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2014



세월호 초반에 외신과 함께 한 두번 봤던 고발뉴스.
다이빙벨이 투입이 생중계라는 것을 알았고, 혹시나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도
긴 새벽을 뿌연 수중과 밤의 팽목항 구석 장면으로 버티지 못해 못 본 것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종합편으로 만들어낸 이상호의 패기가 있어 다행이다.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오히려 절망적인 지금
도대체 영문을 모르고 죽어가던 수 백 명의 사람들과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아마도 뉴스 밖이었을 감정씬들에 알알히 새겨나오고 있었다. 
냉철하고 날카로운 기자도 좋지만
이렇게 지키고 싶은 것을 잃고, 뭇매를 맞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기자도 한 명쯤은 있어 다행이다. 
이종인 멋있다. 

소년이 온다|한강|2014

그래. 초를 태우면 냄새가 없어지겠구나....도청에서 왔다고 하면 헐하게 주거나 그냥 가져가라는 사람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초가 넉넉해서, 유족이 지키지 않는 관과 미확인 시신들의 머리맡까지 모두 밝힐 수 있었다.

....여태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그래서 정미 누나가 빠듯한 형편에도 우유를 배달시켜 먹이는 정대. 정미누나와 친남매가 맞나 싶게 못생긴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방학하는 날까지 그녀는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김진수가 더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요.
  아니요, 나도 충분히 고통받았습니다.
  김진수가 더 잠을 못 잤을까요.
  아니요, 나도 잠을 못잡니다. 하루도 깊이 못 잡니다.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그럴 겁니다.
  선생이 나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김진수에 대해 물은 뒤 생각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선생과 이곳에서 만날 약속을 잡은 뒤에도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왜 그는 죽었고, 아직 나는 살아있는지.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는 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못해요. 해고되면 안되거든요. 동생 학비도 보내야 하고, 언젠가 저도 공부를 할 거니까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사방에 흩어진 우리 신발을, 정미가 전부 모아서 노조 사무실에 갖다 놨대. 쪼그만 게 그렇게 서럽게 울더란다. 

 나중에 느이 작은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그람스로 두 눈에 핏발이 서드라이.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소리다냐, 깜짝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너까장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그라고 삼십년이 흘러가도록, 너하고 느이 아부지 기일에 그 자식이 가만히 서서 입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야. 네가 죽은 것이 저 때문이 아닌디, 왜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어깨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까이. 저것이 아직도 원수 갚을 생각을 하고 있단가,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 앉아야.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흘리는 사람을 엎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어떻게든 전두환에게 읽힐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그 자의 사면복권은 김대중의 월권이라 생각하지만, 정 그래야 했다면 최소한 자기 자신의 죄를, 그 모든 기록을 똑바로 보고, 최소한 며칠쯤은 그 원한을 온몸뚱이로 받아주게 했어야 했다.

그저 수백 수천의 희생자의 일부로, 실감나지 않던 그 삶, 한 명 한 명에게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고 있는 한강. 소설 속에서 하나 하나의 죽음과 고통은 모두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남아 살아남은 자들의 죄의식과 슬픔을 전하며, 넋나간 채 직후의 애도시간을 잃어버렸던 그들과 갑작스런 통곡으로 공명하게 한다. 

책을 읽기 전엔 그냥저냥 들었던 한강이 출연한 팟캐스트를 다시 듣는데, 우리 모두의 중요한 역사가 어쩌다 한 지역의 한이 되어버렸다는 얘기, 이 책은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던 작가의 당부가 깊게 남았다.

