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낭패....형사Duelist DVD 특별판




Disc 1
_ 화면비 : 2.35 : 1 와이드스크린 아나몰픽
_ 음 성 : Dolby Digital 5.1, DTS, Music&Effect Dolby Digital 5.1
_ 자 막 : 한국어, 영어
_ Commentary with 이명세 감독, 안성기, 하지원, 강동원
_ Commentary with 이명세 감독, 조성우 음악감독, 강한섭 영화평론가


Disc 2
_ 메이킹 필름
_ 비쥬얼 : 셋트를 포함한 미술, 의상, 소품, 분장에 관한 메이킹
_ 배우 인터뷰 모음 (안성기,하지원,강동원 인터뷰)
_ 대담 : 이명세 감독, 조성우 음악감독, 강한섭 영화평론가
_ CG 및 DI 제작과정
_ 음악감독 인터뷰
_ 트랜스와 옵티칼 : 편집관련
_ 뮤직비디오, 예고편, 깐느 프로모, 티 져, TV SPOT


Disc 3
_ 조선 느와르 : 이명세 <형사> 만들기
_ 형사중독
_ 스페셜 뮤직 비디오 (영화의 엔딩 곡으로 만들어진 뮤직 비디오) : 강동원, 하지원 듀엣 곡
_ Music & Effect Dolby Digital 5.1로 보는 ‘형사’의 새로운 참 맛!!, Auto play 적용


심의번호 : 2005-F232
특기사항 : Special Features

유의사항 : 출시일정 및 제품정보는
제작사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About Movie
l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l 선명한 색채의 눈부신 영상이 발산하는 장엄미!!
l 최고의 인기스타 ‘강동원’, ‘하지원’의 운명적 만남!
l 제25회 영평상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수상!!!

 
아아악-----재앙이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는 줄 알고 매일 매일 장바구니 확인하며 쓰다듬어줬는데
이것이...! 1주일 연기됐다.
대체 이유가 뭐냐-이것도 절대 안가르쳐주나?
저누무 유의사항....너무해...!

Storm|형사OST|2005


아티스트 - 조성우
관련앨범 - 형사 OST
Storm -조성우

 
 

소설|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기계 공장 패들은 우측으로 150미터 가량 뒤떨어져서 전진해오고 있다.
이제는 성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작업대에는 희색이 넘친다. 가련한 '집토끼'들의 만족-그래도 우리는 개구리보다 세지 않느냐!

간수가 장갑을 쥐는 순간, 슈호프는 기중기에 가슴이 눌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만일 다른 쪽 장갑에까지 간수의 손이 닿는다면-그때는 영창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하루 300그램의 빵, 더운 국은 사흘에 한 번밖엔 주지 않는다. 순간, 슈호프의 머릿속에는 영창 속에서 굶주림에 시달려 하루하루 쇠약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생활로 되돌아 오는 것도, 배부르지는 못하더라도 견디어낼 만큼은 먹을 수 있는 현재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도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닌 것이다.

"너희는 수염난 늙다리(스탈린을 가리킨다)의 자비를 바라는 거냐! 그 녀석은 말야, 친형제까지도 믿지 않는단 말야. 하물며 어디서 굴러다니던 개뼈다귄지도 모를 너희 같은 건 염두에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해!"
특수범 수용소에는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마음대로 울분을 터뜨릴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스치 이지마에서는, "소련에는 성냥이 부족하대"하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는 것만으로, 영창에 들어가서 10년형의 연장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위층의 침상에서 마음대로 지껄여대도 밀고자에게 고발당할 염려가 없다. 그리고 보안부에서도 문제거리로 삼으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말을 오래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거 보십시오, 이반 데니소비치. 지금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당신의 영혼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싶어한다는 증겁니다. 어째서 당신은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지요?"
슈호프는 힐끔 알료사를 바라본다. 두 눈이 마치 촛불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다. 슈호프는 휴우 한숨을 내뿜었다.
"어째서냐고?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꼭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꿩 구워 먹은 소식이 되기가 일쑤고, 그렇지 않으면 '이유 없음'이라고 퇴짜를 맞을 게 뻔하거든."

