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1






다른 사람들처럼 에바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가정을 꾸렸다.
케벤을 낳은 것도 마냥 행복하게 혹은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아니었다.
사랑해서 결혼했듯이 아마 아이가 생겼으니 낳았을 것이다.
이 평범한 시작은 또 산후우울증처럼 평범하게 전개된다.
에바는 치료가 시급할 정도로 심한 우울감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자신없이, 적당히 어려워하고, 평범하게 불행과 행복을 가끔씩 느끼며
양육을 이어갔다, 자유로운 인생과 가정을 포기도 헌신하지도 못한 채.
케빈을 낳은 것은 어쨌든 선택이었지만
엄마는 그 선택을 따라 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케빈이 에바만의 유일한 가족이자 아들로 남고 나서
에바는 케빈의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이제 에바에게 남은 건 케빈의 엄마로 계속 살아가는 것.

영화는 에바의 속마음을 보여주듯

맞딱뜨린 삶을 살아가는 와중 불현듯 떠오르는 비극의 장면과
아마도 에바가 그렇게 믿고 있는 그 비극의 뿌리인 것 같은
케빈이 없던 에바의 인생에서부터 케빈의 탄생, 케빈과의 관계와 그 변화를 천천히 복기한다.
그리고 절대 잊혀지지 않겠다는듯 
어디서나 비극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불행이 에바를 찾아온다. 
에바는 숨어도 보고 닦기도 하면서 하면서 그냥 살아간다.
케빈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했을 그 질문의 답은 결국 듣지 못한 채.

무슨 답이더라도 상황을 납득할 수는 없을 것이고
답은 케빈을 얼마나 더 미워하게 될 지의 수위를 정할 뿐일 거라
그 답이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질문은 어쩌면 에바를 케빈과 묶어놓는 작은 끈같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의 경우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어릴 적 명상을 권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자책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건 그냥 에바에게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호의.

충격이다, 벌써 10년 전 영화라니.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부모들
노력을 하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부모들의 미안해 하는 마음으로 더 외로워지기도 하는 아이들
사이코패스처럼 설명불가능한 상황이어도 자책하는 부모들
...극적으로 증폭되지 않은 케빈과 에바는 널려있다.

하지만 내게 더 컸던 공포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생명인 건 알겠지만
사랑할 수 없는 아이와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한다면-하는 것.
모든 부모의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건 인류멸망을 막기 위한 본능적 주입인 게 확실하다.

틸다 스윈튼-영화를 제대로 짊어지고 가는 뚝심 멋있었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에즈라 밀러도 인상 깊다-무서웠다고....^^
기생충에서도 여기서도
활과 화살의 등장은 참 이질적이면서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묘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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