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내가 아는 단 한 사람에게 바치고 싶다.
..자신의 악행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나의 깊은 내면에는 아주 선한 나, 진짜 나, 천국에서 만들어진 내가 감춰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헌정할 만한 단 한 사람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이름밖에는.
그러니 나는 다음과 같은 헌사로 나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이 책을 하워드W.캠벨 2세에게 바치노라. 그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악에 봉사하고 너무나 은밀하게 선에 봉사했다. 이것은 그의 시대가 낳은 범죄였다.
사기와 신념과 용기를 훼손하기 위해 적과 공모한 죄,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를 허락한 국가는 애국가의 가면을 쓴 적에게 취약하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언론과 출판의 자유에 편승하고 그 권리를 이용 및 남용하여 반국가적인 사상을 유포한 죄,
정직한 비판인양 가장하여 공화주의 정부의 적절한 기능을 방해하고 훼손하고 분쇄하고 파괴하려 한 죄,
미합중국 육군과 해군에 소속된 군인과 국민의 신념과 용기를 꺾어 정부를 취약하게 만들어서
외부의 무장세력과 내부의 반역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수호할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 죄.
-하지만 지금은 자네가 간첩이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는다네. 그 이유를 아는가?
...자네가 우리 독일에 봉사한 것만큼 적에게 봉사하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세.
도덕적 재무장운동은 절대적인 정직, 절대적인 순수, 절대적인 이타심,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겁니다.
존스는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 전형적인 전체주의 사고에서 당황스러운 점은 사고기계를 돌리는 어느 톱니바퀴든 그 원주 위에는 제멋대로 갈려버린 톱니 말고도 갈리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제대로 작동하는 톱니도 있다는 것이다.
...톱니바퀴의 톱니를 일부러 갈아버린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정보를 일부러 무시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존스, 킬러신부, 크랩타우어 부회장, 흑인지도자로 이루어진 말도 안되는 가족이 비교적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의 장인이 하나의 마음으로 여자 노예에겐 냉담하고 푸른색 화병에는 지극정성를 쏟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아우슈비츠의 지휘관 루돌프 헤스가 확성기를 통해 위대한 음악돠 시체운반원 소집 명령을 번갈아 내보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나치 독일이 문명과 광견병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사고기계의 톱니를 일부러망가뜨린 적은 없다. 단 한번도 스스로에게 "나는 이 사실을 외면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무조건 적을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잇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은 가능하다면 태어난 순간부터 실제 인간과 실제 사회를 통해 실험을 해야합니다. 만일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재료를 이용할 수 없다면, 그때 장난감을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에는 조화로운 면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평화와 질서를 기대하고 자라나 산 채로 잡아먹힐 것입니다.
아이들의 공격성해소라는 면에도 나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성인세계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모든 공격성을 잘 품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어린시절에 안전밸브가 꽉 잠겨 속을 부글부글 끓이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선전선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힘을 만천하에 떨친 나치세력의 한 복판에 숨겨져 있었던 하워드 W.캠벨 2세의 전기-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이 인물의 폐해에 대해선 역시 가상의 편집자의 글(그가 작가였다는 말은 예술상의 필요만으로도 거짓말을 할 자격, 다시 말해 거짓말을 하고도 보복을 당하지 않을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뜻이다)이 잘 소개하고 있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괴벨스 이상으로 업적을 평가받는 나치선전요원이었던 동시에 유일하게 임무를 완수하고도 살아남은 유능한 미국 스파이라는 또 하나의 동아줄을 잡고 있었기에 그는 그 혼란과 학살의 시기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자신만이 인정하던 그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에 까지 이르는 그의 마지막 선택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과, 최소한 존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는 악인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한때 충성스런 장세동과, 그런 가신을 거느린 전두환의 '능력'이
그들의 악행-이란 말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만행-을 너머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박정희가 넘버원 지도자라는 설문조사가 나오니 말이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악당은
자신의 범죄희생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뿐이다. 기록을 남기긴 하지만 결국 그들은 제거되고 잊혀진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기자신을 합리화시켜 스스로도 믿게 만들고
심지어 시대정신까지 애곡하는 야심가 악당이야말로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인 것이다.
나쁜 놈은 자신의 나쁨을 과시하며
늘 잔머리와 눈알을 동시에 굴리면서 남을 괴롭힐 궁리를 할 거라는 건
얼마나 순진한 '악'의 정의인지.
가지고 싶은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너머
자기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게 하는 교육이란 정말 요원한 것일까.
어쨌든 흥미롭다, 커트 보네거트.
그래서 세번째로 넘어가는 '고양이 요람'.
마더나이트란 제목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따온 것으로,
어둠속에서 돌보는 손길이 있는 역설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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