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이대우|열린책들

확신에 찬 톨스토이는 망설이며 성장하던 갈등의 주인공들보다 공감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이 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이미 '거듭나버린' 네흘류도프는
그의 벼락같은 깨우침-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벼락없이 깨닫기도 했고-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냥 혼자 깨달아버려서
그를 읽는 내게는 그만큼 받아들일 기회가 더 줄었다.

마슬로바(까쮸샤)는 설정으로 보자면 희생양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이전 소설들에서보다 입체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네흘류도프의 영향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기 이전보다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사시라는 설정이 타고난 물리적 환경의 한계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초반부터 이상하게 부활이 톨스토이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네흘류도프와 달리 톨스토이는 너무 늦어서 속죄할 기회를 잃은 뒤
소설속 마슬로바에게 속죄하려던 게 아닐까...하고.
하지만 이 얘기는 친구에게 들은 당시 법정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도둑질로 잡힌 로잘린 오니라는 창녀의 재판에
그녀를 젊은 시절 유혹했다가 아이와 함께 버린 남자(그녀의 친적의 피양육자)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 까지가 실화라고 적혀있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농민들의 이야기에 많은 삶의 모습을 비춰냈다면
여기서는 감옥이라는 최악의 공간에서
무고하거나 과한 형벌 혹은 행정착오로 학대받는 대다수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혼을 다치게 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 지 깨달은 네흘류도프가
그에 비하자면 단지 여행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참한 감옥에 갇히거나
남을 대신해 사상범을 자처한 정의롭게 죄수가 된 이들 사이를 걸어갈 때마다
인간이 제도를 빌어 내리는 판단의 한계가 뚜렷하게 와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톨스토이는 인간의 길에
인류의 절반을 하나의 분류로 묶어 소외시키는 생각의 한계를 감추지 못했다.
대가의 이런 한계라니...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요즘 법학고전읽기라는 동영상 강좌를 보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갈등거리를 던져주고 간다.
톨스토이의 통찰과 비슷하게
감옥은 범죄자들이 단체숙식을 하며 범죄기술을 발전시키는 장이 되기도 해서 재범률이 높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감옥이 범죄를 줄이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굳건한 것이
범죄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위해
범죄자들의 자유를 빼앗아 복수하기 위해서일 뿐이라 해도
한편, 평범한 사람들의 그 분노를 보듬지 않는다면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소설의 거대한 이상이 현실에서 삐걱거리는 부분.

부활은 카츄샤라는 간드러지는 노래로도 유명했지만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원작에서는 앞부분 줄거리만 추려내
있는 집 망나니 아들내미와 없는 집 물정모르는 딸내미의 사랑얘기로 둔갑했었고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톨스토이가 봤다면 기절했을듯 ㅋㅋㅋ


이러한 무서운 변화는 자신을 신뢰하기보다는 타인을 신뢰하고 맹종한데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신뢰하기보다 타인을 맹종하게 된 까닭은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뢰하려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값싼 쾌락을 좇는 자신의 동물적 자아를 버리고, 오히려 그것과 거의 반대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타인을 신뢰하면 따로 결심할 일도 없으며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는데다가, 언제나 정신적 자아에 비해 동물적 자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질책을 받지만 타인을 신뢰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군복무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입대한 사람들을 일반인들의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대신 그들에게 연대와 군복과 군기라는 제한된 명예만을 강요하며,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관에 대한 노예적 복종을 요구하는 무위, 즉 이성적이고 유익한 행동이 결여된 상태로 완전히 빠뜨리는 것이다.

