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텔라 전국투어 콘서트 〈에볼루션〉 in 성남
라이브로 만났던 가수들이라
음반의 실망을 공연이 상쇄해주리란 걸 믿어의심치 않았지만
진짜 믿어서 복받았다.
공연장 음향 좋았고
가수들 분위기 좋아서 만족스러웠던 공연.
다음 음반은 라이브로 내보는 게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브 경연에서 우승까지 한, 그것도 화음이 멋있는 그룹을
굳이 쪼개서 껍질이 까지도록 문질러서 다시 합쳐 음반을 만드는
이런 첨단기술은 납득이 안된다.
빈소년합창단도 이렇게 녹음하냐...
공연 베스트 마이 에덴.
방송도 봤고 동영상도 꽤 봤는데 성남에서의 소리 너무 좋았다.
약간 환상적인 느낌.
팬텀을 부르던 강형호에 감탄했던 것에는
남자가 저 노래를? 도 좀 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짧더라도 마음을 쿡 찌르는 소리 같다.
돌고래 파장에 비유하자면
소프라노들은 지름이 큰 소리들이 퍼져나가고
강형호는 지름이 좀 좁는 소리가 밀도있게 울리는 느낌.
그리고 의외의 I'm coming now
음반 받았을 때 충격의 음악 중 하나였고
가사가 일부러 야하게 쓴 느낌이라 더 별로 였는데
시작곡으로 너무 신나서 나도 모르게 엄청 들썩거렸다.
아모르 파티보다 더 신났었던.
그 다음은 리멘시타 L`immensitá
음반이 전반적으로 멸균방에서 작업한 것 같다보니
넷이 불렀음에도 고우림과 조민규의 버전을 더 많이 들었었다.
넷에 밀리지 않는 고우림과 조민규 둘의 에너지에도 감탄했었지만
현장에서 듣는 네 명의 합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인운알트라비타 In un`altra vita
내가 따라부를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이탈리아어 노래^^
나의 포레스텔라 입문곡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앨범보다는 팬텀버전을 더 좋아한다.
워낙 팬텀싱어2를 보고 또 봐서인지
방송버전을 크게 헤드폰으로 들을 때 울컥하게 되는데
팬심으로 다시 만난 라이브가 원곡을 다시 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사실 조민규와 강형호 둘 다 목상태가 좀 안 좋았지만
음반의 원곡을 제대로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다른 공연영상 보면서 떼창 부러웠는데
조민규가 갑자기 기념사진을 찍겠다 했고
그 사이 센스 있는 스탭이 배경음악을 깔아준 덕에
나도 따라불러볼 수 있었다-You are my star.
감동의 표정을 그대로 돌려주는 가수들을 직접 보자니
사이좋음과 자기가 연예인된 줄도 모르는 연예인의 감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에
사실 딱히 좋아하는 멤버도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수준인
내마음 속에 응원나무의 싹이 텄다.
2집은 몰아치는 화음의 라이브로 꼭 찾아와주세요.
PS. 충격의 고우림-댄스 일취월장.
이쁨받고 있는 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의 자신감 더하기
워낙 잘 추는 춤은 아닐 것 같은데 진짜 신나게 추는 춤이라 보는 사람이 아니 흥겨울 수 없는.
Labels:
즐기다_공연
부활|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이대우|열린책들
확신에 찬 톨스토이는 망설이며 성장하던 갈등의 주인공들보다 공감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이 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이미 '거듭나버린' 네흘류도프는
그의 벼락같은 깨우침-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벼락없이 깨닫기도 했고-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냥 혼자 깨달아버려서
그를 읽는 내게는 그만큼 받아들일 기회가 더 줄었다.
마슬로바(까쮸샤)는 설정으로 보자면 희생양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이전 소설들에서보다 입체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네흘류도프의 영향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기 이전보다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사시라는 설정이 타고난 물리적 환경의 한계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초반부터 이상하게 부활이 톨스토이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네흘류도프와 달리 톨스토이는 너무 늦어서 속죄할 기회를 잃은 뒤
소설속 마슬로바에게 속죄하려던 게 아닐까...하고.
하지만 이 얘기는 친구에게 들은 당시 법정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도둑질로 잡힌 로잘린 오니라는 창녀의 재판에
그녀를 젊은 시절 유혹했다가 아이와 함께 버린 남자(그녀의 친적의 피양육자)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 까지가 실화라고 적혀있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농민들의 이야기에 많은 삶의 모습을 비춰냈다면
여기서는 감옥이라는 최악의 공간에서
무고하거나 과한 형벌 혹은 행정착오로 학대받는 대다수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혼을 다치게 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 지 깨달은 네흘류도프가
그에 비하자면 단지 여행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참한 감옥에 갇히거나
남을 대신해 사상범을 자처한 정의롭게 죄수가 된 이들 사이를 걸어갈 때마다
인간이 제도를 빌어 내리는 판단의 한계가 뚜렷하게 와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톨스토이는 인간의 길에
인류의 절반을 하나의 분류로 묶어 소외시키는 생각의 한계를 감추지 못했다.
