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패니쉬 아파트먼트|L'auberge Espagnole



영화를 고르는 건 정말 순간의 선택이다. 가끔은 정반대의 이유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평론가들의 호평 때문에 안 보려고 했다가 재미있다는 말에 보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말이 거슬려서(이상한 얘기지만 어떤 영화는 그게 거슬릴 때도 있다)안 보려다가 평론가들의 칭찬을 믿고 보게 되는 경우.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전자였다.

영화는 한 프랑스 청년이 스페인 교환학생으로 가서 겪는 일들과 그 시기의 짧은 성장기를 보여주는데,
가장 큰 매력은 여러 나라 친구들의 어울림이었다.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다른 나라 친구(라고 할 만큼 많이 가깝지는 않지만 타지에서의 인연이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해서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들을 떠오르게 했다.

타지에서의 인연은 좀 묘한 유대감을 만들곤 하는데,
그건 정착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면 긴 시간 나누었을 여러 절차를 짧은 기간에 다 겪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정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인연을 더 생각하게 되고,
일정 기간 함께 하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서 다방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지내는 동안 외로움에 대한 공감도 많이 하게 되고,
특별한 상황이니까 평상시와 다른 모습도 보게 된다.
게다가 헤어짐도 빨라서 압축된 인연의 시작과 끝을 짧은 시간에 다 겪게 되는 것이다.

함께 지낼 때는 한 사람 한사람의 의견이 모두 존중받고,
그중의 일부와는 갈등도 겪고,
가끔은 같은 고민을 함께 하고,
헤어질 때는 너무나 아쉽지만
또 떠나고 나면 금방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중 특별한 몇몇과의 지속적인 관계도 몇 차례의 편지나 메일로 마저 정리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참 반가울 것 같은 인연.
보는 동안 한 때 내게도 있었던 그런 친구들 몇몇을 생각하며 재미있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국 처자 웬디(이름과 얼굴 모두 진짜 영국틱 했다)의 동생 윌리엄의 만행이다.
독일 사람은 히틀러 정신으로 절도 있고 단정한 생활을 한다든가,
이탈리아 사람은 지저분하다든가,
각 나라 사람들의 영어 액센트를 흉내 내며 키들거리는 부분에서는 마구 웃어버렸다.

사실 내가 만났던 영국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 뿐 이었는데,
촐싹대는 윌리엄의 모습도 낯설지가 않았다.
얼마 전 러브 액추얼리가 쿨~한 수상 휴 그랜트를 통해 미국의 천박함을 씹었는데,
여기서는 윌리엄을 통해 영국을 씹고 있다, 재미있게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말은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다.
어디 사람들은 어때, 거기는 어때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그래서 할말이 줄기도 했다.
차이를 보자면 한이 없는 듯 하지만 또 사람이기에 기본적인 정서 또한 많이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차이에서 오는 태도의 차이가 그렇듯이.

그 지역 또는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존중한다는 것과 차이를 알고 기술적으로 적응한다는 것 사이에서
편견 없이 바라보기가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 와중에 본 유쾌한 스페인 연수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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