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스크랩] [세계일주:파타고니아]세상의 끝을 보다 /아르헨티나

 

                                                                 < 피츠로이로 가는 길에서 >

 

세계일주 한 번 해보겠다고 부모님의 근심어린 얼굴을 뒤로 한 지 어느 덧  9개월이 지났다. 가장 큰 열정을 지니고 있을 지금 가장 의미 있는 것을 배워오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여행을 계속할수록 내가 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내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은 더더욱 애매해져만 갔다. 도리어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던 여행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달아 가면서 그나마 있던 자신감마저 줄어들고 있는 판이었다. 그리고 이 때, 난 남미의 파타고니아 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브라질 쌈바 축제에서 만난 유난히 죽 잘 맞는 선재와 함께 칼레파테-우수아이아를 거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오는 170불 짜리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극지방에 가까운 파타고니아는 채소나 야채, 과일 등이 드물고 따라서 식비 등의 모든 물가가 비싸 배낭여행자가 다이어트 하기 좋다는 소문에 물가 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미리 고기와 한식 등의 몸보신도 하고 어느 정도의 군것질꺼리도 준비해 공항으로 향했다.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칼라파테. 내리면 눈 덮인 설원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황량한 대지가 펼쳐진다. 내가 칼라파테에 도착한 게 맞나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순간에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하얀 산들이 보인다.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왠지 부실해 보이는 통나무 집에 짐을 풀어 놓고 바로 빙하로 향했다. 빙하. 얼음강 이니깐 단지 강이 얼어붙어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별 기대없이 한 참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모레노 빙하. 지금껏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엄한 빙하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 곳이 바로 모레노 빙하! 하이트 광고에서 박지성이 공을 차 때려 부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수많은 뾰족뾰족한 얼음조각들로 이뤄진  60m 높이, 4km 너비의 얼음벽이 눈 앞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론 삐죽삐죽한 얼음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아, 이게 빙하인가 하는 순간 저쪽 끝에서 우르르르릉~ 지진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진다. 잠시 후 꽈광!! 하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상류로부터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얼음조각이 빙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얼음 조각이라고는 하지만 길이가 10m는 되었기에 호수에 닫는 순간 ‘펑’소리와 함께 작은 쓰나미가 일었고 얼굴로 찬 바람이 확~ 불어 닥쳤다. 수백만 년 전에 내린 눈이 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물이 날 뛰어 들고 싶게 한다. 문뜩, 저 빙하 위를 걸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미지의 어떤 곳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겠지. 추운 줄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 빙하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빙하의 생성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들린다. 높은 산을 습기를 많이 머금은 구름이 넘어가면 산 정상에서 눈을 내리는데 이 눈이 쌓이고 쌓이면 그 무게를 못 이겨 압축이 되고 그 압축된 눈 덩어리는 만년설이 된다. 그리고 그 만년설은 위로부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아래로 밀려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빙하라고..실제로 눈이 처음 내리는 산정상의 눈의 두께는 1000m가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눈이 압력을 받아 눌리고 눌려서 산하로 내려오면 100m정도의 두께로 압축이 된다고...그리고 저렇게 뾰족뾰족하게 솓아 있는 이유도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뾰족뾰족해 보이는 얼음기동 하나의 높이는 4~50m정도로 절대 뾰족이란 수식어를 붙히긴 힘들다. 설명을 듣다보니, 아기공룡 둘리가 얼마나 과학적 원리에 입각해 기획된 만화인지 이해가 된다.

빙하를 뒤로 하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할 것 같지 않던 빙하를 뒤로 하고 칼라파테로 돌아오는 길이 아쉽기만 하다. (이 때만 해도, 파타고니아에서 매일매일 빙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빙하를 가까이서 보면?? 약간은 삭막한- >

 

이튿날, 모레노 빙하와 쌍벽을 이룬다는 웁살라 빙하로 향했다. 이곳은 빙하자체는 모레노와 비슷하지만 배로 가야만 하고 가는 도중에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과 얼음 호수 등을 볼 수 있다. 300명이 넘는 사람을 태운 크루즈를 타고 아르헨티노 호수의 옥빛 물을 가르며 약 1시간 정도 나아가자 눈앞에 커다란 갖가지 형상의 옥빛 빙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추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갑판으로 쏟아져 나갔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 수면 위에는 전체의 10%만 보일뿐이다>

 

 크고 작은 빙산을 보며 이 배도 타이타닉 꼴이 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 저 및 어딘가에 둘리가 잠들어 있을지 모른단 어이없는 생각도 해보는 사이에 크루즈는 빙산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빙산 사이를 누비며 몇몇 관광객들이 구명조끼를 찾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빙산들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즈음 배는 웁살라 빙하에 도착했다. 형태나 규모는 비슷하지만 배를 타고 좀 더 빙벽 가까이 접근하니 스릴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더 춥다.--;