대가의 이런 한계라니...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요즘 법학고전읽기라는 동영상 강좌를 보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갈등거리를 던져주고 간다.
톨스토이의 통찰과 비슷하게
감옥은 범죄자들이 단체숙식을 하며 범죄기술을 발전시키는 장이 되기도 해서 재범률이 높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감옥이 범죄를 줄이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굳건한 것이
범죄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위해
범죄자들의 자유를 빼앗아 복수하기 위해서일 뿐이라 해도
한편, 평범한 사람들의 그 분노를 보듬지 않는다면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소설의 거대한 이상이 현실에서 삐걱거리는 부분.
부활은 카츄샤라는 간드러지는 노래로도 유명했지만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원작에서는 앞부분 줄거리만 추려내
있는 집 망나니 아들내미와 없는 집 물정모르는 딸내미의 사랑얘기로 둔갑했었고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톨스토이가 봤다면 기절했을듯 ㅋㅋㅋ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자신을 신뢰하기보다는 타인을 신뢰하고 맹종한데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신뢰하기보다 타인을 맹종하게 된 까닭은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뢰하려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값싼 쾌락을 좇는 자신의 동물적 자아를 버리고, 오히려 그것과 거의 반대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타인을 신뢰하면 따로 결심할 일도 없으며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는데다가, 언제나 정신적 자아에 비해 동물적 자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질책을 받지만 타인을 신뢰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군복무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입대한 사람들을 일반인들의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대신 그들에게 연대와 군복과 군기라는 제한된 명예만을 강요하며,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관에 대한 노예적 복종을 요구하는 무위, 즉 이성적이고 유익한 행동이 결여된 상태로 완전히 빠뜨리는 것이다.
재판장은 검사보도 인간인 이상 담배도 피우고 싶고 점심 식사도 하고 싶을 테니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봐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검사보는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검사보는 매우 우둔한 사람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금메달을 받고 대학에서는 로마법의 용익권(用益權)에 대한 논문으로 상을 받는 바람에 자만에 빠졌으며, 게다가 부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자 더욱 교만에 빠지고 자기도취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말았다.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한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법률가에게 소송을 의뢰하자, 그는 무의미한 라틴어 법전을 무려 20페이지나 읽어준 후에, 원고와 피고에게 홀수가 나오는지 짝수가 나오는지 주사위를 던져보라고 권하더니, 만일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반대로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이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한 눈물인 동시에 악한 눈물이기도 했다. 선한 눈물인 까닭은 최근 몇 년간 그의 마음속에 잠자던 정신적 존재가 깨어났다는 기쁨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반면에 악한 눈물인 까닭은 자신의 선량함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도둑이나 살인자나 스파이나 창녀 따위라면 자기 일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인식하며 수치스러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운명 또는 자신의 과오와 죄악으로 인해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그릇된 일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라는 인생관을 갖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인생관을 고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인생, 혹은 인생에서의 입장을 인정해 주는 동료들의 편에 서게 된다. 도둑이 도둑질 솜씨를, 창녀가 음탕함을, 살인자가 잔학성을 뽐내는 것을 볼 때 우리들은 무척 놀라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그들 집단의 환경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가 그 세계의 바깥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약탈로 얻은 재물을 자랑하는 부자들이나 살인으로 획득한 승리를 뽐내는 군대의 사령관들이나 폭력으로 구축한 위세를 뽐내는 집권자들 사이에서도 본질적으로는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가 자신의 행위를 속죄하고 대가를 치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그녀 역시 자신에게 어떤 악행이 가해졌었는지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모든 끔찍한 죄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지금 그는 자신이 그 여자의 영혼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고, 그녀도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네흘류도프는 자신과 자신의 회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즐겼지만, 지금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한 인간을 재판할 때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누구도 고문하거나 폭행해서는 안 된다고, 특히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어떤 당파에 속한다고 매도하거나 자유주의자라로 낙인찍는 사실에 그는 언제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적 특성의 싹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서 어느 때는 한 특성이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네흘류도프는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육체적 원인과 정신적 원인 모두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그의 내면에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줄곧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몇몇 농부들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 역시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농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민중이란 고집불통이니까요. 집회에 나오기만 하면 고집을 피워대는 통에 마음을 돌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사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죠. (......)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나쁜 행위보다 더 나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쁜 행위를 부르는 나쁜 생각이었다. 나쁜 행위는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성할 수도 있겠지만 나쁜 생각은 나쁜 행위를 부른다.