--------------------------------------------------------------------------------------
이 책이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는 조금 상상이 간다.
마지막의 반전을 능가하는 마무리에 이르면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저 폭로와 센세이션으로 이 책의 소명이 다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읽은 내가
작가의 사그러들지 않은 유머감각을 즐거워할 수 없었겠지.

두려움은 지금 견디기 힘든 어려움 보다는
더 나빠질 미래,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
밖에서 보기에는 더 떨어질 밑바닥도 없어 보이게 절망스러운 죄수들에게도
두려움이 남아있다는 건 오히려 그들이 희망적이라는 역설인가.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언성만 높아도 두려워지는데
한 다리 건너 보고 듣는 폭력에 대해서는 점점 무뎌져만 가고 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주인공을 미치게 만드는 고문은
못자고 못먹어 정신없는 주인공에게 누군가 유령처럼 다가와
그에게만 들릴 작은 소리로 '네 아버지를 죽여버리겠어'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두려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건 고문으로도 안 칠텐데'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배우라는 자부심은 분명 아니었는데
보고 들은 게 많을 수록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뎌지는 것,
그래서 점점 그런 폭력에 대해 그 즉시 일어나는 마음의 분노의 강도를 꺽는 것
-이게 모든 폭력을 몰아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름 평범하고 '행복하기까지 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읽을수록 그의 하루에 익숙해져 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각성하다.  

영화|청연|2005



[이 사진만 조선일보에서 훔침]

 

 

영웅의 인간승리도 아닌, 비운의 `여류비행사`를 신비스럽게 포장하지도 않은,

한 사람을 사로잡았던 하늘의 벅찬 느낌을 슬프게 전해주는 영화-청연.

그 여자는 대체 뭘 믿고 그런 꿈을 감히 품었으며 어쩌자고 그 꿈을 이루겠다고 작정하고 덤볐을까.

대충 가능성 있는 걸로, 먹고 살 만한 걸로,

어느새 꿈도 스스로 검열하는 평화(를 가장한)의 시절을 살면서

박경원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윤종찬과 장진영을 믿고 찾아갔다.   

밑천 없는 집 딸이 성공하기가 밑천 없는 집 아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여전히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기에, 나는 영화의 시작부터 마음이 좀 아팠다.

 

늘 죽음 가까이에 있던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가진 꿈은 그냥 내쳐 노력만 하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란 걸 상기시켜준다. 그래, 박경원의 꿈은 참 위험한 것이었지, 여러모로.

꿈은 행복하려고 혹은 행복할 것을 믿으며 꾸는 것인데,

박경원은 꿈을 포기하지 못할수록 점점 불행해지는 운 나쁜 인간이었다.

뭘까, 그렇게 강렬하게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반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살기 힘들었을 여자 박경원,

콘택트에 나왔던 브라더 제스의 뒤를 이을 법한 러브로망의 혁신적인 캐릭터이자 환타지 한지혁,

비행동료들-꿈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유대감 같은 거-좋았다.

박경원이 먹었을 욕은 미쉘위가 먹는 욕과 같은 방향이다.

그래서 지혁의 그 대사가 아주 시원했다-조선이 너한테 해준 게 뭔데?

 

찢겨진 불행한 시절에 살아야만 했던 한 사람의 남루하지 않을 뿐인 꿈에 순결을 강요하는 것이 공정한 지도 모르겠고 내 스스로의 애국행각(킹콩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돈으로 이런 영화를 보여준 윤종찬이 피터 잭슨보다 더 멋있다는..)을 돌이켜 볼 때 난 당당하게 돌을 던지지는 못하겠다.

나야 그냥 늦게 태어난 것 뿐이잖아.

