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2017


맨 끝줄 소년
아무에게도 안 보이지만 모두가 보인다는 마지막 줄
처음에는 웃음의 대학처럼 작가에 빠져드는 문학선생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그게 끝은 아니었다.

훌륭한 결말은 
모두가 예상치 못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어야 하며
예술은 인간을 아주 가까이서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멋진 가르침을 주는 문학교사는 사이코로 불리고
칸트를 가르치며 그대로 따를 수 없다고, 
제대로 주먹을 날리겠다고 다짐하는 라파는
겉으로는 평범하고 밝은 학생이다. 
결국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했다,

이젠 유행인가 싶은 라이브 배경음악
눈에 띄긴 했지만 극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양한 크기의 점을 찍어 놓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다들 매끄러웠지만 딱히 인상 깊은 배우도 없었고.
극 집중도를 높이는 건 좋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좀 졸렸던 무대조명,
비용절감을 위한 거라면 훌륭하지만 
엿보기 장면용 연출은 단조로운데도 산만했다.

그럼에도 
맨 끝줄 소년은 호기심 당기는 제목 이상의 
매력적인 이야기다. 
원작의 매력이 강렬한 듯. 

어느 집이나 들어갈 문은 있다...라고 한다.

***2015년 초연 당시 기사

영국 왕을 모셨지|보후밀 흐라발|문학동네

아가씨들이 있는 저 멋진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처음으로 경험해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넌 수업료를 지불한거야. 당장 내일 이곳에 다시 와서 또 한 번 신사가 되는 거야.' 나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올 때에는 역에서 핫도그 파는 견습 웨이터로 왔지만 떠날 때는 신사가, 그것도 고매한 신사들이나 명망 높은 명사들만 오는 황금 프라하 호텔에서 지정 테이블에 앉는 어떤 신사보다도 더 대단한 신사가 되어 돌아갔으니......

날씨가 습하고 차거나 비가 오면 그는 항상 내장탕 한 냄비와 빵을 구해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노파들에게 직접 들고 갔다. 그렇게 광장을 가로질러가는 그의 손에 들린 건 단순히 수프가 아니었다. 그는 냄비 안에-그렇게 내 눈에 보였다-자신의 심장을 담아 모든 노파들에게 각각 전해주러 가는 거였다.

마치 우리 호텔은 하나의 악단 같았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는 순간만 기다리며 연주자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는데 아직 지휘봉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앉아서도 안 되고 잠시 휴식을 취해서도 안되었다. 다만 뭔가를 정리하거나 서빙 탁자에 살짝 기대어 서 있을 수는 있었다....신호만 떨어지면 그는 박자에 맞춰 도끼를 내려칠 것이고 온 호텔이 움직이기 시작할 터였다.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처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서로에게 장난치며 골탕을 먹였다. 그들에겐 이런 모든 걸 할 시간이 넘쳐났다. 그렇게 소란스럽게 장난치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옆사람에게 헝가리 비육돈 한 대분이나 두 대분, 아니면 한 차량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그때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은 장작을 패고 있는 우리 호텔 포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저런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하는 몽상에 잠겨 노동을 하고 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자들은 노동을 찬양하긴 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지 않았다.

 한번 즈데네크와 함께 밖에서 흥청망청 논 적이 있었다. 그는 일종의 귀족 같은 버릇이 있어서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써버리곤 했다.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자신이 시중들었던 손님들처럼 먹어대고, 항상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수중에 남겼다. 그가 마을에서 가장 손님이 없는 삭막한 술집에 가서 주인을 깨워 악사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하면 악사들이 와서 그를 위해 연주를 해야 했고, 그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자는 사람들은 깨워 함께 가서 건배하자고 청하면  마을 사람 모두 술집에 가야 했다. 그러면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아침이 될 때까지 술집에서 음악을 연주했고 춤을 췄다. 그러다 술집의 술이 모두 동나면 즈데네크는 원하는 용량들이로 술을 담아 파는 상점에 가서 주인을 깨워 광주리에 잔뜩 사들고 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몽땅 나눠주었다.