나쁜 행위는 다른 나쁜 행위를 향한 길을 닦아 놓을 뿐이지만, 나쁜 생각은 그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무엇보다도 저를 화나게 한 것은 심문이 끝난 후에 헌병 장교가 저한테 담배를 권한 일이었어요. 그자는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와 광명을 사랑하는지 알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자식을 또 자식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저를 소중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시켜서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철창 속에 가둔 것일까요? (......) 만일 누군가가 신과 인간을 믿고 또 인간을 서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있더라도, 그런 일을 당해보면 그런 믿음을 결코 갖지 못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하나의 무고한 사람을 벌하지 않기 위해 열 사람의 죄인을 용서하라는 원칙을 지키는 대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해 건강한 부위까지 도려내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추악한 야수성이 꿈틀거리지만......> 그는 생각했다. <야수성이 그대로 드러날 때 정신생활의 높은 자리에서 그것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한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남을 수 있어. 하지만 야수성이 미적, 시적 감정이라는 가식적인 외피를 쓰고 경배받기를 요구한다면 그 야수성을 숭배하게 되고 거기에 빠져들어 선악의 구별도 할 수 없게 되지.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만일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문제가 제기된다면 어떨까?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휴머니스트들, 너무나 착한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한 가지다. 현재의 상황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즉, 그들을 자사나 소장이나 장교나 경찰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로 소위 공무란 인간애나 형제애를 무시하고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할 수 있는 업무라고 확신하게 만들고, 둘째로 공직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누구도 개인적으로 책임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마르껠 꼰드라찌예프는 (......) 열다섯 살 때부터 노동하기 시작했으며 막연한 수치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 사실 사회주의적 이상의 실현이 어째서 지식을 통해 이룩되는지 그는 분명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식이 불공평을 깨닫게 해주었듯이 그 불공평을 시정해주기도 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 밖에도 지식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훨씬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창고지기가 되자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으며, 훨씬 늘어난 빈 시간 동안 독서에 매달렸다.
노보드보로프가 모든 혁명가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학식이 풍부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자질 면에서는 평균 수준보다 훨씬 낮은 혁명가 부류에 속한다고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분자에 해당하는 그의 지적능력이 크긴 했으나 분모에 해당하는 그의 자만심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었다.
정신생활에 있어서 그는 시몬손과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시몬손은 사상의 활력에서 행동이 나오고 그것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남성적인 성격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노보드보로프는 감정에서 비롯된 목표를 실현하거나 감정이 부추긴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상의 활력을 이용하는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네흘류도프는 교도소와 숙박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매년 수십만 명이 최악의 타락 상태까지 끌려갔다가 완전히 타락하고 나면 교도소에서 습득한 타락을 모든 민중 사이에 퍼뜨리기 위해 석방되었던 것이다.
**1856년 똘스또이는 스스로의 신념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자신의 농노들을 농노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시도는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농민들은 똘스또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선의는 단지 자신들을 토지에서 쫓아내려는 지주의 교활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살 뿐이었다. 자신의 경험 부족과 계몽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한 똘스또이는 1856년부터 1862년 사이에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면서 농민 교육학 연구에 전념했다.
Herbert Spencer(1820-1903) 성운의 생성에서부터 인간 사회의 도덕 원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조직적으로 서술한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850년대 똘스또이는 그의 저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꼬뻬쯔 교: 남성과 여성을 거세함으로써 육체적 욕망의 탈피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일파로 18세기 말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Cesare Lombroso(1836-1909) 형법학에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도입한 이탈리아의 정신 의학자, 법의학자. 범죄인류학의 창시자.
이반 뚜르게네프 [잉여인간의 일기]
Vsevolod Mikhailovich Garshin(1855-1888) 사회악에 대한 반항과 절망적인 번민을 주로 그린 러시아의 소설가.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이 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이미 '거듭나버린' 네흘류도프는
그의 벼락같은 깨우침-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벼락없이 깨닫기도 했고-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냥 혼자 깨달아버려서
그를 읽는 내게는 그만큼 받아들일 기회가 더 줄었다.
마슬로바(까쮸샤)는 설정으로 보자면 희생양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이전 소설들에서보다 입체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네흘류도프의 영향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기 이전보다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사시라는 설정이 타고난 물리적 환경의 한계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초반부터 이상하게 부활이 톨스토이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네흘류도프와 달리 톨스토이는 너무 늦어서 속죄할 기회를 잃은 뒤
소설속 마슬로바에게 속죄하려던 게 아닐까...하고.
