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피터 회


수리공은 내게 비뚤어진 미소를 보냈다. 나는 도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는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이런 정보는 약간 복잡한 그림을 제시하더군요. 결코 학업을 마치지 못한 한 여자의 초상을 그려주죠. 실업중에 있고, 가족도 없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죠. 결코 어딘가에 적응할 수 없는 여자. 공격적이고요.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두 입장을 왔다갔다 했죠. 그런데도 12년 동안 아홉 개의 탐사여행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나는 그린란드를 잘 모르지만, 당신이 인생에서 좌절한다면 빙산위에 숨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상상은 할 수 있습니다."
 
"숫자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 "......"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은 넘어서고 싶어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예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절대 멈추지 않죠. 왜냐하면 지금도 바로 즉석에서 우리는 실수에 음수의 상상의 제곱근을 더해 확장하니까요. 이 허수는 우리가 그려볼 수도 없는 수, 보통 인간 의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예요. 그래서 이런 허수를 실수에 더할 때 복소수체계를 갖게 되는 거죠. 얼음이 결정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첫번째 숫자체계예요....."
 
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양 걸음을 떼어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으면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아뇨."
"5천 크로네입니다."
관장이 말했다.
"뭐라고요?"
"한 번 상담료는 5천크로네지요. 내용이 있는 공증서까지 받으면 1만크로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나는 항상 바다를 두려워했다......내가 얼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 위를 덮고 있기 때문이며, 물을 견고하고 안전하고 지나다닐 수 있으며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시나리오는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 처음에는 극도로 추운 겨울이 세 번 닥쳐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호수, 강, 바다가 얼어버린다. 태양은 식어버려 더 이상 여름은 오지 않을 것이며 눈은 무자비할 정도로 하얀 영겁의 세월동안 계속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길고 끝없는 겨울이 오고 마침내 스콜이라는 늑대가 태양을 집어삼켜버린다. 달과 별들은 소멸되고,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이 지배하게 된다. 핌불의 겨울(북구의 전설에 나오는 신들의 몰락. 세상의 황혼을 뜻한다).
 
내 일은 관측전망대에 앉아서 빙하 위쪽의 싸라기눈 색깔이 너무 침침해지거나 너무 하얗게 되면 보고하는 것이었다. 눈 색깔이 변한다는 것은 빙하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표시, 즉 달에 가고자 하는 미국 사람들의 백치 같은 꿈이 이루어낸 15톤짜리 결정체가 30미터 깊이의 눈부시게 환한 청록색의 크레바스(빙하속에 생긴 깊은 균열)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레바스 바닥은 좁아서 그 안으로 떨어지는 모든 것이 영하 30도의 온도에서 꽁꽁 뭉쳐져 박혀있게 된다.
 
이 순간, 세탁 건조기 앞에서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기억, 다시는 그 달콤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북 그린란드에서 거리는 시니크, '잠'으로 측정된다. 즉 여행 한 번에 몇 밤을 지새야 하느냐는 것이다. 시니크의 수는 날씨나 연중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고정된 거리가 아니다. 시니크는 시간의 측정 단위도 아니다......나는 내 보폭을 시니크 단위로 알고 있었다. 하늘이 울적하게 폭발할 것처럼 검게 변해서 썰매 뒤를 뛰어갈 때면, 우리를 둘러 싼 공간-시간은 개가 매끄러운 새 얼음 위로 우리를 끌고 갈때 드는 시니크 수의 반정도 였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퇴어크는 터널입구가 있는 반대편 벽쪽으로 램프를 비췄다. 나는 그쪽으로 걸었다. 이제는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길은 위로 뻗어 있지 않았다.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끝으로 향하는 입구는 언제나 터널이다. 삶으로 향하는 입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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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추리소설.
그래서 손에 땀이 쥐어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스밀라는 멋지다.

