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레스텔라 2021 앙코르


20210905

하늘 아래 같은 공연 없다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하니까 굳이 또 보러 가는 편은 아닌데,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본, 앙코르 콘서트로는 두 번째.

Inner Universe
이렇게나 선명한 네 개의 다른 목소리.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들리던 것 같던 자연 그대로(??)의 음향이어서 너무 좋았다. 
지난 공연의 음향에 대한 불만 말끔히 해소. 
하지만 아직도 
노래로도 충분한 다채로움을
춤으로 분산 시킨 것에는 반대인 1인. 
 
당신이 듣던
오늘 공연에서 목소리 예뻤던 3집 수록곡.

Revival + Lay me down
흥이 한 껏 오른 고우림과 
가진 소리의 매력을 뽐내는 배두훈
-오늘 따라 정말 더 잘 부른 듯.
   
Shape of you
지난 번에 너무 훅-지나가 버려서 오늘은 무대에 집중하자(내 무대는 아니지만^^) 했는데
고우림과 강형호의 웨이브 발견!
겉은 수줍지만 속은 열정적인 고우림 버전과,
처음이 아닌데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강형호 버전의
동영상 기다립니다...

Champions
오늘 같은 음향으로 들을 수 있다니.
처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In un'altra vita
목소리를 연주하는 것 같던 소프라노를 들려준 강형호, 
늘 잘하지만 오늘 더 짱짱했던 조민규의 소리로
오늘의 베스트.

오늘 음향 대만족.
소리 하나하나 살아나는 느낌이어서 앞으로도 음향이 계속 이러면 좋겠고 
앙코르 공연이라서 지난 번 Universe처럼 기대를 했었는데 
Dandelion은 다음 기회로...

그리고 오늘 공연의 대스타가 된 일명 세신춤. 
...아, 배두훈 ㅋㅋㅋㅋ
처음부터 너무 열연으로 시작한 이것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하나의 완벽한 세신극.
근데 왜 이렇게 혼신을 힘을 다하시는 거예요 ㅋㅋㅋㅋ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禁樂]

 

20210828 2:00

조선 왕이나 세자들은 본명이 참 이쁘다.

요절한 영특한 왕세자들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번엔 효명세자 이영이다. 

안 봐서 몰랐는데 꽤 유명했던 드라마와 원작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모든 소리를 듣고 낼 줄 아는 성율, 

음악에 진심인 왕세자 이영,

비밀의 금지된 음악 '금악'으로 욕망을 이루려는 악당, 김조순.

그리고 금악에 갇힌 욕망의 화신 갈.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국악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구조물이 최소화되어 조명으로도 풍부한 장면을 만든 무대도 인상적이었던 

신선한 공연이었다. 

자유를 위해 어두운 욕망을 이긴 율의 승리는 

욕망의 고삐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영이 그 목마름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희생으로 

역시 공짜는 없다--는 슬픈 결말. 

율이 갈을 처음 만났을 때, 

갈을 만나 금악에 사로잡혔을 때,

나중에 다시 율로 돌아올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배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예 다른 목소리로 더 강하게 대조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남자배우가 갈인 버전이 있는 걸 나중에 알았다-아쉬움.

처음 등장부터 존재감이 엄청났던 갈. 

특히 연회날 춤꾼들 사이를 오갈 때 

처음 만나는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 같은 모습 특히 귀여웠다. 

이영은 꽤 온순하고 부드러운 왕으로 그려졌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 그것 역시 배우의 의도.

이대로의 공연도 좋았지만 

너무 고음으로만 폭발시키기 보다 

노래 안의 드라마가 살도록 다듬어지고 

그래서 한 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는 부분이 생기면 좋겠다는 약간의 아쉬움-

이 덜어질, 

갈이 처음으로 교감하게 된 인간을 만난 후의 변화나

임새의 갈등이나 

이영과 김조순의 갈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질지도 모를^^ 

다음 금악을 응원한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들. 

