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유니버셜발레단|토월극장|2018




자수를 놓는 춘향과 글공부 하는 몽룡이 분할된 공간에서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는 조용한 도입은 금새 사라지고
어느새 떠들썩한 단오날.
춘향이가 장정 그네를 타는 장면부터 재미있다 했는데
오히려 정적일 것만 같은 과거시험 장면도 그랬다.
모여 앉은 선비들의 개성있고 치열한 두뇌활동을 몸으로 표현하는 건지
어찌나 박력있고 화려하게 글짓기들을 하시던지^^
장원급제하는 몽룡은 특히 큰 붓까지 하나 들고
화려한 글솜씨를 몸으로 자랑한다 ㅋㅋ
하긴 선비들에게는 과거장은 전쟁터일 수도.

이 못지 않게 박진감 넘치던 암행어사 출두 장면은
스파르타쿠스 못지 않은 박력의 장면.
무대가 실지로 좁기도 했지만
더 좁아보이는 활기^^

의외의 연출은 변학도인데
난봉꾼이 꽤 비장하게 등장한다.
사실 여기서 좀 궁금한 게 생겼는데.
변학도가 춘향이를 희롱할때의 동작이 이몽룡과의 합방씬과 비슷하다보니
이게 자꾸 수위높은 폭력씬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춘향이는 거부의 표현을 확실히 하고
변학도가 화를 내니 뜻대로 안된 게 확실한데도
좀 찜찜하다.
요즘의 분위기와 맞물려 좀 더 예민하게 보게되는지 모르겠지만
춘향이가 끌려나가던 장면도 그랬다.
네명의 남자가 들이닥쳐서 차례대로 괴롭힐 때도
때리는 손짓이 있긴 했지만 또 수위 높은 폭행을 떠올리게 됐다.
바람불면 날아갈 것 같은 춘향이 하나를 끌고 가는데
굳이 네 명의 장정들이 필요했을까.
그냥 망나니나 옥지기 같은 사람이 좀 화려한 4인분 춤을 혼자 추면서 데리고 나가면 안되나,
춘향이가 반대쪽으로 나부끼지만 말고 좀 더 도전적인 춤을 섞어서 덤벼보면 안되나?
춘향과 짝을 지어 다니는 정절이라는 말의 조선식의 의미를 떠나
어떻게 보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 저항정신을 좀 더 살려본다면 불가능한 것 같진 않은데.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멋진 공연.
무대인사 끝나고 무대 뒤에서 환호성이 들리던데 자축하는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박수소리 흔한 일은 아니지.
벌써 두 번째의 창작발레를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유니버설, 대단하다.
원래 국립발레단이 이런 거 해야하는 거 아닌지....
왕자호동도 빨리 좀 다듬어주면 좋을텐데.
유니버설 발레단이 생음악에 큰 무대-객석이 아니라 진짜 무대만 좀 더 넓은^^-에 서는 공연도 보고 싶다.

춘향과 몽룡의 합방씬(^^)은 음악도 그렇고 되게 낭만적이었는데
바로 뒷자리에서 박수를 불벼락 처럼 치는 바람에 깜놀.
가끔 소리에 파이프가 든 것처럼 귀를 찌르는 박수소리를 내는 신비로운 분들이 주변에 앉을 때면
그 쪽 귀를 막느라 박수를 못치게 되기도 하는데
오늘은 뒤, 옆 모두 박수 장인들이 앉는 바람에 커튼콜 때 짝짝이 박수를 쳤다~
무용수가 아니라 배우해도 되겠다 싶던 놀라운 감초 연기의 방자는 춤도 발랄해서 거의 몽룡-변학도와 트리오를 이루었다는.
근데 제목이 춘향인데 어째 춘향이는 다양한 남자무용수들의 뮤즈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은 왜...?

PS. 조기예매 해놓고 까먹고 있던 중 내일 다른 공연을 예매해버렸는데 갑자기 날아든 문자알림.
주말 내내 장거리 버스 여행은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취소하러 로그인했는데
막상 표를 보니 할인 받은 게 너무 아까워서-조기예매 할인이 어디냐~싶어 갔는데
공연장 앞 전.석.매.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부자된 기분 ㅎㅎㅎ
이런, 간사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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