소설|달과 6펜스|서머싯 모옴


나로 말하면 지금까지 젊은 세대의 글을 닥치는 대로 읽어왔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마도 키츠보다 열렬하고, 셸리보다 천상에 더 가까이 간 시인이 있어 벌써 세인이 기억하고 싶어할 만한 시들을 발표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알수 없다. 나는 그들의 세련됨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겠거니와-젊은 나이에 너무 완숙하여 전도유망하다는 말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울 지경이다-그들이 보여주는 문체의 절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말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하여도(그들의 어휘를 보면 그들이 로제의 <유의어사전>을 요람에서부터 가지고 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들이 내게 해주는 말은 하나도 없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고, 느끼는 것도 너무 분명하다. 나는 그들이 허물없이 내 등을 두들기는 태도나 내 가슴을 향해 격정적으로 뛰어드는 그런 감정을 견딜 수 없다. 내게는 그들의 열정이 어딘지 빈혈증세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꿈도 약간 따분하다. 하기야 나도 이제 한물 간 사람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2행압운의 교훈시를 쓰겠다.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심으로 느꼈던 분노를 제대로 표현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맥앤드루 대령에게도 내가 그 따위 인격을 가진 사람과 식사를 같이할 수 없어 그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를 좋게 생각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리라는 걱정 때문에 지금까지 늘 자신감을 잃고 도덕적 태도를 취하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내 감정이 스트릭랜드에게는 통하지 않을 게 뻔해서 말로 표현하기가 더욱 거북했다. 아스팔트에서도 백합꽃이 피어날 수 있으리라 믿고 열심히 물을 뿌릴 수 있는 인간은 시인과 성자 뿐이 아닐까.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포하게 왔다고나 할까.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속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언젠가는 그 사람 그림 몇 장 값이 이 가게에 있는 그림 값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나갈 겁니다. 모네를 봐요. 누가 백프랑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 그림 값이 어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모네만한 재능을 가졌으면서 그림을 팔지 못한 화가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지금도 값이 나가지 않는단 말이에요. 누가 알겠습니까? 재능만 가지고 성공을 합니까?..."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 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 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세익스피어도 이아고를 고안해 냈을 때, 달빛과 상상의 실을 엮어 짜 데스데모나를 상상해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는 악당을 만들어 내면서 자기 안에 뿌리박고 있는 본능-문명 세계의 법도와 관습이 잠재의식이라는 저 신비로운 구석으로 몰아넣은-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창조해 낸 인물에 살과 뼈를 부여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식으로는 방출될 수 없는 자신의 본능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의 만족이란 하나의 해방감인 것이다.
 
이래서 소설은 비현실적이 된다.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상적인 여러 일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데도 소설에서 그것을 강조하다보니 실제와는 다른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란 없다. 있다해도 그런 남자들은 별 재미가 없다. 사랑을 지상의 관심사로 삼는 여자들도 그런 남자를 경멸한다. 하기야 그런 남자들 덕분에 여자들은 기분이 우쭐해지고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이 좀 덜 떨어진 인간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는 것이다....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일시적으로 미루어둔다. 그때 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가지 일이 다른 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 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서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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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스트릭랜드라는 화가의 삶을 엿보게 된 어느 소설가의 기록.
놓을 수가 없어서 단숨에 읽었다.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면 느낌이 더 많이 남는다.
예술가의 생애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때가 많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적당히 섞여갈만큼 무디지 못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혼자서 인생을 완성해간다는 것은 무거운 만큼 매력적인 일이지만 스스로 깨우칠만큼 맑지 못하면 엄두내기 어려운 일이다.
읽으면서 밑줄 쫙-이 시원하게 그어졌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공감과 위로였다면 달과 6펜스는 깔끔한 정리라고나 할까.  
 
PS. 책보다가 작품해설이 이렇게 맘에 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혹시 읽을 사람에게는 민음사판 강추!

[펌] 쇼트 트랙, 아름다운 꼴찌

쇼트 트랙, 아름다운 꼴찌
[SBS TV 2005-10-08 21:21]

<앵커> 이번 대회는 얼음과는 거리가 먼 인도와 브라질 선수들도 출전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정규진 기자가 만나 보았습니다.

<기자> 정식 아이스링크가 단 한 곳도 없는 인도 선수들. 스케이트가 없어 롤러브레이드 신발에 날을 달아 출전했습니다.

롤러스케이팅 선수였다지만 빙판 경험 3개월로는 역시 역부족입니다.

비틀비틀, 중심 잡기도 힘겹습니다.

여기저기 웃음이 흘러나와도 꿋꿋이 자기만의 레이스를 펼칩니다.

선두에 한 바퀴 넘게 뒤졌지만 완주만으로도 대만족입니다.

[프랏치 파라테/인도 쇼트트랙 대표 : 어제는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했었는데 오늘은 완주를 해 만족한다.] 브라질 선수는 코치도 없이 나홀로 출전했습니다.