소리꾼 임새와 춤꾼 겨울의 캐릭터가 짧지만 강렬하게 남은, 모든 게 네가 처음이라

좋은 왕은 이런 거지 싶던, 비가 되어.

초반에 소리로 알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준 설정도 재미있다. 


다른 가수 때문에 본 몇 개 안되는 팬텀싱어3 무대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황건하의 뮤지컬 첫 작품이고

국악과 함께 하는 공연의 신선함에 끌려서 조기 예매하고 기다리는 사이 

델타변이도 그렇고 너무 멀기도 해서 좀 망설였는데  

공연은 대만족 + 친절한 직원 분들 덕에 경기아트센터도 만족. 


극의 중심은 성율과 갈이었어도 

이영의 존재감은 확실했는데 

대사 연기는 가끔 궁예 생각이 날 때도 있었지만^^

노래 연기는 정말 압도적.

내 생각에 언젠가 슈스가 될^^것이 확실한 황건하의 첫 무대 본 거 

나중에 자랑할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ㅋㅋㅋ


...요즘 예전에 못 봐서 안타까운 뮤지컬 불의 검을 유튜브에서 발견했다. 

노래들도 다 좋고 최민철-임태경 두 버전 다르지만 멋진데

듣다가 갑자기 마치 둘의 느낌이 다 살아있는 것 같은 황건하가 떠올랐다. 

불의 검 재공연도 있으면 좋겠고 황건하가 가라한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더 포레스텔라 2021 - 고양

 


20210822

Inner Universe
나 이거 들으며 왔지.
방송에서도 살짝 느꼈었지만 
좌고저음 우강고음-정신을 쏙 빼놓는다. 


Scarborough Fair
전혀 열광하던 곡이 아니었는데  
오늘 휘몰아치고 갔다. 

We are the champions
전혀 열광하던 곡이 아니었는데 
휘몰아치고 두드리고 돌리고 던지고 후려치고 갔다.
왜. 무슨 일이죠? 


Dandelion
그 부분에서 그 소리가 나서 좋은 이 섬세한 노래를
라이브로 어디까지 들려줄 수 있을까...생각했었는데 
코믹을 곁들인 마무리에 쓰러지기 전까지 
그 맛보기에 이미 진지하게 반함.
정확하게 불러줄 거 같은데, 언제요....
진짜 짧은 맛보기였는데 제일 듣고 싶다고.
이미 포레 팬이라서 공연을 가는데 
강형호는 공연 때마다 맨날 재입덕하는 기분.
Paranoid Android 같은 곡은 사실 취향도 아닌데
라이브로는 의외로 푹 빠져서 들음.


Revival
Change on the rise가 너무 강렬했어서 오히려 기대가 줄어든 솔로곡이었는데
들썩들썩 신난다. 
고우림은 어디서 이런 노래 잘도 찾네.


Thriller + Smooth Criminal
사실 요 두 곡은 유튜브로 이미 많이 봐버렸는데 
처음의 놀란 마음은 이제 조민규 챌린지에 정착 ㅋㅋㅋ 아주 잘 크고 있다. 


Bohemian Rhapsody
곡 소개를 할 때 속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많이 들었으니까 다른 노래로 바꿔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1초 스쳤었는데
...노래 끝나기도 전에 눈물 남. 


Shape of you
라이브로 보는 건 처음인데 
1부에서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서 무려 이 노래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게다가 마마시타 망원경으로 본다고 오바 떨다가 마마시타 놓침.
완전 망함 ㅋㅋㅋㅋ

Champions
언제 들어도 또 듣고 싶은.


In un'altra vita
공연 앵콜은 영원히 In un'altra vita였으면.
나는 내 입덕곡이라 좋은데 포레는 팀결성 첫 곡이라 소중하다고 한다.  
토요일 거 보니 강형호가 울컥 해서 기쁨을 주는^^ 사이
마치 경연 때처럼 조민규와 배두훈이 소리 더 내줘서 옛날 버전 생각났다. 
좋은 부분 많지만 경연 때 배두훈의 치라샤모는 완전 소중.