재판장은 검사보도 인간인 이상 담배도 피우고 싶고 점심 식사도 하고 싶을 테니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봐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검사보는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검사보는 매우 우둔한 사람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금메달을 받고 대학에서는 로마법의 용익권(用益權)에 대한 논문으로 상을 받는 바람에 자만에 빠졌으며, 게다가 부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자 더욱 교만에 빠지고 자기도취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말았다.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한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법률가에게 소송을 의뢰하자, 그는 무의미한 라틴어 법전을 무려 20페이지나 읽어준 후에, 원고와 피고에게 홀수가 나오는지 짝수가 나오는지 주사위를 던져보라고 권하더니, 만일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반대로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이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한 눈물인 동시에 악한 눈물이기도 했다. 선한 눈물인 까닭은 최근 몇 년간 그의 마음속에 잠자던 정신적 존재가 깨어났다는 기쁨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반면에 악한 눈물인 까닭은 자신의 선량함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도둑이나 살인자나 스파이나 창녀 따위라면 자기 일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인식하며 수치스러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운명 또는 자신의 과오와 죄악으로 인해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그릇된 일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라는 인생관을 갖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인생관을 고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인생, 혹은 인생에서의 입장을 인정해 주는 동료들의 편에 서게 된다. 도둑이 도둑질 솜씨를, 창녀가 음탕함을, 살인자가 잔학성을 뽐내는 것을 볼 때 우리들은 무척 놀라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그들 집단의 환경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가 그 세계의 바깥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약탈로 얻은 재물을 자랑하는 부자들이나 살인으로 획득한 승리를 뽐내는 군대의 사령관들이나 폭력으로 구축한 위세를 뽐내는 집권자들 사이에서도 본질적으로는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가 자신의 행위를 속죄하고 대가를 치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그녀 역시 자신에게 어떤 악행이 가해졌었는지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모든 끔찍한 죄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지금 그는 자신이 그 여자의 영혼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고, 그녀도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네흘류도프는 자신과 자신의 회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즐겼지만, 지금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한 인간을 재판할 때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누구도 고문하거나 폭행해서는 안 된다고, 특히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어떤 당파에 속한다고 매도하거나 자유주의자라로 낙인찍는 사실에 그는 언제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적 특성의 싹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서 어느 때는 한 특성이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네흘류도프는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육체적 원인과 정신적 원인 모두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그의 내면에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줄곧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몇몇 농부들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 역시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농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민중이란 고집불통이니까요. 집회에 나오기만 하면 고집을 피워대는 통에 마음을 돌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사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죠. (......)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나쁜 행위보다 더 나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쁜 행위를 부르는 나쁜 생각이었다. 나쁜 행위는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성할 수도 있겠지만 나쁜 생각은 나쁜 행위를 부른다.
나쁜 행위는 다른 나쁜 행위를 향한 길을 닦아 놓을 뿐이지만, 나쁜 생각은 그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무엇보다도 저를 화나게 한 것은 심문이 끝난 후에 헌병 장교가 저한테 담배를 권한 일이었어요. 그자는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와 광명을 사랑하는지 알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자식을 또 자식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저를 소중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시켜서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철창 속에 가둔 것일까요? (......) 만일 누군가가 신과 인간을 믿고 또 인간을 서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있더라도, 그런 일을 당해보면 그런 믿음을 결코 갖지 못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하나의 무고한 사람을 벌하지 않기 위해 열 사람의 죄인을 용서하라는 원칙을 지키는 대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해 건강한 부위까지 도려내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추악한 야수성이 꿈틀거리지만......> 그는 생각했다. <야수성이 그대로 드러날 때 정신생활의 높은 자리에서 그것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한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남을 수 있어. 하지만 야수성이 미적, 시적 감정이라는 가식적인 외피를 쓰고 경배받기를 요구한다면 그 야수성을 숭배하게 되고 거기에 빠져들어 선악의 구별도 할 수 없게 되지.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만일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문제가 제기된다면 어떨까?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휴머니스트들, 너무나 착한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한 가지다. 현재의 상황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즉, 그들을 자사나 소장이나 장교나 경찰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로 소위 공무란 인간애나 형제애를 무시하고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할 수 있는 업무라고 확신하게 만들고, 둘째로 공직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누구도 개인적으로 책임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마르껠 꼰드라찌예프는 (......) 열다섯 살 때부터 노동하기 시작했으며 막연한 수치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 사실 사회주의적 이상의 실현이 어째서 지식을 통해 이룩되는지 그는 분명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식이 불공평을 깨닫게 해주었듯이 그 불공평을 시정해주기도 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 밖에도 지식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훨씬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창고지기가 되자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으며, 훨씬 늘어난 빈 시간 동안 독서에 매달렸다.

노보드보로프가 모든 혁명가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학식이 풍부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자질 면에서는 평균 수준보다 훨씬 낮은 혁명가 부류에 속한다고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분자에 해당하는 그의 지적능력이 크긴 했으나 분모에 해당하는 그의 자만심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었다.
정신생활에 있어서 그는 시몬손과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시몬손은 사상의 활력에서 행동이 나오고 그것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남성적인 성격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노보드보로프는 감정에서 비롯된 목표를 실현하거나 감정이 부추긴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상의 활력을 이용하는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네흘류도프는 교도소와 숙박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매년 수십만 명이 최악의 타락 상태까지 끌려갔다가 완전히 타락하고 나면 교도소에서 습득한 타락을 모든 민중 사이에 퍼뜨리기 위해 석방되었던 것이다.

**1856년 똘스또이는 스스로의 신념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자신의 농노들을 농노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시도는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농민들은 똘스또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선의는 단지 자신들을 토지에서 쫓아내려는 지주의 교활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살 뿐이었다. 자신의 경험 부족과 계몽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한 똘스또이는 1856년부터 1862년 사이에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면서 농민 교육학 연구에 전념했다. 

Herbert Spencer(1820-1903) 성운의 생성에서부터 인간 사회의 도덕 원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조직적으로 서술한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850년대 똘스또이는 그의 저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꼬뻬쯔 교: 남성과 여성을 거세함으로써 육체적 욕망의 탈피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일파로 18세기 말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Cesare Lombroso(1836-1909) 형법학에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도입한 이탈리아의 정신 의학자, 법의학자. 범죄인류학의 창시자.

이반 뚜르게네프 [잉여인간의 일기]

Vsevolod Mikhailovich Garshin(1855-1888) 사회악에 대한 반항과 절망적인 번민을 주로 그린 러시아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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