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서울의 달빛이었다는데 결말을 생각하면
쓸쓸한 서울의 달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고...
상큼한 다음버전^^
"사랑해...영숙아...난... 지쳤어..." 라고 했지만
홍식은 이 말을 하고서도 살겠다는 몸부림을 쳤었다.
누워 바라보던 서울의 달을 마지막 세상 풍경으로
홍식은 쓰레기통 옆에서, 서울의 외면 속에서 죽었다.
생각해보면 참 엄격한 권선징악.
쓰레기 같은 놈이라쳐도
마지막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물만큼은 사랑받던 홍식이라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장사를 하던 제비가, 결국 법이 아니라 사랑의 심판으로 죽는 건
피할 수 없는 비극이지 싶다.
그 덕에, 1회와 달리 성실하게 살아가기로 한 다른 주인공들의 행복한 인생반전은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뺀질거리는 직업의 대명사가 제비인데 홍식은 항상 '노력'을 강조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춤이면 춤, 골프면 골프 밤낮 없이 열심이고 본격적인 '낚시'에 들어가서도 정보전에 열심이다.
낯선 곳에서, 심한 경쟁틈에서 느끼는 좌절과 고립은 어쩌면 통과의례같은 것일수도 있는데
홍식은 어디를 다쳤길래 서울에 대한 복수심을 그렇게나 불태우게 된걸까.
악역이 주인공인 것도 처음 같지만, 처음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제비한마리가 있다는 말이 그렇게나 와닿았다는데 그 제비는 어떤 제비일까...
홍식의 마지막, 막동이의 전조도 보이는 한석규 갤러리.
춘섭의 발견: 영숙의 눈으로 보던 진상찌질이가
호순의 눈으로는 이렇게도 보일 수가^^
잊고 있던 개성있는 음악의 고향이었네...
가끔 옛날TV 케이블이 따로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프로그램들이 좀 있다.
DVD같은 게 나오기도 전, 한류가 없던 시절의 인상깊은 드라마들이 그렇다.
아마도 다시보고 싶은 드라마 고르기를 하면 꽤나 상위에 오를 것 같은 서울의 달은
벌써 몇년째 보고 싶은 드라마였는데 세상에나..
혹시나 검색해본 유튜브에서 mbcclassic이라는채널로 전 편이 다 올라와 있는 것이다!
1회는 없어서 못보고 2회부터 계속 보고 있는데
거의 20년 전 드라마이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요즘과 다른 건, 아무리 잠깐 나오는 조연이어도 발연기는 절대 없다는 것.
이런 건 신기하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연예계야 말로 인력이 넘쳐나고
자본도 훨씬 많이 받쳐주는데 왜 품질은 그만 못한 건지...
홍식-춘섭-영숙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국민엄마라고 불리는 김해숙의 좀 어린 엄마 시절이 나오는데
목소리가 좀 높을 뿐 이때부터 명연기다.
좀 재미있는 건 유일하게 가끔 어색한 나문희.
지금의 그 무게감에 비하자면 이때는 신인 중년연기자 같은 느낌? ㅋㅋ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대근도 나오고...
윤미라가 연기파 배우라는 생각 안해봤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해맑은 백치미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마는 이런 역할은
윤미라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표정밖에 생각안나던 백윤식은 엉뚱해 보이지만 휴머니즘 넘치는 인물이었고,
김용건의 애잔한 러브스토리도 처연하고,
셋방살이 부부와 아들의 이야기도 잔잔하다.
이제 후반부에 접어들면 홍식과 결혼하는 이미지도 나오고
깜찍한 호순이 김원희도 등장할 예정이라 기대된다.
요즘 드라마속의 가난은 두 가지 뿐이다.
인물의 욕망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 혹은 분노의 원인.
그러다보니 가난이 뭐다 보다는 가난은 이래서 나쁘다가 도식화되어버렸다.