동네 공연도 못 가는구나 절망에 빠져 있다가 구한 표라 
4층도 감사한 마음으로 갔는데 
1부 음향이 고르지 않아서 마이크 소리가 엄청 째지게 났다. 
뒷부분에서 수습이 됐고 
몇 곡은 그 악조건을 뚫고 나와서 다행이긴 했는데 
그래도 아쉽. 
3층에서 본 동행은 괜찮았다니 4층이 좀 이상했나 본데
나도 원해서 고른 건 아닌 처지에
또 4층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나의 관객 미래가 좀 씁쓸하다. 
 

오월의 청춘|2021



5월 같은 명희


광주와 5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결말에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의외의 발랄한 동영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 가려나?

일단 보기 시작하고는 수련이와 명희의 광주사투리에 빠져 
단숨에 8편을 다 보고 마지막 4회는 실시간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광주는 언제나 다큐멘터리와 묵직한 극 속에서 
분노와 먹먹함을 불러일으켰는데
사랑이야기 속의 연인들을 따라가는 광주의  이야기는
훨씬 더 감정적으로 다가 앉게 해주었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가
시대의 중압감을 열연으로 승화시켜 준 것 같고. 
이제 광주의 진실은 더 밝혀져야 하고 갈 길이 멀지만 
먼 미래에 
역사와 과제로 만이 아니라 
디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더 가깝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제일 큰 공신은 광주 말씨. 
철학 단계를 지나 밥 먹자는 놈은 뭔가 아주 잘못된 거고, 
식당 단계에서 암시랑토 없이 밥을 먹는 놈은 털털한 여자를 좋아하는 강적이며 
그  앞에서 국밥 처먹는 꼴을 보인 건 끝장이라는 야무진 조언을 날리는 수련의 사투리가 
초반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어지는 명희의 아버지 김원해와 어머니 황영희는 
외지인의 귀에는 진짜 원어민 같은 느낌.
게다가 김원해는 얼굴 하나 눈빛 하나가 다 '김현철'씨 같아서 
이상하게 얼굴을 그냥 보는 것 만으로 눈물이 난 적이 여러 번 이었다. 
명희 사투리도 좋았지만 
그보다 내새끼 모드로 늦둥이 동생 명수의 달리기를 응원할 때 같은
명감탱이 모드가 더 좋았다. 

내가 처음 본 클립이 명희와 희태의 맞선 장면이었는데
그 때 이미 즐거운 두 사람의 모습이 보고 싶어 다시 본다는 댓글이 줄줄.
결국 나도 후반부를 보고 나서 그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밖에. 

하필 눈물 흘리는 수련에게 반했던 인정의 경찰관
-지금 같으면 징계감이었긴 하겠지만^^-도 생각나고 
이야기기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신기하게도 웃음을 담당해주던 희태의 묘한 분위기도 범상치 않았고
나만 모르고 있던 것 같은 이상이의 디테일
-택시에서 희태 시점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대사를 말하고 있던 수찬 같은-
도 극을 채워준다.  
이렇게 젊은 배우들이 
스타성을 훨씬 뛰어넘는 연기력으로 꽉 채우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마지막회 특별 출연자들까지 여운을 더하던. 
마음 아픈 사랑이야기였지만 결국 떠오르는 한 사람. 
29만원짜리 화수분은 꼭 비극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PITTA (강형호) - dandelion

 


강형호의 보칼리제.


아직도 월요병이 오페라보다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로 

듣는 사람들의 턱을 도미노로 떨어뜨리던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모습이 생생한데 

그 강형호가 PITTA라는,

솔로 강형호에게는 이 이상 없을 것 같은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들려주는 두 번째 음악이 

오늘 나왔다. 


올스타전 때 이너 유니버스는 

뱃사람들이 들었던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는 세이렌이 이건가 싶을 정도인 

그 묘한 분위기가 무한 반복을 불렀다. 