개인적으로 고문장면 좀 지루하고, 이정희의 이상한 역할-한지민 연기는 참 잘했는데 비중에 비해 극 기여도는 낮다. 그리고 네이버영화 사진갤러리 뒷부분은 왜 전부 한지민 프로필 사진인거지?-이 개인적인 불만족의 전부다.  

영화에 대한 논란이 더 많은 정보를 준 건 오히려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한 대로 

난 이제 박경원이 `한 일`도, `한 짓`도 알게 되었는데,

그렇기에 얘기할 가치도 없다는 이상한 논리에는 적응 못한다.

한 말을 가지고야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 말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게 뭐야.

똑같은 짓을 전두환이 하면 독재고 네티즌이 하면 민주주의인가. 

 

내 평생을 두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고민한 시간을 생각해봤을 때 요즘처럼 분기탱천한 애국자 많은 대한민국에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산다는 게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끓는 피를 키보드 두드리는 것 말고 다른데도 좀 써서 진정한 애국자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란다, 나 같은 사람 좀 묻어가게.

진정한 최초여자비행사 권기옥씨의 영화를 만들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영화 만들어지기 전까지 도마 안중근부터 섭렵하시도록. 진작 그런 영화 단체관람들 좀 했으면 애국영화의 신유행을 창조했을 것을.

형사폐인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으면 동원이와 지원이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있어야지” 하니까 대결 장면에서 칼날들이 부딪치는 것이 ‘쪽, 쪽, 쪽...’ 입 맞추는 거라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이다. 기가 막혀 “시나리오 문제 투성이야.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플롯이 빠져 있어. 슬픈 눈과 남순이가 왜 첫눈에 반하는지와 슬픈 눈이 왜 병조 판서를 배신하는지가 없어” 하면 “영화는 소설이 아니라 시야. 이미지야” 하면서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론까지 들먹이며 교수의 자질을 시비한다.
<이명세가 플롯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물고 늘어지는 강한섭-이 얘기 할때는 애증중에 '증'만 있었나봐>
 
사랑얘기를 볼 때.
왜 좋아하는 지 이해가 안 가-라는 말.
나도 해 본 적이 있다.
잉글리쉬페이션트라는 러브대로망을 보면서 그랬다.
아주, 인생 하나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히스토리까지 싹 갈아엎는 그 대단한 로망.
만화도 순정만 보는 내가 반해 마땅한 스토리였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남녀주인공이 모두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뭐가 저렇게 좋다는 건 지 쯧쯧...
러브스토리의 러브에 공감이 안된다면 그 영화는 정말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사실 사랑에 빠지는 동기가 뭐 별 거 있나?
둘 사이에는 히스토리가 있을 수 있어도 관객들이 보는 건 언제나 꼴깍 넘어가는 그 찰나부터인데.
왜 좋아-라고 물어볼 기회가 있다면 뭐 나름의 대답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왜 좋은지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알면 되고,
다만 구경꾼들은 그 둘이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통해 공감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유라는 건 결국 호감과 비호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라면 이유 필요 없다.
뭔가 못마땅할때 이해할 단서가 필요하니까 이유를 따지는 것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 다 열광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에 곧잘 감탄하지 않나, 마치 그런 명배우가 없는 것처럼.
그러니까 실은 결국 취향의 문제다.
가끔 '그래도 누군가는 좋아할 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게 만드는, 
'쓰레기'라고 외치고 싶은 무언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죽이고 싶은 X이 있어 내가 욕하고 다닐 수는 있어도,
죽어 마땅한 X이라고 내맘대로 선고하고 죽여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취향에 대해서는 무조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형사를 멜로라고 생각하고 본 나는 스토리의 허술함을 전혀 눈치챌 수 조차 없었다.
배경이 있으면 설득력은 더 생겼을지 모르지만
아님 어때? 감이 오면 즐기면되고 아니면 싫어하면 되지.
슬픈눈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어쨌든 그 둘은 만남보다 추억이 더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아쉬운 사랑을 하는 연인들이고
칼쌈질의 독특한 데이트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 연인들이기도 하다.
저 칼날들의 '쪽, 쪽, 쪽...'은 정말 재밌다.
아마도 '쪽, 쪽, 쪽...'보다 더한 것도 있었으리라 짐작되는구만~
드디어 아이러뷰쏘머치까지 감동적으로 듣게 된 경이로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대결|형사OST|2005


아티스트 - 조성우
관련앨범 - 형사 OST
마지막 대결 -조성우
쎄끈하고도 알흠답도다...

