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공장 소녀|The Match Factory Girl|1990

 
어딘가 찬 기운이 돌고
감정선의 거스러미 같은 걸 완벽하게 제거해서 깔끔한 느낌이 드는데
어딘가는 우리 나라 같은 느낌이 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사실 다른 핀란드 영화를 본적이 없어서 이게 핀란드 정서랑도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자 그대로 ‘썰렁하게 웃기기’도 하는 특이한 작가.
소녀의 이야기는 아닌데 번역이 지나치게 정직했다.
솔직하고 용감한 
한 성냥공장 직원의 가족느와르 겸 죄와 벌.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 착한 친구가 있었겠죠?

분노의 날|Day of Wrath, Vredens Dag|1943

 


자신의 목숨도 지키지 못하고
부당한 의심이나 모함도 이기지 못하는 마녀는 
얼마나 위험한 존재라는 것인지. 
조금 뛰어나고 
조금 자유롭고 
조금 솔직한 게 
그 끔찍한 공개 살인의 이유.

뭐지...싶은데 
보면 좋은 영화의 감독이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라는 긴 이름의 주인공. 
순진무구함의 얼굴에 가득하던
첫 번째 마녀가 기억난다. 

귀토:토끼의 팔란|국립창극단



마지막에 별주부가 토끼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도 용봉탕이 될 처지-라며.
은근한 발칙함이 보이던 문어와
재미있던 한소리 발췌본들이 있었음에도
형식의 신선함이 덜컹거리는 내용들을 잘 포장해 준 것 같다.
정구호는 무용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면서 
전체 공연을 화려한 맛보기쇼로 만들었었는데
창극단은 전통을 신선하게 선보이겠다면서 
오히려 ‘신선한 마당극’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바람 날 뻔한 별주부 부인 부분 같은 거?
극의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팔란에 대한 해석 같은 건, 그냥 좀 웃겨보자에 져버렸고
노래와 연기에는 훌륭한 무대가 되어 주었음에도
이번에는 추천 못함.
인기 공연이라는 소리에 팔랑팔랑 보러 갔던 트로이의 여인들의 기억으로 찾아본 건데
다음 번엔 좀 더 신중해지겠다^^


김군|Kim-Gun|2018


이게 뭐가 달라요-라는 질문이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 어처구니 없는 의문을 던질 때
그것이 아님을 피해자가 증명하는 일,
증명하는 동안 애써 재워둔 고통을 깨워야 하는 데도
그 증명이 피해자의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일,
아직 과거가 되지 못했다.

선명할 것 만 같던 사람들의 기억이
구타와 고문과 충격과 죄책감으로 흔들리는 사이
본인도 친구도 이웃도 알아보기 힘들다는 그 사진의 38년 후 미래를 오차없이 척척 맞춰 
대한민국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뒤흔들 힘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면
그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 ‘부족한 믿음’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그래서 광주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 도시에 산다고 모두가 알고 지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시민의식과 참여를 회고하던 오월광주의 증언들을 들으면서 
당시 광주시민들을 마치 가족공동체 처럼 
그냥 광주 자체를 한 동네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고
생각보다 꽤 많았으니
왜 사진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이 영화로까지 이어졌겠지.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했어도 
그 질문은 파문조차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의심 받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진의 주인공을 찾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여정의 형태로 
수 십년간 상처를 헤집으며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광주의 지난한 싸움을 보여준다, 
판결이 끝나도 멈추지 않는 망언
진실보다 널리 퍼져버린 왜곡이 이것으로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절망이라면 
그 망언을 뿌리고 거두고 소비하면서 
기어이 증명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건
지금까지의 불행이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질문은 아니었더라도 
이 와중에 이렇게 김군을 찾아 나서준 감독에게선
이 인터뷰가 겹쳤다. 
민주화도 뭣도 몰랐지만 피흘리며 쓰러지는 다른 시민들을 위해 일어섰던 것 뿐이라고, 
아마도 강상우 감독은 저런 의혹에 뭐라도 해야 했던 사람.
광주의 기억 아카이브에 이 영화도 같이 남아야 할 것 같다.