온갖 고음을 생목으로도 찢고 크리스틴으로 찢으며 돌아다니던 강형호가 

소년 합창단 목소리까지 들려줬기 때문에 

이제 자기 소리의 샘플채집은 거의 다 끝나지 않았을까, 

이제 그걸 조합해서 어떻게 들려줄까-

만 생각했었는데.

그랬는데.   


Dandelion의 강형호는 다시 새 목소리들을 들고 나타났다. 

들었던 소리들 속에서 성숙한, 하지만 다른. 

이런 소리들을 내는 사람은 음역이고 스타일이고 다 필요 없다. 

그냥 자기 소리만 잘 내면 된다. 

과연 무대에서 이 소리들의 이 질감을 얼마나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가

남은 궁금증이자 기대. 


유니버스에서 애타게 자신의 우주를 부르고 

이너 유니버스에서 우주의 목소리에 각성해 본연의 나를 찾아 가겠다더니 

이제 민들레가 되어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나로 돌아오는,

구성으로는 참 모범적인 전개인데 

목소리가 차지한 표현의 세계는 

모범적인 행보란 걸 잊을 만큼 충격적이란 게 

정말 대반전.

근데 이게 또 시작이란 건 더 반전.

모범적인 이야기들의 전개에서 

이제 그 민들레의 미래는 또 성장일테고

강형호는 모범생이니까 

...그래서 다음엔 또 뭐겠냐고요...이제 상상을 포기하고

두근두근만 남겨놓기로.

정원가의 열 두 달|카렐 차페크|펜연필독약

 

스노우드롭
풍년화
헬레보어
라일락
개나리

정원가를 들썩이게 만드는 3월의 꽃들

정원가의 열 두 달.
제목에 충실하게 1월 흙을 준비하는 분주한 마음부터 12월까지
마음 만은 한 시도 한가할 틈이 없는 정원가의 우당탕한 분주함이 그려진다. 
정말 그려진다는 표현이상으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카렐 차페크는 온갖 퇴비종류를 소개할 때나 
겨울에 이미 봄을 당겨오는 이른 꽃들에 대해 쓸 때도 
마치 음악을 타듯 
흥분한 정원가의 마음이 얼마나 들떠있는 지가 충분히 상상 되도록 쓰고 있다.

1월
하지만 이토록 까탈스러운 날씨를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비법이 존재한다. 예컨대 '내일은 옷장에서 가장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날이 밝기가 무섭게 기온이 오른다. 친구들과 스키장에 갈 계획을 세워보라.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씨앗
모든 식물은 씨앗 아래 부분에서 움튼 다음, 씨앗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채 고개를 밀어 올린다. 머리에 엄마를 이고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라. 자연의 신비다. 

2월
낮에는 꽃망울을 덤불 밖으로 살살 꼬여내어선 밤이 되면 얼려 죽이고, 당신을 한껏 유혹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얼간이 취급을 하는 게 바로 2월이다. 

가드닝 기술
늦은 오후 정원에 물 세례식을 거행할 때다. 이때 만큼은 위풍당당하리만치 몸을 반듯하게 펴고 서서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진두지휘한다. 

3월
날씨로 인한 지난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매년 또 다시 봄을 맞이하고 꽃을 피워 내고야 마는 정원가들. 그 존재야말로 인간 고유의 낙관주의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새싹
우선은 작은 구역을 선택해서 살펴보는 게 좋다. 

4월
5월에는 꽃이 피지만 4월에는 싹이 튼다. 

