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건달.
모두가 아는 이 쉬운 말의 조합이 이제사 영화에 짝지어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여러 편의 건달영화를 보면서 그때마다 궁금했다.
저 뒷골목에서 언제 비명횡사할지도 모르며
그게 또 세계평화와 민족의 독립을 위한 것도 아닌데
게다가 언제 누구의 배신으로 신념이 꺾일지도 모를 저 이상한 직종이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오늘 처음 남들은 다 알고 있었을지 모를 그 로망을 조금 느꼈다.
건달에 대한 로망이란 거침없이 사는 것임을.
무모하더라도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으며, 누구를 만나든 거칠 것이 없고,
순수 가오파라면,
정치인에 빌붙어 사는 성공한 건달들까지 침 한번 찍 뱉으며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철이라면 토요일 밤에를 부른 후가 아니라
그 전에 욕 한마디 했겠지.
그러니까, 명랑사회란 굳이 대접받겠다고 주먹질을 하고 나서기 전에
인간이 인간대접을 해줄 수 있는 소양있는 사회인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성실하고 재능도 있는 세진이 백수전체를 대표할 순 없다 하더라도
세진의 불운이 세진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 보는 처지에서
결말은 딱히 거슬리지 않았다.
불운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아.
안성기의 페어러브와 박중훈의 내 깡패같은 애인.
형제같은 두 사람이 연이어 자기 스타일의 연애물을 찍었다는 게 재미있다.
늘 배우가 아니라 감독의 판이 연기를 좌우한다는
좀 비겁해보이는 연기관을 가진 박중훈 이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배우들에게는 배역이 필요하니까.
아무 색 없어 보이는데도 든든한 배우 정유미.
배우의 파운데이션 색깔까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가난한 조명발 아래서 완전 고생
-여배우로서는 살신성인의 경지라고 본다.
입에 잘 붙지도 않았을 면접대답 같은 걸 보면 배우가 아니라 진짜 취업준비생같기도 하고.
무관심면접관, 가무면접관, 마지막면접관-재미있던 크레딧인데
요 단계만 지나 모두들 일자리를 잡게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니......
오랜만에 보람차게 아침을 열어준 조조영화.
기쁘게 추천하고 싶다.
PS. 오늘 극장에서
꼿꼿이 일어나 영화중간에 우르르 나갔다 들어오고
맨발을 앞의자에 당당하게 올려 놓은 채
즐거운 담화를 나누기도 하던 명랑(--;)소녀들.
동철이 나타나 분식점에서 처럼 처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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