하지만 이 얘기는 친구에게 들은 당시 법정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도둑질로 잡힌 로잘린 오니라는 창녀의 재판에
그녀를 젊은 시절 유혹했다가 아이와 함께 버린 남자(그녀의 친적의 피양육자)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 까지가 실화라고 적혀있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농민들의 이야기에 많은 삶의 모습을 비춰냈다면
여기서는 감옥이라는 최악의 공간에서
무고하거나 과한 형벌 혹은 행정착오로 학대받는 대다수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혼을 다치게 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 지 깨달은 네흘류도프가
그에 비하자면 단지 여행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참한 감옥에 갇히거나
남을 대신해 사상범을 자처한 정의롭게 죄수가 된 이들 사이를 걸어갈 때마다
인간이 제도를 빌어 내리는 판단의 한계가 뚜렷하게 와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톨스토이는 인간의 길에
인류의 절반을 하나의 분류로 묶어 소외시키는 생각의 한계를 감추지 못했다.
대가의 이런 한계라니...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요즘 법학고전읽기라는 동영상 강좌를 보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갈등거리를 던져주고 간다.
톨스토이의 통찰과 비슷하게
감옥은 범죄자들이 단체숙식을 하며 범죄기술을 발전시키는 장이 되기도 해서 재범률이 높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감옥이 범죄를 줄이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굳건한 것이
범죄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위해
범죄자들의 자유를 빼앗아 복수하기 위해서일 뿐이라 해도
한편, 평범한 사람들의 그 분노를 보듬지 않는다면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소설의 거대한 이상이 현실에서 삐걱거리는 부분.
부활은 카츄샤라는 간드러지는 노래로도 유명했지만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원작에서는 앞부분 줄거리만 추려내
있는 집 망나니 아들내미와 없는 집 물정모르는 딸내미의 사랑얘기로 둔갑했었고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톨스토이가 봤다면 기절했을듯 ㅋㅋㅋ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자신을 신뢰하기보다는 타인을 신뢰하고 맹종한데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신뢰하기보다 타인을 맹종하게 된 까닭은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뢰하려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값싼 쾌락을 좇는 자신의 동물적 자아를 버리고, 오히려 그것과 거의 반대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타인을 신뢰하면 따로 결심할 일도 없으며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는데다가, 언제나 정신적 자아에 비해 동물적 자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질책을 받지만 타인을 신뢰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군복무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입대한 사람들을 일반인들의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대신 그들에게 연대와 군복과 군기라는 제한된 명예만을 강요하며,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관에 대한 노예적 복종을 요구하는 무위, 즉 이성적이고 유익한 행동이 결여된 상태로 완전히 빠뜨리는 것이다.
재판장은 검사보도 인간인 이상 담배도 피우고 싶고 점심 식사도 하고 싶을 테니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봐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검사보는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검사보는 매우 우둔한 사람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금메달을 받고 대학에서는 로마법의 용익권(用益權)에 대한 논문으로 상을 받는 바람에 자만에 빠졌으며, 게다가 부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자 더욱 교만에 빠지고 자기도취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말았다.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한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법률가에게 소송을 의뢰하자, 그는 무의미한 라틴어 법전을 무려 20페이지나 읽어준 후에, 원고와 피고에게 홀수가 나오는지 짝수가 나오는지 주사위를 던져보라고 권하더니, 만일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반대로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이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한 눈물인 동시에 악한 눈물이기도 했다. 선한 눈물인 까닭은 최근 몇 년간 그의 마음속에 잠자던 정신적 존재가 깨어났다는 기쁨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반면에 악한 눈물인 까닭은 자신의 선량함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도둑이나 살인자나 스파이나 창녀 따위라면 자기 일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인식하며 수치스러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운명 또는 자신의 과오와 죄악으로 인해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그릇된 일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라는 인생관을 갖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인생관을 고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인생, 혹은 인생에서의 입장을 인정해 주는 동료들의 편에 서게 된다. 도둑이 도둑질 솜씨를, 창녀가 음탕함을, 살인자가 잔학성을 뽐내는 것을 볼 때 우리들은 무척 놀라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그들 집단의 환경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가 그 세계의 바깥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약탈로 얻은 재물을 자랑하는 부자들이나 살인으로 획득한 승리를 뽐내는 군대의 사령관들이나 폭력으로 구축한 위세를 뽐내는 집권자들 사이에서도 본질적으로는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가 자신의 행위를 속죄하고 대가를 치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그녀 역시 자신에게 어떤 악행이 가해졌었는지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모든 끔찍한 죄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지금 그는 자신이 그 여자의 영혼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고, 그녀도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네흘류도프는 자신과 자신의 회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즐겼지만, 지금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한 인간을 재판할 때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누구도 고문하거나 폭행해서는 안 된다고, 특히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어떤 당파에 속한다고 매도하거나 자유주의자라로 낙인찍는 사실에 그는 언제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적 특성의 싹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서 어느 때는 한 특성이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네흘류도프는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육체적 원인과 정신적 원인 모두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그의 내면에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줄곧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몇몇 농부들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 역시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농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민중이란 고집불통이니까요. 집회에 나오기만 하면 고집을 피워대는 통에 마음을 돌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사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죠. (......)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나쁜 행위보다 더 나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쁜 행위를 부르는 나쁜 생각이었다. 나쁜 행위는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성할 수도 있겠지만 나쁜 생각은 나쁜 행위를 부른다.
