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떠나
`밀양`에 모여앉은 인간군상들의 조합에 분노했던 1인이었지만
`밀양`에 모여앉은 인간군상들의 조합에 분노했던 1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창동의 그 공격성이 소년의 분노로 이해되면서 더 이상 이창동이 싫지 않았았다.
누군가는 분노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래야 하기도 하므로.
그래서 또 다시 그 군상들이 덤벼들어도 화가 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창동 역시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시에 모인 그들은 측은히 여겨질 만큼은 징글징글하지 않았다.
노래부르듯 춤추듯 신명 넘치는 길이 아니어도 걸어갈 수는 있는 길.
상식이면서도 참 많은 변명속에 묻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길을
기억할 수 있는 동안 꿋꿋히 찾아가는 미자의 순수가
예순 여섯해를 씩씩하게 살아남아 있어서 반갑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해야 하고
그래서 시는 아름다운가 보다.
자신의 삶으로 부끄러움을 더하고 싶지 않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당연한 예의를
그녀가 현실로 불러주었다.
그것이 살가운 손자사랑의 주인공이 아니라서,
할머니 보다는 여자로 보이는 그녀라서
그 속에 더 소년처럼 꿈을 꾸는 이창동이 보이는 듯 하다.
이제 흉한 세상에 화내고 미워하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찾고, 이야기하고 싶은.
그리고.
어쩐지 미자의 시는 미처 부르지 못했던 송가 같아서
철렁.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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