[펌] MEN OF THE YEAR - GQ,200512


GQ KOREA December 2005

 

 
 
이명세, 뭐든 예뻐야 해

한국 대중 영화에는 졸부 같은 구석이 있다. 돈 벌기에 급급한 나머지 영화 미학에는 둔감한 영화가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영화를 오직 영화로만 고민해온 감독이 있다. 6년 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남긴 채 훌쩍 미국으로 떠났던 이명세는 <형사>로 다시 한 번 자신이 구제불능의 영화근본주의자라는 걸 입증했다. <형사>는 불완전한 작품이지만 이명세가 부재했던 지난 6년 동안 한국 대중 영화가 잊고 있었던 영화의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GQ>는 이명세를 올해의 감독으로 선택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어쩌면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대장금>을 무척 좋아한다. 신문 연재 소설 같다. 매 회 새로운 박진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대장금>은 드라마다.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다. 신문 연재 소설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영화는 시에 가깝다.

<형사>로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했다는 뜻인가?
TV 드라마였다면 인물 설명을 위해 몇 회 분량을 소비했을 거다. 사실 인물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2시간을 써도 모자라다. 하지만 <형사>는 인물을 설명하고 그들이 빚어내는 사건을 담아내는 영화가 아니다. 두 남녀가 사랑하는 느낌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관객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관객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클래식을 듣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쇼팽의 음악을 들으며 차갑다 혹은 뜨겁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감각이 훈련되지 못하면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관객을 너무 앞서간 것 아닌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도 그 느낌을 구분해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디자인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나?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거다.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은 평생 동안 영적인 성장을 한다. 영화도 그걸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혼은 어떻게 충족 되는건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우리는 흔히 베르사체나 샤넬, 디올의 옷을 입고 행복해하지 않나.

지금 한국영화에 그런 고민이 필요하단 얘기인가?
한국은 지금 영화 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 전반에 철학이 없다. 미적으로 세련됐다는 건 미학적인 고민 속에서만 나온다. 우리가 커피숍에서 얘기를 나누지만 여기 분위기가 좋다 나쁘다고 얘기하게 되는 건 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가. 영화도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영화 감독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 감독은 결국 철학자인가?

영화 감독은 깡패다. 예술이 전복의 역사이고 예술가는 깡패이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은 자신이 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철학자다. 경제인도 철학을 한다. 지금은 상도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경제인들도 상술의 미학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영화의 미학이 땅에 떨어졌나?
아름다움과 그렇지 못한 것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영화가 아름답고자 한다면 극장의 의자 배치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런 건 평론가들과 매체의 몫이기도 하다. 음식 문화가 나아지고 있다면 음식 문화의 무엇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매체의 평이다. 그런데 매체들은 자기 권력만 휘두른다. 영화를 재단하기에 바쁘다.

아름답다는 건 뭔가?
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 형사가 욕을 했다는 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고약한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그게 표현의 자유일까? 그렇다면 예술의 표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야만 진보라고 불린다. 하지만 표현의 아름다움을 고민하고 표현의 미래를 고민하는 게 진짜 진보다. 난 진보의 진보다.

영화 감독은 왜 했나? 벌써 20년째 당신은 영화 감독이다.
그 질문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왜 했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참을 고민했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그러다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감독이 되겠다는 것으로 연결되나?