* 밤비노 디 프라가: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발현한 아기 예수의 모습대로 만든 이 성상은 현재 프라하의 '승리의 마리아 카르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 때 손님이 한 명이-시골 사람이었다-담배 냄새를 맡았는지 아니면 감기에 걸렸는지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마실 때의 힘이 그를 머리 위에서 똑바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벌떡 튕겨오르며 일어나더니, 요란스럽게 재채기를 하다가 냅킨 끝이 카렐이 들고 있던 쟁반 모서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카렐이 날아다니는 양탄자처럼 음식접시들이 담긴 쟁반을 공중에 날리며 살짝 허리를 숙이고 피해갔다. 원래 카렐은 공중으로 음식을 날리듯 들고 다녔는데 이번엔 쟁반이 좀 먼저 나갔던지, 아니면 카렐 발이 좀 느렸던지 쟁반이 그의 손을 벗어났다. 쟁반이 위를 향해 돌린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려 하자 그는 헛손질을 하며 그것을 잡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황제를 모셨으며 종종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던 나는, 덜거덕 소리가 날 정도로 각종 훈장들로 가슴을 장식한 독일제국의 국가적 살인자인 대형 범죄자가 계단을 올라가고 그 뒤를 평범한 살인자인 아버지 살해범이 따라가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기에서도 좋은 수건과 시트를 손에 넣는 방법과 그것들을 가방에 넣어 문을 통과해서 집에 갖다줄 수 있는 방법을 제일 먼저 눈으로 보고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백만장자의 본능으로 어떤 기회라도 놓치는 게 허용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문득 나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보지 못할 것을 나는 볼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음악적 울림이 있는 자작나무 같아서 내면화된 그녀의 매력이 속에서 울려나와 소리굽쇠인 눈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에 전달되었다. 그 사람은 그녀가 갑자기 변했다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병 입구에서 빠져나와 물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듯 모든 사물이 지닌 양면에서 아름다운 쪽으로 흘러갔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목구멍과 후두에 낀 가래를 뱉어내려고 헛기침하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술집 주인이 생맥주가 나오는 관을 뜨거운 김과 깨끗한 물로 세척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 자신이, 두 세대를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덧붙여 발라놓아 몇 겹이 되어버린 벽지를 벗겨낸 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것은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나는 아주 즐겁게 내 무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여기에서 죽어 갉아 먹히지 않는 해골 한 조각밖에 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위에 있는 작은 산 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묘지 제일 꼭대기에 묻히고 싶다. 왜냐하면 시간이 흘러 내 관의 이곳저곳이 갈라지면서 벌어진 틈 사이 양쪽으로 비가 몰아쳐 들어와 내 몸에 남아 있던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몸의 일부가 체코의 시내들로 흘러 들어가고 또 일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작은 개울을 통해 국경 철조망을 넘어 도나우 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는 죽은 후에도 세계 시민이 되고 싶기 때문에, 한 편으로 블타바 강을 지나 엘베 강으로 해서 북해로 흘러가고 다른 한 편으로 도나우 강을 지나 흑해로 들어가면, 두 바다를 통해 대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이름은 샌드버그였고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였다. 인간의 몸에는 성냥 열 갑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이 있으며, 사람의 목을 매달 못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철이 있으며, 십 리터의 내장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물이 들어 있다고 했다.   

진정한 세계인은 익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거짓 자아를 벗어버릴 수 있는 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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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과하는 현실적인 시간속에서
디테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성취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계급의 선망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는 충만했다.
부분 부분 묘사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되는  
매력적인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

더 플랜|The Plan|2017



개표결과에 대한 영화의 주요 의문은 이랬다.
투표용지가 집계 중일때 결과가 공표되었다?
집계된 투표수보다 미분류 투표수의 비율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투표결과를 가지고
일정 비율로 미투표로 분류된 투표가 특정후보에게 유리하게 집계되어 있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다시 확인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래서 가끔 수상쩍은 상황과 자료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일이 사람이 다시 확인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참관인들이 증언한다.
광고와 달리 기계는 해킹이 가능하며
중앙시스템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개표비율을 정해놓고 조작했다면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쉽게 설명된다는 것이 더 플랜의 문제 제기이며
투표소에서 수개표 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전자투표가 직접민주주의 대안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예 근거자료가 없는 전자투표가 얼마나 위험할 지 배운 것이 하나, 
제시된 대로 방법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래동안 의문을 제기하는데
해명도 못들은 채 코앞의 선거에 임하는 마음은
무척...
찝찝하다!

