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멋진데 박강현 버전은 없어서....
뮤지컬을 보기 전에 원작을 다 읽을 생각이었지만
초반 책장이 너무 안 넘어가서 등장인물과 배경 사건들이 등장하는 1권만 간신히 끝낸 상태에서 공연을 봤는데
공연을 보고 난 뒤 2권은 그냥 훌렁 다 읽었다-배우들의 힘^^
뮤지컬은 원작과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게
더리모어 경을 뺀 나머지 인물들과 줄거리는 원작과 같지만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나 흐름은
빅토르 구라 위고 선생의 입담을 통한,
뭐랄까,
논리적인 전개 따윈 중요치 않게 만드는 인물 하나하나에 뿜어져 나오는 서사가 거의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옥같은 한 말씀도 꽤 많은데 왜 가사는 그 정도 였는지도 아쉽다.
그러다보니 세시간 가량의 공연인데도 하이라이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공연에서는 다 빠져버린 대자연의 힘은 그렇다 치고.
콤프라치코스
원작과 공연 모두 아이들을 납치해서 기형의 볼거리로 팔아넘기는 이 잔혹한 범죄자들이
그윈플렌(원작은 그윈플레인)을 버리고 풍랑속에 죽는 결말은 같지만,
원작에서는 1부 200여 쪽에 걸쳐 그들이 얼마나 살려고 애를 쓰다가 죽음에 이르렀고
그 마지막 순간에는 또 어떻게 회개를 하고 죽을 수 있게 됐는지 충분한 서사가 있다.
그들의 원작 속 거의 마지막 장면-침몰하는 배의 무게를 줄이려 모두들 짐을 바다로 내버리던 가운데.
물이 그들을 향해 올라오지 않고, 그들이 물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무덤이 저절로 파이고 있었다. 그들의 체중이 곧 무덤구덩이 파는 인부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법이 아니라 사물의 법에 따라 처형되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또한 부유물들이 움직이지 않는 지라, 그 하얀 거즈가 갑판 위에 층을 이루며 선박에 수의를 입히고 있었다.
「혹시 아직도 바다에 던져 버릴 것이 남아 있소?」 우두머리가 소리쳤다.
그때까지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박사가, 선실 뚜껑문 한구석에서 불쑥 나오며 말했다.
「있소.」
「무엇이오?」 우두머리가 물었다.
박사가 대답했다.
「우리가 지은 죄」
순간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일제히 외쳤다.
「아멘.」
애를 버리더니 바로 풍랑-그런데도 회개하는 장면은 들어가 있다.
바다 장면 멋있긴 한데 차라리 다른데 집중하는 게 좋았겠다 싶은.
어린 그윈플렌과 데아
이 속에서 헐벗은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혹한과 바람의 묘사가 대단하다.
특히 그 사투 속에 데아까지 품에 안고 이제 살았다 싶게 도착한 마을에서
흉흉한 민심이 퍼져있던 그 시절,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때
그제서야 어린 그윈플렌은 죽고 싶을 만큼의 절망을 느끼는데
그 마지막 절망을 이기게 해준 건 그보다 더 어린 아기 데아였다.
버려진 어린 것이 죽어가는 어린 것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아이에게는 밤의 추위보다 인간의 싸늘함이 더 무서웠다. 그것은 의도적인 추위였다. 그는 무인지경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낙담과 비통함에 사로잡혔다. 모든 사람들의 삶 속으로 돌아온 이제, 그만 홀로 남게 되었다.
아이가 그 비참한 순간에, 차라리 그것에 누워 죽어 버리는 것이 간단하지 않을까 하고 자문하지 않았을지, 단언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는 동안, 아기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다시 잠이 들었다. 그 어렴풋한 신뢰가 그로 하여금 다시 걷게 했다.
