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지 않은 괴로운 환경에서 자란 소가 해로우니 먹지 않겠다는 채식주의자,
이렇게 다 잡아먹다가는 다 사라질테니 좀 살려둬가며 천천히 오래먹자는 해양자원보호가,
이들이, '보호'하자는 존재의 생존권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고는 생각 안한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살려달라고 달려오다 죽어가는 생명을 본다면
그게 꼭 붉은 피를 흘리는 동물이 아니라
진액을 온몸으로 뿜으며 폭발해 버리는 나무라 하더라도
마음이 아픈 일일 것이다.
그렇게 코브는
왜 돌고래만 안되냐는, 예상 질문 1위를 가뿐히 젖힌다.
아주 개인적인 교감의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들의 관심은 설득력이 있었다.
이들이 비난하는 것은
작은 어촌마을의 측은한 사양산업 종사자들이 아니라
본의는 아닐지 몰라도 무심하게 유지하고 있는 세계 제1 돌고래수출단지의 권력자들인 것이다.
전통이라 하기에는 보편성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법유통이 되며,
식품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제품을 고집스럽게 생산하는
'적'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확인시켜주고
사실에 근거해 전방위로 공격하는
이들의 접근 방법도
힘이 있다.
예스맨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보여주는 정의감의 실천은 참 놀랍기만 한데
공감도에 따라 늘 아름다와보이지 않기는 해도
분명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경탄을 받을만큼 지능이 있는 존재이기에
더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고민스럽게 남았다.
그럼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은?
지능을 측정할 수 없는 다른 생명체는?
'지구를 구하자'는 표어에 일침을 놓던 누군가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어차피 지구야 태어날 때 그랬듯이 피곤하면 폭발해버리면 그만인데
결국 인간들이 지들 살자고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양심자연 한다는.
하고 있는 일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지나치게 포장될 때 거부감을 느낀다.
게다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양심의 문제는
따라가는 사람들일수록 더 많이 괴로와진다.
이쁜 돌고래를 먹는 것, 혹은 존중할만한 생명체를 먹는 것 뿐 아니라
독성이 있는 식품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같은 충격을 주는 현실에
이들은 만족할까?
어차피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그래서 교감을 느낀 사람들의 눈물은 진심으로 와 닿는다.
하지만 궁극적인 환경보호의 표어는 너무 고차원적이다.
산이 괴로와 하니까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가 아니라
냄새나고 불쾌감을 주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하는 게 어떨까.
그냥 지구를 사랑한다고 하지말고
"우리 적당히 해먹고 삽시다, 나중에 굶어죽기 전에"
라고 솔직히 외쳐주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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