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형사|Duelist|2005




웃기면서 아름답고 또 가슴 아픈...이런 영화를 본 기억이...없다.
은하계인 이명세.
등장인물들이 입은 한복만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시공을 넘어 어느 곳 어느 시간에 갖다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배경과 대사를 가지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이 강조되는 컷이나 공간을 엇가는 교차컷들을 보면 만화기술의 느낌을 영화로 잘 살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 그대로 만화속 인물들을 튀어나오게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 
클래식한 음악속에 펼쳐지는 번잡한 장터의 활극,
점잖은 그림자 속에서 들어앉은 대감들의 실은 방정맞은 내용이었던 대화,
테크노락음악에 맞춰 기괴한 섹시댄스를 선보이는 기생들,
유일한 러브모드 데이트 장면에서 서로의 기억을 차지하는 우습고도 사랑스러운 모습들,
싸움이 아닌 슬픈눈 혼자만의 검무에 흐르던,
아마도 아주 개인적인 슬픔이었음을 짐작케하는 소박하고 슬픈 선율까지
음악과 장면, 사운드의 어우러짐은 정말 멋있었다.
(엔드타이틀의 러브송은 좀 생뚱맞은 것 같긴 했지만^^:들으면서 배우들과 목소리 비슷한 가수들을 잘도 골랐네, 남자가수는 너무 짜네-생각했는데 정말 강동원과 하지원이 불렀다는 것을 알고 나니 노래가 다시 들리는 간사한 변심이--;; 진짜 슬픈눈과 남순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가사가 이리도 애절할 수가...)
아마도 저게 슬픈 몸짓이라는 걸 거야-생각이 들던 슬픈눈의 검무와
마지막의 대결은 말 한마디 없는데도 눈물이 난다.
 
마음에 확 내려앉는 대사들의 여운도 길고
대결장면들의 움직임은 연인이나 와호장룡 같은 활극이 뻐기듯 보여주던 화려한 장면들에서 느껴지던 공허함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명세의 장면들은 군중씬들 조차도 스펙타클의 느낌보다는 보다 더 사람에 가까와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기자기하달까.
또 하나의 놀라움은 사운드 인데, 실은 내가 웬만한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어한 이유였던 비디오버전의 웅웅거림이 이 영화에는 없다. 또박또박 들리는 대사의 반가움도 형사를 매끈하게 만든 공신이었을 것.
 
강동원|슬픈눈
이쁜 스틸에서는 놓쳐버린 매력이 영화에서는 더 많이 보인다. 매끄러운 몸동작을 100% 강동원이 한 것이라면 남우주연상을 받았어도 마땅하다.
대사의 매력도 새로왔다. 강동원이 이렇게나 울림있는 소리를 내는 배우이던가 싶은. 
올해 영화상에는 두 개의 특별상을 추가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을 위한 뽀다구상과 형사의 강동원을 위한 이쁜이상.
그런데 신기한 건 이렇게 `아름다운` 슬픈눈의 강동원이 남자다워 보였다는 것이다.
역시 칼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냐...
 
하지원|남순
처음엔 오바인가 싶었지만 이명세가 오케이해서 넘어간 장면이었을 테니 흠을 잡아도 이명세에게서 잡아야 겠지. 어떤 장면은 마치 내사랑 싸가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한데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진듯. 하지원 단 한번의 진지대사도 마음에 들었다.
 
안성기|안포교
아니 왜 안성기는 후보에도 안 올려 준거야! 이렇게 잘 했구만.
개인적으로 안성기의 슬픈 눈깔인지 우는 눈깔인지와 나무에 매달려 하던 대사들이 아주 맘에 들었다. 한국영화계 상을 모두 휩쓸던 시절의 안성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사 이후로 안성기의 연기력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형사도 역시 그가 필요한 영화였고.
 
송영창|송대감
나에게 연극의 맛을 알게 해 준 배우였고 한때 무대를 찾는 이유였던 배우. 사실 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연극무대의 생기가 한김 빠진 듯한 모습이었기에 무대의 그를 더 좋아하기는 했지만, 형사의 송대감은 송영창 영화제의 대상감이다. 송대감이 될 수는 있었으나 그를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날은 기약이 없으므로 여전히 나는 그가 원망스럽다.
정말 돌이킬수만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평상 수상뉴스를 듣고는 역시 평론가들 티를 낸다고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다른 영화상들이 정말 불만이다. 남순이가 금자보다 못한 게 뭐야, 언제부터 상이 관객수에 비례했지 등등의 때 지난 불만. 이따금은 반골의 괴수 같던 평론가들도 제대로 하는 게 있긴하군 싶다. 
극장에서 놓친 것을 한탄하며 내년에는 꼭 훌륭한 테레비를 하나 장만해서 디비디로 봐주리라 결심을 했더니 마침 디지털 재상영 뉴스가 떴다. 역쉬~! 나를 버리지 않았어!
 
팀버튼의 어른스러워짐에 실망했던 자리를
변함없이 파릇파릇한 이명세가 위로해 준다.
이제 이명세팬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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