공연에서는 이 장면의 눈보라가 마치 그윈프렌을 지켜주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데,
결말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자연의 도움으로 보자면 이해가 되지만,
그윈플렌이 의회에서 연설하던,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작을 읽고 공연을 봤던 탓인지
어린 그윈플렌이 아이같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계속 울컥 했다.
우르수스
원작에서는 호모라는 이름의 늑대 한 마리를 키우고,
한 때는 귀족 집에 기거하던 철학자이기도 했던 자유인이다.
공연에서 등장하는 곰은 아마도 우르수스의 별명(또는 본명)인 곰과 호모를 합친 듯.
원작에서 재미있기도 하고 허를 찌르는 얘기들 정말 많이 하는데 가사에서는 정말 충분히 살지 않았다.
그윈플렌-데아와 우르수스의 만남 장면은 거의 원작과 비슷한데
공연에서는 그윈플렌이, 원작에서는 우르수스가 데아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귀를 여십시오. 귀가 작으면 진리를 별로 쓸어 담지 못할 것이고, 너무 크면 어리석음이 꾸역꾸역 그 속으로 몰려 들어갈 것입니다.(중략) 성 히에로니무스의 집무실 벽난로 위에는 벽시계가 없었습니다. 우선, 그는 동굴 속에 있었던 지라 집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에게는 벽난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당시에는 벽시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칩시다. 오류를 바로잡읍시다. (중략)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특이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소경입니다. 노랑이는 소경입니다. 황금은 보되 부유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헤픈 자는 소경입니다. 처음은 보되 끝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태 덩어리 여인은 소경입니다. 자신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소경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소경입니다. 못된 건달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못된 건달은 소경입니다. 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소경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던 날, 마귀가 그 속으로 기어드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소경입니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당신들이 귀머거리임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시아나(조시언)
성격은 비슷한데, 원작에서 조시아나의 그윈플렌에 대한 감정은 '희롱'에 가깝다.
신기한 장난감의 신기한 점이 사라지자 버리는 게 너무 당연해지지만,
뮤지컬에서는 좀 더 깊은 감정이었던지 무려 조시아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기까지 한다.
원작에서 조시아나는 유혹적인 재회를 마지막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그에 비해 뮤지컬에서는 그윈플렌과 조시아나가 주인공 같이 보일 정도로
부르는 노래도, 비중도 높아서 전체적인 배역 균형은 정말 안 맞는 느낌.
하지만, 정선아의 어마어마한 힘과 매력에 빠짐~
그윈플렌과 데아
구해준 바로 그날 함께 잠든 두 아이에게 우르수스가 '동침'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두 사람은 처음부터 그냥 정해진 짝이다.
두 사람에 대한 얘기가 꽤 많긴 하지만
원작에서도 두 사람의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작가의 관찰을 통한 서술이 대부분이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운명을 생각해보면 그러려니, 작가가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하는 정도.
이 정도라는 점에서는 공연도 비슷했다.
데아는 빛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랑이었고, 그윈플레인은 삶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었다. 분명 두 사람은 절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있을 수 없는 최악의 재앙 밑바닥을 건드렸다. 그곳에 가 있었다. 혹시 누가 두 사람을 면밀히 관찰했다면, 그의 몽상은 한량없는 연민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겪지 않은 고초가 무엇이겠는가? 그 두 인간 피조물을 불행의 칙령이 짓누르고 있음이 역력했다. 또한 숙명은, 무고한 두 사람을, 일찍이 전례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고통과 지옥 같은 삶으로 둘러쌌다.
그들은 낙원에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윈플레인은 데아를 숭배했다. 데아는 그윈플레인을 우상으로 삼았다.
Thousand Years 부를 때 박강현의 담백해서 더 깊은 감성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말랑함이 점령.
이수빈은 외모로는 원작의 데아 느낌 그대로 였지만 노래가 음이 높아 그런지 연기보다는 높은음에 더 집중됐다.
두 사람의 대표적인 주제곡인데 가사가 참 약한 느낌-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았을 걸.
