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룩소르|인샬라2

이 펄럭이는 원피스(!)가 바로 깔라베야(카이로 인근의 낙타시장)

색은 훨씬 더 이쁘고 다양하다(내가찍은 사진인데 신문지스캔한 것 같다)

 


우리는 우선 포목점으로 갔다. 이집트 아저씨들처럼 맞춰 입을 생각이었다. 옷감을 사는데도 한참을 흥정했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 관광지. 여행 중에 깎기라면 남부럽지 않은 나인데, 의외로 부진한 성적으로 흥정을 마무리 하고 말았다. 세 명이나 샀는데도, 여기저기 물어봤는데도 더 이상은 깎아주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옷감을 사서 바느질을 맡겼다. 그 집 어르신이 입은 깔라베야의 디자인이 아주 맘에 들어서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함께 간 안여사와 김양도 나중까지 입겠다며 좋은 옷감을 골라 턱 맡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옷을 찾으러 갔다. 일찍 오지도 말래서 꼼꼼한 바느질을 기대하며 그 집을 찾아갔는데, 어쩌면 세벌 모조리...멀쩡한 것이 없었다. 종이인형옷 만들 듯이 대충 선 그려서 대강 박아놓은 꼴이 여기저기 시접이 울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전에 몇 번 컴플레인을 하다가 기분만 상하고 돌아온 적이 있어서 참을까 했건만 나는 깔라베야를 입을 기대가 너무나 컸었던 모양이었다. 보는 순간 울화가 치밀면서 말이 술술 잘도 나왔다.
이게 뭐냐, 너 같으면 입을래, 니 꺼랑 차라리 바꾸자, 옷감만 다 버려놓고...옷감 물어내, 바느질 값 물어내...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 이었다. 이정도면 됐지-뭐, 이런 식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할아버지가 입고 있던 깔라베야의 소매를 뒤집어 가며 그들이 망쳐놓은 내 옷감과 마구 비교를 해댔더니 슬슬 그쪽에서 꼬리를 내렸다.
승기를 감지한 나는 한말을 또 해가면서 어쨌든 변상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내내 부진했던 실력이 어디 가겠나 싶게 중간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옷감은 다시 끊어 주겠지만 자기들도 돈 주고 시킨 바느질이어서 손해를 입은 셈이니 새로 만드는 옷의 바느질값은 추가로 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멍청하게, 당한 집에 또 맡기냐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다른 집을 간다면 결국 똑같은 바보의 같은 절차를 두 번 밟는 일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왜냐면 다른 집은 또 어찌 믿나. 차라리 얼굴 한 번 이라도 더 본 이 집이 낫지. 나는 솜씨보다는 관계를 믿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같은 집에다 바느질값을 더 주고 맡겼다. 이번에는 솜씨 좋은 사람에게 맡겨야 하니 바느질값도 더 내라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먼저보다 좀 더 얹어서 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서 몇 번을 다짐했다. 할아버지 꺼랑 똑같이 만들어 주세요, 또 틀리면 옷감 두 배로 물어주세요.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그저 잘하는 집에 맡기겠다고만 하고 책임지겠다는 말은 절대 안하는 것이었다. 불안한 나머지 나는 몇 번을 더 답을 재촉했다.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나를 황당하게 만든 것은.


‘Inshala...'-이것이 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순간 황당과 불안과 또 실망이 교차하면서 내입에서 나온 말은,
‘신 말고 당신 뜻대로 하란 말이야....!!!’
그 말이 충격이었는지 할아버지는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답을 해주었다.
‘응’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그래도 입을만하게 만든 칼라베야를 한번씩 가질 수 있었다(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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