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의 전쟁과 전장이 아닌 곳에서의 평화.
톨스토이는 전장과 전장이 아닌 곳을 정말 그 속에 데려다 주듯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다루면서
톨스토이는 소설 끝의 긴 에필로그까지 붙여가며
전쟁영웅의 출현이나 뛰어난 전략 또는 선택의 승리라고 볼 수 없는 논거를 자세히 피력한다.
전쟁의 원인을 이미 나온 결과에 꿰맞추듯 여러가지 가능성으로 분석하는 기존의 역사적 관점을 반박하며
당시 사람들의 에너지와 신념의 모음이야말로 역사적 사건의 이유일 수 밖에 없으므로
애초에 원인을 정확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에 도전하려면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솔깃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끝까지 고민하던 레빈에 비교하자면
종교로 해결되는 피예르의 깨달음은 딱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극적인 전환점은 맞아 치열한 시간을 보낸 뒤 정돈되어 가는안드레이와 피예르는 굉장히 선명하다.
초반 소문에 기댔던 선망을
뼈와 피와 살이 부서지는 전장에서 맨몸으로 부딪혀 깨는 피에르는
치열한 사고의 값진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선명한 인물, 전쟁이나 평화나 모든 시간의 공간과 사람들이 충분히 드러나는 것.
전쟁과 평화가 좀 더 탄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칼과 말, 대포까지 총동원되던 19세기의 전장은
전투순간엔 여느 전쟁영화의 한 장면같은 처참함이 드러나지만
전투가 없는 고요한 전장의 아름다움이 전해지는 문장,
심지어는 전투의 순간에도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만 아니라면 아름다웠음직한 순간들이 전해질 때
만만찮은 분량의 이 소설이 가진 '모든 것'의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그냥 무시무시하게 추울 것만 같던 러시아의 겨울 밤공기와 별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도 해주었고.
오랜만에 읽어보는 긴 책들.
톨스토이의 명성의 비밀이 풀렸다.
재미로 친다면 단연, 안나 카레니나지만
전쟁과 평화는 다른 소설들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형식적봐도 1, 2부로 나뉜 에필로그, 게다가 에필로그 2부는 등장인물도 없는 톨스토이의 역사관-
큰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니 토지 생각이 좀 나네....
[3권 67쪽 안드레이 공작이 알아챈 경향파]
전쟁의 법칙을 주장하거나 민족주의적 전진을 부르짖거나 두 세력에 대한 조정파, 패배를 불사하는 평화주의자, 개인숭배를 앞세운 군사 지도자의 신봉자들 두 무리, 황제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황제파, 그러나 다수는 자신의 최대 이익과 만족을 바라는 귀족무리였다고 한다.
더 읽어볼 거리
*.K. 라바터(1741-1801) 스위스 신학자이자 시인, 관상학자. 저서 <관상학>에서 인간의 본성, 성벽, 능력 등은 머리 구조, 특히 두개골 돌기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아틸라(406-453) 훈족 최후의 왕. 유럽 훈족 중 가장 강력했던 왕으로 동로마제국을 정복하고 유럽 대다수 국가를 황폐화시켰다.
*십이월당원(데카브리스트) 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혁명가들
<카자크들>, 메리 브랜든의 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사회에서의 영향력이란 일종의 자본으로 잃지 않도록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앙기앵)공의 처형으로 천국에는 수난자 한 명이 늘고, 지상에는 영웅 한 명이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럴 수 없었던 겁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권력을 준 것은 그를 통해 부르봉왕조에게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고, 그에게서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위대한 사업이었습니다.”
“아르콜레 다리에서의 나폴레옹, 야파항의 병원에서 흑사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었던 나폴레옹은 인간으로서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변호할 수 없는 행위들도 있습니다.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 여자의 참모습을 명백하게 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절대로 하지 말게. (...)안 그러면 자네에게 있는 훌륭하고 숭고한 것들을 망쳐버리게 될 거야.(...)”
“자네는 보나파르트 얘기를 하지만, 보나파르트도 일을 하고 한 걸음씩 자기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는 자유로웠어.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는 그 목적을 달성했어. 그런데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마치 차꼬를 찬 죄수처럼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지. 그러면 자기 내부에 있던 희망이자 힘이었던 모든 것이 그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후회 때문에 자책하게 되는 거야. 객실, 가십, 무도회, 허영, 보잘것없는 일-이런 것들이 내가 빠져나올 수 없는 마의 굴레야. 나는 지금 전쟁에 나가려고 해(...)”
만약 자기가 내일이라도 죽거나, 결백한지 그렇지 않은지 자려낼 여유도 없을 만큼 비상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 같은 맹세는 모두, 어떠한 명백한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런 식의 추론은 종종 피예르의 머릿속에서 움터 모처럼의 결심과 예상을 뒤엎어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쿠라긴의 집으로 향했다.