 

 웁살라 빙하를 둘러보고 식사를 위해 호수 옆의 별장에 도착했고 옆에 얼음 호수가 있었다. 작은 빙하와 맞닿아 있는 호수는 얕은 물에 얼음이 둥둥 떠 있고 숲에 둘러 쌓여 있어 태고적의 신비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을 지켜보던 우리는 뭔가 특별한 사진을 찍고 싶어졌고 바로 웃통을 까 빙하지대의 세미누드쇼를 시작했고 사람들은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인 특유의 장난기와 쇼맨쉽이 발휘된 우리는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중국 무술의 자세를 취하기도 해 사람들이 풍경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고 같이 찍자는 사람도 많았다. 급기야 나는 신발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떠 있는 얼음 덩어리 위에 올라가는 묘기(?)까지 부려 사람들의 박수와 사진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영하 2도에서 벌거벗고 30분간의 성공적인 쇼를 마친 우리는 크루즈의 스타가 되어 빙하의 얼음을 띄운 진 토닉을 대접 받기도 했다. 5백만년 된 얼음의 정기가 뼈속까지 스며 들었다.

 빈 속에 술을 마셨더니  어질어질하다. 터미널 앞 고깃집에서 사지를 X자로 뻗고 구워지고 있던 양고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한끼 호사하고 이 추운 곳에서 노숙 할 수는 없는 노릇, 대강 계란 볶음밥으로 걸신을 달래고 El Chalten행 야간 버스를 탔다.

 

<얼음 쑈!쑈!쑈!>
 

 

<온천이 아니라, 빙천이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덜덜덜! 이 뒤에는 내 사진을 찍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사 있으므로, 표정관리! 또 표정관리!>

 

 

<쑈의 댓가는?!?! 빙하를 담은 진토닉 한 잔! 위하여!>

 

<이 사지를 찢고 꽂혀 있는 양고기는 매일마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린, 이 양고기처럼 사지를 찢고 유리 벽에 들러 붙어 구경을 했다.>

 

 

 

 

 <내 블로그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 이 곳은 천지와 더불어 내 여행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

 

  El Chalten은 Pitz Roy라는 -아, 이름만 들어도 왠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곳이다.- 아름다운 산을 향하는 관문이 있는 마을. 칼라파테에서 5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인 이 곳은 너무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적하고 관광객도 별로 보이지 않아 우릴 불안하게 했다. 과연 이 곳이 갈만한 곳일까...(가는 길도 험했다.)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이곳이 세계일주 기간 동안 가장 아름다웠다는 말에 일단 믿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숙소는 이렇게 그지 같은 걸까..--; 동네에 하나 뿐인 수퍼마켓에 가서 촌구석까지 오느라 엄청나게 가격이 뛴 물건들로 장을 본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져온 3분 짜장과 밥, 스파게티면을 이용해 짜장면 볶음밥(?!)을 만들었다. 도시락 통이 없던 우리는 1.5리터 페트병과, 칼, 라이타를 이용해 만든 특제 도시락에 스스로 감탄하며 우리는 파타고니아의 백색 요정이 산다는 곳, 피츠로이를 향했다. 약 5시간의 산행이었지만 4시간 동안 거의 평지였기 때문에 소풍 가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계속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기에 기분은 상쾌했고 말이 잘 통하는 선재였기에, 그리고 같은 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산행이었기에 길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피츠로이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No pain, no gain이라 했던가, 마지막 한 시간은 거의 절벽타기를 해야 했고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우리의 눈 앞에 별천지가 나타났다. 아아,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내 눈앞에는 7개의 길고 뾰족한 바위들이 눈에 반쯤 덮힌 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 돌산으로부터 시작된 빙하가 내려와 우리 바로 앞에 커다란 옥빛 호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 온 초원, 아르헨티노 호수와 빙하들이 있었다. 그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펼쳐져 있었고 우리는 빙하와 설산에서 불어 닥치는 칼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여행이 이 곳을 보기 위해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말 많던 우리가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가 처음 뱉은 말은 “야, 누드 찍자.” 였다. 난 항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누드를 찍어야겠단 생각을 해왔고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가 다시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왕 말 나온 거 맘 바뀌기 전에 얼른 실행에 옮겨야 한다. 날 변태 보듯하던 선재가 촬영을 하고 난 모델이 됐다. 빙하를 내려온 바람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만 가린 체 누드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 내 젊음을, 내 열정을 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우리가 만든 페트병 특제 도시락! 보온 기능은 좀 떨어지지만, 내용물의 상태를 상시 체크할 수 있고 원터치로 개봉이 가능하다. 최고의 장점은 재활용품이라는 것! 그리고 쓰고 나면 바로 버릴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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