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포스터.
이번 영화제를 위해 따로 만들어 온 것이다.
영화 <첫사랑>은 꽤 엉성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는 게이 소년이 겪는 첫사랑의 열병이라는 익숙한 내러티브와 함께 커밍 아웃, 동성결혼 등의 사회적 이슈들을 이마이즈미 특유의 자유분방한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드라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서울LGBT필름페스티벌(SeLFF)의 소개글에 낚인 걸 후회했다.
시종 일관 어설픈 카메라와 어설픈 연기 그리고 연출력까지.
칫, 자유분방한 카메라?
저 건 자유뷴방한게 아니라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라구!!!
지금까지 4편의 장편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완성도가 없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인터뷰를 주선해 달라고 한 걸 후회했다.
뭘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인터뷰 도중에 싸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일본에서 온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그리 즐겁지가 않았다.
게다가 영화관에 오기 전에 프로그램팀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저, 배우를 픽업하러 공항에 나왔다가 같이 극장으로 가는 길인데, 배우가 엄청 이뻐요."라는 전화를 받고 내심 기대를 많이 했는데,
웬걸 주연 배우 무라카미 히로시는 전혀 이쁘지 않았다.
그 놈은 도대체 눈이 있기는 있는 거야?
이 건 뭐 오늘 하루는 공쳤구나.
나의 두 번째 인터뷰는 그렇게 우울하게 시작 되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서는 깜짝 놀랐다.
저녁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식당에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들이 20명 정도 술잔을 기울이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옆에 앉아 귀를 바짝 기울여야 소리가 들릴만큼 식당 안의 환경도 인터뷰를 진행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오늘 일진이 사나운 걸.
급우울해 진다.ㅠ.ㅠ
여튼, 이렇게 우울하게 시작된 인터뷰는 50분을 지나는 시간동안 진행 되었다.
제작자 이사와 히로키와 이마이즈미 코우이치 감독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함께 했는데,
난 인터뷰 중에 뜻밖의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 이를 어째...
- (피터) 지금가지 몇 편을 제작을 했나?
= (이사와 히로유키) 총 4편을 제작했다.
= (이사와 히로유키) 총 4편을 제작했다.
- 퀴어 영화만 만드나? 아니면 다른 영화도 만드나.= 퀴어만 만든다.
- 아니, 왜?= 일본에서 퀴어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기 때문에 퀴어를 만들어야 한다.
- 퀴어가 적다고?
= 생각보다 적다. 나라도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 그렇지만 퀴어 말고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나?
= 퀴어가 아닌 영화들은 많기 때문에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퀴어를 만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 제작자 입장에서는 퀴어 영화만 제작하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힘들지는 않나?
= 퀴어 영화가 아니면 수익이 생긴단 말인가?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어, 그러고 보니 나도 뭐 수익을 낸 영화가 거의 없군. 쩝.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흥.
- 아무래도 퀴어 시장은 작고 일반 영화 시장은 크니까 그렇지 않나?
= 내 경우에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돈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10만엔이다.(우리 돈으로 100만원도 안 된다)
- 10만엔? 100만엔도 아니고?= 그렇다. 10만엔이다.
제작비가 10만엔이란다.
그랫구나.
그래서 그렇게 허술하게...
그 돈으로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완성도가 어쩌구 하면서 흉을 봤던 내가 창피하다.
- 너무 놀랍다.
=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린 계속 그렇게 찍어 왔다.
- 그 걸로 장편을 만들 수 있나?
= 그럼, 우리는 할 수 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혹시 <후회하지 않아>는 보았나?= 동경에서 1번 보고 오늘 또 봤다.
- <후회하지 않아>는 제작비가 한국에서는 아주 적은 1억원 정도였다. 그것도 힘들었는데 정말 놀랍다.
= 개런티도 없고 장소 사용료도 없고 꼭 필요한 돈, 예를 들면 주차요금 같은 것만 쓰기 때문에 제작비를 아낄 수가 있다.
- <첫사랑>은 오사카와 도쿄에서 상영할 예정인 걸로 알고 잇는데 수익은 어느 정도를 예상하고 있나? 예전 영화들을 기준으로...
