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시원해서 좋았던 포스터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설정에서 한 걸음 더

어딜가나 다 있다-리스트는 항상 흥미롭다. 고매한 인격을 가질 것만 같은 자원봉사 모임에도 내 앞의 이익을 위해 남을 돕는 사람이 있고, 실적이 최우선인 영업직 사원중에도 자신의 실적을 위해 고객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직장도 언뜻 그래 보였다.  개인편의로 국선을 선택한 장혜성, 엄청난 사명감에 불타는 차관우, 노련한 신변호사, 아직 실력발휘는 하고 있지 않지만 소개상으로는 웬만한 변호사보다 판례를 많이 알고 있다는 유능한 사무관 최유창의 조합. 언뜻 평범한 직장 같지만 사실 이 설정은 작가가 한발 나간 결과 이다.
국선변호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두가지 뿐이다. 공무원마인드로 똘똘 뭉쳐 무능을 가장한 불성실한 변호사 또는 정의감에 불타지만 논리에 서툰 그래서 결국은 무능한 변호사. 이따금 국선변호의 예외는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자원봉사는 하는 경우 뿐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혜성의 직장엔 이런 변호사는 없다. 신상덕은 차관우의 우상이 될정도로 전설적인 인권변호사이며, 장혜성은 이기심에 똘똘뭉쳐 있기는 하나 언제 어디서나 반전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자존심이란 게 있다. 처음엔 심장만 있는 무능한 변호사로 그나마 기존의 국선 변호사 이미지의 전형 같았던 차관우는 이제 마음이 아니라 법으로 피고인들을 들어줄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국선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종에 묻어가는 일반적인 배치 같았지만 결국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설정.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인물속으로 한걸음 더

장혜성은 이기적이면서 자존심 세다-까지는 특별할 것 없었는데 의외의 뻔뻔함과 솔직함이 매력을 더한다. 칭찬받은 유일한 장점이 자기 것이 아님을 술주정으로 한탄할 때-눈이 썪었다는 대사가 이렇게 웃기긴 처음^^-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하고 밥먹다가 동료들에게 들켰을 때,  차관우와 데이트를 하기 전 단추를 어디까지 풀어줄 지 고민할 때, 장혜성은 입체가 되었고 예뻐졌다.

그다음 주인공 박수하. 일단 박수하는 마음을 듣는 재능만으로도 특별하다. 거기에 십년 동안 은혜를 사랑으로 치환시킨 놀라운 재주가 있으며, 혼자서도 잘 살고, 그러면서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한다. 고등학생 교복에 갇혀-사실 생활을 보면 별로 갇힌 것 같지도 않지만-있다는 것을 빼자면 엄친아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환상적인 캐릭터다. 거의 완벽한 설정에 가까운 것에 비해 그동안은 설정보다도 외모의 매력지수가 높은 건 아직 수하가 보여줄 것이 많다는 뜻? 한 가지 수하가 하지 않고 있는 일 중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나라면 민준국을 만났을 때 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는 지 묻고 싶을 것 같은데. 남은 이야기들과도 관계가 있을까.

차관우. 어눌함을 가장하고 등장했지만 따져보면 이런 완벽남이 없다 존경하는 국선변호사의 뒤를 좇아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변호사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장혜성과 달리 차관우는 태도 면에선 언제나 신상덕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까). 열심히 일하고 이긴다. 찍은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것도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단박에 성공했다. 속도 없어 보이던 사람 좋은 웃음과  8:2가르마, 흰 양말로 코스프레하고 있었지만 사실 차관우는 신의 경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차관우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장혜성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신상덕이 항상 직언으로 장혜성을 찔러 움직이는 것에 비해 차관우는 장혜성을 지지하면서도 자신은 온몸으로 혜성이 배울 바를 한발 앞서 실습해 보이고 있으니까.  

민준국과 어춘심의 대결은 힘이 넘쳤다. 공포스러운 살인의 현장이지만 오히려 민준국은 다른 어떤 장면에서보다 속을 많이 들켰고 신념있는 엄마 어춘심은 마지막 한 마디로 죽었어도, 승리한다-내 딸 그렇게 못나게 키우지 않았다-는. 어느 부모도 쉽게 할 수 없을 그 한마디에서 발산된 믿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민준국은 어춘심의 숨은 끊었지만 그녀를 죽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그녀의 가장 강렬한 신념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로서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자라야 한다

아직까지 성장은 장혜성과 그보다는 조금 빠르게 배우며 사범이 되고있는 차관우의 몫인 것 같지만 전개가 더 되고 나면 신상길과 민준국도 어떤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그런 면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정도였던 어춘심이 일찍 하산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인 것 같다.  언제나 진실을 알고 있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어린 수하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청소년이니 성장이 당연한데 설정상 수하는 더 성장할 수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하는 반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결정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마도 수하사마의 결정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끌려가게 될텐데 거기에 대처하는 또 다른 사마 차관우와 평민대표 장혜성의 성장이 기대된다.

1-2회를 놓치고 3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특히 7-8회는 압권이었다.
CCTV를 망가뜨렸을 것이라 추정되는 상황 증거가 있고, 악연이 있으며, 전과자인 피고인의 재판이라면 아마 현실에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중형을 받을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론으로 공정한 법을 등장시키고 원칙을 따르는 주인공들의 힘이 보내지면서 재판은 사람들의 상식적인 판결을 넘어선다. 보통 사람들이 믿기 힘들 이 관대한 반전을 믿게 만들기 위해, 재판은 위증을 할 증인에게만 집중하도록 좁아져 있고, 혹시 의심할 사람들을 위해 신상덕이 미리 포석을 깐다. 그 뒤로 이어지는 차관우의 변론은 유일한 장애물을 뒤집어 증거로 활용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될 것 같지만 일단 드라마 속에서는 가능했다.

