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스크랩] 앙코르왓, 하롱베이


 
이번 앙코르왓 여행의 가이드가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라며 부러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일행들이 그 위치에 서서 똑같은 포즈로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나를 포함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빼고.
 
이 여행이 유쾌했던 이유 중의 중요한 요인은 바로 가이드의 친절하고 박식한 안내 덕이었다. 물론 가이드들은 기본적으로 안내할 곳에 대한 확실한 공부를 해야 하니 누구보다 해박하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떤 식으로 풀어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겠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화법으로, 각자의 유머와 위트와 재치로 나름의 노하우를 발휘할 터인데, 슬쩍 다른 가이드들이 인솔하는 일행에게 하는 말을 들어봐도, 우리 가이드만 못했다. 말을 참 잘할 뿐더러, 체계적이고 평이한 설명으로 이해도를 확실히 높여주는 화법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많이 안다는 걸 내세우는 잘난척도 안 보이고, 쉼없이 말하는데 질린다는 느낌을 전혀 안 주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었다. 내가 갖고 싶은 장점들을 다 갖고 있는 부러운 가이드였다. 이제 어떤 가이드를 만나도 쉽게 감탄하지는 못할 듯 싶다. 그 최극점을 이미 맛본 뒤이고 보니.
 

 
춤추는 이 소년의 행복한 미소는 보는 우리 일행들까지 들뜨게 만들었다. 그토록 즐거운 몸짓으로 살아있음이 너무 행복하다는 듯한 표정을 유감없이 뿌려댔던 이 소년 덕에 다들 자극을 받았다.
우리도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기왕 할 일이라면 저 소년처럼 즐겁고 기꺼운 마음과 몸짓으로 해보자고...

 
하롱베이 티톱섬을 향해 전용유람선을 탔을 때였다. 창 옆으로 이렇게 쪽배를 탄 여인네가 다가와 배 위에 싣고 온 바나나며 망고를 내밀었다. 한 바구니에 1달라, 한 묶음에 무조건 1달라.. 그들 나름의 생계 방식.

 
티톱섬에 도착해 462개의 계단을 낑낑 대며 올라가 높다란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섬의 전경.
 

 
유람선 위에서 보이는 대로 셔터 눌렀다. 아무 데서나 찍어도 그 자체가 그림이 되었다. 다만 안개가 너무 자욱해 조망이 맑지 못하다는 게 너무 아쉽다고 가이드가 여러 차례 안타까워했다. 맑고 밝은 날 이 곳을 본다면 얼마나 화사하고 아름다웠을까... 다음에 또 올 수도 없고...




 

 
베트남 국민들의 영웅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호치민의 미이라가 있는 바딘광장.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이 하롱베이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5명의 인물이 현재 미이라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스탈린, 레닌, 모택동, 호치민, 그리고 김일성.
직접 본 미이라는 암만 봐도 그냥 조각같았다. 사람처럼, 사람과 유사하게 깎아 놓은 조각, 사람의 실제 몸에 약품을 발라 그대로 보존해왔다는 설명을 분명히 듣고 난 뒤였지만 하나도 실감나지 않았다. 박제된 생명이란 게 그런 걸까... 온갖 정성 다 들여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했지만, 미이라는 조금씩 부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은 가장 기술이 발전했다는 러시아에 원정 가서 정기적으로 약품 처리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부패를 늦추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천리를 거슬러 가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누구나 죽고, 누구나 썩어간다는 당연한 자연의 진리를 거스르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에 대한 외경... 얼마나 그 흠모의 염이 깊고 사무쳤으면 그렇게 상징적으로라도 그들 곁에 모시고 싶었을까..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이 알 듯 모를 듯 잡혀지기도 했지만 자연의 이치가 보기 좋게 거부되고 있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이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고 있는 죽은 이의 모습을 본다는 게 마음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동남아 춤의 원형이라는 압살라 춤을 캄보디아의 한 극장식 식당에서 관람했다. 부페식 식당의 메뉴는 꽤 근사하고 다양해서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즐겁게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었던 모양인지 일행은 나더러 여행체질이라고 놀렸고, 심지어 이 곳에서 살아보라는 농까지 걸어왔다.
적당히 배가 부를 즈음 캄보이다 전통 음악에 맞춰서 이쁜 소녀가 압살라 춤을 추며 등장했다. 천상의 요정이라는 뜻의 압살라는 이 나라 유적지나 도시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 내가 묵었던 호텔 이름도 압살라 앙코르 호텔이었다. 이 춤의 특색은 지나치게 손가락 꺾기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발동작도, 몸동작도 거의 없다. 있다고 해야 너무나 단조롭고 변화없는 몇 가지 동작만 반복할 뿐이고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손가락의 모양으로 뭔가를 표현할 뿐이다. 그 뭔가의 내용이 뭔지는 춤 한 번 보았을 뿐인 내 눈에 전혀 보일 리 없다. 조금은 지루했는데... 
 