나쁜 행위는 다른 나쁜 행위를 향한 길을 닦아 놓을 뿐이지만, 나쁜 생각은 그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무엇보다도 저를 화나게 한 것은 심문이 끝난 후에 헌병 장교가 저한테 담배를 권한 일이었어요. 그자는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와 광명을 사랑하는지 알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자식을 또 자식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저를 소중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시켜서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철창 속에 가둔 것일까요? (......) 만일 누군가가 신과 인간을 믿고 또 인간을 서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있더라도, 그런 일을 당해보면 그런 믿음을 결코 갖지 못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하나의 무고한 사람을 벌하지 않기 위해 열 사람의 죄인을 용서하라는 원칙을 지키는 대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해 건강한 부위까지 도려내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추악한 야수성이 꿈틀거리지만......> 그는 생각했다. <야수성이 그대로 드러날 때 정신생활의 높은 자리에서 그것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한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남을 수 있어. 하지만 야수성이 미적, 시적 감정이라는 가식적인 외피를 쓰고 경배받기를 요구한다면 그 야수성을 숭배하게 되고 거기에 빠져들어 선악의 구별도 할 수 없게 되지.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만일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문제가 제기된다면 어떨까?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휴머니스트들, 너무나 착한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한 가지다. 현재의 상황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즉, 그들을 자사나 소장이나 장교나 경찰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로 소위 공무란 인간애나 형제애를 무시하고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할 수 있는 업무라고 확신하게 만들고, 둘째로 공직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누구도 개인적으로 책임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마르껠 꼰드라찌예프는 (......) 열다섯 살 때부터 노동하기 시작했으며 막연한 수치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 사실 사회주의적 이상의 실현이 어째서 지식을 통해 이룩되는지 그는 분명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식이 불공평을 깨닫게 해주었듯이 그 불공평을 시정해주기도 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 밖에도 지식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훨씬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창고지기가 되자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으며, 훨씬 늘어난 빈 시간 동안 독서에 매달렸다.
노보드보로프가 모든 혁명가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학식이 풍부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자질 면에서는 평균 수준보다 훨씬 낮은 혁명가 부류에 속한다고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분자에 해당하는 그의 지적능력이 크긴 했으나 분모에 해당하는 그의 자만심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었다.
정신생활에 있어서 그는 시몬손과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시몬손은 사상의 활력에서 행동이 나오고 그것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남성적인 성격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노보드보로프는 감정에서 비롯된 목표를 실현하거나 감정이 부추긴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상의 활력을 이용하는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네흘류도프는 교도소와 숙박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매년 수십만 명이 최악의 타락 상태까지 끌려갔다가 완전히 타락하고 나면 교도소에서 습득한 타락을 모든 민중 사이에 퍼뜨리기 위해 석방되었던 것이다.
**1856년 똘스또이는 스스로의 신념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자신의 농노들을 농노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시도는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농민들은 똘스또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선의는 단지 자신들을 토지에서 쫓아내려는 지주의 교활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살 뿐이었다. 자신의 경험 부족과 계몽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한 똘스또이는 1856년부터 1862년 사이에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면서 농민 교육학 연구에 전념했다.
Herbert Spencer(1820-1903) 성운의 생성에서부터 인간 사회의 도덕 원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조직적으로 서술한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850년대 똘스또이는 그의 저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꼬뻬쯔 교: 남성과 여성을 거세함으로써 육체적 욕망의 탈피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일파로 18세기 말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Cesare Lombroso(1836-1909) 형법학에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도입한 이탈리아의 정신 의학자, 법의학자. 범죄인류학의 창시자.
이반 뚜르게네프 [잉여인간의 일기]
Vsevolod Mikhailovich Garshin(1855-1888) 사회악에 대한 반항과 절망적인 번민을 주로 그린 러시아의 소설가.