간신히 수료증을 받을 정도로 통과했던 통계수업이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 ㅋㅋ
거의 검증 토대의 90%를 홀몸으로 일궈내신 현화신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심지어 이 분은 영화의 제목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심^^ 
역시 이런 걸 이렇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학에는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효표로 빼는 것이 어떻게 한 쪽에 우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어려웠고
해킹 실험에서의 결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해킹프로그램도 영수증을 받고 사고
사법부의 은혜로나 생존가능한 조직을 국가정보원으로 가진 이 수준에서
과연 이런 플랜을 이렇게 조용히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간단하다고
쉽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말이다.

남은 7개월 간 더 보강하려던 게 뭐였는지 궁금하지만,볼만하고 재미있었다.
엄청난 자료 속에 파묻히지 않고
끝까지 물음표를 꺾지 않은,
말 되는 음모론(^^)에 박수를.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해킹 가능한 불완전한 수단이라는 것만 증명해도 될 것을
굳이 대선투표지 형태로 실험한 것,
우리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당연한 주장에 기반한 나머지
검증을 위한 실험을 하면서
실험 투표지들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누가 확인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논쟁이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기계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무조건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나이기에
이런 당연이즘은 흡족하지 않았다.

또 하나.
그래서 그렇게 그래픽이 잘 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망할 외모지상주의자.
이젠 유머로도 좀 촌스럽다, 제발...
감독 이름보다 제작자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도 쫌...

모아나|Moana|2016



연애보다 의리
콩깍지 보다 우정.
디즈니의 이야기들은 
매번 '올바름'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근데 쫌 지루하다^^

바다와 배가 항해하는 장면은 
그림보다는 실사 같은 느낌. 
깨알 같은 옥의 티로는 
애기 모아나가 애기 거북이를 지켜주며 쫓는 새들이
원래 육지에서 사냥을 하지 않는 종이라는 정도가 나와 있는 걸 보면
화산섬이나 폴리네시아의 자연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가며 그려냈을까 싶다.

모아나의 완소 캐릭터는 애가 모아나.
애기들에게 있어 빠트릴 수 없는 미모요소로는 소세지 팔다리와 분수머리 등등이 있지만
그 완성은 뭐니뭐니해도 기저귀빨.
뒤뚱거림이나 어설픈 손놀림, 꺄르륵 소리 까지
예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이 짧은 시간에
그 또래 애기들의 이쁜 짓을 이렇게나 잘 농축하다니...!

궁금해서 찾아보니 모아나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김진이라는 애니메이터였다.
20년 넘게 디즈니에서 일하는 꽤 유명한 분.
얼음왕국에서는 어린 엘사, 큰 엘사를 모두 디자인 했다고 나와있던데 
모아나는 그냥 모아나라고만 나와있어서 
애기 모아나의 애니메이터가 궁금해진다. 
100% 일본 애니메이터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떡해, 너무 귀여워
:그러나 제일 귀여운 꼼지락 인사가 빠져 아쉽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문학동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언젠가 작은 계산기를 산 일이 있다. 사칙연산이 가능한, 손지갑만한 기계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드라이버로 계산기 뒤판을 열어보고는 기쁨의 전율을 느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책 열 쪽 두께의 우표만한 소형 금속판 하나, 그리고 수학의 변분을 담은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정한 책에 내 눈길이 멎어 거기 인쇄된 단어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대기 속에서 파닥이다 대기 중에 내려앉는 비물질적인 사고들뿐이다. 대기에서 자양분을 얻고 다시 대기로 돌아가는 사고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서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생전에 75킬로그램은 족히 나가던 누이였는데! 실제로 저울에 달아보니 재의 무게가 적어도 50그램은 축이 나 있었다. 그는 장롱 위에 유골함을 올려놓았다. 그러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외삼촌은 무밭에서 김을 매다가 문득 떠올렸다. 누이는, 그러니까 내 엄마는, 무라면 사족을 못 썼다는 것을. 그는 통조림 따개로 유골함을 연 뒤 무밭에 엄마의 재를 뿌렸고, 나중에 우리는 그 무를 맛있게 먹었다. 그 무렵 압축기로 책들을 압축하노라면, 덜컹대는 고철의 소음 속에서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고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팔 년 새에 9센티미터가 줄었다는 걸 맨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 몸이 구부정해진 것이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내가 헤겔에게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일은 굳고 경직되어 빈사상태에 놓이는 것인 반면, 개인을 비롯한 인간 사회가 투쟁을 통해 젊어지고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단 한 가지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줄처럼 감겨오는 쉬파리들의 공격을 쉴새없이 받으며 버림받은 자가 되어 무작정 일에 매달렸다. 그러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을 막 거머쥔 테니스 선수처럼 의기양양한 예수가 보였다. 반면 초라한 외관의 노자는 재고를 넉넉히 두고도 빈손처럼 보이는 장사꾼 같았다. 예수에게서는 상징과 암호로 이루어진 피 흘리는 현실이 읽혔지만, 수의에 싸인 노자는 엉성하게 다듬은 들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만 있었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었다......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전진,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후퇴