“(...로렌스)스턴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남에게 받은 선행이 아니라 남에게 베푼 선행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는 총명해 보이고, 머리 모양이 독특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총명하고 단호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분명 습관인 듯 의식적으로 변했다. 잇달아 찾아드는 많은 청원자들을 만나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멍하고 위선적인, 그러면서도 그 위선을 숨기려 하지 않는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
궁정을 나온 안드레이 공작은 승리가 가져다 준 모든 흥미와 행복감이 이제 그를 떠나 육군대신과 정중한 시종무관의 무관심한 손에 넘어가버린 기분이 들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바그라티온 공작과 지휘관들의 이야기와 그가 어떤 명령을 내릴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명령은 전혀 없었고, 바그라티온 공작은 그저 필연과 우연과 개개 지휘관의 의지로 행해진 모든 것이 자기 명령에 의한 것은 아닐지라도 전부 자기가 의도했던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또한 그는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우발적이고 지휘관이 의사와 무관한 것이었음에도 바그라티온 공작이 보여준 모습 덕분에 그의 존재가 사뭇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그라티온 공작에게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던 지휘관들은 이내 침착해지고, 병사들과 장교들은 기꺼이 그를 맞아 그 앞에서는 훨씬 활기를 띠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명 그에게 자기의 용감함을 과시하려 했다.
‘저 녀석들은 누구일까? 뭐 때문에 달려오는 걸까? 정말 내게 오는 걸까? 나한테 오는 걸까? 대체 뭐 때문에? 나를 죽이러? 그토록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나를? 문득 어머니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이 떠올랐다. 그러자 적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침울한 강이 속삭임과 이야기 소리와 말굽 소리와 수레바퀴 소리를 울리면서 줄곧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전체의 웅성거림 속에서 다른 어떤 울림보다 또렷했던 것은 밤의 어둠 속으로 들리는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와 목소리였다.
이제는 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강이 어둠 속을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풍이 지나간 뒤에 침울한 바다가 진정되면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투신은 엄중한 상관의 얼굴을 보자, 이제야 비로소 두 문의 포를 잃었으면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무섭도록 깨달았다. 그는 이 순간까지는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게다가 장교들의 조소에 그는 더욱 당황했다. 그는 바그라티온 앞에 서서 아래턱을 떨면서 간신히 말했다.
“모르겠습니다......각하......인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하.”
“엄호대에서라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엄호대는 분명 없었지만 투신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부대장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두려워서, 대답이 막힌 학생이 시험관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묵묵히 바그라티온의 얼굴에 눈을 고정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권세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본능은 곧바로 그에게 이 사람은 쓸모가 있겠다고 속삭였고, 그러면 바실리 공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접근해서, 달리 속셈이 있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비위를 맞추고, 친숙해지고, 용건을 끄집어냈다.
그래서 피예르는 차츰 진심으로, 자신이 정말 보기 드물 만큼 친절하고 보기 드물 만큼 현명한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실 그는 예전부터 자신이 아주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시계의 장치와 마찬가지로 군의 장치도 일단 그 속에서 일어난 운동은 최후의 결과에 이를 때까지 절대 저지할 수 없으며, 또 아직 운동이 전달되지 않은 장치의 곳곳은 움직이기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정지해 있다. 이와 이가 맞물리면서 축을 따라 톱니바퀴들이 삐걱거리고, 도르래는 휙휙 소리를 내며 빨리 돌아가는데 바로 옆의 톱니바퀴는 백 년이라도 꼼짝도 않고 있을 것처럼 멈춰 있다. 그러나 이윽고 때가 와서 지렛대가 걸리면 톱니바퀴는 당장 운동에 정복되어 짤칵짤칵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하고, 결과도 목적도 모르는 채 하나의 운동에 합쳐져 버리는 것이다.