그윈플렌
웃는 남자로 성공하면서 그윈플렌은 자신의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을 통해
그들의 비참한 삶을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이어
자신이 '없는 자들의 군주'라는 자각을 하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공연에서는 우르수스의 가르침인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비밀경찰을 두려워한 아들바보 우르수스가 현실을 가르치려 일장연설을 마치자
그윈플렌이 스스로 진단한 것이었다.
이 거미 녀석아, 너의 동굴에서 나오려 애쓰지 말고, 너의 별이나 잘 지켜! (중략) 이 세상으로 말하자면, 생겨먹은 대로 존재하는 거야. 이 세상이 더 나빠지기 위해서 너까지 필요로 하지는 않아. (중략) 배우란 구경거리이지 구경꾼이 아니야.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 당연권에 따라 행복해진 사람들이 있지. 너는 , 다시 말하지만, 요행으로 행복해진 자야. 너는 행복을 소매치기 했는데, 그 행복의 소유주는 그들이야. (중략) 저 높은 곳이 배푸는 특전을 입어 이 지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들 밑에서 어떤 자가 감히 그토록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중략) 너에게는 면허장이 없지만 그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어. (중략) 그러한 사람들을 두려워해라. 그들의 일에 참견하지 마라. 그래야, 그들도 네 일에 참견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로드란 자신의 천성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즉, 로드란, 젊어서는 늙은이의 권리를 누리고, 늙어서는 젊은이의 행운을 누리며, 타락해도 착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겁쟁이라도 용기있는 사람들을 지휘하고, 빈둥거려도 노동의 결실을 얻고, 무지해도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위를 얻고, 멍청해도 시인의 찬사를 받고, 추하게 생겼어도 여인들이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중략) 모든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략) 불만스러워하는 자는 고달프니라.」
「그래요.」 그윈플레인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이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졌군요.」
데아
원작에서나 공연에서나 데아는 몸만 자란, 여전히 그윈플렌에게 업혀있는 아기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약한 심장을 가진.
천하의 독설가 우르수스도 데아에게만은 대 놓고 딸바보^^
「네가 그걸 안다면! 저녁에 우리가 공연할 때, 내 손이 네 이마에 닿는 순간‥…오! 네 머리가 어찌나 고아한지, 그윈플레인! 너의 머리카락이 내 손가락에 닿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 온몸이 전율하는 것 같고, 나는 천상의 기쁨을 느끼며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하지. <나를 뒤덮고 있는 이 캄캄한 세계에, 이 적막한 우주 속에, 내가 처해있는 이 어둡고 무너진 광막함 속에, 나와 모든 것이 무시무시하게 뒤흔들리는 이 세계 속에, 나는 받침대 하나를 가지고 있어. 바로 이거야. 그가 나의 받침대야.> 네가 나의 받침대야.」
더리모어경-톰짐잭
유일하게 원작과 달라진 인물.
원작에서는 호쾌한 사생아 출신 귀족으로
조시아나를 데려오기 전 이미 우르수스의 연설에 반해 여러 번 공연을 보러와 진상 관객을 퇴치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나름 친분있는 관객이다.
마지막 의회 연설 뒤 귀족들에게 일침을 놓으며 그윈플렌의 편이 되어주는가 하면,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결투를 신청하기도 하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서는 개연성 떨어지는 데 큰 공을 세우는 설정으로 바뀌는 게
데아에게 추근 대고 그윈플렌을 납치한 범인으로 둔갑하기 때문.
더리모어 경이 40세 전후라 25년 전에 그런 납치극을 계획적으로 벌인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그렇게 설정을 바꾸고 심지어 그걸 독백하는 노래가 있으며 그걸 또 조시아나가 우연히 듣는데
그 대목은 정말 개연성 포기 장면.
원작에서는 왕의 묵인하에 그윈플렌이 납치된 것으로 나온다.