난 나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을 하곤 한다. 모든 것은 나 자신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나를 생각했을 때, 소박한 소시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난 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영화도, 인생도 그렇게 산다. 그래서 생각했다. 사람한테는 주민등록증이 있다. 하지만 정신의 주민등록증은 없다. 내겐 영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게 영혼의 주민등록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를 한 거다.

그렇다면 당신은 관객이 아니라 자신이 비치는 거울을 앞에 놓고 영화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아니다. 나르시시즘은 피해야 한다.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에게 이해 받기를 원한다. 어사 박문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는데 한 아낙네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줬다고 했던가? 누군가는 목 말라 죽겠는데 버들잎을 띄워주냐며 역정을 내겠지만 현명한 누군가는 버들잎의 속내를 알아챌거다. 현명한 관객을 위해 난 영화를 만든다.

그렇다면 <형사>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 무척 실망했을 것 같다. 찬반을 떠나 십 수년 전 <개그맨>이나 <첫사랑>을 찍었을 때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야기가 빈약하다느니, 이미지 과잉이라느니 하는 비판 말이다.
비슷한 것만 자꾸 하면 재미 없다. 성장이 없으니까. 인터뷰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난해 우리가 만나서 한 얘기와 올해 우리가 만나서 나눌 얘기가 비슷하다면 재미 없지. 가끔 알고나 썼을까 싶은 평론이 있긴 하다. 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글이 장황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런 건 재미 없다.

그럼 무엇이 재미있는 건가?
난 우리 사회가 시대의 강박 관념을 끊어버렸으면 싶다. 한국을 포함해서 아시아 영화들엔 그런 무거움이 있다. 젊은 친구들의 영화에서도 그런 게 엿보일 때면 답답하다. 그런 강박을 버리면 재미 있어진다. 그건 이야기에 대한 강박과도 같은 것이다.

이야기가 없다는 비평을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모양이다.
<첫사랑> 때도 그런 얘긴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고흐 시대 사람들은 고흐를 버렸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마녀 사냥으로 숱한 사람들이 화형을 당했다.

당신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결국 영화인가?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당신 나이의 남자들은 가정과 아이 걱정으로 인생을 보낸다.

글쎄…. 결국 내겐 영화밖엔 없는 거겠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내 발로 나왔는데 너무 멀리 나왔다. 잘해보고도 싶은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가끔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나 싶은 고민을 한다. 내 영화 <첫사랑>에 그런 느낌이 조금 배어 있다. 내겐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강박 관념 같은 게 있다. 그렇게 짓눌려서인지 악몽을 꾼다. 울어야 하는데 울음이 안 나온다. 그러다 소리지르며 깨서 운다.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을 가끔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나?

난 늘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간이란 게 뭔지, 왜 유한한 존재인지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예수와 부처도 결국 다 죽음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곧 인생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 근원적인 고민이 6년 동안의 미국 생활에서 더욱 깊어진 게 아닌가도 싶다.

늘 짊어지고 사는 질문들이다. 미국에서도 많은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고민을 하면서 생각을 숙성시켰다.

서사 구조에 대한 고민은 소설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 같은 소설가가 있었던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처럼 이야기를 단절시키고 분쇄하는 소설가가 등장했었다. 시간과 논리에 대한 싸움은 예술의 숙명이다. 영화에서 당신도 그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그런 고민은 있었다. 인상파나 야수파가 출연하게 된 건 평면적인 화폭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것 아닌가. <형사>는 외국에서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본 영화라는 건 인정했다. 본 적이 없는 영화를 어떻게 정의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다.

앞으로도 영화가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CG도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떤 사람은 CG란 기술의 진보일 뿐이라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CG는 영화 언어의 진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있다면 진화할 거다. 그 시대엔 그 시대에 맞는 매체가 탄생하게 돼 있다. 20세기엔 영화가 탄생했다. 2005년엔 그에 맞는 영화 언어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내 영화가 그 진보의 연장에 있기를 바란다. 난 인생이 무엇인지, 영화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난 구도자다. 난 지금 만행을 하는 중이다.


에디터 | 신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