시계의 경우 수많은 톱니바퀴와 도르래의 복잡한 운동의 결과가 다만 시각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정확한 운동에 불과한 것처럼, 이들 16만 러시아 프랑스 양군의 온갖 복잡한 인간의 행동-이들의 정념, 희망, 후회, 굴욕, 고민, 오만, 공포, 환희 등-의 결과도 다만 세황재의 회전이라고 불리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에 지나지 않고, 인류의 문자판 위에서 세계사의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그는 프라츠 마을에서 도망친 병사들이 가장 많이 죽은 곳으로 들어섰다. 아직 프랑스군에 점령되지는 않았으나, 러시아병은 살아남은 자도 부상당한 자도 오래전에 이곳을 내버렸다. 들판에는 잘 경작된 밭의 보릿단처럼 1데샤티나 마다 열에서 열다섯 명꼴로 전사자와 중상자가 쓰러져 있었다. 부상자는 기어서 둘씩 셋씩 모이고, 때로는 로스토프가 듣기에 일부러 내는 것처럼 불쾌한 외침과 신음소리를 냈다. 로스토프는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보지 않으려고 구보로 말을 몰았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목숨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필요한, 이 불행한 사람들을 보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때, 오늘 그가 발견하고 이해한 그 드높고 공평하고 선량한 하늘에 비하면 지금 나폴레옹의 마음을 차지한 온갖 흥미는 부질없다고 느껴졌고, 그 천박한 허영심과 승리의 기쁨도, 그의 영웅이던 나폴레옹까지도 모두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출혈로 인한 쇠약, 고통, 근접한 죽음이 불러일으킨 준엄하고 장중한 상념들에 비하면 모든 것이 무익하고 시시한 것 같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폴레옹의 눈을 보면서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바그라티온이 영웅으로 등극한 데는 그가 모스크바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이 한몫했다. 그는 러시아에 연고도 없고 음모도 없는 꿋꿋하고 소박한 러시아 군인으로서, 또 이탈리아 원정을 기억할 때 수보로프 장군을 상기시키는 인물로서 존경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 그 같은 존경을 바치는 데는 무엇보다도 쿠투조프에 대한 반감과 비난이 섞여있었다.
관리인은 백작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은 백작이 숲과 영지의 매각을 위해, 즉
후견원의 채무 반제를 위해 그가 최선을 다했는지 조사하는 일이 장래에 없을 것이고 새로 지은 건물이 빈 채로 방치되고 농민들이
다른 영지에서처럼 부역도 조세도 줄지 않고 있는 대로 착취를 당한다 해도 백작이 묻지도 않고 알지도 못할 것임을 분명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실제의 악은 두 가지야. 양심의 가책과 질병. 행복은 이 두 가지가 없는 상태지. 이 두 가지 악을 피하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현재 내가 깨달은 전부야.”
“(...)나는 무한한 권력이라는 전통 속에서 자란 선한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성마르고 잔인하고 난폭해지고, 스스로 그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을 봐왔네.”
“결국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양심의 평안이라든가 순결 같은 것이지 그자들의 등이나 이마가 아니야.(...)”
여기에는 자기가 있을 곳을 알지 못하고 언제나 잘못된 선택만 하던 세상의 무질서가 없고, 소냐가 없으니 해명을 해야 한다느니 그럴 필요 없다느니 하는 고민도 없었다. 어디를 가고 가지 않을 자유도,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는 하루 스물네 시간이라는 여유도, 유달리 가깝거나 먼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도, 모호하고 불분명한 아버지와의 금전 관계도, 돌로호프와의 그 무서운 패배의 기억도 없었다! 이곳, 이 연대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단순했다. 이 세계는 불균등한 두 개의 부분-그가 속한 파블로그라드스키 연대와 그 밖의 모든 것-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자기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전과는 달리 훌륭하게 근무해서 나무랄 데 없는 우수한 장교이자 동료, 이른바 훌륭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것은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연대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로스토프는 이 모퉁이에 서서, 연회를 벌이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도저히 결말이 나지 않는 괴로운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무서운 의혹이 일었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고 아집도 사라진 데니소프,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과 오물과 질병으로 가득한 병원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 병원에서 맡았던 시체냄새가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대체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을 정도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제 황제가 되어 알렉산드르 황제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손이 희고 자기만족에 빠진 보나파르트가 떠올랐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나 전사자들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안드레이 공작은 이 년 동안 시골에 칩거하고 있었다. 피예르가 스스로 계획하고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버린 영지 개혁은 누구에게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또 눈에 띄게 노력한 것도 아니지만 안드레이 공작에 의해 모두 실행됐다.
“속세의 격동 속에서만 우리는 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1)자기인식, 인간은 비교를 통해서만 자기를 알 수 있고, 2)자기완성, 이것은 투쟁으로써만 얻을 수 있으며, 3)주요한 덕성, 이것은 죽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는 공작영애 마리야를 끊임없이 지독하게 모욕했지만, 딸은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일부러 애쓰지 않았다. 대체 아버지가 딸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을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불공평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공평이 무엇인가? 공장영애는 공평이라는 오만한 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류의 온갖 복잡한 법칙도 그녀에게는 한낱 단순하고 명백한 법칙-사랑과 헌신-에 집약되어 있었고, 그것은 인류를 위해 사랑으로 고통을 받은 존재인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성서의 전설에 의하면, 노동을 하지 않는 것-무위-은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류에게는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위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 속에 그대로 남았지만, 신의 저주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스스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무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만약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유익한 인간, 의무를 다하는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발견한다면 그는 원시적 행복의 일면을 발견한 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무적이고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의 상태를 향유하는 커다란 하나의 계급은 바로 군인계급이다. 의무적이고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야말로 군무의 주된 매력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선량한 백작부인이 소냐에게 화를 낸 것은 무엇보다도 이 가난한 검은 눈의 조카달이 너무도 얌전하고, 착하고,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한결 같이 니콜라이를 사랑하는데다가 어느 면으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디믈레르와 가장한 사람들이 탄 노백작의 트로이카는 눈에 얼어붙은 것처럼 활주부를 삐걱거리고 나직하게 방울 소리를 울리며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의 부마는 끌채에 바싹 붙어서 설탕처럼 굳어 반짝이는 눈을 갈아엎듯 말굽을 파묻었다.