조시아나의 첫번째 유혹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가 아무리 순결하다 할지라도, 두꺼워진 살이 언제나 그와 그의 꿈 사이로 끼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모든 의도가 투명성을 상실한다. 자연이 원하는, 고백을 할 수 없는 것이 의식 속으로 들어선다. 그윈플레인은 모든 유혹이 집결해 있는 그 질료, 데아에게는 거의 없다시피한 그 질료에 대해, 정체 모를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해로워 보이는 열광 속에서, 그는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는 쪽으로 데아를 변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날개달린 천사 세라핌을 여인의 형태로 과장해 상상하기도 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그대 여인이니라.
흔들림이란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윈플렌과 데아의 관계는 너무나도 특별해서
하룻밤을 꼬박 조시아나의 유혹때문에 고민하던 그윈플레인은 데아의 목소리 한 번에 바짝 정신을 차리고
조시아나가 보낸 쪽지를 태워버린다.
뮤지컬에서는 그윈플린이 조시아나를 만나러 가고
그 사이 톰짐잭의 만행이 벌어지는데
다행이 극단 사람들이 나타나 데아는 구출된다.
원작에 없는 빨래터 장면
톰짐잭에게 간신히 벗어난 데아가 위로 받는 장면인데 원작에서는 톰짐잭의 추행이 없으니 이 장면도 없다.
데아를 위로해주는 언니들 멋지고 따뜻했지만
데아가 너무 수동적이라 세련된 책 하려고 씩씩한 언니들을 배치한 계산이 보였고
특히 더 맘에 안들던 추행장면과 연결되는 장면이라...어쨌거나 줄거리 전개에는 별 도움 안됐다는 생각.
와펀테이크에게 잡혀가는 그윈플렌
원작에서는 그윈플렌이 조시아나의 쪽지를 태우던 순간 비밀경찰이 들이닥치고
앞을 못보는 데아는 모르게 소리 없이 그윈플렌을 잡아간다.
뮤지컬에서는 빨래터 이후 두려워진 데아가 그윈플렌에게 같이 있어달라고 얘기하며 방에 들어가던 중간에
비밀경찰이 등장해서 그윈플렌을 잡아가며 우르수스 극단은 난리가 나는데
데아는 그윈플렌이 따라들어오지 않는데도 그 장면에서 그대로 끝.
문지방 넘자마자 바로 잠드는 신기의 데아 아니고서야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ㅠㅠ
우르수스가 그윈플렌 목소리 내는 공연장면
재미있게 봤고, 공연으로 꾸며낸 장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원작의 규모를 오히려 줄여놓은 장면이었다.
원작에서 우르수스는 기적의 복화술사라서
한 소년이 내주는 소음의 도움으로 그윈플렌과 관객들의 함성까지 들리는 공연을 혼자 연기하는 걸로 나온다.
데아 하나를 위한 공연이었는데 데아만 그윈플렌이 없다는 걸 바로 알아챈다는 게 슬픔 포인트.
그윈플렌과 조시아나의 저택 만남
우르수스와 데아를 찾아나섰던 그윈플렌이 자신의 대저택에서 길을 잃어
우연히 유혹적인 자태의 조시아나와 다시 만나는 장면인데
데아의 목소리로 극복한 줄 알았던 첫번째 유혹의 흔들림이 봉인해제되지만
이번에는 그윈플렌의 정체를 알게 된 조시아나가 박차고 나가버린다.
뮤지컬에서는 여왕이 직접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시종이 소식을 전한다.
이것이 원작에서는 조시아나의 마지막.
애석하도다! 떡갈나무들이 어떻게 쓰러지는가?