*책말미 한강이 각별히 감사드린 자료집 목록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한국근대사 사료연구소/풀빛/1990
광주, 여성/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후마니타스/2012
우리들은 정의파다/감독 이혜란
오월애/감독 김태일
5.18자살자-심리부검보고서/연출 안주식

인터스텔라(어쩌면 스포일러)|Interstellar|2014


보면서 내내 컨택트와 그래비티가 겹쳐보였는데
우주 하면 떠오르는 칼 세이건의 그림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뭘 좀 알고 봐야한다길래 좀 찾아본
초끈이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각적으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다 멈춰서는 장면이나,
시간의 상대성,
아버지와 천재과학자(가 되는) 딸의 관계의 유사점이 더 컸다.
시공을 넘나드는 것이 중력인지 사랑인지 결판을 내보자고
세 시간의 대 장정이라니.
게다가 타나토노트라는 소설이 마지막에서 그저 크게 놀란 주인공만 보여주고
그게 뭔지는 상상해내지 않은 작가때문에 황당했을 때처럼
아무 설명 없이 5차원을 겪고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참 너무했다.

나의 의심은
놀란 감독이 다음 영화들을 위한 연습장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것...
아님 말구.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깊은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지라앞으로의 기대까지 접지는 않겠다...

결국 그가 내 놓은 마지막 결말이란
예전에는 곧잘 4차원이라 부르던 것에 대한 상상을
놀란의 이름으로 5차원이라 정하고 그림으로 보여준 것 뿐이다.
게다가 그 탐험의 끝에서 그가 직접 얻은 지식이란
선택자가 자신이 아닌 딸이었다는 것 뿐,
그렇게 호의적이라는 '그들'이 왜 굳이 그런 개고생을 시켜가며
정보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다른 은하계로의 여행을 준비했던 우주선에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연료가 부족했거나
웜홀과 블랙홀을 떨어뜨려 놓은 설정에서
100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우주로 이사가야 한담서
굳이 그저 미지일 뿐인 블랙홀 주변의 행성으로 답사를 보낸 것도
이해가 안간다.
어차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새로운 인류 창조를 위한 플랜B가 속뜻이었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었잖아, 지구가 언제 망하든 탈출할 소수는 있을텐데.
저항하라는 시를 읊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노과학자라니, 웬 허세? 
게다가 예기치 않은 골동품,
설마 맷 데이먼이? 하고 의심스러웠던
요즘은 거의 멸종된 줄 알았던 1차원 악당의 등장이었다.
본격적인 분노게이지가 상승하던 지점.
신뢰가 거의 바닥이던 쿠퍼 남매의 극적인 화해도 그렇다.
아빠 얘기 한 마디와 포옹으로 다 끝?
장난하냐....
되게 사소한 걸로는 우주복.
그래비티에서는 그렇게 힘겹게 입고 벗던 우주복이
여기서는 거의 소방대원 방화복 수준이었다.
내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었거나
미래에는 그 정도의 신소재가 개발되었다고 믿어야겠지만 어쨌든 싼티.
내내 감정선을 지배하려들던 음악도 거슬렸고.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데
거기다대고 어디가 왜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를 따져묻는 건
바보같은 대화-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게 될 수도 있는-가 되기 십상이다.
남들이 설레발을 치건 말건 아마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테니
원망할 것도 없고.
그러니 세시간이 지루하지않게 감동을 받은 관객들을 그냥 부러워하는 걸로.
그러나... 
큰 화면을 보라고 해서 아이맥스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서
저렴한 조조가 아닌 굳이 아이맥스를 선택하여 본 보람은 별로, 아니 전혀 없고
(아이맥스로 볼만한 장면보다는 드라마장면이 훨씬 많은데다가
일산 CGV 아이맥스의 사운드는 거의 재앙이다..!)
마지막의 30분, 그것도 아예 끝은 황당하기까지한 이 이야기를 위한
2시간 반의 설레발은 내겐 무척 과했던 당신.
초반에 좀 졸다가 뒷부분을 전혀 자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76% 신뢰수준의 분노와 짜증 때문이라고나 할까...

