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보후밀 흐라발|문학동네

아가씨들이 있는 저 멋진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처음으로 경험해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넌 수업료를 지불한거야. 당장 내일 이곳에 다시 와서 또 한 번 신사가 되는 거야.' 나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올 때에는 역에서 핫도그 파는 견습 웨이터로 왔지만 떠날 때는 신사가, 그것도 고매한 신사들이나 명망 높은 명사들만 오는 황금 프라하 호텔에서 지정 테이블에 앉는 어떤 신사보다도 더 대단한 신사가 되어 돌아갔으니......

날씨가 습하고 차거나 비가 오면 그는 항상 내장탕 한 냄비와 빵을 구해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노파들에게 직접 들고 갔다. 그렇게 광장을 가로질러가는 그의 손에 들린 건 단순히 수프가 아니었다. 그는 냄비 안에-그렇게 내 눈에 보였다-자신의 심장을 담아 모든 노파들에게 각각 전해주러 가는 거였다.

마치 우리 호텔은 하나의 악단 같았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는 순간만 기다리며 연주자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는데 아직 지휘봉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앉아서도 안 되고 잠시 휴식을 취해서도 안되었다. 다만 뭔가를 정리하거나 서빙 탁자에 살짝 기대어 서 있을 수는 있었다....신호만 떨어지면 그는 박자에 맞춰 도끼를 내려칠 것이고 온 호텔이 움직이기 시작할 터였다.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처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서로에게 장난치며 골탕을 먹였다. 그들에겐 이런 모든 걸 할 시간이 넘쳐났다. 그렇게 소란스럽게 장난치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옆사람에게 헝가리 비육돈 한 대분이나 두 대분, 아니면 한 차량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다. 그때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은 장작을 패고 있는 우리 호텔 포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저런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하는 몽상에 잠겨 노동을 하고 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자들은 노동을 찬양하긴 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지 않았다.

 한번 즈데네크와 함께 밖에서 흥청망청 논 적이 있었다. 그는 일종의 귀족 같은 버릇이 있어서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써버리곤 했다.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자신이 시중들었던 손님들처럼 먹어대고, 항상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수중에 남겼다. 그가 마을에서 가장 손님이 없는 삭막한 술집에 가서 주인을 깨워 악사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하면 악사들이 와서 그를 위해 연주를 해야 했고, 그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자는 사람들은 깨워 함께 가서 건배하자고 청하면  마을 사람 모두 술집에 가야 했다. 그러면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아침이 될 때까지 술집에서 음악을 연주했고 춤을 췄다. 그러다 술집의 술이 모두 동나면 즈데네크는 원하는 용량들이로 술을 담아 파는 상점에 가서 주인을 깨워 광주리에 잔뜩 사들고 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몽땅 나눠주었다.

* 밤비노 디 프라가: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발현한 아기 예수의 모습대로 만든 이 성상은 현재 프라하의 '승리의 마리아 카르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 때 손님이 한 명이-시골 사람이었다-담배 냄새를 맡았는지 아니면 감기에 걸렸는지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마실 때의 힘이 그를 머리 위에서 똑바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벌떡 튕겨오르며 일어나더니, 요란스럽게 재채기를 하다가 냅킨 끝이 카렐이 들고 있던 쟁반 모서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카렐이 날아다니는 양탄자처럼 음식접시들이 담긴 쟁반을 공중에 날리며 살짝 허리를 숙이고 피해갔다. 원래 카렐은 공중으로 음식을 날리듯 들고 다녔는데 이번엔 쟁반이 좀 먼저 나갔던지, 아니면 카렐 발이 좀 느렸던지 쟁반이 그의 손을 벗어났다. 쟁반이 위를 향해 돌린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려 하자 그는 헛손질을 하며 그것을 잡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황제를 모셨으며 종종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던 나는, 덜거덕 소리가 날 정도로 각종 훈장들로 가슴을 장식한 독일제국의 국가적 살인자인 대형 범죄자가 계단을 올라가고 그 뒤를 평범한 살인자인 아버지 살해범이 따라가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기에서도 좋은 수건과 시트를 손에 넣는 방법과 그것들을 가방에 넣어 문을 통과해서 집에 갖다줄 수 있는 방법을 제일 먼저 눈으로 보고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백만장자의 본능으로 어떤 기회라도 놓치는 게 허용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문득 나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보지 못할 것을 나는 볼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음악적 울림이 있는 자작나무 같아서 내면화된 그녀의 매력이 속에서 울려나와 소리굽쇠인 눈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에 전달되었다. 그 사람은 그녀가 갑자기 변했다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병 입구에서 빠져나와 물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듯 모든 사물이 지닌 양면에서 아름다운 쪽으로 흘러갔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목구멍과 후두에 낀 가래를 뱉어내려고 헛기침하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술집 주인이 생맥주가 나오는 관을 뜨거운 김과 깨끗한 물로 세척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 자신이, 두 세대를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덧붙여 발라놓아 몇 겹이 되어버린 벽지를 벗겨낸 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것은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나는 아주 즐겁게 내 무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여기에서 죽어 갉아 먹히지 않는 해골 한 조각밖에 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위에 있는 작은 산 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묘지 제일 꼭대기에 묻히고 싶다. 왜냐하면 시간이 흘러 내 관의 이곳저곳이 갈라지면서 벌어진 틈 사이 양쪽으로 비가 몰아쳐 들어와 내 몸에 남아 있던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몸의 일부가 체코의 시내들로 흘러 들어가고 또 일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작은 개울을 통해 국경 철조망을 넘어 도나우 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는 죽은 후에도 세계 시민이 되고 싶기 때문에, 한 편으로 블타바 강을 지나 엘베 강으로 해서 북해로 흘러가고 다른 한 편으로 도나우 강을 지나 흑해로 들어가면, 두 바다를 통해 대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이름은 샌드버그였고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였다. 인간의 몸에는 성냥 열 갑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이 있으며, 사람의 목을 매달 못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철이 있으며, 십 리터의 내장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물이 들어 있다고 했다.   

진정한 세계인은 익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거짓 자아를 벗어버릴 수 있는 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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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과하는 현실적인 시간속에서
디테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성취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계급의 선망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는 충만했다.
부분 부분 묘사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되는  
매력적인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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