겨우 열 살의 아이로, 포틀랜드의 절벽 위에서, 자기도 다른 이들과 함께 타고 떠날 것으로 믿었던 선박을 휩쓸어가던 질풍, 그에게서 구원의 널판을 빼앗아 간 심연, 더욱 뒤로 물러서며 그를 위협하던 텅 빈 허공, 그에게 단 한 마디 않던 하늘, 무자비한 적막, 한줄기 빛도 없는 어둠, 온갖 난폭함으로 가득한 무한의 공간 바다, 온갖 수수께끼로 가득한 또 다른 무한의 공간 하늘 등 그가 대적해야 할 적들을 응시하며 싸울 준비를 하던 그가, 지극히 어리면서도, 늙은 헤라클레스가 죽음에 대항하듯, 밤에 대항하던 그가, 미지의 존재가 드러내던 거대한 적대감 앞에서 두려워 떨거나 정신을 잃지 않던 그가, 어마어마한 투쟁을 벌이며, 자신 역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하나를 품에 안아, 지키고 연약한 몸에 무거운 짐을 가중시킴으로써 자신의 연약함이 쉽게 상처를 입게 하고, 매복하여 그를 노리는 어둠의 괴물들에게서 부리망을 벗겨주는 등 모든 불리함을 자초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던 그가, 요람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운명과 육박전을 벌이던, 나이 어린 맹수 조련사였던 그가, 세 부등한 싸움이건만 그것을 피하지 않던 그가, 자기 주위에서 문득 일어난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잠적 현상을 보고서도 그러한 잠적을 수긍하며 당당히 걸음을 재촉하던 그가, 추위와 갈증과 배고픔을 용감하게 견딘 그가, 몸집은 피그미족이되 영혼만은 거인이었던 그가, 폭풍우와 가난이라는 두 형태로 몰아치던 광막한 바람을 제압한 그윈플레인이, 허영이라는 한 가닥 바람결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클렌찰리 공작이 된 그윈플렌
어려서부터 그윈플렌은 부모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긴 했지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라면 당연히 부모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우르수스나 데아를 걱정할 것 같았는데
호화스런 방에 취해 밝은 노래를 부르는 그윈플렌은 그래서 더 생뚱맞았다.
첫 등원한 상원에서 그런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힘있는 그들을 직접 마주하고 한 번이라도 외쳐보겠다는 결기였다.
원작에서는 여왕이 직접 상원에 등장하지는 않고
여러 무리의 귀족들이 등장해서 심하게 야유하고 조롱한다.
특권의 아버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연입니다. 그리고 특권의 아들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용입니다. 그것들에게는 좋지 않은 내일이 있을 뿐입니다. 경들께 경들의 행복을 고발하러 왔습니다. 경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중략)
어느 날 밤, 폭풍 몰아치던 밤, 버려진 고아의 몸으로, 막막한 세계 속에서 혈혈단신으로, 여러분들이 사회라고 일컫는 이 어둠 속으로, 저는 처음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첫 번째로 본 것은 법이었고, 그것은 교수대의 형태를 통해서였습니다. 두 번째로 본 것은 부유함이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은 어느 여인을 통해서 본 경들의 부유함이었습니다. 세 번째 것은,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서 본 미래였습니다. 네 번째 것은, 늑대 한 마리 이외에 동료도 친구도 없는, 어느 떠돌이의 모습 밑에 감추어져 있던 착함과 진실함과 공평함이었습니다.
(중략)
경들께서는 환상에 불과하되 저는 실체입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무시무시한 웃는 남자입니다. 그가 누구를 보고 웃는 지 아십니까? 경들을 보고 웃습니다. 그의 웃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들이 저지른 범죄이며 그가 당한 고초입니다. 경들의 범죄를 이제 그가 경들의 면상을 노리고 던지며, 그로 인한 고초를 경들의 낯짝에 토하고 있습니다. 제가 웃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울고 있습니다.(중략) 오! 전능하신 멍청이들이시여, 눈을 크게 뜨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상전들이 만들어 놓은 인류의 모습을 제가 표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훼손된 존재입니다.