이윽고 어느 광야 한복판에 엄청난 크기의 네모난 꾸러미가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변이 적어도 오백미터는 되는 저 정육면체에 프라하 전체가 나와 함께 압축되어 있다. 평생에 걸쳐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텍스트들과 내 모든 사고도 함께......

프로그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햇살을 받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카렐 광장을 쉴새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지켜보았다. 젋은 사람들, 젊은이와 학생뿐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모두 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 저마다의 내면에 싹트는 천재성의 표징이다. 그들의 시선은 힘을 발한다. 소장이 나를 바보 천치라  부르기 전에는 내게도 샘솟던 힘이다. 

고독은 조용하지 않고
지하는 고독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지 않았다.

책을
선호도나 감동이 아니라 무게로 만나는 주인공이라니
너무나도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두드러진다.

폐지를 압축하는 주인공과
기차선로를 바꾸던 주인공의 삼촌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의 지루해보이는 직업을 평생 한 사람들인데
둘 다 은퇴 후에는
폐지압축기계와 기차선로를 집안에 들여 놓고 싶어할만큼
자신의 일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그 강렬한 애정표현에
나는 이미 결말을 짐작해버렸는데
깊은 사랑으로 인한 행복한 선택이길 바랬건만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빠졌다.
이렇게 매혹적인 문장의 향연.
이 얇은 책에서
챕터마다 자신의 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자부심 쩌는(^^) 이 분.
압축폐지더미 속에서 귀한 책을 찾아내어 이웃들에게 눈물 어린 감동의 순간의 선물하기도 하고
압축폐지속에 생명을(--;;) 함께 압축하기도 하며
언젠가는 압축폐지들이 자신이 했든 똑같이 복수를 해올 것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전문가이다.
계산하다가 소매에서 생쥐가 튀어나오는 분이라
위생 문제로 친하게 지내기는 힘들 것 같지만
예수와 노자의 비교는 신선했고
자신의 삶과 세상까지도 압축해버리려고 했던
그 놀라운 야심과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내 이름은 신디|김동화|1980



 고등학교 연극부,
전설이 있는 언덕.
배우가 사업가보다는 예술가에 가깝던 시절에 가졌을 법한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동경.
-그러고 보면 그 시절 순정만화는
김연아가 아니라면 아직도 한국사람들 눈 밖에 있었을 피겨 스이팅,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적은 수의 팬들만 봤을 발레를 배경삼던
새로움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보다는 비교적 가깝게 느껴지는 배우들의 세계.
이제 막 시작하던 새내기 배우들의 열정이 애틋하다.
이야기 속 이야기인
종이학이나 시리우스. 사랑에 빠진 정령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  

사이폰 커피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고전적인 첫사랑 소녀 이미지 그대로인 준희는
오해가 싹틀법한 오디션 연기를 마다 했고 
은우의 시사회보다 시리우스의 첫 연습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아프면서 배웠던 걸 실천하기 위해 미요와의 경쟁을 자청하고
노력으로 얻은 배움의 기회를 위해 짧은 이별을 선택하는 
기억 속에서보다 용감하고 당찬 소녀였고
선빈이나 미요, 소미에게서도 매력이 물씬 풍긴다.
오히려 남자주인공인 은우가 지운선배나 선빈에 비해
어딘가 한 방이 없다.
두 번째 만남에서 운명을 부르짖던 패기의 고교생이었음에도^^ 