= 먼저, 오사카 상영은 퀴어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건데 1번 상영하면 상영료를 5만엔을 준다. 이번엔 1번만 상영하기 때문에 5만엔을 준다. 도쿄에서는 LGBT영화제가 있었는데 거기 프로그래머와 잘 맞지 않아서 상영하지 못했고 그냥 영화관에서 개봉하게 되었다. 거기서 상영하면 입장 수익을 6:4로 나눈다. 60%를 받을 수 있다.
- 그럼 지금까지 수익을 남긴 적이 있나? 계속 손해를 본 건가?
= 제작 후에 해외 상영을 위해 영문 번역과 테이프 만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솔직히 수익이 거의 없다.
= 제작 후에 해외 상영을 위해 영문 번역과 테이프 만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솔직히 수익이 거의 없다.
- 그렇다면 평소에 어떻게 먹고 사나?
= 아르바이트를 한다.
- 아르바이트? 어떤?= 감독은 유리창 청소를 제작자는 슈퍼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작품도 평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 모여서 촬영을 했다.
오른쪽에 앉은 분이 이마이즈미 코우이치 감독.
아, 이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평소에 슈퍼에서 점원으로, 유리창 닦는 청소원으로 일하다가 주말에 모여서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한단다.
아, 아까 내가 흉 봤던 걸 이들이 알면 어쩌지?
정말 미안하고 미안해서 숨고 싶다.
(이마이즈미 코우이치 감독) 2년 동안 로열티를 주지 않았다. 처음엔 3개월 마다 정산을 해서 준다고 했는데 연락도 없었다. 전화하면 보낸다고 하면서 계속 미뤘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주겠다고 했다. 우리 둘이서만 일을 하기 때문에 계약 하는 거며 이것저것 챙길 건 많은데 챙기지 못하고 있다.
- 나쁜 사람들이다.
= 아니다, 그들 덕분에 그래도 거기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나?
- <첫사랑>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 (이마이즈미 코우이치 감독) 2006년 6월 어느 날에 꿈에서 영화를 만들라고 했다.(웃음)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벚꽃이 나오는 장면이 있고 벚꽃을 찍으려면 4월 중에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영화는 계절이 여름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5월과 6월에는 실내 장면을 찍었고 그리고 7월에 야외에서 촬영을 했다. 주연 배우를 미리 정하고 쓴 건 아니고 처음엔 주연 배우 없이 찍다가 5월 말쯤에 배우를 정하고 찍었다. 이미 많이 찍은 후였다. 그리고 무사히 여름 안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감독은 내가 묻지도 않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이사람 외로운가? ㅋㅋ
- 제목이 <첫사랑>인데 타다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지 않았다. 왜 그랬나?
= 첫사랑이라는 말의 뜻을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랑이든지 둘 사이엔 처음으로 만나서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누구나 첫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 영화가 심각하지만은 않고 유쾌하고 즐겁다. 그런 점에서 <후회하지 않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배우가 한국의 여성, 게이 관객들이 좋아 하는 것 같더라. 예쁘다고 많이 하더라. 눈이 즐겁다고 그러더라.(사실 난 동의 할 수 없다. 내 식성을 떠나서 무라카미 히로시는 예쁘지 않았다)
= 무라카미씨만? 아니면 다른 배우도?
- 음... 무라카미씨만.= 그럼 무라카미 애인으로 나온 친구는?
- 음... 코믹한 캐릭터니까 사람들이 좋아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이쁘지는 않다. <후회하지 않아>의 마담처럼.= 나, 마담 좋아한다. (웃음)
- 도쿄에서의 상영은 어떻게 추진하게 되었나?
= 도쿄에서 상영하는 극장은 원래 게이 커뮤니티가 아니고 이성애자들이 많이 가는 일반 극장이었는데 4월에 거기에서 아시아LGBT필름페스티벌이 열렸었다. 거기서 <후회하지 않아>도 상영되었다. 난 거기서 보았다. 그 영화제 반응이 좋아서 그 극장에서 2주간 상영을 해보자고 제안을 해왔다. 너무 잘 된 일이다.
- 축하한다. 서울에 한번 다녀가려면 많은 돈이 들 텐데(영화 제작비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어떻게 오게 되었나?= (감독)관객 반응이 궁금해서 오게 되었다. 또 영화제 분위기도 보고 싶고. 유럽은 멀어서 못가고 아시아 나라들은 다닌다. 영화제에서 초청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이는 못 갔다.
