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케인|Citizen Kane|1941



존재할 때 미처 몰랐던, 혹은 지나쳤을 모습을
세상을 떠난 후 하나 둘 맞춰간다면 어느 것이 진짜일까.
기자는 그닥 케인의 인간 자체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던데.

약간 반항심도 있었던 어린 소년 케인은
확고한 어머니의 의지로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다.
자신이 부모를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안 케인이
자신을 맡아 줄 은행가에게 덤비자
케인의 아버지는 애들은 역시 매가 필요하다는 말로 사과를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케인의 어머니, 남편이 그렇다고 하자, 말한다.
그래서 이곳은 아이키우기에 좋은곳이 아니라고.

새끼 언론재벌 시절의 케인은
그 동기가 돈이 아니라 야심이라는 것을 빼면
다른 재벌들과 다를 것 없다.
24시간 취재시스템으로 바꾸고, 직원을 갈아치우고,
다른 언론사들을 마구 먹어치우고, 잘 나가는 경쟁사 임원을 통째로 스카웃 하고,
지키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편집인 서약까지 해버린다.
남을 신랄하게 비난하려면
똑같은 짓을 해봐서 그 속을 꿰뚫되
자기 자신은 절대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향한 공격이 날이 항상 날카롭게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케인 스타일~

그러던 그는 갑자기 사랑에 빠져 흑백이라 안보이지만  볼빨개짐 충만했을 결혼도 한다.
물론 그 결혼은 재벌답게(^^) 금방 다른 사랑으로,
겉보기엔 재능도 없던 여가수를 위해 이혼도 불사하고, 정치도 포기하고,
노래선생을 붙여가며 오페라 극장을 장만해주고, 성까지  지어주었다지만,
정작 그녀는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케인은 그저 자기방식을 고집하는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이 모든 것은 진짜로 영화속에 하나도 안 부러울법한 자태로 등장한다
-규모는 어마어마하지만 별로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은 세계의 느낌이랄까...

가장 가슴아픈 이야기는 케인과 가장 오랜 우정(이라고 치자)을 나눈 리랜드에게서 나온다.
그는 케인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 같은데
케인에 대해서 아주 작은 연민도 보여주지 않는다.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속의 케인이 더 호감이 갔던.
로즈버드의 정체 때문에 결말은 식상해진다.
요즘도 많이 반복되는 주제지만 이런 결말은 인생을 참 무책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케인에게도 깨달을 기회는 많았다, 그가 선택하지 않았을 뿐.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계속 하면서 이런 안타까운 회한이라니.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 1위라는 것은 호기심과 반감을 동시에 주는데
아마 이런 장면이 40년대에 찍혔다는 것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호평도 1등에 기여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크레딧에 '특수효과'가 있다!)

케인을 항상 올려찍는다든가, 
크로니클사의 임원사진이 케인의 신문사 환영식으로 이어지던 신선한 장면전환
등등 기술적인 새로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 느릿느릿한 이야기는 좀 지루했다.
아마 그 시절에 봤다면 더 괜찮게 느꼈을 듯.
  
흑백영화의 미덕-20대의 오손 웰즈가 케인의 노년까지 연기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다,
쫌 팽팽한 아저씨 정도? ㅎㅎ

그래도 아직 모르겠어, 시작할 때 나오던 그 원숭이들은 뭐지..?
정성일 아저씨가 필요해~~!
이 분께서는 이 영화를 또 얼마나 알차게 즐기셨을지 생각만해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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