첫 국제무대 성적이 58명 중 끝에서 두번째. 그래도 큰 꿈을 품었습니다.

[펠리페/브라질 쇼트트랙 대표 : 이제 시작했으니 2년 뒤면 세계 정상에 설 것이다. 2010년올림픽을 지켜봐 달라.]

누가 먼저이냐는 승부에선 비록 꼴찌지만 자신과 싸움에서 이들은 분명 승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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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쇼트 트랙, 아름다운 꼴찌

 
::쿨러닝 생각나는 기사^^

소설|꽃게무덤|권지예


"당신은 말이야, 당신은...정말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여자요."
 
반드시 그 이유때문은 아니지만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은 적이 있었다. 청명한 초여름 오후, 어느 시골 국도변에 차를 세워놓고 카페테라스에서 맥주 한잔씩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목적지도 없이 어딘가로 떠나는 중이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오 년이 지나서였다. 맨살갗을 어루만지는 에로틱하게까지 느껴지는 햇빛으로 그녀가 거의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왜 오른손목이었지? 당신은 왼손잡이도 아니잖아?"
그가 조금은 퉁명스레 물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눈을 반짝 떴다. 그녀는 변명하듯 머뭇머뭇 그러나 금세 자신을 조롱하듯 장난스레 말했다.
"글쎄, 음......그러고 보니까 정말 마지막 순간에까지 망설였던 건 칼을 어느 손에 쥐느냐의 문제였어. 우습지? 죽는 순간에까지 생을 가지고 장난을 친 거지. 결국 왼손에 칼을 쥐었지. 나는 지독한 오른손잡이라 오른손의 힘은 센데 왼손은 전혀 그렇지 않아. 이렇게 흉터가 지저분한 거 봐. 오른손이었다면 단 한번만으로도 끝났을텐데......그럼 깨끗했을 거야."
하지만 왠지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찬란한 햇빛 아래서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남편이 오른손목에 입술을 오랫동안 가만히 대고 키스를 해주었으면 하고 잠깐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남편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잘 들여다보면 삶에는 어느 순간, 균열의 순간이 있는 것이다.   
-------------------------------------------------------------------------[뱀장어스튜 中]
`균열의 순간`을 바로 어제 야심한 밤에 '쁘와종'이란 영화를 보면서 느꼈었다.
그런 균열은 수습방법이 없다. 겪지 않는 것 말고는.
  
진짜 웃겨줄까 싶어 제목 때문에 샀던 `폭소`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진짜 폭소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권지예를 좋아하게 됐다. 은희경의 책읽기가 싫어졌던 이유가 왠지 모를 `오버`기운 때문이었는데, 권지예는 좀 얌전한 것 같기도 하고 편안했다.
`꽃게무덤`엔 좀 쥐어짜낸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실망했다. 
그래도 책장은 잘 넘어갔고 재미있는 `뱀장어스튜`도 있었지만.  

인문|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터


.훌륭한 심리실험은 인감의 경험을 압축시켜 우아한 본질만 남도록 걸러낸 인생 그자체...
.절반은 상징을, 절반은 통계를 다루는 심리학은 진정한 과학인가?
 
목차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B. F. 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에 관한 행동주의 이론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달리와 라타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

5. 마음 잠재우는 법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6.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 들어가기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7.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8.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9. 기억력주식회사
기억 메커니즘을 밝혀낸 에릭 칸델의 해삼 실험

10. 드릴로 뇌를 뚫다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 치료
 
저자가 서두에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에 대해서 얘기했던 대로 심리실험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추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나보다, 아무리 `위대한` 심리실험에 대해서라 하더라도.
이 책은 10개의 유명한 심리실험의 내용과 심리실험을 한 학자들의 결과분석, 그리고 학계의 반응, 저자의 주관적인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주관적인 평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가능한 실험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이나 그 실험을 지켜봤던 사람들을 만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실험결과`를 수집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따금은 소설처럼 쓰기도 해서 사족같이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실험 하나 하나의 결과를 보면 명확한 이론이 성립되는 듯 보이지만 10개를 다 읽고 나면 여전히 심리학이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면 아무리 심리실험이라 해도 실험이라는 것은 어떤 가설 하에서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라 그 가설과 조건에 실험자의 성향이라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재미있었던 내용은 6번과 7번이었는데 6번은 100%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약물중독이 화학적인 중독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과 스트레스의 문제이므로 화학요법 뿐 아니라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식도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행복한 쥐들이 더 이상은 환각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로렌 슬레이터는 알렉산더 박사의 쥐공원-쥐들이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든 파라다이스-이론이 제대로 평가받았더라면 "지금쯤 도심의 빈민가가 정비되고 마약치료보다 교육기금조성에 힘쓰는 정책이 수립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한다. 가끔 이런 진실도 있다. 어차피 가능성이 반반이라면 좀 더 믿고 싶어지는 진실. 
 