또 하나 의심은
유명 감독의 화제작 치고는 엉성했던 번역.
자막은 있었으나 없었던 것처럼
뭔가 훌러덩 본 느낌?
나의 무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강력히 의심해본다...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2014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조금 두렵다. 순자씨는 그 도시락으로 나나와 내 뼈를 키웠으니까. 그게 빠져나간 뼈란 보잘것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조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보잘것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단하지 않아?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 
무엇보다도 나나와 내가 오로지 애자의 세계만 맛보고 자라지는 않도록 해준 것.
그게 그녀의 도시락이었어. 
다만 도시락.
그뿐이었고 그 정도나 되었으므로 대단히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이것은 몇번째 태몽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줍은 듯 일렁이던 달을 생각하자 묘하게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구나, 생각합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은 이런 말이었구나. 여러개의 매듭이 묶이는 느낌. 가슴이 묶이고 마는 느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덧없어도 소중하다가 아닌, 덧없으니까 소중하다는 말은 아직 공감하지 못하겠는데,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이라는 저 말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게 된다.  
언뜻 보면 말장난 처럼 이래저래 말의 밥상을 차리는 것 같지만 죽 따라가다보면 거짓말 하기 싫은 사람의 정확한 표현을 만나게 된다. 흙으로 그린 동화같은 이야기.   
궁금함을 참지 못해 결국 책다방을 먼저 들은 뒤 책을 읽었더니...후회막급이다. 팟캐스트에서 들려줬던 인상깊은 구절들이 책에서는 방송 때만큼의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놓치다니, 아깝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굉장한 의지가 담긴, 멈추지 않겠다는, 굴하지 않겠다는 '계속해보겠습니다'로 생각했는데, 소설속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이어집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의 의미였다.

선언도 출사표도 아닌, 살아있고, 살아가겠다는 나즈막한 안내말씀.
그들의 행복이 참 든든하다.

백의 그림자|황정은|2010

삶이 고단해지면 그림자가 일어선다. 이야기는 주인공 은교가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연인인 줄도 몰랐던 무재의 부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무재의 그림자도 일어나버린 후지만 소박한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름 귀여운 연애에 그림자빛이 감도는 이야기.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하고 무재씨가 나무뿌리를 잡고 비탈을 내려가느라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지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하다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지 않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얘기에요.


무재는 여기서 원죄를 이야기 하고 있다. 깨닫기 전에 한 일이라도 죄없다고 말할 수 없다, 공산품에 대한 생각에서는 자본에 기댄 모든 생산은 부정한 과정을 겪는 게 필연이다-라고. 이 온화하고 소박한 남자가 나름 발끈하는 것 같은 이 대목은 잊고 있던 현실의 먹구름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기도 하고, 마치 종교처럼 군림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짚어주는 통찰같기도 했다. 

그림자는 보이잖아요?
보이지. 빤히 보이는 것을 두고 못 본 척을 하고 있으니 내가 직접 그림자가 있는 곳을 가리켜 보이며 그림자야, 그림자, 라고 말해도 말이야.
이렇게 살짝, 이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허공을 꼬집듯 왼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보였다.
얼굴을 찌푸리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거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아무래도 좋은 거구나, 나 따위 그림자를 따라가더라도 상관없다는 거구나, 싶기도 하지  않겠어? 에이 썅, 따라가고 말아 버릴까, 싶어서.
따라가셨어요?
따라갔지. 그런데 그것도 잘 되지 않더라고. 목소리가 따라와.
목소리요?
차마, 차마, 하고 내 목소리가. 하여간에 십 리도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어. 어처구니가 없었지. 나라는 놈은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하고, 하면서. 그 밤에 달이 얼찌나 밝은지 분화구가 다 보이고.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화구 윤곽이 선명한 달이 뜬 밤에 구불구불 늘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 씨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생각해 보았다. 
여 씨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여간에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서랍 속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앰프 껍질에 꽂힌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 씨 아저씨는 그림자를 따라나섰던 길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했다. 아직 마음이 다잡히지 않은 그림자가 남아있는 삶. 이 체험담은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달렸다는 평범한 경구를 반복하면서, 본능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잡아끌었다는 목소리의 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 대목이 강렬하게 와닿았던 건 저런 본능적인 담백하고 진솔한 여 씨 아저씨의 고백속에서 분화구와 달과 그림자와 여씨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수묵화를 그려 낸 은교의 상상에 대한 묘사였다.

