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의 무게가 동시에 내려앉다
신의 존재를 믿는 나로서는
이런 잔인한 신의 묘사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저항의 최대치로 다가온다.
인간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간택된 불운종결자 오이디푸스.
이 비극이 더욱 처절한 것은
그의 예고된 비극을 막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 불운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며
다만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자신들의 죄 하나씩을 더했을 뿐이다.
게다가 신은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재앙으로 불운의 시작을 예고하고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손으로 오랜 불운을 불러오게 만든다.
이런 비극이라면
조종하는 신이 더 나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것일까.
노려하면 할수록 죄가 더해지는 운명.
게다가 앞으로 누가 나타난다 해도
이 이상이 힘들 엄청난 저주의 강도.
외면하고 싶은 비극은
국립극단의 무대에서 재현되었다.
기울어진 무대는 보는 내내 뭔가의 암시인듯 위태로움을 전하고
리듬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의 효과는
라이브무대에서 공기처럼 섞여 비극의 간극을 이끌어준다.
벽에 매달려 있던 시민들과 그 뒤로 보이는 재앙속 인간들의 모습,
마지막 오이디푸스가 눈을 잃는 장면과 그의 마지막의 암시는
무대회전 한번 없이도
훤히 드러난 한세트의 무대가 좁아보이지 않게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었다.
내가 안 보는 사이 연극은 이렇게 까지 근사해지고 있었다......
자막스크린 덕에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의 대사들을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 약간의 허영심으로 샀던 세익스피어의 희곡집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들이
연극무대의 공기를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남들이 명언처럼 인용을 해도 그다지 멋있게 들리지 조차 않았었는데.
커튼콜 때까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던 서이숙.
독특한 음성으로 등장부터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였지만
이 비극의 시작과 끝을 지켜본 증인이자
사실 오이디푸스보다 더한 비극의 주인공인 요카스타의 절규가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나 깊었을까.
남편에게서 남편을 낳고 자식에게 자식을 낳아준 그녀의 비극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오이디푸스의 비극보다 더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커튼콜 때 그녀가 무대앞으로 나선 순간그녀의 감정처럼 남아있던 내눈물도 툭.
커튼콜까지 울어보긴 처음이다....
이 배우를 보려고 오늘 짝패 재방송도 봤다는--;;
두번째는 박정자 마마님.
길지 않았지만 짧고 강렬한 한 방에 엄청난 포스를 풍겨주신다.
무대위와 무대밖이 완전히 다른 이 분.
언제나 이름값이 바래지 않는 연기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계신 이 분.
19그리고 90도 다시 보고 싶다.
오랜만의 정동환과 처음보는 이상직도 반갑다.
국립극단 창단공연이라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어느새 라이브코미디쇼가 주류 같이 되버린 연극 레파토리에
신선함을 더해줄 것 같다.
이 힘찬 에너지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고전을 볼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참. 국립극단 홈페이지에도 없는 부엉이 인간의 프로필.
대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하다.
부엉이 역할도 그렇게 잘하는데 인간역할은 더 잘 하겠지?
가장 인상깊었던 건
주인공들의 대사가 계속되던 순간에도 끊임없이
부엉이 묘사에 충실하던 성실함과 열정.
다음에 인간으로 나올때도 꼭 보러갈게요!
두번째의 오이디푸스:
지각을 했다. 좀 기다리고 쉬는 시간에 입장할 줄 알았는데, 쉬는 시간이 없댄다.
(지난 번엔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안났음)
그리고 중간입장은 예매좌석이 아니라 무조건 객석2층(실지론 3층), 안내받은 자리로만 가능.
들여보내주는 게 어디냐....
밖에서 TV로 보다가 조명이 어두워진 틈을 타서 뒷자리로 안내받았다.
명동극장의 장점을 하나 알았는데 윗층 뒷자리 조차도
참 잘보이더라는 것.
오이디푸스가 세익스피어 원작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처음 볼 땐 생각하지 못했는데
동반관객의 의문.
새인간은 연극배우인가?
그러고보니 무용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분이 사람으로 나오는 연극은
볼 수 없을지도...
(기사에서 무용가 이경은이라는 이름을 찾다)
참, 영어자막은 명동극장 모든 연극에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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