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피터 회


수리공은 내게 비뚤어진 미소를 보냈다. 나는 도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는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이런 정보는 약간 복잡한 그림을 제시하더군요. 결코 학업을 마치지 못한 한 여자의 초상을 그려주죠. 실업중에 있고, 가족도 없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죠. 결코 어딘가에 적응할 수 없는 여자. 공격적이고요.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두 입장을 왔다갔다 했죠. 그런데도 12년 동안 아홉 개의 탐사여행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나는 그린란드를 잘 모르지만, 당신이 인생에서 좌절한다면 빙산위에 숨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상상은 할 수 있습니다."
 
"숫자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 "......"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은 넘어서고 싶어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예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절대 멈추지 않죠. 왜냐하면 지금도 바로 즉석에서 우리는 실수에 음수의 상상의 제곱근을 더해 확장하니까요. 이 허수는 우리가 그려볼 수도 없는 수, 보통 인간 의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예요. 그래서 이런 허수를 실수에 더할 때 복소수체계를 갖게 되는 거죠. 얼음이 결정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첫번째 숫자체계예요....."
 
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양 걸음을 떼어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으면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아뇨."
"5천 크로네입니다."
관장이 말했다.
"뭐라고요?"
"한 번 상담료는 5천크로네지요. 내용이 있는 공증서까지 받으면 1만크로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 현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나는 항상 바다를 두려워했다......내가 얼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 위를 덮고 있기 때문이며, 물을 견고하고 안전하고 지나다닐 수 있으며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시나리오는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 처음에는 극도로 추운 겨울이 세 번 닥쳐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호수, 강, 바다가 얼어버린다. 태양은 식어버려 더 이상 여름은 오지 않을 것이며 눈은 무자비할 정도로 하얀 영겁의 세월동안 계속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길고 끝없는 겨울이 오고 마침내 스콜이라는 늑대가 태양을 집어삼켜버린다. 달과 별들은 소멸되고,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이 지배하게 된다. 핌불의 겨울(북구의 전설에 나오는 신들의 몰락. 세상의 황혼을 뜻한다).
 
내 일은 관측전망대에 앉아서 빙하 위쪽의 싸라기눈 색깔이 너무 침침해지거나 너무 하얗게 되면 보고하는 것이었다. 눈 색깔이 변한다는 것은 빙하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표시, 즉 달에 가고자 하는 미국 사람들의 백치 같은 꿈이 이루어낸 15톤짜리 결정체가 30미터 깊이의 눈부시게 환한 청록색의 크레바스(빙하속에 생긴 깊은 균열)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레바스 바닥은 좁아서 그 안으로 떨어지는 모든 것이 영하 30도의 온도에서 꽁꽁 뭉쳐져 박혀있게 된다.
 
이 순간, 세탁 건조기 앞에서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기억, 다시는 그 달콤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북 그린란드에서 거리는 시니크, '잠'으로 측정된다. 즉 여행 한 번에 몇 밤을 지새야 하느냐는 것이다. 시니크의 수는 날씨나 연중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고정된 거리가 아니다. 시니크는 시간의 측정 단위도 아니다......나는 내 보폭을 시니크 단위로 알고 있었다. 하늘이 울적하게 폭발할 것처럼 검게 변해서 썰매 뒤를 뛰어갈 때면, 우리를 둘러 싼 공간-시간은 개가 매끄러운 새 얼음 위로 우리를 끌고 갈때 드는 시니크 수의 반정도 였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퇴어크는 터널입구가 있는 반대편 벽쪽으로 램프를 비췄다. 나는 그쪽으로 걸었다. 이제는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길은 위로 뻗어 있지 않았다.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끝으로 향하는 입구는 언제나 터널이다. 삶으로 향하는 입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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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추리소설.
그래서 손에 땀이 쥐어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스밀라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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