선두의 트로이카에 이어 니콜라이가 출발하고, 뒤에 남은 두 대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속보로 좁은 길을 나아갔다. 정원을 지나는 동안은 벌거숭이 나무들의 그늘이 이따금 길에 가로누워 밝은 달빛을 가렸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가자 곧 검푸른 반사를 머금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설원이 달빛에 흠뻑 젖어 미동도 없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덜거덩거리며 앞의 썰매가 구덩이에 빠지고 다음 것도 그다음 것도 똑같이 빠졌지만, 썰매들은 얼어붙은 밤의 정적을 대담하게 깨뜨리며 줄을 지어 나아갔다.
뜰에서 툭하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금 고요해졌다. 가슴은 공기가 아니라 영원히 젊은 힘과 기쁨을 호흡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 그는 잠시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라고 자위했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와 머리털이 성했을 때 잠시만 하는 기분으로 이런 생활과 이런 클럽에 들어왔다가 이도 머리털도 다 빠진 채 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자부심이 있을 때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나는 전혀 다르다, 특히 그전부터 멸시했던 퇴직시종관들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저속하고 우매하고 자기 처지에 만족하고 안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늘 만족스럽지 않고, 인류를 위해 뭔가 하길 바란다.’ 자부심이 있을 때는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어쩌면 나의 동료들도 모두 나처럼 고투하고 인생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지만, 환경과 사회와 혈통 같은 자연이 어쩔 수 없는 힘에 휘둘려 나와 같은 처지에 몰린 것인지도 모른다.’ 겸허한 기분일 때는 이렇게 생각했고, 잠시 모스크바에 사는 동안 그는 이 운명의 동반자들을 멸시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연민하게 되었다.
그도 많은 사람들처럼, 특히 러시아인들이 불행한 능력, 즉 선과 진리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또한 믿으면서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하게 참여하기에는 너무도 뚜렷하게 인생의 악과 거짓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는 직업의 모든 영역이 악과 허위에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을 시도하든 무슨 일에 착수하든 악과 허위는 그를 밀어젖히고 활동의 모든 길을 가로막았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가야 했고, 무언가를 해야 했다. 이런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주는 중압에 눌려있는 것은 너무 끔찍했고, 그는 단지 그것을 잊기 위해 닥치는 대로 환락에 열중했다.
결혼해버리면 누구와 밤을 보내야 할지 모르게 되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매일 같이 밤을 함께한 귀부인과의 결혼을 거절한 나이든 망명객처럼, 마리아는 줄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줄리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녀의 오빠들이 죽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그녀의 미모는 완전히 시들었지만, 내심 자기는 여전히 미인이고 전보다 더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착각에 빠진 것은 첫째, 굉장한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에게 주는 부담이 줄어 그들이 아무런 의무감 없이 한층 자유롭게 그녀와 교제하고 그녀가 베푸는 만찬회나 흥겨운 모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맑은 밤이었다. 지저분하고 어스름한 거리 위, 거뭇거뭇한 지붕위로 어두운 별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피예르는 자신의 영혼이 놓여 있던 높이에 비하면 땅 위의 것들은 모욕적이리만큼 낮다는 것을, 그 하늘을 쳐다볼 때만큼은 느끼지 못했다. 아르바트 광장에 들어서자, 별이 빛나는 어두운 하늘의 거대한 공간이 피예르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하늘 거의 한복판에, 프렌치스텐스키 가로숫길 상공에, 온통 뿌려놓은 듯 한 별들에 둘러싸인, 다른 것들보다 지구와 더 가깝고 하얀빛과 위로 추켜진 긴 꼬리가 눈에 확연한, 1812년의 크고 찬란한 혜성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공포와 종말을 예언한다던 그 혜성이었다. 그러나 긴 빛의 꼬리를 끄는 그 빛나는 별도 피예르의 마음에는 조금도 무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피예르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행복하게 그 밝은 별을 바라보았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포물선을 그리며 무한한 공간을 날던 별은 갑자기 대지에 똑바로 꽂힌 화살처럼, 검은 밤하늘의 자신이 선택한 어느 한 점에 뛰어들어 힘차게 꼬리를 치켜세우고 수없이 반짝이는 다른 별들 속에서 하얀빛을 튀기로 반짝이며 멈췄다. 피예르는 그 별이 새로운 생활을 향해 활짝 꽃펴 부드럽고 고무된 그의 영혼 속에 있는 무언가에 화답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1811년) 6월 12일 서유럽 군세가 러시아 국경을 넘자 전쟁이 시작되고, 즉 인간의 이성과 모든 본성에 위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백만의 인간이 세계 모든 재판소의 기록이 몇 세기가 걸려도 모을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죄악과 기만, 배반, 절도, 위조지폐 발행, 약탈, 방화, 살인을 범했으나, 이 시기에 그것을 범한 사람들은 그것을 범죄로 보지 않았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띄게 된다.