Labels:
책
Day 88 살바도르 전격 관광모드
어제까지의 널브러짐에 대한 보충이랄까?
오늘은 아주 전투적인 일정을 짰다.
일단 우체국에서 큰 짐 작은 봉투 하나를 부치는데
오늘은 아주 전투적인 일정을 짰다.
일단 우체국에서 큰 짐 작은 봉투 하나를 부치는데
작은 봉투에 우표를 한 열 장은 붙였나 싶더니 우표 붙인 뒤 무게가 1g이 늘어나 있었다 ^^
어제 워킹 투어에서 얘기들었던 로즈마리 교회가 열려 있길래 들어갔다.
강제로 개종한 노예들을 위한, 노예들에 의한 교회.
흑인 사제들의 모습과 역사가 간략히 영어로도 적혀있다.
충분히 다른 교회만큼 멋지기도 하지만
어딘가 생활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교회였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9시에 예배가 있다고 한다.
마침 들어간 시간이 11시 30분 쯤이라 12시를 넘겼는데(12:00-1:00 휴관)
친절한 아저씨가 나갈 때 자기가 문 열어주겠다는 말을
내가 진짜로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주심...
본핌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느라
오늘은 나 혼자 펠루리뇨의 경계를 넘었는데
어제 가이드가 흥분하며 얘기한 것과는 달리
어느 경찰도 내게 길을 잃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게다가 관광지 상권보호를 위해 라세르다 엘리베이터를 빼고는 다 없앴다고 했는데
난 오늘 어리버리 동네를 헤매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공짜 케이블카를 탔다.
엘리베이터 보다 더 멋졌는데.
같이 탔던 아저씨가 처음에 내가 본핌 교회에 간다던 걸 기억하고
교회지날 때 안 내리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겐 아이스크림 가게가 더 먼저였기에^^
살바도르에서 제일 오래된 아이스크림 가게
리베이라 아이스크림 Sorveteria da Ribeira 에서 아이스크림을
푸짐하게 세 국자나 먹어치웠다.
1931년이라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역사를 자랑할 만 하다.
많이 달지 않아서 좋았고
화이트 초콜렛맛 맛있었다.
그 다음엔 살바도르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본핌 교회엘 갔다.
1킬로쯤이야 우습게 생각하고
예쁜 해변 길을 따라 걸어야지~편하게 생각했지만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땡볕 사이로 가끔 그늘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갔다.
언덕 위의 큰 하얀 교회.
여지껏 많은 교회를 가봤지만
이렇게 모든 문을 활짝 연 환한 교회는 처음이다.
게다가 교회 문마다 나부끼는 색색의 바히야 리본들.
리본 하나에 세 개의 매듭이 있고
매듭 하나가 소원하나랬다.
세 개의 소원이 묶인 리본들이 잘 나부끼도록
바람도 많이 불었고
양쪽으로 열린 문으로 내내 시원한 바람과 햇빛이 환하게 드는
진짜 밝게 열린 교회에서
알찬 휴식을 취하고 나왔다.
그 다음엔 디케 도 토로로 Dique do Tororo.
호수위에 조형물들이 떠 있는 곳인데
걸어가던 중 만난 행인이 택시타고 가라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윗동네 아랫동네가 안 나와있는 지도에서는 고작 1.2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걸어오기에는 좀 무리이긴 했다.
야경을 기대했는데 많이 어두워서 낮에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리고는 오늘 처음 바가지 저질 인간을 만남.
마지막이길 바래....!
Our Lady of the Rosemary of Black People
강제로 개종한 노예들을 위한, 노예들에 의한 교회.
흑인 사제들의 모습과 역사가 간략히 영어로도 적혀있다.
충분히 다른 교회만큼 멋지기도 하지만
어딘가 생활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교회였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9시에 예배가 있다고 한다.
마침 들어간 시간이 11시 30분 쯤이라 12시를 넘겼는데(12:00-1:00 휴관)
친절한 아저씨가 나갈 때 자기가 문 열어주겠다는 말을
내가 진짜로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주심...
본핌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느라
오늘은 나 혼자 펠루리뇨의 경계를 넘었는데
어제 가이드가 흥분하며 얘기한 것과는 달리
어느 경찰도 내게 길을 잃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게다가 관광지 상권보호를 위해 라세르다 엘리베이터를 빼고는 다 없앴다고 했는데
난 오늘 어리버리 동네를 헤매다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공짜 케이블카를 탔다.
엘리베이터 보다 더 멋졌는데.
