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웃음의 대학|2011

웃음의 대학 오늘의 캐스팅
검열관 송영창
작가   정경호


우디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생각한다면 참신함이 좀 빠지겠지만
(영화에서는 말 뿐 아니라 진짜 총살--;;을 시켜버리기도 하니)
뿌리에 닿아있는 직업관과 인간사이의 유대감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려운 화두다.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정의롭지 않은 원칙에 순순히 따를 수 있는가.
내가 견뎌낼 수 있다고 해서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가.
내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옳지 않음에 감사해도 괜찮은가.

모든 저항이 실은 
다수를 위한다고 믿는 소수의 강력한 결단이라고 생각할 때
애초에 그 결단을 내릴만큼 부당함을 느끼지 못하는 소수는 어찌하나.

한계에 도전하는 개인의 노력은 존경 혹은 경외가 되기 마련이지만
정의롭지 못한 것을 놀라운 정신력으로 견디더라도 비겁이 된다.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소신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뿐.
신념없이도 속으로는 맘껏 비난하고 있는 개별인생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던 무대.
아니다.
사실 이 연극은 작가의 입장을 강변하고 감싸고 있었으니
옆구리 찔린 나는 지레 찔린 것일터.
어쨌거나
즐거웠던 두 시간.

나를 처음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던 송영창을
연극무대에서 근 20년 만에 봤다.
근엄과 쾌활의 경계를 오가는 모습도 일품이었지만
사실 나는 검열관에 빠져
초반 검열관의 모니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진짜로 공감했다--;;

꽤 옛날 같지만 
한때 검열이 신문을 도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현세의 만화를 두고 
외설을 논하는 검열관들의 상상력을 비웃던 시사만화들도 기억이 난다.
검열관이 어마어마하게 공명정대하며 
많은 대본독서 끝에
-사실 그렇게 대본을 읽어대야하는 직업이 얼마나 되겠어,
습작생들의 공부 1단계가 대본읽기라는 걸 생각하면
검열관들이 작가로 전업을 한다는 게
절대 말도 안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1인-
창의적인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해도,
그로 인해
잠재력이 엄청난 새로운 연극 팬 하나가 탄생한다 해도
창작에 반하는 검열관이라는 제도나 직업자체에 찬성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어떤식으로든 등급판정 같은 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개인의 역량과 철학이 더 중요할 것 같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화두를 던지면서 웃겨주시는 웃음의 대학.
나중에 다른 캐스팅으로도 한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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