가난이 아름답다고 미화할 것 까지야 없지만
얼어버린 수도에 좌절했다가
따뜻한 물을 부으며 조금씩 희망을 갖고
결국이 물이 나올때 기뻐하는 모습 같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냥 바라볼 수 있는 가난의 다양한 일상,
가난에도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는 사실이
아예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 꿈꾸던 미래는 외관상으로는 오래 전에 왔다.
상국이네 식구들은 열심히 돈 벌어서 아파트로 이사했을까?
단지 집없는 설움이 싫어 번듯한 아파트를 원했던 욕망의 끝에서
혹시 지금은 아무 목표도 없이 돈만 긁어모으며 살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번번이 대한민국의 풍파를 정면으로 얻어맞아
지금은 아예 희망도 없이 분노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까?
그 결과들은 20년이 지나 그 시절의 미래인 지금도 확실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20년 후가 그보다 확실하지도 않다는 것이 더 우울한 일이다.
----상국이네는 마지막회에서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간다.
공사장 일용직과 커피집 아르바이트 맞벌이로 아파트는 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서민드라마이다 보니 서울의 달에는 물가를 짐작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서 흥미를 끈다.
재벌들도 이 드라마 한 편이면 버스요금 70원 같은 소리는 할 일이 없던 시절~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울의 달로 보는 물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김밥...지금 1000원짜리 김밥은 대체 정체가 뭐냐 싶고,
고깃집 회식회비도 비슷한 것 같아서
식당주인들의 남는 것 없다는 얘기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닐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지금은 좀 아니지만 한때 교통요금 싸기로 유명했던 우리나라에서
마을버스비가 4.5배 비싸질 동안 임금상승 정도를 생각해보면
가격이 붙은 모든 것들 중 노동이 꼴찌구나 싶다.
인터뷰ㅣ「서울의 달」의 한석규-이미지 ‘양면화’에 성공한 행운아 [MBC 가이드][인물] 1994년 10월호
91년 제20기 MBC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평범하면서도 지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온 한석규는 10월 16일 막을 내린 주말 연속극 「서울의 달」에서 야누스적인 인물인 홍식을 잘 소화해내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한석규-이미지 ‘양면화’에 성공한 행운아
“홍식은 제겐 특별한 역할이었죠.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는 배역일 겁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두 농촌 청년의 서울 생활을 그린 주말 연속극 “서울의 달”이 지난 10월 16일 막을 내렸다. 탄탄한 구성과 잔잔한 재미 등 방송 초부터 최종회까지 수많은 화제를 뿌린 이 드라마는 홍식 역을 맡았던 한석규 개인에게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주말 연속극에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에 그 기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기쁨의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으로 바뀌더라고요. 다행이 홍식이란 인물의 성격을 나름대로 파악해가면서 자신감을 가졌고, 연기자가 한 역할에 몰입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됐죠.”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가 맡았던 홍식은 이를 테면 악역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랑까지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의 직업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제비’. 그러나 한석규는 이러한 악역을 악역으로서만 끝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홍식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면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저는 홍식을 불쌍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멋있는 구석도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뒤끝이 없는 남자죠. 사람은 천차만별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 똑같습니다. 내 성격 중 홍식과 가까운 면들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홍식과 같이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됐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홍식을 닮아가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인간의 약점, 본능, 슬픔 등을 더 치열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만큼밖에 하지 못했을까 하고요.” 사실 한석규는 단정한 용모에 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이웃집 오빠’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스스로도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연기자로선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때 자신의 직업으로 성우를 택했을 정도로 그의 개성은 조금은 약한 듯하다. 하지만 한석규는 이번의 「서울의 달」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평범하고 부드러운 청년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사실 처음에는 홍식이 이전의 배역들과는 너무 달라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걱정스러워했어요.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눈이 날카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아마도 제 눈의 쌍꺼풀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비치나 봐요. 