역사상의 사건에서 이른바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 사건에 명칭을 부여하는 라벨이며, 원래 라벨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건 그 자체와는 가장 관계가 적다.
신은 파멸시키려는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원수들의 무관심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면 발라쇼프의 어조가 암시한 비꼼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설사 무슨 근거가 있다 해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꼰 것이 아니다.’ 원수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관념-과학, 즉 자기가 완전한 진리를 안다는 환상 위에 서서 자신감을 갖는 건 독일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자신감을 갖는 건 자기가 지력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또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에 대해서도 자기가 절대적인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이 자신감을 갖는 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 정비된 나라의 국민이므로 영국인으로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또 자기가 하는 일은 전부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의 자신감은 이 민족이 쉽게 흥분하고 자기도 남도 잘 잊어버린다는 데서 온다. 러시아인의 자신감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독일인의 자신감은 가장 나쁘고......
신선한 대기 속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밝은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아군의 대포가 보였다. 전방의 저지대 저쪽에 적의 종대와 대포가 보였다. 저지대에서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어 적과 맹렬히 포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회와도 같은 무언가가 그(니콜라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 턱에 보조개 같은 것이 파인 그 프랑스 장교다. 나는 사브르를 치켜든 내 팔이 잠시 멈췄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그래 영웅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고작 이 정도의 것이었단 말인가? 내 행동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을까?(......)내 손은 떨렸다. 그런데도 나는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탔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경기에 진 훌륭한 체스 기사는 자신의 패인을 하나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진심으로 믿고 승부 초반에서 그것을 찾아보려 하지만, 그는 모든 수에서 같은 실수를 했고, 완전한 수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가 주목하는 실수는 오직 그의 눈에만 잘 띄는데, 그건 상대방이 그 실수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의 과정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고 그 사건에 참가한 사람 전체의 의지의 총화에 좌우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건의 과정에 나폴레옹 같은 개인의 영향은 표면적이고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파견한 부관과 원수의 전령들만 전황 보고를 위해 전장에서 연달아 그에게 달려왔는데, 보고는 모두 사실과 달랐고, 그것은 격전이 한창일 때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많은 부관들이 전투 현장에 가지도 않고 남한테 들은 것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며, 게다가 부관이 나폴레옹이 있는 곳까지 이삼 베르스타의 거리를 말을 달려 오는 동안 전황이 달라져 가져온 보고가 이미 부정확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관찰 대상을 완전히 바꿔 황제들과 대신들과 장군들은 내버려두고 대중을 이끈 무한히 작은 동질의 요소들을 연구해야 한다.
그는 이 기묘하고 매혹적인 감정을 슬로보드스키 궁전에서 처음 경험했는데, 부든 권력이든 생명이든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노력해서 이루고 소중하게 지키려는 그 모든 것에 만약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그런 것을 모두 내버릴 때 느낄 수 있는 기쁨뿐이라는 것을 그때 홀연히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지원병 신병이 마지막 1코페이카 까지 털어서 마실 때의 감정이며, 술꾼이 지갑을 다 컬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거울이나 유리를 깨뜨릴 때의 감정이며, 인간이(통속적 의미의)분별없는 짓을 하면서 인간적 조건을 초월한 인생에 대한 최고의 심판이 존재한다고 연명하고 자신의 개인적 권력과 힘을 시험해보려 할 때의 감정이다.
(......)늙은이들이 말하길 벌레는 양배추를 갉아먹지만 양배추보다 먼저 죽는다고 하죠.
플라톤 카라타예프(소콜리크)
괴로운 공포가 그를 사로잡는다. 이 공포는 죽음의 공포이고 문밖에는 그것이 서있다. (......) 다시 그것이 바깥쪽에서 밀어댄다. 마지막 초인적인 노력도 무의미하게 문은 소리도 없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것이 들어왔고,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안드레이 공작은 죽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가 자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고, 그 죽음의 순간에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렇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나는 죽었다가 눈을 뜬 것이다. 그렇다. 죽음은-각성이다!' 갑자기 마음속이 밝아지고, 지금까지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마음의 눈앞에서 걷어올려졌다.(.......)