7번은 정신병원이 나이롱환자와 진짜 환자를 구분하는 방식에 심각한 구멍이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예전에 정신질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책을 읽다 만 적이 있었다. 조울증, 강박증 등등 읽다보니 뭐 상태가 심하긴 했지만 어떤 증세들은 주변의 사람들의 어떤 모습과 완벽하게 겹치기도 했다. 아니 대체 그렇다면 정상인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라고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감당되면 병이 아니고 감당 못하면 병이다-똑같은 유행성 독감도 사람에 따라 증세가 다르니까 정신질환도 각자 맞는 치료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더 지지해 준 것이 7번의 실험인데 데이비드 로젠한은 아는 사람 몇몇과 각각 다른 병원에 위장입원했다. 몇가지 정신질환자의 특징적인 행동을 보인 것만으로 입원은 아주 쉬웠는데 다들 1-2개월 안에 무사히 퇴원진단을 받았다고 한다-어쨌든 치료가 필요없다는 것을 알아채기는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가 발표된 뒤, 정신병원은  데이비드 로젠한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했고 다시 한번 실험을 하면 틀림없이 밝혀내겠다고 까지 했다. 데이비드 로젠한은 그러겠다고 답을 했고 얼마 뒤 정신병원에서는 데이비드 로젠한의 나이롱 환자 41명을 전부 걸러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병원에 단 한명도 보내지 않았었다...이후로 정신질환의 진단에 대한 모호했던 기준이 정비되었다고 한다.  

영화|미스터주부퀴즈왕|2005

 
 
정직하게, 마지막 감동의 클라이막스 한 3분 정도(더 길지도 모른다)를 빼고는 재미있게 봤다.
하긴 그쯤에서는 이미 돈3천만원 문제는 해결됐을테니 주진만 주부에게 퀴즈쇼의 우승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극 중의 등장인물들끼리는 감동을 주고 받았겠으나 관객들이 보기에는 좀...지하철에서 닭살커플을 보는 기분이랄까. 지들이 좋은 건 알겠는데 내가 보긴 웬지 민망하고 어색한 그런 `사랑의 가족`씬. 차라리 전업주부를 인정하게 된 아내가 남편의 직업을 상기시켜셔 분위기를 확 바꿔줬으면 어땠을까... 
   
예고편을 보고는 좀 오버인가 싶기도 했는데 예고편의 장면들은 그야말로 짜집기라 본편에서는 같은 식으로 등장하지 않는다-영화를 보고나서 예고편에 대한 생각이 더 좋아지는 새로운 경험.
 
동창회 갔다가 돌아와서 방마다 뒤지고 다닐 때의 한석규의 표정 같은 걸 보면 한석규의 영화를 보는 것이 여기저기 널린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 막간에도 숨어있는 맘에 드는 표정들...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공형진, 내가 본 중 제일 괜찮았던 신은경, 어른스런 이름을 가진 아역 서신애도 만만치 않았다. 만화주인공 같이 생겨가지고 그렇게 귀여울 수가...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건 관객들이었다.
단성사여서 그랬는지, 저녁 7시라는 시간이 그랬는지, 제목에 주부가 들어가서 그랬는지-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자리 근처에 4-50대로 보이는 부부 또는 주부들이 많았는데, 어찌나 큰 소리로 웃는 지, 인도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두번째 본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서 흥을 돋궈주던(!) 꼬마관객처럼 옆자리의 막힘없는 웃음소리들 때문에 나도 업되서 봤다.     
 
예고편에 한해동안 아껴들었던 마이앤트메리의 골든글로브가 흘러나와서 혹시나 기대를 했는데 결국 영화에서는 안 나왔다. 한석규가 불렀다던 노래도 다른 사람이 부른 게 나왔던 것 같고. 혹시나 싶어 영화 끝나고도 기다렸었는데 말이지.... 
 

살림 경력 9년이라는 인천댁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