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Rebecca|1940

 궁금한 레베카가 적극 등장하는 포스터

헐...묵직한 반전이 숨어있던 레베카.
영화는 공포 서스펜스와는 거리가 멀고 심리물이랄까...암튼 그렇다. 
처음엔 제목이 레베카면서 앞이 왜 이렇게 길지?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이유는 좀 알 것 같다.
그렇긴 해도 히치콕의 영화들은 좀 더 짧은 게 더 집중에 좋을 듯 싶다.
레베카만 해도 두시간이 넘고.
1938년에 출판된 베스트셀러 원작이 있는 영화인데
보는 사람을 원하는대로 믿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선보이는 히치콕 덕에 
댄버스 부인과 맥심을 솔깃하면서 따라가게 된다. 
코빼기도 안보이는 여자의 이름이 제목이면서
각자 다른 감정, 다른 이유로 
그 여자의 기운 아래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신선하다.  

반전의 시작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이 시절의 여배우들 치고는 꽤 연기력 좋아보이던 조안 폰테인.
검색해보니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에 나온 적이 있다.
시기상으로는 이 영화가 히치콕의 헐리웃 데뷔작이지만
다른 영화들을 먼저 보고 난 다음이다보니
평범한 분위기에 연기가 돋보이는 조안 폰테인과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그레이스 켈리의 비교가
요즘에도 한창 벌어지는 얼굴로 반을 먹고 들어가는 배우논쟁을 생각나게 한다.
레베카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연기를 아주 잘하는(^^) 그레이스 켈리가 떠올랐다.



전설적인 배우라는 이름만 듣던 로렌스 올리비에를 드디어 처음 봤는데
미남배우의 샘플 같은 얼굴이다.
이때만 해도 영국과 미국의 액센트는 지금처럼 많이 다른 건 아니어서
약간 담백한 정도의 말투를 구사하는데
좀 뻣뻣하면서도 디테일한 표정이 없어서
처음엔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심이 아닌 줄 알았다--;;
성격 상 여기서는 맞는 캐릭터이긴 해도
지금처럼 얼굴근육단련이 남다른 배우들의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DVD코멘터리]
제작자인 셀즈닉과 히치콕에 대해 책을 쓰기도 한 영화학자 Leonardo Jeff가 들려주는
촬영장 뒷얘기와 히치콕 영화해설인데,
일단 한 사람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코멘터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레베카 외에 다른 히치콕 영화와 시민케인까지 언급된다.
히치콕 팬이라면 꼭 들어보고 싶을 코멘터리.

일단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뒷 얘기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여주인공인 조앤 폰테인를 맘에 안들어해서
촬영 중에도 당시 연인이었던 비비안 리로 바꾸자고 졸랐다고 한다.
그때도 여자관객들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눈썹을 만질때마다 꺄악~을 발산했다고.
드윈터 역에 시민케인의 오손 웰즈도 물망에 올랐었는데, 인물이 좀 안되서 탈락^^
로렌스 올리비에는 그 뻣뻣 스타일의 연기로 명성이 자자한 배우라,
연애물은 어색하지만 의미있는 즉흥연기를 더할만큼 인물표현이 탁월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담배피우는 타이밍을 두고 여러 번 칭찬한다-성적 긴장감을 제때에 잘 표현한다고.

내 눈에 꽤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았던 조앤 폰테인에 관한 여러가지 뒷얘기도 나오는데,
일단 히치콕은 표정 변화가 많은 연기 보다 네가티브 연기
-예를 들면 화를 내기보다 미리 미소를 짓고 있다가 미소가 가시는-를
좋아했다고 한다-히치콕 영화의 배우들의 무표정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히치콕은 애초에 조앤폰테인을 캐스팅 할 생각도 없었는데
제작자 셀즈닉의 아내이자 작업에 참여했던 아이린 셀즈닉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스팅.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눈썹이 1미터나 움직이는 것 같으니 치켜뜨지 말라는 주의까지 받고
눈물이 안나오는 바람에 자기가 자청에서 히치콕에게 뺨을 한대 맞고 눈물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하여간 그렇게 힘들게 찍었는데도 폰테인의 연기는 감독과 제작자 맘에 안들어서
결국 제작자의 사후 편집기술과 여러 가지 후반작업으로 연기력을 극대화시켰다고--;;
영어액센트도 여기서는 배우들이 거의 다 영국배우들이었고
유일한 미국인 조앤 폰테인이 서툰 영국영어를 구사한 것이라고^^
게다가 폰테인은 다른 배우들의 왕따에도 꽤 시달렸다는데...
이 모든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보자니 영화속 주인공과의 싱크로율 상승.

레베카는 히치콕의 헐리웃 입성영화이지만 영국배우, 영국감독, 영국배경, 영국원작, 영국스타일이 만들어낸 영국영화의 전형이라고 했다.
몇 몇 장면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의 심리상태를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솔직히 담배가 성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몇 번 나오는데도 그건 통 공감을 못하겠는...
드윈터 부부의 애정관계는 분석을 들으며 다시 보게 된 장면들.
얼핏 보기엔 점점 가까와지는 것 같았지만
맥심은 고백하는 순간까지도 아버지 같은 애정표현만 하거나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왜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변화는 아무 얘기 안하고 넘어갔을까나....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셀즈닉은 여러 번 시사회를 하면서 영화의 편집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벨의 대사였던 '암이 전염되나?'는 원작에 있더라도 바로 삭제되었다고.
시사회에서 나온 여러 질문도 소개해준다.
댄버스-레베카의 관계, 댄버스-파벨의 관계,
왜 폰테인의 배역은 이름이 없는지,
맥심은 왜 댄버스를 계속 데리고 있었는 지,
레베카는 왜
그렇게 수상한 병원(진료실도 아닌 개인 아파트 같은 곳에 모든 자료가 있는) 의사의 진단을
철썩같이 믿었는지 등등.
이런 의문점에 대해 히치콕은 Icebox Factor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부부가 동네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아까 영화에서 그건 왜 그랬지?'라고 얘기할 만한 것들.
코멘터리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심리묘사에 쏟은 정성에 비해
디테일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정리해준다.
히치콕은 이런 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단다.
거장은 부족한 부분에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붙이는 것으로 끝내는구나.

내용이 늘어진다는 구박에, 배우 연기지적까지
제작자의 역할이 그렇게나 구체적으로 여러 단계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는 지 몰랐는데,
모든 제작자들의 전부 이렇게 일을 한다면
감독들은 참 작업하기 만만찮을 듯.
어쨌거나 내용을 다 듣고 나니
이 영화는 히치콕의 영화가 아니라 셀즈닉-히치콕의 영화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코멘터리에 한글자막이 고맙긴한테 번역이 엉망이라서
한글인데도 문맥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꽤 되지만,
어쨌거나 유익했던 서플.
신기하게도 코멘터리와 함께 본 두 번째는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매 장면 조목조목 뜯어보다 보면 시간이 빨리가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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