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면 왜 제목이 적과 흑인자 확실히 알게 될 줄 알았지만 결국 해설에 기대게 됐다. 스탕달 본인이 설명한 적이 없어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흑색은 수도회, 적색은 법관들이라고도 하고, 책 중 베리에르 교회의 어둠속 교회 안에서 성수에 비친 붉은 커튼의 그림자를 보는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하고, 적색은 공화주의자, 흑색은 성직자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적색을 군인의 복장과 급진주의, 흑색을 사제의 수단과 수도회의 음모라고도 보는데,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적색은 군인, 흑색은 성직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쥘리앵은 타고난 미모와 암기력으로 익힌 라틴어 실력을 발판 삼아 출세욕으로 사제가 되려는 나폴레옹 숭배자이자 목수의 세째 아들.
쥘리앵의 출세공식은 지금하고도 비슷하다-암기력을 요구하는 각종 고시들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조선조의 글공부 선비들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어디나 지성을 검증하는 과정들이 좀 뻔하다 싶다.
스탕달의 연애론에서 맘껏 펼치던 밀당공식은 쥘리앵의 실습으로 등장하는데, 역시 백전백승.
승승장구하던 쥘리앵의 비극적인 선택은 의외로 큰 설명없이 쥘리앵의 심리묘사로 추진되며, 그의 마지막은 사회를 바라보는 쥘리앵의 통찰로 마무리되는데 옥중사색이라는 면에서 죄와 벌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소개글로는 좀 더 본격적인 연애론의 실험일 것 같았지만 초반 귀족들의 정치얘기가 길어져 책을 읽는 속도는 너무너무 느려졌고, 그래서 무려 같은 책을 세 번이나 대출했다. 그런 것에 비해 마지막은 또 꽤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읽는 동안은 딱히 쥘리앵은 대단한 책략가라거나, 야심에 전부를 던지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성공과 연애를 통해 최대한의 것을 이루고 싶어했던, 가능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평범한 청춘 같았다. 그의 비범함으로 여러 번 언급되는 라틴어 능력과 외모가 좀 더 요란한 날개를 달아주긴 했지만.
스탕달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책이 된 건 적과 흑이 당시 소설들과는 다르게 실화에 바탕을 둔 것 이상으로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라는데, 센세이션이란 시간에 마모되는 미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쥘리앵의 사유로 표현되는 사회에 대한 진단이란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서 스탕달이 시간을 관통하는 사회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는 걸 느끼기에 충분하다.
슬픈 태도는 좋지 않아요. 권태로운 모습을 보여야지요. 당신이 슬픈 모습을 짓고 있으면 그건 뭔가 결핍된 것이 있거나 무슨 실패를 했다는 표시지요.
그건 자신의 열등감을 보이는 거예요. 반대로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건 당신보다 열등한 사람이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애썼으나 소용없다는 표시지요.
탁월한 귀족 신분이나 많은 재산을 타고난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드 뒤부아 부인도 자기 자신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것입니다. 그 부인은 당신을 바라보는 대신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잘 모릅니다. 두세 번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동안 그 여자는 상상의 힘을 발휘하여 당신을 자신이 꿈꾸던 영웅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현실의 당신을 본 것이 아니고요.
아아! 왜 꼭 이것이어야만 하고 다른 것은 안된단 말인가-보마르세
어떤 영국 여행가가 호랑이와 함께 친하게 살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호랑이를 길러서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항상 테이블 위에 장전한 권총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정치사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 집안 일에 있어서도 후작은 한 사흘 동안은 탁월한 통찰력을 갖고 열중했다. 그러고 나면 그 행동 방침이 이치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치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계획을 뒷받침할 때만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자연법'이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따위 말은 요전번에 나를 몰아세우던 차장 검사에게나 어울리는 낡아빠진 객설이지, 그놈의 조상도 루이 14세의 공탈(公奪) 덕을 보아 부자가 됐을 거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을 형벌로 방지하는 법률이 있을 때야 비로소 '법'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겠지. 법률 이전에 사자의 힘, 춥고 배고픈 사람의 욕구, 요컨대 욕구만이 자연스러운 것이다.....천만에, 우러러 보이는 사람들이란 다행이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일 뿐이다. 사회의 이름으로 나를 고발한 자도 결국 치사한 짓으로 부자가 된 놈일 뿐이다....나는 살인죄를 범했으니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나를 처단한 발르노 같은 놈은 사회에 백배나 더 해를 끼치는 놈이다.
베르테(Berthet) 사건: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사제를 지망하던 앙투완 베르테(Antoine Berthet)가
미슈(Michoud)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미슈 부인의 호감을 샀다가 남편에게 해고된다. 이후, 코르동(Cordon)가의
가정교사가 되어 코르동가의 딸과의 관계로 다시 쫓겨나는데, 해고 이유가 미슈 부인의 편지라고 오해하여 교회에서 미슈부인을 총으로 쏜
뒤 부인은 회복되었지만, 1828년 2월 단두대로 처형됐다:1827.12.28-31<법정신문: La Gazette des
Trubunaux>
라파르그(Lafargue) 사건(1829.3 피레네 지방의 형사사건): 가구 세공인이었던 가난한 청년 라파르그가 변심한 애인 테레즈 카스타데르(Therese Castadere)를 질투심으로 살해하여 목을 자른 사건
궁금한 스탕달의 다른 책: <하이든, 모차르트, 메타스타지오의 생애>, <이탈리아 회화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