연기자가 양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았고 힘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데뷔 시절부터 이어지는 운 때문이라고 말한다. 91년 데뷔하던 해에 MBC 탤런트 20기 동기생 중에서는 처음으로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고정 배역을 맡았고,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에서는 귀남 역인 최수종의 대학 친구로 잠시 등장할 예정이었던 그가 후남 역의 김희애의 상대역으로 내정됐던 문성근 대신 그 역을 차지하게 된 것. 특히 가난하고 마음의 상처를 지닌 후남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석호는 부와 명예, 인격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는데, 이 역으로 인해 한석규는 성실하고 밝은 남자라는 이미지를 얻어 청춘 스타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10월 중순까지 그는 「한 지붕 세 가족」「서울의 달」「도전」의 세 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9월 23일에는 녹화 일정이 겹쳐 하루에 세 드라마 녹화를 동시에 해야 했다고 한다. “우선 부끄러운 마음이에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한 가지도 잘 하지 못하면서 너무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요. 데뷔 초창기만 해도 겹치기 출연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무슨 고집처럼 갖고 있었는데, 드라마라는 것이 여러 사람이 더불어 함께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만의 생각을 고집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드라마에 임할 대는 무척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이런 과정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가 이렇게 바빠진 것은 이승렬 프로듀서가 연출하고 있는 미니시리즈 「도전」에 갑자기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파일럿」에서 이승렬 프로듀서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그는 평소 그의 완벽한 연출 스타일을 존경해온터라 「도전」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드라마가 이미 진행중인 데다가 일정 또한 여의치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중간에서 화해의 매개체로 나서는 알렉스 김이 한석규가 맡은 역할. 한국계 영국인으로 여섯 살 때 영국 가정에 입양 됐지만, 아픔을 극복하고 젊은 나이에 박사까지 된 인물이다. 알렉스 김은 「서울의 달」이전의 배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편한 점도 있지만 이전과는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은 더 크다고 한다. “밝고 쾌활하고 사려깊은 유러피언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인물 성격에서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렵고 해서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이미지를 많이 바꾸어주니까요. 이미지 변신이란 하나의 어려운 숙제죠. 이건 시청자를 위한 것보다는 연기자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죠. 어느 선배가 ‘연기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학대하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 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어요.” 한석규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연기자이다. 2년여의 성우 경력이 말해주듯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고, 노래 실력은 대학시절 “MBC 강변 가요제”에 나가 입상한 적이 있는 ‘수준’이다. 요즘은 장르의 구별없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연예인도 많지만, 한석규는 이러한 것들이 자신이 맡은 역을 완벽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 아직은 연기만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한다. 10월 말에 미니시리즈 “도전”이 끝나면 한석규는 당분간 드라마에서 모습을 감춘다. 광복 50주년 특집 드라마 “전쟁과 사랑”의 준비를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 이미희 홍보국 출판부
나는 김기덕이 싫다.
얼마나 깊은 고뇌인지 이해할 맘이 들기에는
강간과 폭력 없이는 표현되지 않는 그 내면이 너무 처참해서
더는 마주할 담력이 안 생겨준다.
지금까지 나쁜 남자가 마지막인데
세상의 모든 영화상을 영화상을 휩쓸고 돌아온다 해도
내 평생 김기덕 영화는 나쁜 남자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김기덕의 새 영화 뫼비우스에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이 있으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으로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겨서
제한상영관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상영금지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기덕 답지 않게 삭제까지 해서 다시 등급신청을 했는데도.
하지만
독재자 딸이 대통령이 되고
국정원은 조작정치를 하고
통계청은 통계 조작하고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가 쫓겨나지도 않은 채 다리뻗고 잘 살고
인권을 개나 줘버린 CEO 대통령은 떼 돈 벌어 잠적하고
...참 혼자 보기 아까운 걸
전체관람가로 생방송해대면서
소시오패스 꿈나무들을 무럭무럭 키우는 주제에
제한상영가?
꼴값 떨구 있네, 정말...
저런 영화 한 편 보고 따라서 미쳐날 뛸 정도로 덜 떨어진 국민들에게
투표권은 어떻게 믿고 주니.....?
변형된 고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태숙 연출가의 첫 작품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첫 공연이 벌써 15년 전이라고 하고,
이번 공연은 그때보다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지만,
내게 레이디 맥베스는 잘 자란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며
지금 성장한 재능이 그 시절엔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연극이었다.