1부보다는 훨씬 더 좋았던 그윈 플렌의 노래들.
확실히 결기있어 보이는 그윈플렌의 힘이 전해졌다.
자리가 멀어서 표정은 잘 안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눈이 반짝반짝 하는 건 여러 번 봤다.
뮤지컬에서 여왕 이소유 나올때마다 독특한 창법으로 많이 웃기도 했지만
특히 의회장면에서 음을 끌며 상원의원들을 쥐락펴락 하는 장면은 짧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계급사회를 보여줬다.
배다른 동생을 무시하는데 몰두하는 질투의 화신인 건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원작에서 보이던 아버지의 실수를 만회하며 상원을 장악하려는 정치력은 역시나 극에서는 실종.
그윈플렌과 데아의 마지막 장면
공연의 마지막을 보며 왜 꼭 저래야만했을까..원작이 제일 궁금했던 장면.
원작에서는 그윈플렌의 출생이 밝혀진 뒤 바킬페드로(페드로)가 우르수스를 찾아와 금화와 그윈플렌의 옷만 전해준 게 아니라
동네 경찰 등 공권력을 이용해 우르수스 극단이 공연하던 장소인 여관도 문을 닫게 하고
우르수스에게도 당장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르수스는 극단을 해체하고 수레도 팔고 그날 밤 출항하는 배로 런던을 떠나게 되어
그윈플렌이 우르수스와 데아에게 돌아왔을 땐 아무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이 자신의 가족에게 위험이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한 그윈플렌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데
바로 그 순간, 우르수스의 늑대 호모가 나타나 그윈플렌을 우르수스와 데아가 타고 있는 배로 안내한다.
잠시 숨어서 그 둘을 바라보던 그윈플렌은 아직 우르수스가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두 사람과 재회를 하고 데아와는 다시 사랑의 다짐도 하지만
약한 심장을 가진 데아는 바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나서 뱃전으로 가 데아를 따라가는 그윈플렌이 마지막.
워낙 긴 이야기들을 따라왔기에 원작의 마지막은 느닷없는 듯힌데도 슬픈 여운이 묵직하게 남는다.
느닷없음이 큰 뮤지컬의 결말은 마음 아픈 장면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미덕이었다고나 할까.
판단하는 사람은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윈플레인은 사회가 그에게 해준 것과 자연이 그에게 베푼 것을 동시에 응시했다. 자연은 그에게 얼마나 선의적이었던가! 영혼인 자연이 그를 얼마나 많이 도왔는가! 모든 것을, 심지어 얼굴까지, 그에게서 빼앗아 갔는데, 영혼이 모든 것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모든 것을, 심지어 얼굴까지 돌려주었다. 그를 위해 특별히 창조된, 그의 추함은 보지 못하고 아름다움만을 보는, 천상의 눈 먼 소녀 하나가 지상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멋진 무대에 엄청난 배우들을 세우고도 이렇게 헐렁한 구성이라니...
꽤 유명한 작곡가-연출자의 결과물이라던데
특히 극과 연출은 약간 먹튀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
큰 돈 들였다니 재공연 하겠지만 그 전에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할 듯 싶다.
뮤지컬을 잘 안보는 편이라 거의 모든 분이 새 얼굴인 셈인데
그윈플렌: 기대했던 박강현-큰 무대를 채우는 짱짱한 소리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
조시아나: 정선아-이 분은 배우로 타고 나신 듯. 유튜브 찾아보다가 Popular보고 더더욱 깜짝.
우르수스: 양준모-단단한 소리 멋있었고, 아픈 데아를 놓고 부르는 노래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데아: 이수빈-상상했던 원작의 데아 모습 그대로. 노래 연기 좀 힘이 없어 보였지만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게 내가 그윈플렌이 되서 보는 기분.
앤여왕: 이소유-덕분에 여러 번 웃었습니다^^너무나도 능청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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