노동절
당신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노동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귀하며 심신에 이롭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캄파눌라 꽃을 피우기 위해, 범의귀를 무성하게 키워내기 위해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노동했다는 사실 만을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으로 일구어낸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5월
씨를 뿌리는 경우 모두 쭉정이거나 아니면 모두 닥치는 대로 싹이 트거나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멋진 모종 화분이 160재나 생겼다. 역시 씨를 뿌리는 게 최고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160포기나 되는 엉겅퀴들을 어떻게 감당하지? 빈자리마다 꾸역꾸역 채워 심었지만 그래도 130포기가 남았다. 뭐라고요? 이렇게 애지중지 길렀는데 어떻게 내버리란 말씀입니까? "이보게, 시르시움 좀 얻어가지 않겠나? 정원에 심으면 아주 멋져!" "아, 좋지." 고맙게도 이웃이 30포기를 가져갔다. 이제 그 이웃이 골머리를 싸맬 차례다. 그는 정원을 돌아보면 고민에 빠진다. 아, 건넛집이랑 아랫집에 좀 떠넘기면 되겠다. 

단비
우아하고 사뿐하게 내려 단 한 방울도 헛되이 흘러넘치지 않는다. 

6월
정원가들은 광인처럼 머리를 흩날리며 정원으로 뛰쳐나간다. 물론 이는 낭만적인 시인처럼 자연에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분노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채소밭 정원가들
물론 농부의 삶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매일 혼자서 무 120개씩을 먹어 치워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 누구도 먹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
다시 말하지만, 비가 와야 된다. 

식물학챕터
가령 철도 관련 지역에서는 식물이 매우 번창하는 반면, 우체국이나 전신국은 식물의 불모지다. 또 관공서보단 개인 사무실이 식물학적으로 훨씬 비옥한 편이며. 관공서 중에서도 특히 세무서는 완벽한 사막이다. 

8월
한 해는 언제나 봄이고, 인생은 언제나 청춘이며, 꽃은 언제고 핀다……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자들이나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법이다. 일 년 열두 달 심지어 11월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존재들은 가을을 모른다. 찬란한 여름만이 계속될 뿐이다……일 년이란 무척 긴 시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법이라네.

선인장 키우는 사람들
종파주의의 핵심은 그것이 열정이 아닌 열정적인 믿음에 의해 유지된다는 데 있다……선인장쟁이들에겐 진정한 선인장 흙을 만드는 놀라운 비법이 존재하는데, 차바퀴로 깔아 뭉개며 위협해도 절대 그 비법을 누설하지 않는다. 

9월
무엇보다 9월은 ‘땅이 새로이 열리는 달’, 즉 식물을 또 한 번 심을 수 있는 달이다……자기 농원의 토질이 좋다고 말하는 주인은 한 명도 없다. 늘 거름을 제대로 못 주었다느니 물이 부족하다느니 냉해를 입었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농원의 꽃이 잘 자란 건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애정 덕분임을 그런 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이 뻣뻣하고 생명 없는 물질이 지닌 적대감과 냉담함이란 게, 생명의 흙이 되길 거부하는 자기 방어의 몸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켜하지 않는 존재를 한 뼘 한 뼘 하고 들어가 그 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생명(식물이든 인간이든)이 얼마나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흙에서 무언가를 앗아가기 보다는 더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10월
땅을 살살 파보면 엄지손가락 만큼 두툼한 싹눈과 가녀린 새싹, 알알이 여물어가는 구근을 발견하게 된다. ‘봄이 여기 숨어 있네’라는 생각을 안 하고는 못 배긴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가을의 아름다움
자연이 선사하는 작물들은 대체로 한 장소에 모이기보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의 좁은 길들을 따라 사방팔방 흩어진다. 하지만 사탕무는 하나의 줄기를 이루며 가까운 기차역이나 설탕공장을 향해 흘러간다. 
기하학, 그건 집단의 아름다움이다. 농부들이 쌓아 올린 사탕무 더미는 기념탑처럼 반듯하고 각진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건축 작품 같다.    

11월
11월은 흙을 위한 달, 흙을 갈아엎고 일구는 달.
<뿌리 뽑기의 어려움>

겨울잠에 든다는 표현도 사실 틀린 말이다. 그저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들어설 뿐, 생명이란 영원한 것. 섣불리 끝을 가늠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보라.