그날부터 안드레이 공작은 잠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삶에서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삶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꿈꾼 시간에 비해 잠으로부터의 각성의 시간보다 느리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온갖 현상의 원인을 종합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원인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각각이 개별적으로 원인이 될 수 있는 현상들의 수많은 조건과 복잡성은 깊이 탐구하지 않고, 가장 처음의, 가장 알기 쉬운 근접한 것을 포착해 그것을 원인이라 말한다.
“(......)늙은이들이 땀이 밴 손은 넉넉하고 건조한 손은 인색하다고 하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거든. 자기도 알몸이면서 이렇게 주고 갔잖아.”
기계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기계 속에서 우연히 끼어들어 작동을 방해하며 삐걱거리는 나뭇조각을 기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계의 구조를 모르는 사람은 삐걱거리며 작동을 방해하고 기계를 해치는 나뭇조각이 아니라 소리도 없이 돌고 있는 작은 톱니바퀴야말로 기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한 행정을 가는 동안 이 휴식지가 궁극의 목적지를 가리고, 모든 희망과 기대를 그 자체에 집중시킨다. 개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열망은 언제나 군중 속에서 증폭된다.
승리고 끝난 전투가 여느 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군의 공격 이후 농민들이 짐마차를 끌고 도시를 약탈하러 모스크바로 왔고, 딱히 개인적으로 영웅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카르프니 블라스니 하는 농민, 그들 같은 수많은 농민들이 아무리 후한 값을 불러도 모스크바로 건초를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은 질량에 속도를 곱한 것이다.
군사에 대해 말하자면, 군대의 힘은 그 질량에 뭔가를, 미지의 x를 곱한 것이다.(......)
x는 군의 사기, 즉 군을 구성하는 각자의 싸우려는 의지, 자신을 위험 앞에 내놓으려는 열망이며, 그들의 지휘관이 천재이건 아니건, 전선이 이중이건 삼중이건, 무기가 몽둥이건 일 분에 삼십 발 발사되는 총이건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싸우려는 열망이 클수록 언제나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이다.
1812년에 퇴각하던 프랑스군은 전술상 각기 분산해서 방어해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하고 뭉쳐 다녔는데, 군의 사기가 떨어져 집단이 아니면 그들을 하나로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러시아군은 전술상 집단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하고 분산 행동을 했다. 이는 각자가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프랑스군을 공격할 만큼 군의 사기가 높았고, 곤경과 위험에 뛰어들도록 강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이 ‘이것은 위대하다!’고 할 때는 이미 선도 악도 없고, ‘위대한 것’과 ‘위대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위대한 것은 선이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악이다. 그들의 관념에 따르면 위대함이란 그들이 영웅이라 부르는 특수한 동물들의 특질이다.
사람은 죽어가는 동물을 볼 때 그 자신인 것, 즉 그의 본질이 눈앞에서 분명히 소멸하고 존재하기를 멈추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죽어가는 그것이 인간이면, 더욱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면, 생명의 소멸에 대한 공포 외에도 단절감과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며, 그것은 육체적인 상처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생명과 결부되기도 하고 때로는 치유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상처는 아프고, 외부의 자극적인 접촉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1812년과 1813년의 전쟁에서 쿠투조프는 잘못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받았다. 황제도 그에게 불만이었다. 최근 폐하의 명령으로 쓰인 역사 기록에도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의 명성에 겁먹은 교활한 거짓말쟁이 조신이며, 그가 크라스노예와 베레지나에서 범한 과오 때문에 프랑스군 전멸이라는 러시아군의 영광을 잃었다고 기술되었다.
이것이 러시아 지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위대한 인간, 위인 아닌 자의 운명이고, 신의 섭리를 깨닫고, 그것에 개인의 의지를 종속시킬 수 있는, 항상 외롭고 보기 드문 자의 운명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고의 법칙을 통찰한 대가로 대중의 증오와 경멸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처음 그와 주위사람들의 불화가 시작됐던 보로디노 전투 때부터 그 한 사람만이 보로디노 전투는 승리라고 말했고, 이 말을 구두로 했을 뿐만 아니라 보고와 상주서에서도 죽을 때까지 되풀이했다. 오직 그 한 사람 만이 모스크바를 잃은 것은 러시아를 잃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로리스통의 강화 제안에 강화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국민의 의지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고, 프랑스군이 퇴각할 때도 오직 그 한 사람 만이 아군의 작전은 모두 불필요하다, 모든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저절로 잘될 것이다, 적에게는 황금의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타루티노에서도, 바지마에서도, 크라스노예에서도 전투는 불필요하다, 국경까지 가려면 어느 정도 병력이 필요하며, 열 명의 프랑스인을 잡는다 해도 한 명의 러시아인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 아락체예프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조신 한 사람 만이 빌나에서 차르의 불만을 사면서까지 더 이상 국경 밖에서 사우는 것은 백해무익하다고 직언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그가 당시 사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증명하기 어렵다. 그의 모든 행위는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다음 세가지 행위로 표현되는 하나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1)프랑스군과의 충동에 대비해 전력을 다하고, 2)그들에게 이기고, 3)가능한 한 국민과 군대의 불행을 경감하며 적을 러시아에서 추방한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의 의미에 대한 이 비범한 통찰력의 원천은, 그가 끝까지 순수하고 힘차게 자기 안에 품었던 국민적 감정 속에 있었다.