위법을 써서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서도영의 아버지 서대석의 논리에서 신상덕을 통해, 범인을 잡겠다는 맹목보다는 위법이 틀렸다는 메시지를 주기는 하지만, 이 법정은 한편으론 재판이 법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엄중해보이는 판결이 유능한 논리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달라질수도 있다는 회의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것도 법을 공부한 장혜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재판을 앞두고 한 일이 판례를 찾은 것이 아니라 검사를 찾아가 진심없는 예의로 한 구걸이었다는 것은 민간인 입장에서는 더 슬픈 일이다. 대부분은 저렇게 찾아가 비굴하게나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으니까.

유일하게 버려진 캐릭터 서도영은 좀 안쓰럽다. 십대에 잘못 꿴 단추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교훈이라면 모를까 도영은 지금 무능한 검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신념의 문제도, 태도의 문제도 아니고, 별짓을 다해도 안되는 진정한 무능함이다. 어쩌면 도영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의 검사들에 대한 가장 큰 손가락질 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를 더하는 건 아마도 의도적일 슬랩스틱 코드. 아직까지 최고는 칠랄레 팔랄레 하던 차관우지만 소소한 몸개그들이 매회 조금씩 빛을 발한다. 역시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는 걸거야, 말보다는 몸^^

오늘 다음기사에서 발견한 반짝 댓글들: 정말 꼼꼼한 시청자들.
난 증언이 저렇게까지 치밀하게 복수할 일인가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더 궁금한 건,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오점을 감춘 작가의 기술,
그리고 거기 또 기꺼이 넘어가주는 시청자 심리랄까....


"엄마는 2012년에 죽었다"..'너목들', 2막 반전 포인트 ③

한사랑님 다른댓글보기
아타까운 건 이 드라마에 오류가 좀 있다는 것!!
감방동료가 그랫죠? 민중국이 장변사진을 스크랩하고는 갚아야할 빚이 있다고... 민중국은 10년전 사고를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장변에게 갚아야할 빚은 복수밖에 없습니다. 수하에게는 아빠의 죽음이란 빚이 있지만 장변은 민중국으로 인해 피해본게 없습니다. 당연히 치킨집을 찾아가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구요. 또하나 오류는 민중국이 서도연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면 ..왜 서도연과 미팅했을 당시 그녀가 10년전 사건의 목격자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해명해주실분..
 16:15|신고
답글 36
소담님 다른댓글보기
맞아 오류 얘기하니까 저도 생각나는게 있네요
민준국은 분명 치킨집에서 가명을 썼는데 주민들이 호의적이었다고요? 수사할 때 본명으로 물었다면 다들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했을 텐데요.
 16:39|신고
답글 2

----스포일러가 퍼진 후부터 열심히 스포일러를 피해가는 이야기를 보자니
아니 대체 대본을 언제 써서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생방송 시스템의 놀라운 순발력이 감탄스럽고,
그러다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가지 애정씬들은
스포일러의 선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설마 늘어난 분량을 다 이렇게 때우지는 않겠지....? ㅎㅎ

-----------꼼꼼함을 참 좋아했는데 뒷모습이 너무 들떠보이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좀 흐트러질 수도 있고
스포일러라는 폭탄을 피하느라 고생도 많았을 테고
반복되는 옥의 티 따위는 시청률과 상관없다는 걸 아는 배짱은 이해되지만
그런 '사소'한 것 까지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안다면
이 느슨함을 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15회와 16회의 법정은 이전의 법정과 다른 느낌이다.
무능하던 서도연은 처음으로 자신을 버리는 결단을 내렸고,
법의 과오는 26년의 세월을 너머 다시 법정에 불려와서 심판을 받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7년도 아니고 28년도 아닌 26년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들을 위한 이 강렬한 에피소드에서
신상덕을 향한 카메라는 따뜻했다.
모두가 힘들게 노력한 승리에 취하는 게 당연해 보일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또 한사람.
늘 성실하게, 바르게 살아온 사람의 반성은
과오가 심판을 받은 후에도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서판사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때 다시 빛을 발하는 또 한 사람, 차관우.
처음, 속물에 싸가지로 외면받던 장혜성에게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듯이
가슴 아픈 회한으로 닫힐 것 같았던 신상덕의 문고리를 붙잡아주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열심히 산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
박수하는 어느날 갑자기 갖게된 특별한 능력으로 마음을 듣는다지만
차관우는 스스로의 삶으로 닦아온 마음의 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들속에서 희망의 모습을 따뜻하게 끌어내주고 있다.
참 멋있다, 이 남자.

PS. 지명수배중인 민준국에 대한 단서가 나왔는데도 바로 체포수사를 안한 이유는 뭘까?
PS2. PPL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의상과 소품으로 인물을 설명한다는 것은 이제 한국드라마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인가?

------------드디어 대단원.
솔직히 마지막 두 편은 과감한 낚시질-마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듯 던져놓고는
과감하게 말장난으로 마무리 해버린-과 PPL과 서비스용 연애씬들로
초반의 긴장감은 거의 사라진 아쉬운 결말이었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맘에 들었다.
민준국이 10회에서 죽는다는, 연장이 없던 원래의 버전이었다면
1회부터 16회까지 알찬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드라마로서 새로움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발적 훼손으로 상업적 성공에 부역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준
씁쓸한 화제작으로 기억할 것 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