 
금세 분위기가 바뀌고,음악도 바뀌면서 열 대여섯으로 보이는 소년, 소녀 6쌍이 나와서 이렇게 키를 들고 재미있는 커플 춤을 췄다. 추임새 마냥 소리까지  어이, 어이 질러가면서 정말이지 즐겁고 신나게 몸을 놀리는 그들의 모습에 관객들의 호응도 덩달아 높아갔다. 그 중의 한 소년, 춤을 춘다는 사실이 못견디게 행복한 듯 무아지경으로 재게 몸을 놀리는 소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 웃음은 설정이 아니었고, 의례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소년은 정말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온갖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면서 살아있는 젊음의 패기와 순수한 열정을 마음껏 분출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의 호응이 워낙 컸던지, 아니면 맨 앞에 앉아 유달리 박수를 많이 치고 있던 내 소리를 들었던지, 들어가면서 슬쩍 우리쪽으로 일별을 던졌고, 하필이면 기분 좋게 나와도 눈이 마주쳤다. 어찌나 기쁘던지 나도 모르게 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주책맞게스리. ㅎㅎ
공연이 다 끝나고 무대 위로 올라가 그 소년의 어깨를 툭 쳤다. 헤이... 그리고 사진기를 들이댔다. 소년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활짝 웃어줬다. 녀석..벌써부터 눈웃음이라니, 청년으로 자라면 여자 꽤나 울리겠다 싶었다.
 

 
동양 최대의 호수라는 캄보디아의 톨레삽. 그 곳을 작은 유람선 타고 돌면서 수상마을을 둘러봤다. 물 위에 배를 짓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 둘 모여 큰 마을 하나가 형성된 곳.
물은 더러워 흙탕물이었지만 그 곳에서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이 살아가듯 그렇게 삶을 일구고 있었다. 카드 놀이도 하고,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물 위에 존재한다는 것만 달랐을 뿐이다.
한참을 돌다가 가이드가 차나 한잔 하자며 수상 카페로 안내했다. 물 위에 서 있는 카페. 여기 저기 고개 돌릴 필요도 없이 사면이 모두 호수.. 그것도 동양 최대의. 우기엔 서울의 20배가 넘을 만큼의 가공할 넓이가 된다는 이 거대한 곳은 호수라기엔 무색한 바다같은 곳이었다.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떠서 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 그 한복판에 뜬 햇살은 물결을 잘게 잘게 잘라서 금빛 이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워 행복했고, 한없는 평온함으로 행복했다.


 

 
드디어 앙코르 왓.
앙코르는 도시라는 뜻이고 왓은 사원. 우리말로는 사원이 있는 도시라고 한다. 그러니 앙코르왓 사원이라고 하면 동어 반복의 오류가 되는 셈이다.
이번 여행은 패키지였기에 나는 따로 여행지에 대해 공부하거나 조사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저 여행지가 하노이, 하롱베이, 앙코르왓이라는 말만 듣고 막연히 앙코르 왓이 베트남에 있는 곳인가부다라고만 생각했었다. 직접 현지에 가서 보니 나처럼 그런 어리석은 착각을 하는 이가 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앙코르왓은 캄보디아의 씨엠립이라는 도시에 있다는 사실을 여행지에 가서야 알게 되었으니..
 
씨엡림은 여러 모로 내게 참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 공항의 규모.. 우리 나라 작은 읍의 터미널같은 작고 협소하고 초라한 곳. 게다가 공무원들의 비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하다 못해 공항을 통과하는 세관 검사에서도 뇌물 없이는 안 되는 곳이다. 바치는 돈에 따라서 모든 일의 속도가 결정된다는 곳.. 심지어 운전면허시험도 돈으로 합격이 다 된다는..
그리고 킬링필드, 막연하게만 알았던 비극적 역사의 참상이 있었던 곳, 삼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권력욕의 희생물이 되어 피의 제전에 어이없이 파괴되었던 곳. 폴포트, 시아누크..그런 낯선 이름을 킬링필드 위령탑으로 향하는 도중에 가이드로부터 자세히 들으면서 사람의 잔인성이 얼마나 독하고 가혹한지를 몸서리치며 실감했다. 그 희생자의 유골을 모아 놓은 곳 앞에서 그 나라 아이들은 천진한 얼굴로 관광객을 위해 화장실 위치를 가르쳐 주고, 고장난 화장실 앞에서 몸으로 문을 막아 가려 주면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1달라 지폐에 마냥 행복해했다.
현재 관광 수입으로 빠르게 국가를 재건하는 중이라는 이 나라에서 조막만한 아이들도 나름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은 따라붙었고, 끊임없이 몇 마디 줏어 들은 한국말을 외쳐댔다. 언니 이뻐요, 오빠 멋져요, 다섯 개 1달라, 두 개 1달라...
덕분에 우리 일행들은 딱히 구입의 의지가 없었음에도 그 아이들의 열성에 감복하고, 연민을 느껴 피리도 사고, 팔찌도 사고, 책자도 구입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앙코르 왓을 200번 넘게 가봤지만 아직까지도 질리지 않고 싫증도 안나고 늘 좋은 느낌이라고 했다. 실제로 앙코르 왓은 참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긴 했다. 아무런 과학기술 없이 그저 인간의 힘만을 이용하여 저렇게 돌로 탑을 쌓아 올리고, 그 기다란 벽에 섬세하기 짝이 없는 조각을 하고, 계단을 쌓았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저 봉우리처럼 서 있는 탑은 멀리서 보면 세 개로 보이지만 서서히 가까이 갈수록 조금씩 가려져있던 탑이 드러나고, 하나인 듯 보였던 건물도 제 몸체를 제대로 보이면서 세 개로 갈라져 나왔다. 마술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은 벽에 조각된 그림 하나 하나를 보면서는 탄복을 넘어 전율까지 느끼게 했다. 그 조각은 바로 캄보디아의 살아있는 고대사였다. 그들의 신앙, 전쟁, 사랑, 해학.. 모든 것이 그들 조상의 손끝에 의해 섬세하고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술 작품. 조각 하나 하나의 의미를 모르고 보는 이들에게 앙코르왓은 그저 단순한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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