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italism: A Love Story|2009

팔짱끼고 불량하게 고백하시는 거삼? ㅋㅋ

마이클 무어는 정말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 밖에서 혹은 미국내의 냉소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씹고 뜯고 욕하고 침뱉지만
그는 사랑하는 애인과 그 애인을 망치는 적들을 성실히 발라내어
그의 애인을 돌려달라고 열심히 부르짖는다.

분노가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그 분노에조차도 카스트가 생기는 것 같다.
머나먼 '그 분'들께는 가닿지 못하고
만만히 근처에 서 있는, 비슷한, 혹은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
폭탄처럼 터지는 가난한 분노들.
가진 것 두른 것 없어서 생이빨을 대신 뽑은 엠씨몽의 가난한 비겁에는 차라리 동정이 어울린다.
분노는
머리칼 하나 뽑는 고통도 없이 편하게
험한 길은 피해가고 고운 길을 대대손손 이어주는
진짜 적들에게 정조준 되어야 옳지 않나.

은행이 주는 1000달러를 받아들면서,
퇴거명령을 수행하는 직원에게 속을 쏟는 강제철거민들을 대신해
마이클 무어는 그 적들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아무 법적인 힘은 없겠지만
범죄지역 띠를 두르고
몰수를 하겠다고 빈자루를 들고 덤비는 그의 모습이
그래서 멋있다.
 

사실 너무나 기본적인 거다.
법이라는 합의적인 개념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사람들에 맞설 때
그 법의 테두리에서 싸우는 것만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그런 법을 만들어 잉여를 위해 착취하는 자본에게
살집을 일터를 생존을 순순히 빼앗겨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상 깊은 대사들이 있었다.
은행강도 말고는 안 해본게 없는데 지금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은행은 하는데 왜 나는 하면 안되냐고.
계약같은 건 한 일도 없이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계약의 피해를 왜 우리가 져야 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얻는 것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했다고.

미국 이상으로 진창에 구를 준비는 되어 있으면서
그나마 그만큼 번듯이 서지도 못한,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악이라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냥 병신이다.
이제 미국의 병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한 마이클 무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1936년에 이미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들에게서 보호하려고 공권력을 투입한 대통령이 있던 나라이기에
그 유산이 아직은 미국을 조금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애국을 해도 국가는 계급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유리한 법망조차도 어겨가면서 독과점으로 번 돈으로 기부하는 빌게이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일 수 없다.
직원들을 죽이고, 세금은 떼먹고 기부하면서
안녕하시냐고 광고하는 삼성은 역겹다.

도움과 격려의 손길은 늘 가까운 곳에서 먼저온다.
애국보다는 범지구적계급연대가 더 현실적인 꿈이 아닐까.

이번엔 극장개봉을 못했는지
생소한 제목에 마이클 무어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전과 다르게 이번엔 관객에게 호소하는 마이클 무어를 보면서
전보다 범위가 넓어진 그의 적들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농노보험까지 들고 있다는 미국의 기업들.
참 니들 보통이 아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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