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김인문

오늘 이 배우를 두번이나 즐겁게 봤다.
011광고와 드라마 천생연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을 나이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아마 김인문과 신구가 맨 꼭대기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김인문은 부잣집 아들과 연애하던 딸 때문에 부잣집에 불려간 가난한 아버지였는데, 홍차봉지를 뜯어서 찻잔에 쏟다가 비웃음을 당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는 이 배우는 모진 말까지도 순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그런, 아주 묘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전원일기의 최불암을 두고 한국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비굴해져야만 하는 상황에는 처할 일도 없는 그런 넉넉한 어른. 인자한 모습, 가난해도 당당한, 그래서 정말 저런 사람이 아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좀 떨어진 듯한 느낌.
김인문이 보여주는 아버지는 속을 다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이지만, 그러면서도 거칠게 몰아부치지는 않고, 가끔 욕을 하거나 큰소리를 내도 그게 행패로 보이는 적은 거의 없이 강한 의사표현으로만 전달되곤 한다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김인문의 아버지는 늘 어딘가 불쌍했다.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러면서 자식들한테 미안해 하고, 뭐라도 도움이 되어볼까 하면 그게 꼬여서 더 큰 폐를 끼치기도 하고. 해줄거 해주면서도 큰소리 한번 못친다. 주면서도 더 늘 충분히는 못주기때문에 그걸 더 미안해 한다. 옆에 드센 마누라라도 있을 때는 더 불쌍해지는데, 내 기억에 늘 '김인문의 마누라'는 좀 억센 편이었다.

나는 원래, 착하기 때문에 남을 더 힘들게하는 사람은 매우 싫어하지만, 김인문은 짜증스러운 적이 없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우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왜곡해서 역정을 내지도 않고, 또, 어쩌다 드러난 속을 숨기려고 오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할말 없으면 가만히나 있지..싶을 때 가만히라도 있어 주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다.
장담하는데, 로즈마리의 장항선역을 김인문이 했다면 절대 그렇게 짜증나지 않았을 것이다(그게 장항선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괜찮아유-가 언제 튀어나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 한결같아보이는 표정에 많은 감정들을 녹여내는 김인문이 참 좋다. 내년에도 라이타를 켜라 같은 장면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찾으려고 검색을 했더니 정말 몇장 안나온다. 프로필도 마찬가지고.
한때 김인문과 신구 연합 팬클럽을 만들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서 포기했었다. 자료도 없기도 하고.
어디 숨어있는 부지런한 팬 없을까......

***아마 탤런트 중에 새끼꼬기 경연대회를 한다면 김인문이 1등 일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본 드라마 & 영화

수탉(1990): 기를 못펴고 사는 중년남자가 우연히 트럭에 태운 예쁜 처녀 덕에 잠시 기사는 내용이었다. 최유라가 상대역이었고 아마 신인상 받았을 거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1990~아직도 하는 걸로 알고있다): 여기서는 시골에서 바람이 좀 든 아저씨로 나왔는데, 이전과는 많이 다른 역할을 하던 대로 편하게 소화해서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머지 드라마들도 무지 많을텐데 프로필이 제대로 없고, 안보고 쓸 기억력은 안되므로===  

달마야 놀자(2001): 권위의식과 권위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큰스님. 야단 한번, 설교 한번 없이 불량배들을 다스리는 카리스마를 보라. 역할 자체가 멋지기도 했지만 김인문이었기에 친근하면서도 정말 큰어른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스님 밑에 있는 동자승이니까 축구선수를 꿈꿀 수도 있었겠지^^  

라이타를 켜라(2002): 아침부터 김승우를 작살내는 장면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두 장면 중 하나였다(하나는 박영규가 뭐라하는 장면이었는데 대사를 까먹었다).

해적, 디스코왕되다(2002): 임창정의 아버지, 똥지겟군인데,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지게에 치이나, 아무튼 정말 재수없게 다쳐서 내내 누워계신다. 김인문의 역할상 직업으로서는 거의 최고봉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난 가족(2003):멋쟁이 바람쟁이 시아버지. 암으로 죽으면서도 마실 거 피울 거 별로 조심안하고 속편하게, 몸만 좀 아프다가 돌아가신다. 여기서는 윤여정과 김인문 모두 약간의 노출신이 있었는데, 헐리웃에서도 케시 베이츠의 누드를 가지고 난리치는 마당에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 생각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재미난 기사*******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김인문올해 환갑을 맞은 연기자 김인문씨는 어느 배우보다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야, 너 한 2박 3일 시간 있냐” 자신의 연기자 데뷔 시절 얘기를 하려면 2박 3일은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을 시작한 김인문씨.
“상면이 형이 딱한마디 하던데요. ‘죽인다’고.”
강성진은 ‘달마야놀자’에 함께 출연한 박상면이 김인문씨를 두고 한 말을 전해 주었는데, 그 말이 정녕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가 드라마의 맛을 살리는 조미료 역할을 하지만 70년대는 엄격히 규제가 됐습니다. 국민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죠. 김인문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사투리 연기를 한 사람. 1973년 KBS 드라마 ‘어머니’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 백상대상 신인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향은 경기 김포.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 (선배와 연기하게 돼 부담스럽다는 강성진의 말에),
“하루에 몇번 전화할건데?” (휴대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그와의 대화는 즐겁기 짝이 없습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입력시간 2001/07/11 16:38
 
상상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저 빛나는 유머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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