그리고는 또
이 동네에서는 아주 흔한 주민의 안내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유일한 단점은 버스가 오지게 늦게 왔다는 것--;;
이 동네에서는 아주 흔한 주민의 안내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유일한 단점은 버스가 오지게 늦게 왔다는 것--;;
같이 탔던 아저씨가 처음에 내가 본핌 교회에 간다던 걸 기억하고
교회지날 때 안 내리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겐 아이스크림 가게가 더 먼저였기에^^
살바도르에서 제일 오래된 아이스크림 가게
리베이라 아이스크림 Sorveteria da Ribeira 에서 아이스크림을
푸짐하게 세 국자나 먹어치웠다.
1931년이라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역사를 자랑할 만 하다.
많이 달지 않아서 좋았고
화이트 초콜렛맛 맛있었다.
그 다음엔 살바도르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본핌 교회엘 갔다.
1킬로쯤이야 우습게 생각하고
예쁜 해변 길을 따라 걸어야지~편하게 생각했지만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땡볕 사이로 가끔 그늘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갔다.
언덕 위의 큰 하얀 교회.
여지껏 많은 교회를 가봤지만
이렇게 모든 문을 활짝 연 환한 교회는 처음이다.
게다가 교회 문마다 나부끼는 색색의 바히야 리본들.
리본 하나에 세 개의 매듭이 있고
매듭 하나가 소원하나랬다.
세 개의 소원이 묶인 리본들이 잘 나부끼도록
바람도 많이 불었고
양쪽으로 열린 문으로 내내 시원한 바람과 햇빛이 환하게 드는
진짜 밝게 열린 교회에서
알찬 휴식을 취하고 나왔다.
Nosso Senhor do Bonfim Church
그 다음엔 디케 도 토로로 Dique do Tororo.
호수위에 조형물들이 떠 있는 곳인데
걸어가던 중 만난 행인이 택시타고 가라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윗동네 아랫동네가 안 나와있는 지도에서는 고작 1.2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걸어오기에는 좀 무리이긴 했다.
야경을 기대했는데 많이 어두워서 낮에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리고는 오늘 처음 바가지 저질 인간을 만남.
마지막이길 바래....!
Labels:
여행_out
발레|지젤|Giselle|유니버설발레단
놀랍게도 올해는 두 개의 지젤 공연이 연달아 준비되어 있었다.
국립발레단 공연은 공연자체로는 아쉬웠지만 지젤이라는 발레에 대한 관심은 높여주었기에
서둘러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을 찾았지만-이미 늦었다.
발코니석 문간방 자리 딱 하나 남아있길래 묻고 따질 것도 없이 바로 예매.
지젤의 인기는 대단하구나를 실감했는데
생각해보니 김기민의 공연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마린스키발레단에 한국인 남자무용수가 입단했다는 기사는 봤지만
정작 공연은 본적 없어서 더더욱 기대가 컸다.
문훈숙 단장이 줄거리와 인물 뿐 아니라 중요한 대사까지 직접 시연하며 설명해주는 짧은 해설이 있어서
공연 볼 준비를 도와줬다.
유익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장점.
그리고 드디어 공연.
유니버설 발레단의 놀라운 점은 군무였다.
그 많은 사람들의 춤이 어떻게 그렇게 합이 잘 맞는지 놀라울 지경.
마을 청년들, 처녀귀신들(^^)의 합이 다 좋았다.
특히 1막에서 두 청년의 2인무는 착지까지 동시여서 신기했고.
주인공 지젤은 빠른 동작에서는 엄청난 활기를 보여준 반면
비중이 큰 정적인 동작에서 약간씩 균형이 흔들려 보였다.
그래서 전체적인 지젤 분위기로는 좀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러.나
김기민이 있었다.
김기민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 중에 '점프로 승부하지 않겠다'는 제목이 있어서
대체 어떤 스타일일까 궁금했는데
저 말은 마치 강동원이 '외모로 승부하지 않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격^^
높고도 가볍고도 부드러운 점프는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난 남자무용수들의 점프를 볼 때
힘이 느껴지게 솟아올라 허공에 멈춰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주는 신비감에 열광했는데
김기민은 근육을 더 섬세하게 쓰며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헉-소리가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찌나 부드럽기도 하던지
김기민은 알브레히트 말고 지젤도 잘할 것 같은^^
앞으로 내한 공연은 빠짐 없이 볼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있기를!
배역이름 중에 인상깊었던 심청 홍향기가 있었다.
홍향기-김기민이었으면 완전 좋았을 듯.
처음 가본 유니버설 아트센터.