국민은 그의 안에 있었던 그 감정을 이해했기 때문에 황제의 불만을 샀던 이 노인을 그처럼 기묘한 방법으로 황제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국민 전쟁의 대표자로 선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 감정이 그를 인간으로서 최고 지위에 서게 했고, 또한 총사령관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인간을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하고 불쌍히 여기는 데 집중하게 했다.
소박하고 겸손하고, 그렇기에 참으로 위대했던 이 인물은 역사가 만들어낸 유럽적 영웅, 즉 자신이 사람들을 지도한다고 착각하는 가짜 영웅의 형식에 넣을 수 없다.
마치 방대한 수의 짐승 떼처럼 연대는 잠자리와 음식 준비에 착수했다. 일부 병사는 무릎까지 눈 속에 파묻히며 마을 오른쪽 자작나무 숲으로 흩어졌고, 곧 숲속에서 도끼와 검으로 나무를 치는 소리, 나뭇가지를 꺾는 소리와 떠들썩한 말소리가 들려왔고, 또 다른 무리는 한 덩어리로 뒤섞인 연대 수송차들과 말들 사이에서 냄비와 건빵을 꺼내기도 하고 말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세 번째 무리는 온 마을로 흩어져 사령부 사람들의 막사를 짓기도 하고, 땔감으로 쓸 널빤지와 마른 장작과 지붕의 짚과 바람막이로 쓸 나무 울타리를 끌어내고 있었다.
별들은 이제 아무도 자기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 어두운 밤하늘에서 마음껏 빛으로 뛰놀았다. 반짝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면서 기쁘고도 신비로운 뭔가에 대해 서로 바삐 속삭였다.
예전에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찾았던 인생의 목적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했던 인생의 목적은 현재 일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느껴졌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자유에 대한 완전하고 기쁜 의식을 주었고, 이것이 지금 그의 행복이었다.
피예르가 이 이탈리아인의 열렬한 애정을 얻은 것은 그가 상대방의 내면에서 언제나 가장 훌륭한 면을 일깨워 그것을 도취된 듯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발라르스키와 공작영애와 의사를 비롯해 최근 만난 모든 사람에 대한 피예르의 태도에는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새로운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볼 수 있다는 인식, 말로 사람의 신념을 바꿀 수는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전에 피예르를 흥분시키고 초조하게 했던 이 당연한 만인의 독자성이 이제는 그가 사람들에게 느끼는 관심과 흥미의 기반이 되었다.
(......)그것도 자기 지식을 풍부하게 하려고 그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어느 경우에는 그것을 그대로 말로 옮기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자기 이야기를 멋대로 덧붙여 자기의 빈약한 지성의 공장에서 만든 총명한 말을 되도록 빨리 꺼내보려고 애쓰는 현명한 여성이 아니라, 남자의 말속에서 가능한 한 좋은 것을 모두 추려내 자기 안에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참된 여성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
피예르의 광기는 예전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인간의 가치라고 부르는 것에서 개인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랑으로 이유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며, 언제나 그들을 사랑하기에 충분하고 명백한 이유를 발견했다는 데 있었다.
나는 어떠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면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알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한다. 또 나는 일반적 인간의 속성과 동떨어진 행동에 작용하는 힘을 보았을 때,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는 모른 채 천재라고 말한다.
니콜라이는 남을 위해서라거나 선행을 위해서 뭔가 한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그가 한 일은 전부 유익했고, 재산은 눈에 띄게 불어나 인근 농민들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이 모든 세계의 각자에게-기쁘거나 슬프거나-전부 중요했지만, 개개의 세계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은 그 밖에도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한 사람이라는 것,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이미 그녀의 온전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는 것, 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생명력에 차 있었지만 지금은 가엾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를 위해 기꺼이 순종하고 되도록 자신들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메멘토 모리-그들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만 온 집안사람 가운데 아주 성질이 못되거나 머리가 나쁜 사람, 혹은 아이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피했다.