그림자가 일어난 두 연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하는 이야기.
그들 삶의 터전이
다른 작가들은 별로 쓰지 않는
내가 기억 속 느낌 그대로의
내가 가본적 있는 곳이어서 반가왔다.
서로의 말을 반복해주는 은교와 무재의 은교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심리상담 기법 중 '반영'이 생각났다.
상대의 말을 마치 내가 잘 들었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반복하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대화법은
평소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매력적인 소설을 읽고
그런 소설을 쓰는 황정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즐거운 2014년이다.

PS1. 책 내용을 옮겨 적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띄어쓰기 어렵다!!!!!!
국어학자들은 띄어쓰기 시험보면 다 백점 맞을수 있을까?

PS2. 책의 끝에 이 소설을 읽고 기사도 정신이 발동한 신형철이 현실의 자명성, 불행의 평범성, 언어의 일반성, 윤리적인 무지, 연인들의 공동체라는 다섯 개의 제목을 붙여가며 이 소설이 잘못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망 담아 쓴 정성담긴 서평이 실려있어서 놀랐다. 아니 이런 서평도 썼으면서 왜 문학이야기에 황정은이 안나왔던 걸까. 

양성원과 엔리코 파체 듀오 리사이틀

마티네공연의 학습효과인지
연주가 끝나면 양성원이 일어나서 설명을 해줄것만 같았다^^

마티네공연때 양성원의 첼로에 반해 갔던 공연.
양성원의 첼로는 
몸체에 갇힌 소리 실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신있게 뽑아내는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엔리코 파체의얘기를 들어보면
양성원은 자유로운 곡해석을 한다는데
내 귀에는 두 사람 보두 모범생같았다.
자유로운 모범생인가...?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피아노곡으로는 완소하는 작곡가들인데
첼로 소나타는 확 와닿지 않았다.
유튜브를 검색해 다른 연주자들을 들어보니
브람스의 1번 소나타를 빼고는
곡들이 내 취향이 아니었던듯.
마티네때도 느꼈지만
양성원의 선곡은 나와 취향이 좀 먼 것 같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와 만추|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and Late Autumn 1981

어제와 오늘 EBS가 골라준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1981년 김수용 감독의 두번째 만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 로버트의 말을 빌자면, 
평생 한 번 뿐인, 
그것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있는지도 모른다는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로 읽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모든 감동이 
비를 쫄딱 맞고 선, 
퍽 안쓰러운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의 강렬한 비주얼로 
한방에 날아가버렸던 안타까운 기억의 영화라서
딱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끝까지 보고 말았다.

로버트의 절절한 고백이 좀 닭살스러웠던 것은
그의 말의 간절함이 
보여준 간절함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운명의 사랑의 시들어감 보다는 
일상의 시들어감을 선택한 프란체스카의 선택이 이해가 됐다.
결국은 희생을 한 사람만이 공감도 얻을 수 있다는 
연애人들의 안타까운 선택.
순수의 시대에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보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자면 만추는 
그들의 선택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끌렸고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다시 못할 재회를 약속하고 털어놓지 않은 남자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렇게 잊어달라는 고전적인 배려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다음주는 탕웨이의 만추던데 혹시 지난주엔 오리지널 만추를 해줬던 걸까?
놓쳤다면 아쉽네....


김혜자와 정동환이라니...멋진 조화.

이미 치열하게 다쳐도 보고 지쳐도 본 여름을 지나
바람부는 계절에 만난 특별한 연인들.
여름의 뜨거운 상처가 가을을 익어가게 했지만
지금은 좀 스산해 보였던 그들의 가을 사랑 이야기.
하지만 누구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테니
겨울도 좀 더 따뜻해 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