지하철-버스 역에서 완전 가깝고
정성껏 쓸고 닦은 낡은 부잣집 같은 분위기라 세월의 멋이 맘에 들었는데
정작 화장실 보다 화장실 인근에서 더 화장실 냄새가 나서 세월의 냄새는 쫌 별로^^
유명하다는 신토불이 떡볶이 한 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저녁 시간 너무 줄이 길어서 포기했다......
Labels:
즐기다_공연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 피아노 리사이틀|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리흐테르와의 인연은 예매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공연장이 성남...멀다...
첫 소나타는 편안했다.
대가 피아니스트 집에 놀러갔다가 기분 좋은 피아니스트가 한 곡 뽑아주시는 걸 듣는 기분.
하지만 방랑자 환상곡은 뭐랄까...느슨하달까...
소년의 산책같은 기분이었다.
이때만 해도 좀 실망이었는데
관객들의 환호가 커서
2부를 좀 더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으로 나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드디어 2부 시작.
1악장 앞에서 갑자기 울컥 했다.
이런 분위기를 내는 분이구나...했는데
그 기분이 끝까지 가지는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분의 대박은 앵콜.
일단 밀당 같은 거 없이 인사 한 번-바로 연주의 군더더기 없는 커튼콜 진행^^
공연 선곡이 슈베르트 히트곡 모음집의 일부 같은 느낌이었는데
앵콜도 전부 슈베르트였고
특히 즉흥곡은 꿀벌의 비행 같은 속도여서
뭔가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이런 연주자가 공연 내내 엄청난 집중을 보여준다면
그 연주는 얼마나 환상적일까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이런 라이브를 또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어...
그러고 보니 드문 슈베르트 연주가 또 성남아트센터였다.
그 사이 규모가 엄청 커졌고
콘서트홀 공연장은 여전히 꿀꿀^^
하지만 공연장 관객 분위기는 대박.
Labels:
즐기다_공연
온리더브레이브|Only the Brave|2017

신불은 진짜 어떻게 끌까...단순한 궁금증에서 보러갔다.
산을 오르고 나무를 베고 맞불을 놓고 야영을 하는 새로운 소방관의 세계 신기했는데
헐, 실화였다니....
마지막 사고 현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고통이 조금 상상될 정도였다.
그 뒤로 뭐가 달라졌을까.
오랜만의 제프 브리지스와 제니퍼 코넬리.
처음 보는 조쉬 브롤린-제프 브리지스 주니어인줄^^
Labels:
즐기다_영화
발레|지젤|Giselle|국립발레단
일시
|
3월 21일(수)
|
3월 22일(목)
|
3월 23일(금)
|
3월 24일(토)
|
3월 25일(일)
|
|
19:30
|
19:30
|
19:30
|
14:00
|
19:00
|
14:00
|
|
지젤
|
박슬기
|
김지영
|
김리회
|
김지영
|
박슬기
|
한나래
|
알브레히트
|
이재우
|
박종석
|
허서명
|
박종석
|
이재우
|
김기완
|
미르타
|
정은영
|
한나래
|
정은영
|
한나래
|
정은영
|
정은영
|
힐라리온
|
정영재
|
송정빈
|
정영재
|
송정빈
|
정영재
|
송정빈
|
패전트 파드되
|
김리회 허서명
|
김리회 허서명
|
박예은B 하지석
|
김리회 허서명
|
박예은B 하지석
|
박예은B 하지석
|
두 윌리
|
박나리 박예은B
|
박나리 박예은B
|
박나리 박예은B
|
박나리 박예은B
|
박나리 박예은B
|
박나리 박예은B
|
바리시니코프의 오래된 영화 지젤이 있다.
영화는 쫌 별로 였지만 원작인 발레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공연소식을 늦게 알게 되서 이제사 처음 본 지젤.
발목없는 귀신 이야기의 원조일 것 같은 콩콩콩 움직임도 귀엽고
균형을 잡은 상태에서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들이 굉장히 많아서
그냥 보기에도 난이도가 엄청나 보였다.
전체적으로 진짜 고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극 자체는 흥미로왔고
와서 또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였는데...
바람 같이 가벼운 지젤은 가볍다-는 느낌 말고는 잘 모르겠고
알브레히트는 불안정 했다.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없이 어우러지지 않은 군무였고
늘 그렇듯 아름다운 무대와 생음악은 빛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 같지 않은 공연들로
국립발레단에 대한 호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관객은 점점 많아 지고 있지만
어쩐지 무용수들의 기량은 전같지 않은 느낌.
예전엔 국립발레단이니까,
어차피 나야 아는 무용수도 없으니
그냥 보러 갔다가 반짝이는 새로운 무용수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안 그런지 한 참 된 듯.
Labels:
즐기다_공연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