백작부인의 영혼은 언제나 무한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열망했으므로 잠시도 평안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육체에 억눌린 영혼의 비밀스럽고 숭고한 고뇌를 띤 엄숙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미네젱거: 중세 독일의 기사, 음유시인, 소리꾼, 주로 전쟁과 종교에 대해 노래했다.
실행되지 않았던 나폴레옹의 셀 수 없이 많은 명령 중에서 1812년 원정을 위해 실행된 일련의 명령이 생긴 것은, 이 명령들이 어떤 면에서 실행되지 않았던 다른 명령보다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이 일련의 명령이 어쩌다가 프랑스군을 러시아로 이끈 일련의 사건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마치 종이에 본을 떠 이러저러한 형태를 그릴 때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색을 칠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고 형태 전체에 색을 칠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혼자서 행동할 때는 언제나 자기 안에 자기 자신이 아는 일련이 판단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과거의 활동을 인도했고, 현재의 활동을 정당화하며, 미래의 활동을 예상할 때도 자신을 인도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집단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만 행동에 참여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총합적 행동에 관한 판단과 정당화와 예상을 위임할 뿐이다.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이유로 프랑스군은 서로를 물에 빠뜨리고 베어 죽였다. 그러자 그 사건에 상응해 프랑스의 복지와 자유와 평등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는 정당화가 몇몇 사람들의 표명된 의지에서 드러났다. 사람들이 서로를 베어 죽이는 일을 그만두자, 권력통일과 유럽에 대한 저항 등을 위해서라는 정당화가 따랐다. 사람들이 같은 인류를 죽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아갔을 때는 프랑스의 영광이니 영국의 비열이니 하는 정당화가 따랐다. 역사가 말해주듯, 사건에 대한 이런 정당화들은 보편적인 의미를 전혀 갖지 못하며 인간의 권리를 인정한 결과 살인을 했다거나, 영국을 모욕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수백만을 죽였다는 등 자기모순에 차 있다. 그러나 이런 정당화는 동시대적 의미로는 필연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이런 정당화는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도덕적 책임을 제거해준다. 이런 한시적인 목적은 기차 앞에 달려 철로를 청소하는 솔과 같은 것으로,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길을 청소해준다. 어떤 사건을 검토할 때 반드시 봉착하는 의문, 대체 어째서 수백만의 인간이 총합적 범죄, 전쟁, 살인을 범했을까? 라는 지극히 단순한 의문은 이런 정당화 없이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역사가들은 사건에 대해 명령으로써 관계를 갖는 역사적 인물의 의지 표현만을 검토해, 사건이 그 명령에 좌우되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 자체와 역사적 인물을 포함한 대중과의 관계를 검토해 역사적 인물과 그의 명령은 사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론에 대한 의심할 수 없는 증거는, 아무리 명령의 수가 많더라도 다른 원인이 없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일단 일어나면-어떤 사건이든-끊임없이 표명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든 의지들 가운데 의미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명령으로서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이 반드시 발견된다는 것이다.
1)권력이란, 어느 인물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이며, 이 인물은 현재 행해지는 총합적 행동에 대한 의견, 예상, 정당화를 더 많이 표명할수록 행동에 덜 참여한다.
2)여러 민족의 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역사가들이 생각하듯 권력도, 지적 활동도, 양자의 결합도 아닌 사건에 직접 참가하는 모든 사람의 활동이며, 그들은 사건에 직접적으로 가장 많이 참가할수록 가장 적은 책임을 지고, 또 그 역도 성립하는 형태로 사건에 참가하며 결부되는 것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다른 과학들도 같은 사고의 길을 걸어왔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말했을 때, 태양이나 지구가 끌어당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고, 모든 물체는 최대에서 최소의 것에 이르기까지 끌어당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즉 물체 운동의 원인에 대한 문제는 제쳐두고, 무한대에서 무한소에 이르는 모든 물체에 공통된 성질을 표명했을 뿐이다. 자연과학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원인의 문제를 제쳐두고 법칙을 탐구하고 있다. 역사학도 같은 길에 서 있다. 만일 역사학자들이 여러 민족과 인류의 운동을 대상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활의 에피소드를 기술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역사학은 원인의 개념은 제쳐두고, 동등하고 서로 굳게 결합된 자유의 무한소의 분자 전체에 공통된 법칙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첫째 경우에는 공간 내에 존재하지도 않는 부동성을 의식하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운동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고, 오늘 날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를 의식하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 의존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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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사건의 결과를 다루고, 예술가는 사건의 사실 자체를 다룬다.
각각의 역사적 사실을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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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준 좋은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람에게 한 좋은 일 때문이다.
젊은 사람의 비밀이란 흰 실로 꿰맨 것처럼 훤히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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