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벌|도스토엡스키|김학수|문예출판사+홍대화|열린책들

흠...그렇다...모든 것은 인간의 손아귀에 달려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모든 것이 코 옆을 스쳐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겁쟁이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이미 하나의 공리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인간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일까? 새로운 첫걸음, 새로운 자기 자신의 말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순간조차 모든 것을 좋은 각도로 받아들이려는 그 감수성 자체가 역시 병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예감하고 있었다.

적빈 상태에 이르고 보면 우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모욕하고 싶어지니까요.

이 돼지같은 자들아! 너희들은 짐승의 상을 하고 있지만 너희들도 나오너라!
...지혜있는 자들아, 나는 그들을 맞으리라. 현명한 자들아, 나는 그들을 부르리라.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라......

그건 그렇고, 그들은 굉장한 광맥을 하나 파헤쳤군. 그리고 잘도 이용해먹고 있어! 그토록 잘 이용해먹고 있으니 말야. 그리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거든. 그저 눈물을 찔끔 흘렸을 뿐 완전히 습관이 돼버렸단 말이야. 인간이란 비열해서 무엇에나 곧 익숙해진다니까!
(...)만약에 정말로 인간이, 인간 전체가, 즉 인류 그 자체가 비열한이 아니라면 그 이외의 것은 모두...편견이 되는 셈이다. 아무 근거도 없는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왜 거의 모든 범죄는 그처럼 쉽사리 발견되고 그 정체를 폭로당하고 마는 걸까? 그리고 또 왜 거의 모든 범죄의 발자취는 그토록 명료하게 남는 걸까? 그는 차츰 여러 가지 흥미 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원인은 범죄를 은폐하는 물질적 불가능성이라기보다 오히려 범죄자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범죄자 자신은 거의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범죄를 저지르려는 순간 의지와 이성의 상실 상태에 빠질 뿐만 아니라 어린애 같은 경솔에 사로잡히고 말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이성과 세심함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이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이 이성의 혼미와 의지의 상실은 병마와도 같이 사람을 엄습하여 차차 강대해져서 범죄 수행 직전에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그대로의 상태가 범죄 순간까지, 사람에 따라서는 범죄 후에도 얼마 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윽고 그 상태가 지나버리고 만다. 그러나 병이 범죄를 낳는 것인지, 아니면 범죄 그 자체에 그 비슷한 특질이 있어서 늘 병과 유사한 무엇을 동반하는 것인지...하는 의문에 이르러서는 자기도 아직 해결할 힘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직하고 다감한 인간은 저도 모르게 곧잘 속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수완가는 언제나 그것을 잘 들어두었다가 미끼로 삼는단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엔 통째로 삼켜버리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과거로부터 벗어나 있고, 제 생각으로는 이것이 바로 성취된 일입니다. 

살아있는 영혼은 의심이 많고, 살아 있는 영혼은 반동적이야! 

단 하나의 논리로는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일이야! 논리는 세 가지의 경우만 예측하지만, 실제로 그 경우라는 것은 수백만 가지나 되거든!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하는 재능 또는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미래의 사람들 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그 수를 늘립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여서 그 목적으로 인도하지요. 이 부류도 저 부류도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동등하게 소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위대한 슬픔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사람이라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건 낯설지 않다오: Homo sum et nihil humanum a me alienum puto> 
:테렌티우스의 <자학자>

그런데 조금이라도 병이 나서, 유기체 속의 정상적인 지상의 질서가 조금이라도 파괴되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더욱 빈번해지고, 그러다가 완전히 죽게 되면 그는 곧바로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죄인인 이유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당신이 <공연히> 자신을 죽이고 팔아먹었기 때문이야.

그것을 눈치 챈 뾰뜨르 빼뜨로비치는 그 미소를 나중에 젊은 친구와의 관계를 청산할 날을 위해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저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천벌받을 간통을 오히려 기뻐할 겁니다. 그때 저는 제 아내에게 말할 겁니다. <내 친구여,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하기만 했소. 그러나 이제는 당신을 존경하오. 왜냐하면 당신은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오!>  

모두들 자기 일은 자기 나름대로 풀어가는 건데, 가장 자기를 잘 속이는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겁니다. 하하! 당신은 왜 그렇게 도덕률만 내세우십니까?

아! 형식이 이래서는 안 되었어. 내가 행한 일이 그렇게 미학적으로 훌륭한 형식은 아니 었어. 하지만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어ㅐ, 폭탄으로, 포위공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존경할만한 형식이라고 하는 거지?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항상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갈망이 강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서, 당시에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하도록 허용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자신을  감옥으로 오게 한 어리석고 추한 행동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던 것 처럼, 적어도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분노를 느낄 수만 있었어도, 그는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감옥에 들어와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다시금 예전의 모든 행동들을 판단하고 숙고해 본 결과, 예전의 그 운명적인 시간에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큼 자신의 범죄행위들이 그렇게 어리석고 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여기서 신과 악마가 겨루는데, 그 전투의 장은 인간의 마음이다>

인류의 일부는 철저한 자연법칙에 따라 선택받아 나머지 인류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대신 많은 것이 허용되어 있으며
그 허용을 스스로에게 해버린 로쟈-라스꼴리니꼬프는 스스로의 논리에서는 해결되지 않았던 것을
신의 이름안에서 가능했던 소냐의 사랑속에서 어느날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의 범죄, 우연의 자백, 확신에 찬 사람들이 만든 세상
라스꼴리니코프의 기이한 세상 
번역가의 차이 때문일까?반납하고 이어서 다시 빌려 읽기 시작했을때는 완전 느낌이 달랐다.
문예출판사판으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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