(제작자) 미국이나 유럽 보다 아시아에서 교류를 하고 싶다.
- 왜?
= 아시아에 오면 직책이 높은 사람도 잠 못자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영화제마다 돈이 없고 시스템도 불안정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열의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음 영화 빨리 찍어서 다시 또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 개인적으로는 어떤 장면이 제일 맘에 드는가? 난 타다시(무라카미 히로시가 연기한 인물)가 친구에게 커밍아웃하는 장면이 좋았다. = (감독) 모든 장면이 다 좋고 동시에 모든 장면이 다 아쉽다.
(제작) 난 감독보다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찍을 때는 신이 내려 왔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웃음)
- 어떤 장면이 그랬나?= 어머니가 택배로 선물 보낸 것을 열어 보지 못하고 베란다에 나가 있을 때 마침 바람이 잘 불어 주어서 예쁘게 찍혔다. 신이 도와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나?
= 이지메 경험은 별로 없었다. 여성스럽다 여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은 편이다. 드러내놓고 이지메를 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 영화 장면에 타다시 등에 사형이란 글씨를 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건 감독의 경험인가?= 이지메 장면은 많이 찍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메라는 설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만들어서 넣은 것이다. 감독의 경험은 아니다.
- 타다시의 자위 장면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꿈을 꾸는 것으로 설정한 건 어떤 의미인가?
= 감독의 개인적인 판타지다. 개인적으로 강간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타다시가 강간을 당하면서 좋아하는 걸로 설정한 건 개인적인 판타지다.
- 그럼 강간을 당하고 싶단 말인가?
= (감독)하고 싶을 때도 있고 당하고 싶을 때도 있다.
- 정말? 위험한 생각 아닌가?
= 현실에서 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 영화에서도 판타지로 처리했다.
- 일본 게이 포르노에도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를 강간하는 내용이 꽤 있는데 난 그 것도 굉장히 불쾌하다. 그 강간 장면 때문에 관객들이 불쾌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 보는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거다.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난 너무 화가 났다.
성폭행을 판타지로 그리는 게이 감독이라니...
하지만 처음 본 사이에 싸울 수는 없었다.
그래, 내가 좀 참자. 다운. 다운.
- 어쨌든 난 이해할 수 없다. 불쾌했다.
= 보는 사람마다 다를 거다.
- 한국에는 게이라는 영어식 표현이 아니라 이반이라는 한국식 표현이 있다. 일본에도 있나?
= 없다. 그냥 게이라고 쓴다. 오카마라는 단어가 있는데 엉덩이라는 뜻으로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다. 호모라는 뜻처럼. 퀴어처럼 자부심을 가진 단어로 스스로 쓰지는 않는다.
- 한국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 특별히 한국 관객에게 할 말은 없다.
- 그럼 일반적인 관객을 대상으로는?= 가능하면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리지 않고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을 듣고 싶다. 그렇지만 그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에 온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것은 나에게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 오늘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리고 혹시 내가 일본에 가면 다시 만나고 싶다.
= 일본에 오면 꼭 보자.
- 수고하셨어요. 아리가또.
인터뷰가 끝나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내내 미안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흉을 본 게 미안했고
상대적인 나의 부유함(나또한 월세방에 사는 가난한 제작자이지만 슈퍼 점원을 하면서 돈을 모아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니까)이 미안했고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미안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미안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첫 영화를 찍으면서 사랑에 빠져 4년째 사귀고 있으며
벌써 4편의 영화를 만들어 외국 영화제에 다니고 있으며
벌써 다음 영화를 찍을 생각에 마음이 설레인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 그들은 행복해.
그 말은 진심일 거야.
그들의 열정에 나도 모처럼 행복해지는 그런 날이 되었다.
일본에 가면 꼭 만나야지.
이사와 히로키 & 이마이즈미 코우이치 커플이
지금처럼 행복하게 1년에 1편씩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에 가면 꼭 만나자구!!!
* 통역은 일본인 친구 가스카님이, 사진은 그대로님이 도와 주었다.
:옛날 김조광수가 아마도 씨네21에 쓴 인터뷰인데 사진은 다 사라지고 원문은 검색해도 나오질 않는다.....
:옛날 김조광수가 아마도 씨네21에 쓴 인터뷰인데 사진은 다 사라지고 원문은 검색해도 나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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