원작의 맥베스는 예언에 기대 탐욕이 깨어나고
그 욕망을 실현하는 두 개의 자아가 일으키는 갈등의 드라마라는데,
레이디 맥베스는 그 시작고리가 분명치 않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말 것을 알면서
굳이 희망이라 부추겨 기회를 잡으려는 욕심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왕을 죽인 것은 맥베스 부인.
그러니 이 극은 멕베스 부인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맥베스의 여자 버전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남자는 성공과정을 즐기지만
여자는 남자가 이룬 성공 자체를 즐긴다면서
결국 그녀는 그렇게 편승해가지 못하고 자기 손에 피를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늙은 왕의 몸속에 그렇게 많은 피가 있을 줄이야...
물 한 컵이면 씻어질 줄 알았던 피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그녀는
손목을 자르겠다고도 절규한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었을 그 저주같은 예언은
네 사람의 강렬한 몸짓과 주술같은 반복으로
극이 끝난 지금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끈 떼어버릴 수 없었던 유혹의 제 몫을 다했다.
연회장면의 음악도 멋있었는데
두 개의 활로 빠른 템포를 연주하던 그 소리는
클럽에서 틀어도 몸이 움직이겠다 싶게 꽤 격렬했다.
진흙 덩어리, 밀가루 덩어리들로 잔혹함을 묘사해내는 이런 연출을 보면
직접적인 묘사에 천착하는 김기덕의 정신세계의 황폐함이 좀 딱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홀린듯 끌려다니다가, 뜨거운 피로 유혹하기도 하고, 떨칠 수 없는 것을 떨치려 몸무림치던
서주희의 맥베스 부인은 강렬했다.
꿈속에서는 조종당하는 경박한 맥베스로, 맥베스 부인의 현실에서는 충직한 의사로,
내내 무대위에서 극의 안팎을 잘 이끌어 가던 정동환에게도 박수.
하지만 한태숙의 극은 배우들 뿐 아니라
무대의 바닥에 까지도 박수를 보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대의 어떤 물건 하나도 제 몫을 하고
다음엔 어딘가 쑥쑥 자라나 자란 만큼의 재주를 선보일 것만 같은.
다만,
탐욕과 유혹의 정서로 보자면 맥베스를 뛰어 넘지 못한 이 이야기,
그렇다고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지도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애초에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는 의문이 남았다.
레이디 맥베스는 극 자체의 힘과는 상관없이
그저 재능있는 배우들과 음악가, 안무가, 연출자의
한바탕 장기자랑 무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야심 넘치는 실험정신의 테두리속에서 그려진 것 같다는 생각.
질소냐...달겨드는 하정우 배우
-전지현 배우의 경우 섰다하면 의상 카다로그 같은 모습에 오히려 스킵
멋지다는 건 멋진건데...좀 이상한 마이너스.
동명수 아닌 , 그리고 동명수인 승범
다시 보고 싶은 걸, DVD 나오면 보려고 다운로드를 외면해가며 오래 기댜렸다, 베를린.
DVD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코멘터리와 부가영상에 대한 기대도 매-우- 컸는데-
석규 형님의 광팬으로서 베를린의 코멘터리는 많이 속상하다.
돌이켜 보면
시사회를 빼먹은 주연배우가 정말 용서안되는 류승완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류승완, 류승범, 하정우, 전지현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반목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코멘터리가 그저 속상할 밖에.
석규형님의 열연이 펼쳐지는데도 계속 딴 얘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초반, 따로 놀았음을 숨기지 않는 짧은 언급에 이어
좀 촐랑거리기를 바랬는데 중후한 중년이 되었다는 식당 씬,
'접신'의 순간이었다는 CIA요원 마티의 총격 후 장면을 빼고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다.
너무 속상해서 아예 코멘터리를 이정범-류승완 버전으로도 바꿔봤지만
거긴 서먹한 두 사람의 액션 얘기 뿐.