마음에 드는 구근을 산 다음 이웃 정원가에게서 질 좋은 퇴비 한 자루를 얻어 온다. 다락과 옥상을 뒤져 화분이란 화분은 다 꺼낸다. 화분 하나에 구근 하나씩을 심는다. 어쩌지, 아직 구근이 남아있는데 화분이 모자란다. 화분을 더 사왔더니 이제는 구근이 모자란다. 멈추자니 화분과 흙이 너무 많이 남았다. 구근을 조금 더 사왔더니 흙이 살짝 모자란 듯 하다. 한 포대 더 사오지 뭐. 슬슬 예상했겠지만, 이번에는 흙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화분과 구근을 더 사와야겠다. 
—-이 무한 반복은 항상 '모자라지 않게' ‘너무 많이’ 남도록 준비한다는 게 포인트^^

준비
너무 바쁜 나머지 위를 향해 자라는 걸 잠시 보류한 상태라고 보는 게 훨씬 정확하다. 다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있는 힘껏 발 밑을 파내려가며 아래를 향해 자라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 해내지 못한 일들은 4월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라고 있다. 

12월
이제 정원이 눈밭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정원가는 까맣게 잊고 있던 일 하나를 기억해낸다. 바로 정원을 바라보는 일이다. 

정원가로 살아간다는 것
레바논 삼나무는 높이 100미터에 10-20미터 굵기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하지만 이제 겨우 그 나무는 25센티미터 자랐을 뿐이다. 그렇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더한다. 



정원의 열두 달이 아니라 정원가의 열두 달 이어서 였는지, 
정원 안 식물들의 경이로움 보다는 난리법석인 정원가의 속마음이 더 흥미롭다. 
긍정에너지의 기원을 
법석이는 열 두달을 매년 반복하는 정원가의 숙명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카렐 차페크의 암석정원 예찬은 틈만 나면 등장해서 
게으른 영세 채소화분가인 나조차 
나중에 한 번?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을 쌓아 만든다는 암석정원은 이름만큼 거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상상 만으로도 작은 산의 미니어처가 그려지고 
아주 작은 땅에도 가능할 것 같다.

변함없이 무식하고 무심하게 
가끔 들여다나 보는 채소화분가에게도
아낌 없이 새싹의 귀여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땅과 씨앗의 신비는 
인심이 넉넉하다.

엄청난 기대를 품고 심은 씨가 그냥 거름으로 끝나서 상추 살 때마다 생각났던 기억도 있고
그 작은 한 톨이 쑥쑥 자라 루꼴라 꽃나무가 된 것도 봤고
마구마구 싹이 터서 쑥대밭 같은 상추를 뜯어먹어도 봤고
바질이 넘쳐 나서 파스타를 만들다 못해 쌈장 찍어서 먹어치운 적도 있다보니
나랑은 비교도 안되게 바쁜 열두 달을 보내는 정원가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물 줬더니 바로 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날
정원가라면 무슨 충고를 해줄까 싶어 6월을 다시 보니...
자연의 분노에 대비하라-언제 어디나 들어맞는 정원가의 지혜였구나^^

해적|Le Corsaire|국립발레단




얼마만의 박슬기 인지. 
이재우가 부상(?)이어서 콘라드는 허서명.
지난 번 재미있게 봤던 공연이어서 박슬기 버전으로 다시 보고 싶어 갔는데
박슬기는 여전하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지난 번 공연이 뭔가 기대를 불러일으키던 
내가 처음 만난 국립발레단 같았다면 
이번은 다시 최근의 새로움이 없다고 느껴지던 국립발레단 같은 느낌. 
내가 발레를 보면서 공부를 했더라면 
이런 느낌적인 느낌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을까.
거기다 공연 초반 어마어마한 일명 관크가 있어서 
1막은 거의 날리다시피해서 더 그럴지도. 
그쪽도 일부러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공연 중이라 내색도 못하고 방해가 된 건 사실인데 
그 상황을 봤었는지 어셔가 쉬는 시간에 사과하러 왔었던 게
이후 감상에는 도움이 되긴 했다.
먼 길 간 보람이 좀 없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