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가(김영근, 김예영 감독)
앞을 못보는 동생이 만든 입체 산책길을 따라가는 애니메이션.
안보이는 세상의 다양한 색들이 신체적인 한계와 상상력의 무관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때로는 보는 것보다 만든 사람의 의도가 더 정확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야심찬 시도.
보지도 않고 느끼는 세상에 대한 성실한 상상.
이쁜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재료들의 질감에 좀 더 이야기가 들어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랬더라면 짧은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을 텐데.
아들의 여자(홍성훈 감독)
느닷없을 것 같은 아들의 여자의 등장에
익숙하게 대처하는 아버지.
거침없는 감정의 주고받음이 인상 깊었지만
대책없이 찰나에 끝나는 선택이
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모든 중요한 일들의 결정적인 선택이 실은 감정적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짧은 시간에 몰입하는 감정으로 풀어내기엔
좀 느긋해 보이는 결말.
남매의 집(조성희 감독)
왜 독특한 상상력은 폭력적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꽃이 피는 걸까.
두 칸짜리 반지하에서 벌어지는 짧은 순간의 공포.
정말 무섭다.
노골적인 폭력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단지 너무나도 연약한 두 아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공들여 짜여진듯한 그 공포의 스케쥴이 대단하다.
역시 공포란 예상을 어긋날 때 온다.
문틈으로 가짜 손을 내밀어 남매를 잡아먹으러 온 호랑이 처럼 등장하는 이방인.
이들은 미안하다고도 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도 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공포를 발산한다.
그들은 들어올 때도 그랬다.
화면은 그저 철문에 이무렇지도 않게 붙은 조그만 고양이 스티커로 집중되어 있고
아이들은 나란히 서 있었을 뿐.
그런 풍경이 이렇게 무서운 느낌을 줄 거라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이미 29일 전에 분리되었다는 아버지,
신고전화를 받는 부랑자들의 빅 브라더,
그 공포를 관통하며 사라졌던 여동생의 재등장,
그 사이 공포속에 자란 아이의 폭력성.
다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지만
이 감독의 신작은 보고 싶어지는 묘한 자극.
이런 독특함을 슬프지 않게, 무섭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는 걸까.
잠복근무(이정욱 감독)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추운날 번데기장사 위장 잠복근무라는 건.
가장 익숙하게 볼만한 단편이었지만
그래서 장편영화의 미니어쳐 같기도 했던.
중요한 추격씬의 널럴함이 좀 아쉽기도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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