코멘터리 뿐 아니라 메이킹에서도 석규형님 홀대는 계속 된다.
영화 베를린에서는 액션콘티를 위해 배우들이 직접 액션 연기를 보이는 것을 촬영하는데
표정연기에 전혀 숙달되지 않은 대역 액션배우도 그렇게나 오래 클로즈업하면서
석규형님의 액션 촬영 장면은 별로 없다.
액션지현을 칭송하느라 전지현의 대역배우는 열굴도 안보여준 것과 대조적이다.
마치 모든 액션장면은 진짜 전지현이 다 한 것처럼...
심지어는 보기에 꽤 괜찮았던 석규형님의 삭제씬 하나는 이유조차 설명 안해주고 넘어갔다.
그나마, 류승완 아닌 다른 사람이 편집한 것 같은 One Way라는 부가영상에서만
석규형님이 좀 자주 등장하는데
류승완 감독의 우호적인 말들은 영화 개봉전 공개되었던 홍보용 장면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 뿐이다.
촬영기간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건지 나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다시보고 싶어서 DVD를 찾는 관객들에게
굳이 이런 느낌을 전해줄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일년도 더 지난 뒷얘기를 가볍게 전했을 뿐이지만
난, 어쩐지 촬영기간 내내 소통되지 못한 한석규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코멘터리 끄고 영화나 다시 봐야지...
Disc 1 - Commentary by 류승완 감독, 하정우, 최영환 촬영감독, 한재덕 프로듀서 - Commentary by 류승완 감독, 이정범 감독
Disc 2 - 베를린, 리가 (로케이션) - 액션설계 (프리프로덕션, 액션콘티 제작과정) - One way (메이킹) - 소리를 만들다 (사운드 믹싱 및 효과음 제작과정) - 삭제장면 with Commentary - 티져 예고편 - 예고편
헝가리 사람들과 영국사람들이 국적을 내세우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특히 인생의 가혹한 순간에 적어도 어떤 특별한 것의 일부라는 감정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서 한동안 같은 집에 살았던 친구, 케빈이 어느 날 밤 삶에 지쳐서 배터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케빈이 뛰어내리지 말라고 그 남자를 설득한 논거는 <당신은 영국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인에게 <당신은 독일사람이라는 것을...>이라고 말하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뛰어 내릴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떤 특별한 것의 일부라는 느낌과 교만이 뭐가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사람이 안 뛰어 내린 이유나 독일 사람이 뛰어내린 이유는 똑같은 소속감 같으니까!)
웬지 웃겼다.
크게 부유해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번째 가능성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소원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악착같이 일을 하며 누리고 싶은 일들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실제로 소원을 이루게 되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확정짓는다. 두번째 가능성은 소원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 첫번째 가능성이란...! 개콘 쇠고기 영감님의 놀라운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는 한 말씀이 아니신가!
원래 욕망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끓고 있는 에너지라서
미래의 과실이 아무리 탐스러운들
현재의 끓는 점을 놓치고 나면 김빠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원하는 것을 뭐든 사주는 부모의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옆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 모른다.
꼭 그렇게 자라지 않은, 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통과했다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장년층을 보자면
욕망의 제어가 꼭 그런 부모 탓만은 아닌 것도 같지만,
욕망을 억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행복의 조건을 넉넉하게 만들어서 손쉽게 행복해지라고
계속 얘기하는 중이기도 하니까.
미국의 소비반대주의자들은 <하루라도 물건을 사지 말자>라는 운동을 생각해냈다. 그러면 겸사겸사 운동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천재적인 발상이다. 일주일에 하루, 예를 들어 금요일을 선택하여 현금이든 카드든 절대로 1센트도 지출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신용카드콘돔>을 대중화시키려는 운동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요지는 <너는 정말로 이것이 필요한가?>, 아니면, <너는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이것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쓰인 작은 봉투안에 신용카드를 넣어두자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살 때마다 신용카드콘돔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야 한다.