줄거리를 뻥튀기 기계에 넣고 돌리면
막장 드라마가 튀어나올 수도 있을 정도로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구조의 이야기인데
이 자체는 오밀조밀 사랑스럽다.
참 오랫동안 가장 아끼던 순정만화 였었지.....
너무 소녀소녀해서 다시 안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시간의 부대낌이나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이런 걸 보면
대가들의 진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제대로 알게 되는 것 같아.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6

멋있는 구호

독특한 포스터

잘 놀아야 공부도 잘한다더니^^
NASA로 행진하는1세대 컴퓨터 전문가들

캐서린은 타고난 천재.
그래서 이 수학자의 역경은 식민지 귀족의 역경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흑인인 것 뿐 아니라 여자라고는 타이핑하는 사람 밖에 없던 영화 속 NASA에서
세월을 잘못 만나 더 맘고생 몸고생 하던 이 우수한 인재들은  
말로만 듣고선 이해하기 어려웠던 천재들의 노력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성취란 전부 투쟁의 역사였으니까.  

묵묵히 실력으로 승부하던 캐서린과 
재판을 불사하던 메리도 멋지지만
가장 멋있던 건 도로시.

캐서린의 성취가 많은 부분 수학적 재능이었다면 
도로시의 성취는 삶에 대한 자질이었다.
충분히 절망을 맛봤음에도 계속 목표를 세울수 있던 패기
해고 위기에 몰리기 전 앞을 내다보고 
혼자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선을 준비시키는 것은 
정말 이상적인 리더의 자질.
컴퓨터가 생기기 전 컴퓨터는 계산하는 사람들은 부르던 직업이었다는데
골동품 같은 컴퓨터 언어 포트란이 60년대에는 저렇게나 대단한 언어였던 거구나....
신기했다.

새롭기도 낯설기도 한 알려지지 않았던 우주탐험역사의 일부분을 다루면서 
영화는 그 대단한 한 발 조차
냉전시대
때로는 성급하고 위험하기도 했던 경쟁의 산물이었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치마가 아니라 안경을 걸쳐서 라는 캐서린의 경쾌한 대답 처럼
꽤 우울할 법한 얘기는 즐거운 결말로 마무리 된다-그게 또 다 실화라니~
아주 담백한 영어제목은 좋은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외화 제목 번역을 아주 포기한 듯.
예전의 전문가들은 다 어디 계실까....

영화를 보고나서 실화가 궁금해졌다. 
실지로 화장실까지 먼 거리를 뛰어다닌 건 메리였고
캐서린은 나사에서 전혀 인종차별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이 안 느꼈다니 할 말 없지만
성공한 여자들이 성차별을 못느꼈다고 얘기하는 걸 듣는 기분--;
꽤 결정적인 인물인 캐서린의 상사 알 국장과 폴, 도로시의 상사였던 비비안은
여러 인물들을 조합한 허구의 인물이며
영화 속 캐서린, 메리, 도로시의 나사에서의 역할은 모두 사실.
게다가 우주인 존 글렌이 캐서린을 콕 찝어서 검증을 요청한 것은 
대화까지도 거의 사실과 같다고 한다.

흑인 여성.
과연 이들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중 누구와 연대할까 궁금했는데 
이 점에서는 가장 구태의연하게 
백인 남자라는 가장 강한 권력으로 간단히 해결해버린다.
모든 싸움의 연대의 역사가 그렇듯 
당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도 있었음직한데 
-그리고 실지로 당시 NASA에는 흑인 남성 직원도 당연히 있었다는데-
그런 과정 없이 
뛰어난 메리와 캐서린은 백인 남성 상사의 손을 잡는다.
마름 역할을 백인 남성 폴과 백인 여성 비비안이 했으니
성차별보다는 인종차별 구도를 강조하려던 의도가 분명했던 듯.
이 경쾌함 속에서도 좀 모자라게 느껴졌던 한 구석,

PS. 캐서린이 칠판 가득 엄청난 수학문제를 풀고 있을 때 
그걸 바라보는 배우들의 감탄의 표정
-다들 원래는 그 수학식의 우수함에 감탄해야 했지만 
속으로는 그 식을 암기한 암기력에 감탄했던 거 아냐 싶어 나 혼자 폭소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