
선원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두 개의 이미지 중 동식이의 가장 반대편에 자리잡을 것 같은 경구. 기대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 내게 있어 그의 대표작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동식 박유천
박유천이 나온다고 했을때 봉준호가 어린 박해일을 찾았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박해일이 더 좋았을 걸에 한 표.
딱 한 장면 오홋~했던 순간은
동식이가 아주 능숙하게 식판을 들고 선장실로 올라가서는
선장님도 밀항은 처음이지요-묻던 순간이다.
섣불리 입에 못 올리는 그 말을 직접 묻고 마는 순진함에
노련한 강선장도 허를 찔린 듯 당황하는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꼬마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밖엔 박유천이 책 읽어주는 연기돌이 아닌 것만 알려줬을 뿐. 

분장 잘 한 모형 전진호가 어항에 떠 있는 것 같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화면은 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 진짜 배를 띄워놓고 찍어서
배우들이 진짜 선원들처럼 움직이게는 했겠지만
정작 그림에선 아주 티나던 밀항자들의 승선 장면을 빼고는 
그게 세트인지 진짜 배인지 보는 사람한텐 그닥...
이야기의 힘이 궁금한 연극 해무에 대한 기대만 커진 채로 끝나는 영화다.
궁금해서 안 볼 수는 없었고, 이야기만으로는 권할 만 하지만,
봉준호의 영화는 아니란 것을 까먹으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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