소비자가 아니면 대접받지 못하는 자본주의시대에 공허함을 위로하려는 소비가 필수적인 소비보다 많을테니 실패는 당연하다. 공허함은 위로받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대대적인 운동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런 브레이크 덕분에, 공허함에 지지 않을 '나'를 단련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마크 리치는 (탈세, 사기, 불법거래 혐의 FBI수배자)추크나 몬테카를로, 버뮤다 같은 장소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인간유형, 호화스러운 감옥수감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탈세범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서나 살 수 있는데도, 그 엄청나게 많은 돈 중에서 조금 세무서에 떼주길 꺼리는 까닭에 굳이 추크 같은 시골 구석이나 섬을 선택하는 인간들, 아주 가련한 종자들이다.
무릎을 칠만한 탁월한 관점이었지만...폰 백작님은 한국을 잘 모르시니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깔보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어디에서도 독재자, 탈세범들이 망명하지 않고 제 집에서 다리 뻗고 사는 경우가 없건만, 한국에서는 아무 지장없이 잘 살 수 있다...!
나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만이 아니라, 최하층을 포함하여 모든 점잖은 사람들에게서 국가의 관습으로 보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들도 삶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여긴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생계보조의 임무는, 보조를 받는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에 어울리는 사람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독일 연방 생계 보조법 제1항>
사치는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고 가져야 하는 모든 것은 포기하는 것<카를 라슬로, 사치를 위한 호소>
사치라는 말은 무절제, 과함의 이미지가 강렬해서 이런 정의들을 좀 어거지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난해지는 입장에서 부자에 꿀리지 않는 부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실용적으로 수정된 정의라 치자.
도덕률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는 명령이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을 단념하고 저것을 회피함으로써 그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률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는데 비해, 미덕은 무한하다는 불굴의 장점을 가진다. 사랑하거나 신뢰하거나 희망하는데는 원래 한이 없는 법이다. 또한 누군가가 도를 넘어서 현명하거나 용감하거나 정의롭다는 말은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핍의 시대에 우리는 미덕만큼은 자책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해야할 것이다.
가난에 이어지는 훈훈한 마무리. 하지만 미덕이란 또 무엇인가요.
거기에는 불쌍한 부자들을 향한 연민도 포함되는 것인가요....
책 머리에서 이미 이 책이 별로 실용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는 하지만, 솔직히 꽤 재미있게 들리는 제목 속에 엮은 부분부분 허술한 인문서 같은 느낌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약간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가진 독일 사람에 의해 번외편으로 다시나타난 것 같은.
좀 맘에 안들었던 건 사소한 가지들까지는 크게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토크빌을 자기 맘대로 보수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라고 결정해버리고,
사치를 저렇게 정의하면서 구멍난 셔츠를 즐겼다는 체 게바라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게 대단한 삶의 모순인 것 처럼 슬쩍 흘리는 건 또 뭐고......
좀 오락가락 하신다.
좀 신선했던 점이라면
한국에서 예전에 배우던 편협한 독일인의 이미지는
절약이 몸에 배어 허례허식따위는 없다-였는데,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는 있어도 독일 얘기가 많이 나오긴 하니까)
독일에도 그런 부자들이 있구나-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독일인의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쉬운 건 필자의 말투 자체가 코드가 맞으면 참 재미있기도 할 것 같은데
내게는 그 재미가 많이 전해지지 않았던 점이다.
그래도 이런 제목 아래 씌어진 책을 읽으며
각자가 자기만의 가난을 정의하면서
반대로 자기만의 풍요를 즐기게 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난은
꼭 하고 싶은 것을 순전히 돈 때문에 못하게 되는 것.
잘 생각해 보면 돈이 제약이 되는 경우야 많긴 하지만
내가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거나
다른 상황은 다 괜찮은데 딱 그 일을 할 돈이 모자라서 못하는 경우 보다는
오히려 지금 이걸 하고 나면 나중엔 어쩌나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큰 경우가 많으니까.
전엔 같은 책을 완전 다르게 읽은 사람을 보고 신기했는데
이번에는 정 반대였다.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은 내가 접고 싶은 부분마다 다 접은 자국이 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