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연예가중계는 지금같지 않게
당시로서도 언더였던 헤비메탈밴드들의 공연소식 같은 것도 전해주곤 했었다.
그때 종종 볼 수 있었던 그룹은 백두산, 시나위, 블랙홀--인가;; 등등이 있었는데
어느날 외인부대라는 그룹이 나왔다.
헤비메탈=긴 머리+헤드뱅잉 이던 그 시절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의 보컬은
목소리만큼이나 인상깊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임재범은 위 아래 가죽옷을 입고 10년인가 5년인가
-숫자에 너무너무 약한;;- 됐다는 낡은 가죽부츠를 신고
임성훈이 진행하던 가요톱텐에 나와서 '이밤이 지나면'을 부르며 솔로신고식을 했다.
1집이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그는곧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2집이 나왔다.
사실 임재범은 가요톱텐 1위 가수도 아니었고, 음반판매 1위 가수도 아니었으며,
1집에서의 히트곡이라야 이밤이 지나면 하나뿐이어서 난 정말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2집을 떡-하니 낼 수 있는 가수였다니.
좀 놀라웠다.
그리고 또 몇년이 지나서 그는 고해가 담긴 새 앨범을 가지고 나왔다.
아는 사람들은 꽤 좋아했지만
나는 애걸복걸하는 가사스타일이 임재범하고 전혀 안어울린다는 생각에
고해를 별로 좋아할 수가 없었다. 별 활동도 없었고.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 임재범의 음반.
요즘 강력한 권유에 따라 고민중인.
그리고 다시 몇년 뒤.
이번에는 꽤 큰 바람을 몰고 돌아왔다.
비상이라는 음반.
그 다음에 그는 베스트 음반을 하나 내고, 결혼을 하고, 형제를 찾고,
마야랑 같은 녹음실인지 연습실인지를 쓴다는 기사에 이름을 올리고는 또 사라졌다.
임재범이 가끔씩 불쑥 나왔다 사라진 공백기간에 임재범의 많은 아류들이 등장했었다.
노래 좀 잘하고 목소리 굵으면 다 제2의 임재범이라고 불렀다, 짜증나게.
노래를 잘한다는 것.
참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들으면 쉬운 얘기다.
내 기준으로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잘한다"는 "높은 음은 잘 올라간다"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은 피곤하다.
엄청난 과시형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 노래 너무 잘하지--! 이러는.
(저 말은 옛날에 신해철이 셀린느 디옹한테 썼다, 늬앙스는 좀 다르지만)
좋아하는 음악이나 그룹이나 가수는 여럿 이어도 그 중에서도 임재범과 이승철의 경우.
(이승철은 부활재결합해프닝 이후로 싫어하게 됐지만)
영어권에서, 아니 유럽에서만 태어났어도
세계적인 락커로서의 경쟁력이 충분한 보컬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이승철이 김태원을 만나 꽤 많은 명곡들을 리스트업 했던 만면
임재범이 시나위를 일찍 떠난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비상'의 노래들은 듣기 좋고 근사하지만,
임재범이 그릇이라면, 솔로 이후 그가 부른 노래들은
그릇 어딘가에 빈자리를 남기는 음식 같은 느낌이 든다.
한동안 또 소식없던 임재범,
10월에 새음반을 낸다고 한다.
십 몇 년만에 공연도 한댄다.
이번에는 그 2%를 채워줄까.
어쨌든 나는 음반을 살 거고 공연도 갈 거지만.
이제 임재범은 이런 라이브를 하지 못한다.
그게 임재범 혼자만의 아쉬움이 아니란 걸 꼭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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